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훈
- 김훈은 1970년대를 풍미한 트로트 가수로, 1975년 이전까지는 록 그룹 리더였다. 그는 <나를 두고 아리랑>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스타덤에 올랐다.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김훈은 록 그룹의 리더로서 촉망 받는 작곡가 겸 가수였다. 당시는 시카고(Chicago)와 같은 브라스 록이 인기몰이를 하던 시기였는데, 김훈은 8인조 밴드 트리퍼스(Trippers)를 이끌고 트로트와 브라스 록을 조합한 음악 세계를 구현했다. 본래 하나의 그룹이던 트리퍼스는 김훈의 그룹 외에도 '신시봉과 트리퍼스', '김선민과 자이언트(Giant)' 등 셋으로 쪼개져 있는 상황이었는데, 그 가운데 김훈의 밴드가 가장 대중적인 성공을 거뒀다.
김훈과 트리퍼스를 일약 스타의 위치로 끌어올린 것은 대표적 히트곡인 <나를 두고 아리랑>이다. 이 곡은 관악 사운드가 주도하는 가운데, 트로트 창법과 비슷하면서도 텁텁한 매력이 있는 김훈의 목소리가 호소력을 발하는 노래이다. 또한 김훈 본인의 작곡가로서 역량도 뛰어났다. 물론 당시 트로트가 지배적이던 가요계 흐름을 외면할 수 없었는지 다소 '뽕끼'어린 측면도 없지는 않지만, <세월만 가네>와 같은 노래들은 김훈의 멜로디 감각을 잘 보여주는 것들이다.
그러나 이들이 구사한 브라스 록과 트로트의 만남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1975년 대마초 파동이 닥치면서 그룹 사운드의 활동은 급격히 위축되고, 그 자리를 정갈한 포크 음악과 트로트가 대신하게 된다. 그룹 사운드 음악은 불온한 것으로 간주되고 탄압받게 되었다. 본래부터 트로트에 반쯤 발을 담그고 있던 김훈은 완전히 트로트로 전향하는데, 1976년에 나온 2집이 대표적이다. 여전히 반주는 트리퍼스가 담당했지만, 이에 담진 음악은 완연한 트로트였다. <모래탑>이나 <몰랐을거야> 같은 노래들은 트로트 가수 김훈의 탄생을 대변한다.
김훈은 1970년대를 풍미한 트로트 가수로, 1975년 이전까지는 록 그룹 리더였다. 그는 <나를 두고 아리랑>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스타덤에 올랐다.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김훈은 록 그룹의 리더로서 촉망 받는 작곡가 겸 가수였다. 당시는 시카고(Chicago)와 같은 브라스 록이 인기몰이를 하던 시기였는데, 김훈은 8인조 밴드 트리퍼스(Trippers)를 이끌고 트로트와 브라스 록을 조합한 음악 세계를 구현했다. 본래 하나의 그룹이던 트리퍼스는 김훈의 그룹 외에도 '신시봉과 트리퍼스', '김선민과 자이언트(Giant)' 등 셋으로 쪼개져 있는 상황이었는데, 그 가운데 김훈의 밴드가 가장 대중적인 성공을 거뒀다.
김훈과 트리퍼스를 일약 스타의 위치로 끌어올린 것은 대표적 히트곡인 <나를 두고 아리랑>이다. 이 곡은 관악 사운드가 주도하는 가운데, 트로트 창법과 비슷하면서도 텁텁한 매력이 있는 김훈의 목소리가 호소력을 발하는 노래이다. 또한 김훈 본인의 작곡가로서 역량도 뛰어났다. 물론 당시 트로트가 지배적이던 가요계 흐름을 외면할 수 없었는지 다소 '뽕끼'어린 측면도 없지는 않지만, <세월만 가네>와 같은 노래들은 김훈의 멜로디 감각을 잘 보여주는 것들이다.
그러나 이들이 구사한 브라스 록과 트로트의 만남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1975년 대마초 파동이 닥치면서 그룹 사운드의 활동은 급격히 위축되고, 그 자리를 정갈한 포크 음악과 트로트가 대신하게 된다. 그룹 사운드 음악은 불온한 것으로 간주되고 탄압받게 되었다. 본래부터 트로트에 반쯤 발을 담그고 있던 김훈은 완전히 트로트로 전향하는데, 1976년에 나온 2집이 대표적이다. 여전히 반주는 트리퍼스가 담당했지만, 이에 담진 음악은 완연한 트로트였다. <모래탑>이나 <몰랐을거야> 같은 노래들은 트로트 가수 김훈의 탄생을 대변한다.
tripper [명사] ① 경쾌하게 걷는[춤추는] 사람 ② 발이 걸려 넘어지는 사람; 딴죽을 거는 사람 ③ [英 구어] (단기간의) 여행자[소풍객] ex) a day ~ 하루[당일] 행락객 ④ [기계] 트립 장치; 시동 장치 ⑤ [美 속어] (특히 LSD 같은) 환각제 음용자.
1970년대 고고 클럽을 풍미한 그룹 사운드 트리퍼스(Trippers)는 위의 사전적 의미에서 어디에 해당할까. 어떤 의미에서 밴드명을 만들었는지가 중요한 것은 아닐 테지만, 1970년을 전후한 시기가 ‘싸이키의 시대’, ‘고고 춤/클럽의 시대’였다는 점은 힌트를 준다. 또 비틀스(The Beatles)의 넘버 원 히트 싱글이자 약물 여행을 뜻하는 “Day Tripper”(1965)가 인기 팝송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트리퍼스가 1975년에 ‘김훈과 나그네들’이란 이름으로 음반을 발매한 적이 있다는 사실은 참고 사항으로 알아둘 만하다.
