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스님 일화 -현진
전, 아닙니다 그해, 겨울은 매서운 찬바람이 불고 가야산 골짜기마다 눈이 쌓였다. 동안거를 시작하는 첫 날, 선열당禪悅堂에 모여 방장스님의 법문을 듣고 있었다. 법상에 오른 성철 큰스님이, “한철도 길다, 삼일 혹은 칠일 안에 공부를 마쳐라”라고 법어를 내린 후 염려스런 눈빛으로 짐짓 일렀다. “여기 모인 수좌들 가운데서 목숨 걸고 독하게 공부할 사람이 몇이나 있을지 모르겠다. 다들, 논 열 마지기 에 기집 하나 안겨주면 속가로 나갈 멍청한 놈밖에 없는 것 같다.” 그때 말석에 앉아 있던 어떤 학인이 손을 들며 큰소리로 외쳤다. “전, 절대 아닙니다!” 너무 자신만만한 까닭에 큰스님께 그만 대꾸를 한 것이다. 큰스님은 화를 내는 대신 빙그레 웃으시며, “그래 두고 보자, 이놈아”하셨다. 그런데 그로부터 몇 년 후 자신 있게 대답했던 그 학인은 사랑의 인연을 만나 환속하고 말았다. 누구나 수행길은 백퍼센트 장담할 수 없다. 지나친 자만과 오기는 스스로를 묶기도 하고 부러지게도 하기 때문이다.
염화미소 참선하던 어떤 젊은 스님이 백련암으로 찾아갔다. 성철 큰스님을 대면한 자리에서, “저는, 염화미소拈花微笑 화두가 잘 되지 않습니다”했다. 그 질문에 다시 질문을 던졌다. “화두를 어떻게 들고 있는데?” “세존이 꽃을 들었는데 가섭이 왜 웃었을까 하며 의심하고 있습니다.” “너무 길다, 그냥‘가섭이 왜 웃었나?’하고 의심해라.” 그 순간, 갑갑하던 마음이 확 열렸다. 스승의 가르침은 이런 것이다. 이를테면 막힌 부분을 뚫어줄 줄 아는 안목이다. 큰스님의 훈수에 궁금증이 풀어진 젊은 스님은 해우소에서 볼일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제 저 똥통에 머리를 처박고 죽어도 아무 여한이 없다.” 미혹의 길을 헤맬 때 바른길을 안내해주는 스승을 만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인생의 축복이다.
월간 海印 2009년 5월호[통권327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