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 온 땅의 심판관께서 옳은 일을 하지 않으시렵니까?—창세 18:25. 훌륭한 재판관은 법을 아주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또한 무엇이 옳고 그른지 잘 분별해야 합니다. 훌륭한 재판관에게는 또 무엇이 필요합니까? 판결을 내리기 전에 사건에 관한 모든 사실을 고려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면에서 여호와께서는 재판관으로서 최고의 자격을 갖추신 유일한 분이십니다. 인간 재판관과는 달리, 여호와께서는 어떤 일에 대해 재판하시든 언제나 그에 관한 모든 사실을 완벽히 알고 계십니다. (창세 18:20, 21; 시 90:8) 그분은 사람이 보거나 들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고려하십니다. 그분은 어떤 사람의 유전받은 특성, 가정 교육, 환경, 감정과 정신 상태가 그의 행동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온전히 이해하십니다. 또한 여호와께서는 마음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각 사람의 동기, 의도, 욕망을 온전히 아시는 것입니다. 여호와 앞에 숨겨질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히브리 4:13) 그렇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언제나 상황에 대한 온전한 이해를 바탕으로 용서하십니다. 「파22.06」 4면 8-9항 |
자연은 완전한 시스템이며 의로운 재판관이다(그림: JW.ORG).
| 온 땅의 심판관께서 옳은 일을 하지 않으시렵니까? Shall not the Judge of all the earth do right? —창세 18:25. Barnes' Notes on the Bible Abraham intercedes for Sodom. His spiritual character is unfolded and exalted more and more. He employs the language of a free-born son with his heavenly Father. He puts forward the plea of justice to the righteous in behalf of the city. He ventures to repeat his intervention six times, every time diminishing the number of the righteous whom he supposes to be in it. The patience of the Lord is no less remarkable than the perseverance of Abraham. In every case he grants his petition. "Dust and ashes." This may refer to the custom of burning the dead, as then coexistent with that of burying them. Abraham intimates by a homely figure the comparative insignificance of the petitioner. He is dust at first, and ashes at last. This completes the full and free conversation of God with Abraham. He accepts his hospitable entertainment, renews his promise of a son by Sarah, communicates to him his counsel, and grants all his requests. It is evident that Abraham has now fully entered upon all the privileges of the sons of God. He has become the friend of God James 2:23. This chapter is the continuation and conclusion of the former. It records a part of God's strange work - strange, because it consists in punishment, and because it is foreign to the covenant of grace. Yet it is closely connected with Abraham's history, inasmuch as it is a signal chastisement of wickedness in his neighborhood, a memorial of the righteous judgment of God to all his posterity, and at the same time a remarkable answer to the spirit, if not to the letter, of his intercessory prayer. His kinsman Lot, the only righteous man in Sodom, with his wife and two daughters, is delivered from destruction in accordance with his earnest appeal on behalf of the righteous. 반스의 성경 노트 아브라함은 소돔을 위해 중재합니다. 그의 영적 성품은 점점 더 펼쳐지고 고귀해집니다. 그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게 자유를 얻은 아들의 언어를 사용합니다. 그는 도시를 대신하여 의로운 자들에게 정의의 탄원을 전합니다. 그는 자신의 개입을 여섯 번이나 반복하며 매번 그 안에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의인의 수를 줄입니다. 주님의 인내심은 아브라함의 인내심만큼이나 놀랍습니다. 주님은 모든 경우에 그의 청원을 들어주십니다. “먼지와 재.” 이것은 죽은 자를 화형하는 관습과 매장하는 관습이 공존하는 것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청원자의 비교적 하찮음을 평범한 인물로 암시합니다. 그는 처음에는 먼지가 되고 마지막에는 재가 됩니다. 이것으로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완전하고 자유로운 대화가 완성됩니다. 그는 그의 친절한 접대를 받아들이고, 사라의 아들에 대한 약속을 갱신하고, 그의 조언을 전하고, 그의 모든 요청을 들어줍니다. 아브라함은 이제 하나님의 아들들의 모든 특권을 온전히 누리게 되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친구가 되었습니다 야고보서 2:23. 이 장은 앞 장의 연속이자 결론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이상한 일의 일부를 기록합니다. 그것은 형벌로 이루어져 있고 은혜의 언약과는 이질적이기 때문에 이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브라함의 이웃의 악에 대한 징벌의 신호이자 그의 모든 후손에게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을 기념하는 것이며, 동시에 그의 중보기도의 문자는 아니더라도 정신에 대한 놀라운 응답이라는 점에서 아브라함의 역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아내와 두 딸을 둔 소돔의 유일한 의인이었던 그의 친척 롯은 의인을 대신하여 간절히 호소하여 멸망에서 구출됩니다. |
| 한 국가나 도시의 흥망성쇠는 그 사회가 얼마나 자연의 질서와 합치하느냐에 달려 있다. 하느님과 아브라함의 대화에서 나타나는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에 대해서, 이것은 후기의 작품임이 분명하다. 즉 후대의 사람들이 소돔과 고모라 도시의 멸망이 의로운 심판에 의한 것이었다는 판단을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대화 형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들은 그 도시들이 존속하기에는 너무도 자연의 질서로부터 멀어져 있었음을 성적 타락의 장면을 연출시킴으로 보여주고 있다. 동성애는 자연의 질서에서 벗어났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실제로 천사가 내려와서 롯의 집에 머물면서 벌어졌던 일은 사실과는 관계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사회가 얼마나 타락되었는가를 보여주는 장면으로서는 충분하다. 따라서 그 도시들이 멸망되어 바다로 변해버린 것은 단지 동성애라는 성적 타락이 아니라, 부분적 쾌락에 지나쳐, 사회 전반이 자연의 질서와는 일치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다. 지진과 화산의 폭발은 분명히 자연의 한 현상이다. 자연의 재해는 인간의 단순한 죄와는 상관 없이 일어난다. 그러나 근원적으로는 지진이나 해일 화산 폭발등의 재앙은 지구라는 자연이 자기를 보존하기 위한 수단이다. 따라서 그러한 재앙이 소돔과 고모라에 일어나 거민들이 모두 몰살되었다는 것은 그 거민들이 무언가 잘못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며, 그 잘못들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을 아브라함과의 대화나 롯과 관련하여 동성애의 만연으로 보여준 것이다. 이렇듯 자연은 자기를 지키기 위해 화를 낼 수 있고 그 화가 인간 사회에 미치지만 그것은 결코 초월적인 힘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내재된 힘으로부터 발생하는 것이다. 오늘날 인간 사회는 자유와 평등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불투명한 부분이 점점 심화되어 간다. 이것은 겉으로는 멀쩡한 신체에 속으로는 곪아 들어가는 뇌암이나 정신 질환과 같은 것이다. 이러한 질병을 고칠 수 있는 것은 그것을 자각하는 소수의 사람들의 집합체로부터 일어나는 것이며, 아마겟돈 같은 자연재해나, 초월적 재앙이 될 수 없다. 그러한 재앙이 인간의 내부를 고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근본적인 치유책은 탐욕과 교만이 자기 해악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만이 가능한 것이다. |
질문:
1. 우리 사회는 진정으로 자유와 평등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가?
2. 불투명한 사회는 왜 자유와 평등의 정신을 저해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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