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청계천박물관 빽판의 시대 전시회 오프닝 행사를 잘 마쳤습니다. 오프닝에 와주셨던 분들 반가웠습니다. 돌아와서 피곤했는지 잠이 쏟아져 한 숨 자던 중에 후배 기자들의 전화벨 소리가 요란해 일어나니, 존경하는 최희준선생님께서 지병으로 돌아가셨다고 합니다ㅠㅠ 몇 군데 신문들과 전화인터뷰를 하고 나서 부고기사들을 보니 모두 최희준선생님의 데뷔곡을 1960년 <우리 애인은 올드 미쓰>로 표기했는데 오류입니다. <우리 애인은 올드 미쓰>는 <목동의 노래>에 이어 발표했던 첫 공전의 히트곡입니다. 년도는 1960년이 아닌 1961년이 맞구요. 네이버에 백과사전을 만들었고 검색만 해봐도 1961년임을 알 수 있는데 각 부서가 정보공유가 잘 되지 않는 건지 아쉽네요. 그나저나 2002년 정동극장 공연 때 노래하시는 모습을 취재하고 글을 썼었는데 제가 본 마지막 무대가 되었습니다. 초대 mbc 가수왕이신 '진빵' 최희준 선생님의 명복을 빌며 정동극장에서 담아 놓았던 공연사진 한 장 올리며 선생님을 추억해 봅니다.
【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하숙생' 등으로 당대를 풍미한 1960년대 톱가수 최희준(82)이 24일 별세했다.
'영원한 하숙생'으로 통하는 최희준은 1936년 서울 익선동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미군방송 'AFKN'을 즐겨 들으며 최신 팝송을 외우다시피했을 정도로 음악광이었다.
그러다 1959년 미8군 무대에서 직업가수로 노래를 시작했다. 1960년 손석우가 작사, 작곡한 '우리애인은 올드미스'를 녹음하면서 데뷔했다. 이 곡이 1961년부터 유명해지면서 이름을 알렸다.
【서울=뉴시스】 '제2회 무궁화대상 시상식'에서 좌측 두번째부터 최희준, 한명숙. 가장 우측이 작곡가 이봉조. 2018.08.24. (사진 = 대중음악평론가 박성서 씨 제공)
최희준의 본명은 최성준이다. 손석우가 '항상 웃음을 잃지 말라'는 뜻으로 이름에 '기쁠 희'자를 넣어 '희준(喜準)'이라는 예명을 지어줬다. 최희준은 실제 웃는 모습이 아주 천진하게 느껴지는 서민적인 캐릭터로 인기를 누렸다.
특히 1965년부터 이듬해까지 KBS 라디오 일일 드라마 '하숙생'의 주제가 '하숙생'으로 데뷔 5년 만에 스타덤에 올랐다.
【서울=뉴시스】 최희준과 '하숙생'의 작곡가 김호길. 2018.08.24. (사진 = 대중음악평론가 박성서 씨 제공)
'인생은 나그네 길'로 이어지는 가사로 유명한 '하숙생'은 시나리오 작가 김석야가 노랫말을 쓰고, 작곡가 김호길이 멜로디를 붙였다. 전파를 타자마자 주제가를 틀어달라는 청취자들의 요청이 쇄도할 정도로 큰 인기를 누렸다. 2001년 '하숙생' 노래비가 김석야의 고향인 천안 삼거리공원에 세워졌다. '하숙생'은 뒷날 가수 이승환(53)이 리메이크하는 등 꾸준히 재조명되고 있다.
【서울=뉴시스】 뒷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최희준 한명숙 유주용, 박재란, 현미, 윤복희, 이금희. 2018.08.24. (사진 = 대중음악평론가 박성서 씨 제공)
최희준은 서울대 법대 출신 가수로도 이름을 날렸다. 대학을 졸업한 가수가 드물던 시기에 명문대 출신 '학사가수'로 주목 받았다.
'우리 애인은 올드미스', '하숙생'을 비롯해 '맨발의 청춘' '어차피 보낼 사람' 등 1960년대 대중 정서를 함축한 노래를 허스키하면서도 그윽한 목소리로 불러 인기를 끌었다. 이로 인해 한국 대중음악계의 폭을 한층 넓혔다고 평가 받는다.
