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 당신이 믿으면 하느님의 영광을 볼 것이라고 내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요한 11:40. 예수께서는 하늘을 우러러보며 사람들 앞에서 기도하십니다.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모든 영광이 여호와께 돌아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분은 “나사로, 나오십시오!” 하고 외치십니다. (요한 11:43) 그러자 나사로가 무덤 밖으로 걸어 나옵니다! 예수께서는 일부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을 하셨습니다. 이 기록은 부활 희망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강화시켜 줍니다. 어떻게 그러합니까? 예수께서 마르다에게 “당신의 오라비는 살아날 것입니다”라고 약속하셨다는 점을 떠올려 보십시오. (요한 11:23) 예수께서도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그 약속을 지킬 열망과 능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신 것을 보면 그분이 죽음과 그로 인해 사람들이 느끼는 슬픔을 없애기를 열망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사로가 무덤 밖으로 걸어 나올 때 예수께서 죽은 사람을 부활시킬 능력을 가지고 계시다는 점이 증명되었습니다. 또한 예수께서 오늘의 성구에서 마르다에게 하신 말씀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에게는 부활에 대한 하느님의 약속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을 만한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파23.04」 11-12면 15-16항 |
상상에 의한 나사로(그림: JW.ORG)
| 당신이 믿으면 하느님의 영광을 볼 것이라고 내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Jesus saith unto her, Said I not unto thee, that, if thou wouldest believe, thou shouldest see the glory of God? —요한 11:40. Barnes' Notes on the Bible Said I not unto thee - This was implied in what he had said about the resurrection of her brother, John 11:23-25. There would be a manifestation of the glory of God in raising him up which she would be permitted, with all others, to behold. The glory of God - The power and goodness displayed in the resurrection. It is probable that Martha did not really expect that Jesus would raise him up, but supposed that he went there merely to see the corpse. Hence, when he directed them to take away the stone, she suggested that by that time the body was offensive. 반스의 성경 노트 내가 네게 이르지 아니하였노라 - 이것은 예수께서 동생의 부활에 대해 말씀하신 내용(요한복음 11:23-25)에 암시되어 있습니다. 그를 일으켜 세우신 하나님의 영광을 다른 모든 사람들과 함께 볼 수 있도록 허락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 - 부활에 나타난 능력과 선하심. 마르다는 예수께서 그를 살리실 것이라고 실제로 기대하지 않았고, 단지 시체를 보러 간 것으로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그가 돌을 치우라고 지시했을 때 그녀는 그 무렵에는 시체가 불쾌감을 느꼈다고 제안했습니다. |
| 나사로의 부활 기적과 물을 포도주로 만든 기적에 대해서 공관 복음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다. 만일 실제로 그러한 일이 일어났다면 공관 복음서에 그 사실이 반드시 기록되어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죽어 사흘이 지난 인간이 다시 살아나거나, 물이 포도주가 된다는 것은 전무후무한 사실이며 따라서 일대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킬만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빌라도는 예수에게 그가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지에 대해서 일언 반구도 묻지 않았다. 예수는 기적을 일으키는 자로 알려진 것이 아니라, 로마에 위협적이고 유대인 엘리트층조차 그를 사형시켜야 할 중 범죄자로 빌라도에게 지목되었다. 따라서 그가 실제로 정치적 선동을 일으키는 지에 대해서 알기 원했기 때문에 예수가 설파하는 '진리'가 무엇인지 그것이 정치 선동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를 알고싶어 했을 것이다. 따라서 예수가 실제로 물을 포도주로 만들거나 죽은 지 사흘이 지난 인간을 진짜로 살린 사실이 있다면 그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 빌라도의 귀에 들어갔을 것이며, 빌라도는 '진리'가 무엇이냐 라는 질문과 동등한 비중으로 정말 물을 포도주로 만들 수 있느냐, 또는 죽은 자를 네가 정말 살릴 수 있느냐는 질문을 했을 것이다. 그러한 질문 대신 '진리'가 무엇이냐 는 질문을 했다는 것은 예수의 행위가 주로 이념적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예수는 결코 초자연적 기적을 행하지 아니하였고 행할 수도 없었다. 복음서에 언급된 표적들은 모두 예수의 권위를 세우는 데 필요한 사건으로 활용된 것에 불과하다. 즉 언급된 기적들은 오늘날 기독교인이 믿도록 강요받는 기적이 아니라, 그들이 어떤 사건들을 기적으로 봄으로써 예수를 그리스도라 믿을 수 있도록 뒷받침하였던 것들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사건들을 본연의 의도에 맞게 설명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지, 실제로 초자연적 사건을 행한 것으로 설명하거나 받아들이는 것은 광신으로 유도하거나 맹목적 복종을 이끌어내려고, 종교 단체 또는 성직자들의 권위를 세우려는 책략에 불과하다. 성서 전체에 흐르는 인간의 희망은 영생과 부활임에는 틀림이 없다고 본다. 인간이 아무리 잘먹고 편히 지내며 살아간다 하더라도 죽음이 존재하는 한, 그들의 인생은 한낱 순간에 불과한 것이다. 따라서 생명의 지속성 없이 자유와 행복을 논한다는 것은 오아시스가 없는 사막에서 막연하게 걸어가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것에 다름 아닐 것이다. 영원한 생명을 논한다면 부활은 마치 바늘에 따르는 실과 같은 것이다. 사람이 영생할 수 있다면 영생하지 못하고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지 못하는 한, 영생의 사리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생과 부활은 증명된 사건이 없기 때문에 그것을 받아들이고 실제 있게 될 강한 희망으로 작용하기 위해서는 증명을 필요로 한다. 비록 그 증명이 모든 사람이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스스로는 확신할 수 있는 증명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증명되지 않는 믿음은 의심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 믿음에 의한 행동이 일정치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증명을 반드시 할 필요가 있다. 만일 여러분이 영생과 부활을 강하게 믿는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 사실을 어떻게 나름대로 증명할 수 있겠는가? 이제 그 부분에 대해 논하기 위해서 다른 칼럼으로 옮기고자 한다. |
질문:
1. 예수의 기적은 초자연적인 것인가?
2. 예수가 일으킨 어떤 사건들을 기적이라 하지 않고 표적(sign)이라 번역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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