흔히 트리퍼스는 파이오니아스(Pioneers), 키 브라더스(Key Brothers)와 함께 1970년대 초중반을 풍미한 ‘브라스 록’ 밴드로 알려져 있다. 트리퍼스는 한창 때는 브라스 파트를 포함 8인조의 대식구를 거느리기도 했다. 그렇다면 트리퍼스의 초창기 음악은 어땠을까. 1971년 나온 데뷔 앨범 [Trippers Go Go]는 트리퍼스가 자신의 개성과 어법을 확립하기 이전 시기인 초기 음악세계를 잘 보여준다.
A면은 창작곡, B면은 커버곡으로 구성된 이 음반은 김희갑 작편곡집이다. 즉 A면의 창작곡은 자작곡이 아닌 김희갑의 곡들이며(작사는 지웅), B면의 커버곡들 역시 김희갑이 편곡한 것이다. 창작곡들은 처음 정규 음반을 발표하는 그룹 사운드가 직업적 작곡가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당시 정황을 보여주며, 커버곡들은 독특한 선곡이나 연주라기보다는 번안 없이 오리지널 그대로 부르는 단계를 보여준다. 이 음반이 데뷔작이란 점을 감안하면 그게 그리 큰 흠은 아닐 것이다.
B면 커버곡들의 선곡 기준이 ‘안전판’ 같은 대중성에 있을 거란 점을 추측하기는 어렵지 않다. 당시 국내에서 인기가 있었고, 또 실제로 그룹 사운드들이 즐겨 연주했던 레퍼토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산타나(Santana)의 곡으로 유명한 “Evil Ways”, CCR의 “Molina”, 얼마 후 “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e Oak Tree”(1973)로 대히트를 기록한 토니 올란도 앤 던(Tony Orlando & Dawn)의 “Knock Three Times”, 1960년대 버블검 그룹 아치스(The Archies)의 “Feelin’ So Good”, 글렌 캠벨(Glen Campbell)의 노래로 익숙한 발라드 “By The Time I Get To Phoenix”가 B면에 실려 있다. 여기서 트리퍼스는 대체로 선율 중심에 보컬 하모니가 인상적인 상큼한 연주를 들려준다. 키 브라더스도 같은 시기 “고고 춤을 춥시다”에서 번안하여 인용한 바 있는 “Evil Ways”와 색서폰 간주가 구성진 로큰롤 넘버 “Molina”는 이들의 이후 행보를 감안하면 의미심장하다.
B면 커버곡들이 이 시기 트리퍼스가 브라스 록이 아니라 보컬 하모니를 잘 구사하는 그룹 사운드였음을 알려준다면, A면의 김희갑 곡들은 이를 더 극명하게 보여준다. 현악 세션으로 시작하는 첫곡 “옛님”은 잔잔하게 깔리는 어쿠스틱 기타와 오르간 위로 서정적인 멜로디 라인과 중창의 백킹 코러스가 인상적이다. 이어지는 “그 언제일까”는 분위기를 바꿔 다소 거친 기타 연주가 곡을 리드하는 그룹 사운드 본연의 업 템포 넘버인데, 이런 곡에서도 역시 맛깔스러운 보컬 코러스가 돋보인다. “메아리”는 앞의 두 곡의 특징을 잘 혼합한 곡인데, 도입부와 끝부분의 “빠 빠빠빠 빠빠빠~”, 중간 부분의 “범범범 범범범~”하는 상큼한 중창 보컬은 단숨에 귀를 잡아끌며, 어쿠스틱 기타, 현악기, 오르간은 노래를 아기자기하게 수식한다.
다음 곡 “산으로 가요”는 “라 라라라 라라라 라~” 하는 스캣이 잘 드러내듯 “메아리”의 경쾌한 보컬 하모니 솜씨를 다시 들려주는 곡이며, “얄미운 사람”은 얼핏 신중현 식 ‘소울·싸이키 가요’를 떠올리게 하는 곡이다. 김희갑의 곡들을 다른 버전과 비교해보면, 히트곡 “옛님”은 이후 김추자, 조용필 버전의 원형을 풋풋하게 들려주고, “그 언제일까”는 히 화이브의 버전에 비하면 정감 어린 느낌을 주며, 히 화이브와 김세환 버전에 비해 트리퍼스의 “메아리”는 아기자기한 구성과 보컬 하모니를 극대화한 점이 돋보인다.
이 음반에서 트리퍼스가 이후 브라스 록으로 변화하는 것을 감지하기는 쉽지 않지만, 김희갑이란 직업적 작곡가에 작편곡을 의존하면서도 보컬 하모니와 대중적인 친화력에서 강점을 지녔다는 걸 알아차리기는 어렵지 않다. 트리퍼스가 1970년대 초중반 고고 클럽에서 정상의 인기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그 때문이다. 이 음반을 듣고 이후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반 전성기를 누린 ‘대학가요제’ 음악들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그런 맥락에서 자연스러운 일이다.
<부연>
1. 트리퍼스의 데뷔작이 발매된 1971년은 그룹 사운드의 데뷔 음반들이 러시를 이룬 한 해였다. 키 브라더스, 데블스, 아이들, 더 큐, 템페스트, 조커스 등이 이 해 첫 앨범을 발표했다.
2. 이 음반 이후 트리퍼스의 인기는 정점을 향한다. “옛님”이 히트하였고, 고고 클럽의 간판급 그룹 사운드로 올라섰다. 그 때문이었을까. 1973년, 트리퍼스는 김훈(보컬)이 이끄는 ‘김훈과 트리퍼스’, 신시봉(드럼)이 리드하는 ‘신시봉과 트리퍼스’, 김선민(기타)을 주축으로 한 ‘자이언트’로 분열된다.
현재 김훈은 1978년 이후로는 가수 활동을 중단한 상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