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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생각

친구

작성자글레인|작성시간26.06.13|조회수25 목록 댓글 0

1-너와 나

걔 기억나? 너랑 같이 다니던 애. 그 왜, 중학생 때까지 자주 보던 애 있잖아. 약간 곱슬기가 있는 밝은 갈색 머리에 왼쪽 손목에 검은 아날로그 시계를 차고 다녔던. 걔랑 친구 아니었나, 너?
그 녀석 작년에 죽었다더라. 교통사고로. 뭐, 전혀 몰랐다고? 조금이라도 들은 게 있을 줄 알았는데. 너랑 제일 친했잖아. 걔네 가족이랑은 모르는 사이였나? 어쨌거나 너 꼭 찾아가라. 장례식에 사람이 많이 없었다더라. 나중에 납골당 주소 보내줄게. 너도 가봐야 할 거 아니야.
어? 필요 없어? 왜?
…아, 그랬어? 난 또. 몰랐지. 오해해서 미안하다. 걔는 좀 서운하긴 하겠다, 안 그러냐? 널 엄청나게 친한 친구라고 생각해서 연락도 계속 했다던데. 너 설마 그 녀석 차단했냐?
이야, 진짜 별 일이 다 있다. 그렇다고 네가 나쁘다는 건 아니고. 그냥 어이가 없잖냐. 엇갈린 우정, 그렇지?
어? 이거? 아, 맞아. 결혼 2년차지만 아직 달달하다고. 청첩장? 미안, 까먹었다. 친한 친구한테만 돌렸지, 난. 워워, 진정해. 사람이 그럴 수도 있잖아? 우리가 엄청나게 찐한 우정을 자랑하진 않았잖아? 그치?
어어, 그래. 다음에 밥이나 한 끼 하자.


2-너의 나

이 인간은 또 뭘 하고 왔길래 하루 종일 우중충한 건지. 도저히 생각을 알 수가 없다니까. 오랜만에 친구 본다고 신나서 나가더니, 뭔 일이 있었던 거야?
침대에 엎드려 있는 꼴이 썩 보기 좋진 않네. 좀 옆으로 가볼까. 워낙 혼잣말이 많은 사람이니 옆에 있으면 뭔가 들을 수 있을지도?
악, 아악! 왜, 왜 이래? 왜 안 하던 짓을 하는 거야? 잠깐, 잠깐. 귀는 건드리지 말라고, 그래, 어. 아니아니, 그렇다고 꼬리를 만지란 말은 아니잖아? 확 그냥, 물어버린다?
…에휴, 뭐 또 울고 난리야? 축축하게. 뭐, 친구라 생각했는데 어쩌고 저쩌고, 웅얼웅얼… 다 큰 인간이 뭐 이렇게 집착을 하고 그래? 아이고, 정말.
오, 이제 좀 잠잠해졌네. 그러게 별 것도 아닌 거에. 친구는 나 하나만 있으면 되지. 히익, 머리 쓰다듬지 마! 그런 징그러운 눈빛으로 보지 말라고! 취소한다, 방금 그 말! 친구는 뭔 친구야? 네놈이 길바닥에서 다 죽어가던 날 주워온 건 맞지만, 어쨌든! 왜 잘 하지도 않던 맞는 말을 하고 난리야! 우리가 영원한 친구니 어쩌니, 악!
…흠, 그러냐? 내 덕분에? 그럼 뭐, 좋은 거고. 일단 다 넘어가서, 밥이나 내놔!


3-나의 너

아이고, 또 친구 만나고 왔어? 당신 참 인싸긴 했지. 중학교 때도, 고등학교 때도. 그래서 나도 좋아하는 거잖아, 안 그래?
능청스럽기는, 하하. 당신이 계속 그런 식으로 플러팅을 날려대니 내가 안 넘어가고 배겨? 생각해보니까 거의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였구나, 우리. 당신 설마 내가 첫사랑이었어?
어머어머, 진짜로? 난 전혀 몰랐네. 당신 인기 많으니까 내가 세컨인 줄 알았지. 푸하하, 농담이야, 농담.
뭐, 고백하기 부끄러워서 친구로 지내? 당신 내가 먼저 고백 안 했으면 평생 그대로 숨길 생각이었어? 그래도 안심이긴 하네. 난 당신이 ‘우리 그냥 친구로 지내자’ 이런 식으로 거절할까 봐 마음 졸이느라 시험기간에 밤을 샜는데. 내가 당신만 아니었어도 서울대는 붙었겠다, 어휴!
하하하. 참 신기하긴 해. 난 그때까지만 해도 그냥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다 당신 계략이었다니. 아니, 뭐. 단어 선택이 뭐 어때서? 맞는 말이긴 하잖아?
얼른 가서 옷이나 갈아입고 와. 내일 주말이잖아, 한 잔 해야지. 저녁 먹으면서 그거 볼래, 우리? 그 영화 있잖아, 제목이 뭐였더라…
아, 맞아, 맞아. 그거였다. 역시 믿었다니까. 응, 알았어. 얼른 와! 아 참, 유호 생일 선물 샀어?


4-우리

야, 오늘 피시방 가자.
아, 왜. 어차피 한 달 넘게 남았잖아, 기말은? 그리고 어차피 중학교 때는 열심히 안 해도 돼.
오케이, 이거지. 어? 뭐라고? 생일선물? 뭐야, 나 생일인 거 어떻게 알았냐? 설마 한 번 말한 거 기억한 거? 오오.
악! 야이, 생일 선물이라며! 생일빵은 개뿔, 빨리 선물이나 내놔! 세게도 때린다, 아오.
…어, 진짜 이거 내 선물이냐? 이거 비싼 건데? 너 용돈 쥐꼬리만하잖아. 이걸 네가 샀다고?
이씨, 이 기특한 자식아! 아주 그냥 의리가 끓어넘쳐, 응? 내가 수행 도와줘서 그렇다고? 아, 그 정도는 당연한 거 아니냐, 친구끼리? 아, 이거 또 어쩔 수 없이 네 생일선물도 줘야 하게 됐네. 기브 앤 테이크, 몰라? 너 생일 언제냐?
응, 응… 뭐야, 방학 중 아니냐? 우리 기말 끝나고 2주 뒤에 바로 방학이잖아?
음, 그냥 그때 한 번 보자! 목요일이면 어차피 오후에 학원 겹치잖아? 기대해라, 진짜 이거보다 더 쩌는 걸로 준비해 올 테니까.
그래, 그래. 이 형님만 믿으라고. 남자들의 우정은 의리가 생명 아니겠냐? 그렇고말고.
야야, 쌤 왔다! 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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