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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착

작성자양세현|작성시간26.06.14|조회수109 목록 댓글 0

 “그 당시 나의 가장 좋은 친구는 내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옷을 해입힌 내 우산, 아르튀르였다.” 밤이 무서웠고, 혼자 살아갈 생각을 하면 겁이 나던 「자기 앞의 생」의 열 살 소년 모모의 말이다. 사람은 태어나서 공유보다 소유의 개념을 먼저 갖는다. ‘내’ 부모의 관심을 독차지하는 동생을 미워하고, 누군가 ‘내’ 장난감에 손을 대기만 해도 싫어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쩌면 본인보다도 제가 가진 대상에 마음을 쏟는 이 시기에 애착이 형성된다. 사랑하는 마음을 끝끝내 지켜버린 유난한 어른들은 구멍이 숭숭 뚫린 잠옷이나 넝마 같은 이불, 삭아버려 이목구비가 자유로워진 인형을 지금까지도 전리품으로 갖고 있다.

 

우리는 현실을 부유하며 살아낸다. 발이 떠 있음을 자각하지 못하다가, 문득 어디로도 나아가지 않고 어디에도 닿지 않았음을 느낀다. 그때 사람은 마음 붙일 곳을 찾는다. 사람이든, 공간이든, 물건이든 간에 땅에 두 발을 단단히 붙이고 설 수 있도록. 이 시기를 처음 경험하는 건 보통 청소년 시기다. 어린이도 어른도 아닌 애매한 취급을 받으며 이마에 여드름 흉터만 늘어나는 이때 저마다의 탈출구가 존재한다. 게임, 아이돌, 패션, 웹툰의 세계에 10대 유저가 차지하는 비율을 보면 알 수 있다. 고등학생 때 매일 아침 7시부터 밤 11시까지의 일과를 마치고 침대에 누우면 꼭 보던 영상이 있었다. 멜론뮤직어워드에서 ‘이름에게’라는 노래를 부르는 가수 아이유의 무대였는데, 가려진 이름들을 전면에 세운 연출과 더불어 빛나는 인물에 대한 동경, 그렇지 않은 현실에 대한 아쉬움,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을 느끼고는 잠에 들었다. 주변에서 밥만 먹었다 하면 농구공을 튕기며 밖으로 나가거나, 콜드플레이 노래가 좋다며 가지도 못할 내한 일정을 찾거나, 광해군의 생애에 빠져서 왕실 가족 관계도를 책상에 빼곡히 적는 모습이 그땐 자연스러웠다. 특유의 비대한 자의식과 대비되는 변변찮은 현실에 설치한 대피소였으니.

 

버텨내기만 하면 외부의 소동이 멈추는 날은 반드시 온다. 의무교육이라는 기본 퀘스트를 완수한 유저에게는 다채로운 스킨과 아이템이 주어진다. 단 하나만 보고 달려온 길의 끝에는 너른 세계 지도와 새로운 도전들이 펼쳐진다. 교과서를 내려놓고 미뤄놨던 영화, 공연, 알바, 여행이라는 새로운 경험치를 쌓아 올린다. 소유와 공유를 넘은 자유의 시작과 함께 부유가 아닌 비행이 시작된다. 하지만 주의해야 한다, 멋모르고 가속도가 붙을수록 방해물을 피하기 어렵기에. 실수해도 괜찮지만 모든 책임을 감당하는 게 첫 번째 원칙. 이름을 불러주고 끼니를 챙겨주며 꾸중하는 어른은 없다. 부딪히고 넘어지는 시행착오를 겪다 보면 자신을 제어하게 된다. 서서히 속도를 줄이고 자세를 낮춰 연착륙을 준비한다.

 

유독 힘든 날. 추억의 공간이자 부모의 소재지가 되어버린 본가에서 유물 찾기를 한 적이 있다. 서랍에서 한동안 잊고 살던 분홍색 mp4를 발견했다. 아빠랑 같이 가서 고른 거였는데… 버튼을 누르자 전원이 켜진다. 낯부끄러운 인터넷 소설 제목이 그때의 기억과 함께 펼쳐진다. 누가 볼세라 필통에 숨겨서 봤던 수학시간, 구체적인 장면 묘사에 날을 새서 완독한 어느 새벽, 밤새 켜진 화면을 보며 부모님이 봤을까 눈치를 살피던 아침. 참 어렸네, 웃음이 난다. 한 사람이 사랑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날의 수업 시간, 새벽, 아침, 하루, 한 달, 일 년. 맞다, 나는 살아가는 일상을 사랑하고 있었네. 도색이 벗겨진 버튼을 누르며 15살의 내가 묻는다. 멋진 사람이 됐냐고. 다리로 땅을 툭 내려친다. 흔들림이 없다. 응, 우리는 안착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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