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나는 예전부터 이 말의 사용에 조심스러웠다. 어릴 적부터 「열국전」 등 고전을 보고 자란 영향이었을까, 내게는 “친구”라는 말은 ‘관중’과 ‘포숙아’ 같은 깊은 지기가 아닌 수준이면 다른 사람을 묘사할 때 쉽사리 사용할 수 없는 용어였다. 가령, 부모님께서 ‘OO이 너와 같은 반 친구라던데….’로 운을 띄우면 나는 ‘아? OO이요? 같은 반 아이 맞아요.’라고 답하며 “친구”라는 용어 사용을 피해 왔다. 상황에 따라 “급우”나 “학생” 등 다른 용어를 쓰긴 했지만 “친구”라는 표현은 쓰지 않은 것이다. 간혹 부모님께서 왜 “친구”라고 부르지 않냐고 물으면, 나는 위에서 언급한 고전을 언급하며 “친구” 수준의 친함은 아니라고 답했고 부모님은 내가 꽉 막혔다고 답답해하곤 했다.
세월이 지난 지금은 나도 예전과 같이 ‘꽉 막힌’ 사람은 아니라서, 남들과 대화 시에는 “친구”라는 말을 쓰게 되었다. “친구”라는 말을 쓰지 않으면 서운해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배려의 표현을 익혔다고 할까, 그럼에도 여전히 속으로는 “친구”라는 용어는 내심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친구” = ‘친한 사람’로 단순하게 치환되지 않기 때문이다. 가령 부모나 연인 등은, 통상 가장 나와 친한 관계의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친구 같은’ 부모나 연인”은 될 수 있어도 부모나 연인을 친구라고 보통 부르지 않는다. 이처럼 “친구”는 단순히 ‘친한 사람’으로 동일시되지 않는데, 이에 나는 “친구”의 정의를 생각하기에 먼저 “친함”의 의미를 살펴보기로 마음 먹었다.
사전을 들여다볼 수도 있겠지만, 여기선 먼저 직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기로 했다. ‘OO와 친함’을 ‘OO를 평균적 인간보다 특별하게 생각함’이라 정의해 본 것이다. 그리고 앞 정의의 반례를 생각해 본다. 우선 ‘특별함’은 꼭 긍정적 의미만을 담고 있진 않으니, “원수” 등이 포함될 위험이 있어 이를 배제한다. 그리고 더 생각해 보면, 단순히 스쳐 지나가는 인간의 호의(가령, 모르는 길을 물어본다거나) 또한 흔히 말하는 ‘친하다’와는 다른 것 같다. 이런 사고를 이어 나가면, ‘OO와 친하다’라는 말은 곧 ‘OO를 대상이 속한 집단의 평균적 인간보다 특별히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대상과의 상호 관계를 지속하고 싶다는 감정을 가진 상태’로 정의할 수 있다. 물론, 위의 정의도 허점이 많으나, 본 사고의 최종 목적은 어디까지나 “친구”이므로, 이 정도 선에서 일단 생각을 정리하였다.
다음 단계로, ‘친한 사람’에서 “친구”로 나아가기 위하여 어떤 조건들이 필요할지 생각해 보았다. 먼저 ‘수평적 관계’여야 한다는 조건은 어떨까? 흔히 ‘부모-자식’, ‘스승-제자’를 “친구”라고 부르지 않는 것처럼 이는 자연스러운 조건처럼 보인다. 그런데, 앞에서 언급한 관중과 포숙아 간의 사례를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관중과 포숙아의 사회적 상하는 시간에 따라 바뀌곤 했으나, “친구” 관계만은 변함없이 유지되었기 때문이다. 이 둘은 그나마 어릴 때는 수평적 관계였다고 쳐도, 서양 영화에서 보이는 노인과 아이가 서로 “친구”로 교류하는 장면은 대다수 사람이 어색해하지 않는다. 따라서, 수평적 관계라는 조건을 “친구”의 필요조건이라고 결론짓기는 어렵다.
