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기분 좋은 가수, 이문세를 아시나요?
| 이름 | 이문세(李文世) |
| 활동 | 가수, 라디오DJ, 방송MC |
| 출생 | |
| 신체 | 178cm, 78kg |
| 가족 | 배우자 이지현, 아들 이종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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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뷔 | 1978년 CBS 세븐틴 MC |
1. 소개
1959년 1월 17일생. 80년대, 90대를 대표하는 대한민국 레전드 가수로 이문세, 변진섭, 신승훈, 조성모로 내려오는 가요계의 발라드 황제 계보의 최선두에 위치한 가요계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가수이다.
명지대 공대 재학시절 대학밴드 동아리 화이트홀스로 음악활동을 시작했다. 대학 등록금을 벌기 위해서 음악을 시작한 것이 생업이 되었다고 한다. 말솜씨도 좋고 유머 감각도 좋아 전성기 때엔 토크쇼
진행이나 예능 출연도 많았다. 활동이 뜸해진 요즘에도 간간이 나타나 터트려 주시는 듯. 하지만 그의 업적(?) 중 가장 무시무시한 건 별이 빛나는 밤에의 DJ인 별밤지기. 1985년부터 1996년까지 11년 동안 이 프로그램의 DJ로 있었고, 지금도 당시 청소년이었던 세대들에게는 지금도 별밤지기는 곧 이문세다. 오죽하면 당시에 붙어있던 별명 중 하나가 밤의 문교부 장관이다.
그 이후 이문세의 2시의 데이트를 거쳐 오늘아침 이문세입니다 등의 라디오 프로그램 DJ로 20년 넘게 활약 중이다. MBC 라디오 명예의 전당이라 할 수 있는 골든마우스를 수상했다.
2. 음악
과거의 이문세는 '말랑말랑하게 노래하는 가수', 혹평을 받을 때는 '작곡가 잘 만나서 좋은 곡 받고 덜 부담스러운 외모로 친근감이나 어필하는 가수'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하지만 작곡가와 프로듀서가 아무리 가수를 갈궈도 최종 출력물인 앨범에서 그 결과물이 어떻게 나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문세는 수많은 명곡을 자기 스타일로 잘 해석하는 가수이며, 자신의 강점인 중저음역대를 강조해서 음색이 쉽게 틀어지는 단점을 잘 커버하면서 표현력의 교과서라는 평가까지 받고 있다. 특히 내공이 쌓이면서 공연을 수행하는 능력이 탁월해졌고 뛰어난 음악적 직관력까지 갖춘 전형적인 대기만성형의 노고수. 그는 대중에게 직접 표현을 하는 가수로서 그 전달력 하나만으로도 대한민국 음악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레전드 반열에 올라있으며 현재 정태춘, 조용필 등 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구세대 음악가처럼 아직도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나는 가수다에서 김연우가 '나와 같다면'을 불러서 높은 인기와 많은 관심을 받을 때, 2006년 '윤도현의 러브레터'에서 이문세가 불렀던 '나와 같다면'도 덩달아 주목을 받기도 했다.
3. 음반
이문세의 음반 목록에 관해서는 이문세/음반 목록 참조. 이문세의 음악은 이영훈과 함께한 3집부터 잠재력을 폭발시키기
시작했다. 한 음반에서 히트곡이 하나만 나오는 게 대부분이었던 당시에 음반 수록곡의 대다수가 히트곡이
되는 전례를 남겼으며 음반의 완성도뿐 아니라 한국 대중가요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이문세-이영훈 라인은 가요 전체 역사를 놓고 봐도 대한민국 최고의 가수-작곡가 듀오로 손꼽히며 대중가요 100대 명반 중 4집이 16위, 5집이 50위에 랭크되었다.
4. 대표곡
히트곡이 무수히 많은 가수인 만큼 대표하는 곡들도 많다. 이문세를 잘 모르는 젊은 세대들도 제목은 잘 몰라도 한 번쯤 들어봤다는 생각이 들 정도. 그 위상만큼이나 리메이크도 많이 되었다. 그중 비교적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노래 중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전성기 시절인 4집 ~ 5집 시절에는 TV에 출연하지 않고 음반과 라디오 위주로 활동했다. 간혹 연말에 MBC 10대 가수 가요제 정도나 나올까, 그 외에는 TV에서 보기가 무척 힘들었다.
