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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물

작성자자연같이|작성시간25.12.07|조회수25 목록 댓글 0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물

  작년 가을,《샘터》로부터 내가 가진 보물에 관하여 매월 연재해달라는 청탁을 받았다. 2년 전 샘터와 단행본으로 연을 맺었기에 마음은 반가웠으나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제안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보물은 '드물고 귀한 가치가 있는 보배로운 물건'이라는 의미인데 나에게는 보물의 가치를 지닌 물건이 없었다. 거절하려고 했으나 마음에 걸리는 점이 하나 있었다.
 
나는 살면서 내게 청탁한 원고를 한 번도 거절한 적이 없었다. 나처럼 글재주가 부족한 사람에게 부탁해온 일이니 성심성의껏 써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거절하기가 어려워 다시 청탁서를 읽어보았다. '나만의 보물'이라는 문장이 계속 눈에 밟혔다. 세속적으로 정의하는 보물에 미치지는 못하겠지만 스스로 보물이라 여기는 물건은 제법 있었다.
 
결국 나는 '나만의'라는 수식어에 부담을 덜고 연재를 수락했다. 어떤 물건을 소개하면 좋을지 고민하는데 의외로 내게 귀중한 물건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보물을 고르는 데에도 기준이 필요했다.
 

첫째, 사연이 깃든 물건이어야 할 것.
 
둘째, 사연에는 지혜가 담겨야 할 것.
 
셋째,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이야기여야 할 것.

 
이렇게 세 가지 기준을 정한 뒤 이를 모두 충족하는 열한 개의 물건을 정했다. 나머지 하나는 어떤 물건으로 하면 좋을지 고민하던 중 딸이 물었다. "아빠한테 저는 보물 몇 호예요?" "너는 국보야.” 단숨에 나온 대답이었다. 국보라는 다소 거창한 답에 얼떨떨한 표정을 짓는 딸을 보며 나는 마지막 보물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바로 나 자신이었다.
 
국보는 '나라의 보배'로 국가가 특별히 지정한 중요 문화유산이라는 의미다. 일반적으로 누군가에게 "당신은 국보입니다"라고 말하면 딸처럼 의아한 반응을 보인다. 실제로 나는 정신과 의사로 일할 적에 국보라는 단어를 종종 활용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환자들은 다소 당황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당시 내가 만난 환자들의 증상은 저마다 달랐지만 자기 자신을 무의미한 존재로 생각하는 점은 하나같이 비슷했다.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우리 모두가 세상에서 유일한 존재라는 사실을 말이다.
 
국보 이야기를 하다보니 자기 자신을 국보라고 외치던 한 사내의 일화가 떠오른다. 시인이자 인문학자였던 양주동(1903~1977) 선생은 택시를 타면 "국보가 탔으니 조심해서 운전하시오"라며 기사에게 주의를 줬고, 길을 걷다가 넘어지면 "대한민국이 국보 하나를 잃을 뻔했네!"라고 큰 소리로 외쳤다고 한다. 이 일화는 당시에 매우 유명했다고 하는데, 아마도 스스로를 귀한 존재로 여기는 일이 별나다고 생각했던 시대여서 그런 것이 아닐지 추측해본다
 
오늘날 '자존감' '자기 존중'과 같은 말들이 낯설지 않은 시대가 되었지만 여전히 자기 자신을 귀하게 여기며 살아가는 이는 많지 않다. 자기 자신을 갉아먹기 쉬운 경쟁 사회에서는 어쩌면 당연한 현상일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많은 사람이 스스로 국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나'를 마지막 보물로 정했다. 오래전 내 친구 김문억 시인에게 환자에게 들려줄 시를 한 수 써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던 구절을 독자들과 나눠보려 한다.
 
아무리 좋은 세상도 나 없이는 없는 것.
 
아무리 좋은 세상이라는 하더라도 '나'라는 개인이 없다면 사회는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존재하는 것만으로 큰 가치 있는 것이다. 나는 이런 깊은 의미를 되새기며 나를 찾아온 환자들에게 이 구절을 읊어주곤 했다. 짧고 단순한 문장이지만 용기를 얻어가는 수많은 환자를 볼 때마다 김문억 시인에게 속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 나의 국보론을 당장은 납득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내 딸도 심층적으로 이해하지는 못한 눈치였으니 이해한다. 그러나 나의 말뜻을 온전히 받아들이게 되는 날이 언젠가 오리라 믿는다.
 
이번 원고를 마지막으로 연재가 막을 내린다. 모자, 메달, 배지, 흑단조각, 염주, 필사본, 베스트셀러, 샤 왕조 우표…. 1월부터 지금까지 내가 가진 보물에 관한 이야기를 쓸 때마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왔다. '내가 누군가에게 물건에 깃든 지혜를 전할 만큼 잘 살아왔는가?'
 
어떤 사람은 내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건설적인 삶을 살아왔다고 판단했겠지만 아흔이 된 지금까지도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아 삶에 미숙하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나는 그런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경험은 많다고 자부할 수 있으나 나라는 사람은 언제나 완전하지 않다. 완전한 사람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으니 말이다.
 
그러니 완벽을 좇는다면 일찌감치 포기하고 불완전한 자기 자신을 사랑하길 바란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부디 잊지 않기를 기도한다. 우리 삶에서 나 자신보다 귀한 보물은 없다.

  글 이근후(작가, 이화여대 명예교수)


 

  Last of the Mohicans - Emily Burak, Violin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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