【서울=뉴시스】 최희준, 가수. 2018.08.24. (사진 = 대중음악평론가 박성서 씨 제공)
박성서 대중음악평론가는 "최희준은 스스로 목소리로 만으로 노래하는 가수가 아니라고 늘 강조했는데, 사실 폐활량이 남들보다 굉장히 적어서 가사를 마디마디 뚝뚝 끊어 노래를 하는 스타일"이라면서 "이러다 보니 자칫 듣는맛이 떨어질 수 있어 깊이 있는 감정 표현으로 이를 극복하려고 애썼다고 인터뷰 당시 말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1996년 15대 국회의원으로 의정활동도 폈다. '라이브 클럽' 합법화 등 문화계 현안을 해결했다. 2001년 문예진흥원 상임감사, 2003년 대중음악연구소 소장을 지냈다. 2007년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대상과 화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서울=뉴시스】 최희준, 가수. 2018.08.24. (사진 = 대중음악평론가 박성서 씨 제공)
박 평론가는 "최희준은 의정활동을 하면서 늘 자신의 지역구가 둘이라고 웃으며 강조했다"면서 "'하나는 출신지역인 안양의 동안갑구, 그리고 또 하나는 바로 가요계'라고 인터뷰 당시 털어놓았다"고 밝혔다. "'가수 출신 정치인'으로 가요계, 나아가 연예계의 발전을 위한 시금석이 되겠다는 소박한 꿈을 펼치기도 한 인물"이라고 덧붙였다.
도종환 장관·현미·남보원 등 조문..문 대통령은 조화로 애도 남진 "가수들 위상 높이려 노력..큰 형님 같은 버팀목"
'하숙생'의 최희준 별세 (서울=연합뉴스) 지병으로 별세한 원로가수 최희준의 빈소가 2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26일. 2018.8.25 [사진공동취재단] scape@yna.co.kr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지난 24일 별세한 원로가수 최희준의 빈소에 애도의 발길이 이어졌다.
25일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5호실에 마련된 빈소에는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비롯해 남진 대한가수협회 초대 회장, 김흥국 대한가수협회 회장 등이 찾아 고인을 애도하고 유족을 위로했다.
남진 초대 회장은 "고인은 평소에도 가수들의 품위와 위상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신 분"이라며 "가수들에게는 큰 형님 같은 든든한 버팀목이셨다"고 전했다.
또 빈소에는 남일해, 남상규, 현미, 남보원, 진송남, 쟈니리, 서수남, 최성수, 현당, 김국환, 민해경, 이자연 등 동료 가수들과 대중음악 평론가 임진모 씨가 찾아 조문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조화를 보내 애도했으며, 이낙연 국무총리는 SNS에 고인을 추모하는 글을 올렸다.
최희준 빈소 찾은 김흥국 (서울=연합뉴스) 김흥국 대한가수협회장이 2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원로가수 최희준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2018.8.25 [사진공동취재단] scape@yna.co.kr
최희준은 1960년 손석우가 작곡한 '우리 애인은 올드미스'를 발표하며 데뷔했다. 서울대학교 법학과 출신으로 당시로는 드문 학사 출신 '엘리트 가수'로 화제를 모았다.
그는 '우리 애인은 올드미스'를 시작으로 '맨발의 청춘', '하숙생', '길 잃은 철새', '팔도강산', '종점' 등 많은 히트곡을 냈다.
특히 1964년 영화 주제곡 '맨발의 청춘'과 1965년 라디오 드라마 주제가 '하숙생'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1966년 MBC 10대 가수가요제 초대 가수왕을 차지했다. 트로트 일색이던 시장에서 특유의 허스키한 저음으로 스윙 재즈, 팝 발라드 등을 선보여 '한국의 냇킹콜'로도 불렸다.
고인은 1974년 앨범 '길'을 발표한 뒤 사업가로 변신했으며, 1995년 새정치국민회의 발기인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정치국민회의 안양시 동안갑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며 '가수 출신 정치인' 1호라는 수식어도 있었다. 국회의원으로는 문화관광위에서 활동하며 라이브 클럽 합법화 등 대중문화계 현안에 관심을 뒀다.
2001년 문예진흥원 상임감사, 2003년 한국대중음악연구소 이사장을 지냈으며, 2007년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대상(문화훈장)을 받았다.
1989년 부인이 암으로 세상을 떠나자 1991년 재혼했으며 슬하에는 아들 둘(정범, 용범)과 딸(유경)을 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