- 긴 하관으로 인해 말이라고 놀림당하는 일도 잦았다, 방송에서도 이 말상이 캐릭터였다. 비슷한 외모의 유열, 이수만과 더불어 馬삼 트리오라고 불리기도 했다. 셋이 같이 콘서트를 하기도 했고 심지어 CF도 같이 찍기까지 했다. 예전엔 말상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연예인이었고 경마장 드립 등 다양한 유머[11]의 희생양이 되기도 했었다. 그리고 이건 본인도 인정하는 거라.. 공식 홈페이지 이름은 이문세의 마굿간 1994년 출간한 이문세의 자서전 제목도 "마굿간 이야기"이다. 예전 별이 빛나는 밤에 공개방송 당시 게스트였던 솔리드는 이문세가 제안한 야자타임에서 "이 말같이 생긴 놈" 드립을 쳤고, 이문세 역시 호기롭게 웃으며 받아주기도 했다.
- 또한 1994년 LG 트윈스 우승 주역인 우완 선발 투수 김태원과 닮은 꼴이라 일밤 진행 당시 김태원이 LG 트윈스 경기복 입은 채로 초대된 적도 있다. 그리고 이문세는 LG 트윈스 명예 선수이기도 하다.
- 긴 역사를 가지고 있는 ‘마굿간’이라는 팬클럽이 있다. 1998년 천리안, 하이텔에서 각각 시작된 이문세 팬클럽이 교류를 갖기 시작하고 이문세의 활동에 활발히 참여한 것이 시초이며 이후 새로 생긴 다음 팬카페, 개인 팬페이지들, 연예전문사이트의 홈페이지 등 다양한 커뮤니티의 팬들이 통합하여 공식 팬사이트를 만들고 ‘마굿간’으로 통칭하게 된다. 현재도 공연, 방송 등의 공식 활동 뿐 아니라 이문세와 함께 하는 운동회, 소풍 같은 비공식적 활동도 정기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 정규 8집에 수록된 '종원에게'라는 노래의 '종원'은 아들의 이름이다. 즉, 많은 성장통을 겪어가면서 어른이 될 아들에게 미리 들려주는 응원의 노래라고 할 수 있다.
- 1987년부터 근육병 환자들을 위한 자선 공연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 2007년, 2013년에 두 차례 산악회 ‘설레발 마운틴’을 통해 네팔에 희망학교를 설립하는 자원봉사를 진행했다.
- 2012년, 2015년 ‘숲 속 음악회’ 공연을 통해 얻은 수익 전액을 각각 외국인 근로자 무료 진료소와 독거노인을 위해 기부했다.
- ‘이문세X프렌즈 아트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일러스트레이터, 캘리그래퍼와 크리스마스카드를 제작해 판매 수익 전부를 위안부 할머니들의 후원금으로 기부했다.링크
- 슈퍼스타K2 심사위원으로 출연해 참가자들이 자신의 곡을 미션으로 불렀는데 이 때문에 젊은이들에게 다시 인지도가 높아졌다. 예전에는 말상이라고 놀림 받는 등 비주얼이 뛰어난 가수는 아니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미중년으로 변신했다. 슈퍼스타K에서는 참가자들이 엄청 몸 좋고 키 크고 잘생긴 분이 들어오셨는데 이문세 선생님이었다라는 말을 할 정도. 그도 그럴게 이문세는 배드민턴 매니아로 알려져 있을 정도로 운동을 통한 자기 관리가 철저하다고 한다. 심지어 배드민턴 잡지에 표지모델로 나온 적도 있다고 한다. 또한 이소라의 프로포즈에서 이소라의 살을 빼주기 위해 같이 배드민턴을 치기도 했다고. 이소라 특유의 느릿느릿한 행동과 목소리를 흉내내며 썰을 풀었었다.
- 이문세는 가수 설운도보다 7개월 어리지만 한번은 설운도는 라디오에 나와 "사람들이 이문세 선배님보다 내가 나이가 아주 더 많고 더 선배인지 아는 사람이 많다"면서 후배 가수들은 이문세에게 형이라고 부르는데 나는 무슨 선배님이라면서 나이가 더 많게 대한다고 투덜(?)거린 적이 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인터넷으로 올리면서 네티즌들도 어? 설운도가 이문세 선배 아니었어? 반대라고? 놀라워하는 경우가 많다.
- 한때 나는 가수다 2에 PD 김영희가 섭외하려고 했다는 기사가 떴었다. 딱히 한다 안 한다의 의사를 보이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7월까지는 남아공에서 촬영하는 다큐멘터리 때문에 참가가 힘들 거라고 한다. 이 다큐멘터리는 TV조선에 편성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이문세와 떠나요! 비밥바룰라 참조.
- 2013년 히든싱어(E12, 13년5월18일 방송분)에 출연하여 멋진 무대를 펼쳤다. 특히 마지막 미션곡이었던 옛사랑에서는 연예인 판정단 전부가 기립까지 하는 모습을....참고로 이 방송에서 박경림이 말하기를 이문세가 갑상선암 수술을 받아서 두문불출한 것이라 한다.