다음으로, ‘직간접적 이해관계로 얽히지 않아야 한다’라는 조건은 어떨까? 직장에서 만난 동료나 단골 등과 친해질 수는 있어도 보통 “친구”라 부르진 않는 만큼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는 조건이다. 그렇지만, 이 조건 또한 이해관계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정의하기 어렵다. 생각해 보면, 어릴 적 학급 친구들과도 성적 등으로 경쟁했지만 우리는 자연스럽게 급우들을 “친구”로 불렀기 때문이다. 물론 학급에서의 경쟁은 직접적 직위 다툼이 아니라고 항변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사회에 나가서 친구들과 계 모임을 하는 경우 등 보다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얽혀 있을 때도 많은 경우 친구 관계는 유지된다. 따라서, ‘이해관계로 얽히지 않아야 한다’라는 조건도 완전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어떤 조건이 갖추어질 때 “친구”가 되는가를 고민하던 와중, 문득 같은 대상(같은 반 학생인 OO)을 두고 부모님과 나의 용어 사용이 달랐다는 것에 생각이 미치게 되었다. 이는 곧 어쩌면 “친구”라는 단어는 개개인에 있어 고정된 정의를 가진 단어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깨달음이었다. 가령, ‘남녀는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없다’라는 통념을 예로 들면, 찬성하는 측은 동성 간에만 공유할 수 있는 비밀 등을 예로 들어 “친구”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역으로 반대 측은 비밀을 많이 공유할 수 있는 관계만이 좋은 “친구”의 기준이냐고 되묻는데, 이런 논쟁도 결국 각자가 마음속으로 생각한 “친구”의 관념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시라고 볼 수 있다.
그럼 “친구”라는 단어의 의미는 제각각이라고 결론지으면 될까? 그렇게만 결론짓기는 아쉬워 생각을 거듭한 결과, 경험칙이긴 해도 일종의 패턴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사람들이 누군가를 “친구”라 부를 때는, 그와의 관계를 다른 인간관계를 일컫는 용어로 설명하기 어렵거나 부족하다 느낄 때라는 관찰이다.
이를테면, 친한 사람 A가 같은 직장을 다닌다면 ‘직장 동료’로, 같은 아파트 부녀회에 소속되어 있다면 ‘부녀회원’으로 부를 수 있지만, 어느 용어도 적당하지 않다고 생각할 때 비로소 “친구”로 칭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적당하지 않다’의 원인은 정말 대상과 관계를 칭할 적당한 단어가 없기 때문일 수도 있고, 어떠한 집단 소속으로 분류하자면 억지로 분류할 수는 있지만 친한 정도가 집단의 평균과 지나치게 차이 나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핵심은 “친구”라는 용어는 처음부터 관계에 부여된다기보다, 다른 인간관계의 가능성을 최대한 검토하고 다다른 결과란 것이다. 그렇기에, 갑과 을이 서로를 “친구”라고 이야기할 때도, 양쪽이 “친구”에 상정한 친밀함에는 상당한 간극이 존재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생각을 정리하면, “친구”란 다른 관계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친밀함에 붙는 단어에 가깝다. 그렇다면, 상대가 나를 “친구”라고 부르더라도, 그 말이 내가 기대하는 수준의 친밀함을 뜻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 또한 인정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는 곧 상대가 “친구”라는 용어로 나를 부르지 않더라도 친밀함이 높을 수도 있다는 의미기도 하다. 가령 혹자가 어느 동호회 전체에 대한 애착이 크다고 한다면, 같은 동호회 회원이라는 말 안에 이미 상당한 수준의 친밀함을 전제하고 있을 수 있고, 적어도 대상의 옛 대학 친구 같은 일반적인 의미의 “친구”는 넘어선 관계일 여지도 충분하다. 그러기에 앞으로 누군가가 나를 꼭 “친구”라고 부르지 않아도 서운해하지 않도록 마음먹고자 한다. 물론 사람인 이상 관계를 부정당한 듯한 불안감을 완전히 이길 수는 없겠으나, 그럴 때마다 지금의 생각을 떠올리며 관계의 이름이 아닌 실체를 보자고 스스로 다독이며 펜을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