- 첫 해외 콘서트를 한다
- 갑상선암 재수술을 받는다
- 냉장고를 부탁해 당시 홍석천과 정창욱의 대결에서 홍석천을 선택하였는데 그 이유를 “완벽하게 갖춘 자의 도도함보다는 정상을 위해 0.1%의 마지막 힘까지 쥐어짜서 도전하는 정신을 높이 샀다.”고 밝혀 홍석천이 감동의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다. 홍석천도 “정말 힘들고 외로웠을 때 선배님의 라디오를 들으면서 굉장히 위로를 받았었고 존경하는 선배님이 건강하게 저희와 함께 하는 것이 행복해서 울었다.”고 눈물의 의미를 밝혔다. 요리사 이연복 도 함께 운 건 덤.
- 판타스틱 듀오 시즌2의 특별 무대로 하이라이트와 이문세 정규 15집 음반에 수록된 '봄바람'을 선보여 호평 받았다. 판듀 시즌2 우승곡인 '옛사랑'과 '봄바람' 모두 음원으로도 발매되었다.
- 2017년 8월 봉평 허브나라농원에서 자선 콘서트인 <제9회 이문세 숲속음악회>를 연다고 한다. 링크
- 2017년 12월 10일, 판타스틱 듀오2에서 낭만기타 황주명과 <광화문 연가>를 선보였다.
- 2017년 12월 4일, 자이언티와 콜라보한 음원 <눈>이 발매되었다.
- 2018년 10월 7일 16집 앨범을 발표했으며, 앨범 발표 직후 3년 6개월 만에 2018년 10월 8일 SBS 나이트라인 초대석에 다시 출연하여 새 앨범에 대해서 인터뷰했다. 인터뷰 영상
- 2018년 10월 21일, 28일에 SBS 집사부일체 19대 사부로 출연했다.
- 90년대 말 당대 최고의 아이돌이었던 H.O.T와 함께 음악 순위프로그램에서 1위 후보로 올랐고, 그때 조조할인이라는 곡으로 그 주 1위를 차지한 적이 있었다. 이후 토크쇼에서 밝히길, 이떄 본인은 아이돌 음악 일색이던 순위 프로그램에서 1위해서 매우 의기양양하게 귀가했는데, 아들이 울며불며 왜 아빠가 H.O.T한테 이기고 1위를 했냐고 투정을 부린 적이 있다고 밝혔다. 힐난조로 말한 것은 아니고, 그저 후배가수인 H.O.T의 인기를 증명하는 정도의 가벼운 토크였다. .
신촌성결교회 안수집사다. 이승환의 경우 신승훈과 90년대 초중반에 같이 활동하며 발라드 왕자로 불리긴 했으나, 당시 신승훈 보다는 인기도나 음반판매량에서 확실히 아래였던 데다 활동 전반기에만 발라드를 구사했을 뿐 인기를 얻고 나서 후반기부터는 록 장르로 완전히 옮겨 지금까지도 록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기에 발라드 계보를 잇는 뮤지션으로서는 다소 부족하다고 볼 수 있다.
윤종신의 경우 신승훈, 이승환 바로 아래 정도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고, 윤상은 1993년 이후 활동이 뜸해졌을뿐더러 2000년대 이후 일렉트로니카 장르를 시도하는 음악적 다양성을 추구한다. 김동률은 아티스트로서 장점은 두드러지만 저 계보 인물들과 비교할 정도로 대중적 인기와 파급력을 소유하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성시경, 김범수박효신, 테이 이 계보를 잇고 있다고도 하지만, 모두 2000년대 전반적으로 침체를 맞은 음반판매량 감소를 감안한다 하더라도 위의 계보에 위치한 가수들보다 히트곡들이나 가요순위 입지에서 아직 부족한 편이다. 물론 이들이 실력이 없다거나 그런 건 전혀 아니지만 라디오 스타에 출연해서 밝힌 바에 의하면, 전유성에 의해 픽업돼서 무대를 최초로 설 수 있었다고 한다.
방송사에서도 이문세가 쌓아온 별밤 브랜드의 가치를 인정하고 계속 그 시간대 방송은 별밤으로 인정한다. 하지만 그 청취자들(특히 이문세 시절에 주 청취자들은 진행자가 이문세가 아니라는 이유로 그 이후 별밤을 사도로 취급한다. 나아가 이문세가 진행하는 다른 라디오 프로그램(2시의 데이트, 오늘 아침 이문세입니다 등)을 오히려 별밤의 후속으로 여길 지경이다.
지금의 교육부와 문화체육관광부. 저 당시는 문화와 교육을 묶어 문교부였다. 청와대 부의 경우 정권에 따라, 상황에 따라 개편이 지속되어왔다. 실제로 1995년 교육부 장관상을 받았다. 당시 팝을 즐겨듣던 사람들은 한국 가요의 수준을 낮게 보는 경향이 있었다. 물론 지금도 그런 경향은 늘 존재하지만…
1987년 12월 표준FM 개국. 그리고 냉장고를 부탁해에 출연해서 진짜로 당근을 좋아해서 작업실 냉장고에 당근이 떨어진 적이 없다고 밝혔다. 물론 이 마삼 트리오는 음악적 요소가 기본적으로 작용한 것이었다. 셋 다 당대 음악계를 풍미할 정도는 아니었어도 각자의 영역에서 인정받았고, 그것이 감성을 자극하는 발라드로 듣는 이의 감성을 촉촉하게 적시는 공통점이 있었다. 물론 후대에는 셋 다 하관이 긴 걸로 기억에 남지만, 가령 이런 거다. 최불암과 이문세가 등산을 갔다가 미끄러진 이문세를 최불암이 붙잡았는데 "이문세 씨 괜찮으세요?"라고 묻자 매달린 이문세가 "선배님 말 놓으세요~"라고 답하자 말을 놓아서 떨어져 버렸다거나(…). 사상의학이아닌 8체질의학에서 분류한 체질이다. 이문세: “석천아 니가 울면 너하고 나하고 사귄 줄 알잖아~”
[7080그때 그시절엔]가수 이문세씨와 종로 분식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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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DJ 목소리를 타고…
서울 종로 파고다공원 쪽이나 파고다극장 근처에는 유난히 분식센터가 많았다.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과 남학생들이 하교 후 왜 그 먼 곳까지 와서 분식센터를 돌아다녔는지 지금도 의아하기만 하다.
분명 그 근처에는 고등학교가 별로 없었고 대부분 명륜동 쪽에 보성 경신 서라벌 경복고와 혜화여고, 정동 쪽에 서울고 이화여고 서울예고 등이 몰려 있었는데…. 그 외에 서울시내의 모든 고등학생들이 종로 쪽으로 몰려드는 이유가 뭐였을까.
1970년대 중반으로 기억된다. 아∼맞다! 종로에는 학원들이 많았다. 그때는 대부분의 학원이 종로에 몰려 있었다. 그 유명한 종로학원 등 입시학원뿐만 아니라 영어 수학 학원들이 밀집해 있었다. 학원 수업이 끝나는 시점에 그 일대는 그야말로 교복 입은 학생들로 인산인해였다.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당시 종로는 지금처럼 패션가도, 술집이나 극장가도 아니었다. 빌딩 숲을 이루지도 않았고 나지막한 건물에 학원들이 많았다. 허름한 분식집이나 막걸리를 파는 선술집도 많았다.
난 그랬던 종로가 그립다. 학원 강의 끝나면 근처 분식집에 들어가 쫄면 하나 시켜먹으면서 친구들과 수다 떨었던 그곳…. 그 분식센터에는 노래 틀어주는 DJ가 있어서 신청곡도 즉석에서 틀어주고 자신이 마치 최동욱이나 이종환 같은 유명 DJ나 된 것처럼 팬들을 이끌고 다녔다.
장발머리에 군복을 입고 마이크에 앉아 목소리 깔며 신청곡 틀어주고 사연 읽어주면 여학생들이 거기에 반해 ‘꺅∼ ’ 뒤로 넘어갔다. 그곳은 또 남녀 학생들이 요즘말로 ‘작업’ 들어가기 쉬운 곳이었다. 그러나 지금처럼 노골적이지 않았다. 맘에 드는 여학생이 있다 해도 직접 말을 거는 강심장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DJ를 통해 그 여학생이 좋아할 만한 음악과 사연을 띄운다든지…. 당시 DJ는 풋풋한 사랑의 전령사와도 같았다. DJ는 또 신청 사연을 전하다가도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일의 여학생을 발견하면 더 느끼한 목소리로 음악을 소개하곤 했다.
“이 음악은 DJ인 제가 저기 외롭게 혼자 앉아 ‘다꽝’만 드시는 머리긴 여좌∼분에게 드리는 선물입니다. 아줌마, 저기 저∼ 아름다운 여좌∼분께 어서 쫄면 갖다드리세요∼∼.”
“로보가 노래합니다. ‘아이드 러브 유 투 원 미’∼∼∼내 마음이에∼요.”
난 그때 그 기름진 목소리를 잊을 수 없다. 고등학생들의 문화적 돌파구였고 건전한(?) 이성교제의 장이였던 분식센터가
지금도 그립다. 그때의 종로도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