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 여호아스는 제사장 여호야다의 지도를 받는 모든 날 동안 여호와의 눈에 옳은 일을 계속 행했다.—열왕기하 12:2. 여호아스왕은 여호야다에게서 좋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젊은 시절에는 여호와를 기쁘게 해 드리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여호야다가 죽자 배교한 방백들의 말에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역대기하 24:4, 17, 18) 여호와께서는 매우 가슴 아파하시면서 “그들을 자신에게 돌아오게 하려고 그들 가운데 예언자들을 계속 보내셨[지만] 그들은 듣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의 말도 듣지 않았습니다. 스가랴가 여호와의 예언자이자 제사장일 뿐 아니라 여호아스의 사촌이었는데도 말입니다. 여호아스왕은 오히려 스가랴를 죽였습니다. (역대기하 22:11; 24:19-22) 여호아스는 여호와에 대한 건전한 두려움을 유지하지 못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나를 업신여기는 자들은 멸시를 당할 것이다.” (사무엘상 2:30) 후에 여호아스의 “매우 큰 군대”는 수가 적은 시리아 군대에게 패배했으며 여호아스는 “심한 상처”를 입었습니다. (역대기하 24:24, 25) 그는 이전에 스가랴를 죽인 일 때문에 신하들에게 암살당했습니다. 「파23.06」 18-19면 16-17항 |
여호야다의 보호를 받는 여호아스(그림: JW.ORG)
| 여호아스는 제사장 여호야다의 지도를 받는 모든 날 동안 여호와의 눈에 옳은 일을 계속 행했다. And Jehoash did that which was right in the sight of the LORD all his days wherein Jehoiada the priest instructed him. —열왕기하 12:2. Barnes' Notes on the Bible All his days ... - i. e., so long as Jehoiada was his adviser" (compare 2 Chronicles 24:15-22). Jehoida was, practically speaking, regent during the minority of Jehoash, i. e., 10 or 12 years. An increase of power to the priestly order was the natural consequence. Jehoiada bore the title of "high priest" 2 Kings 12:10, which had been dropped since the time of Eleazar Joshua 20:6, and the Levitical order from this time became more mixed up with public affairs and possessed greater influence than previously. Jehoiada's successors traced their office to him rather than to Aaron Jeremiah 29:26. 반스의 성경 주석 그의 모든 날... - 즉, 여호야다가 그의 고문으로 있는 한"(역대하 24:15-22 비교). 여호야다는 실질적으로 여호아스의 소수 기간, 즉 10년 또는 12년 동안 섭정했습니다. 제사장단의 권력이 커진 것은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여호야다는 엘르아살 여호수아 20:6 시대 이후 사라졌던 “대제사장”(열왕기하 12:10)이라는 칭호를 갖게 되었고, 이때부터 레위 계급은 공적 업무와 더 많이 섞여 이전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 여호야다의 후계자들은 예레미야 29:26에 따라 자신들의 직무를 아론보다 여호야다를 따랐다. |
| 아하시아 왕이 죽임을 당하자 그의 어머니 아달랴는 자기가 권력을 행사하기 위해 그의 손자들을 모두 죽였는데, 용하게도 여호아스만은 여호야다의 아내이며 그의 고모인 여호세바에 의해 생존하였고 그가 일곱살 되던 해 왕위로 즉위하고 아달랴는 처형당했다. 그는 당시 제사장인 여호야다의 보호 아래서 섭정을 하는 동안 바른 정치를 베풀었다. 그러나 여호야다가 죽자, 마치 자유를 찾은 듯한 느낌으로 자기의 감정대로 행동하기 시작했으며, 영적이고 도덕적인 숭배에서 떠나 악한 일을 하게 되었다. 그러자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는 여호아스가 여호와를 버렸다는 것을 경고하고 더는 그가 보호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공표했을 때, 그는 분한 감정으로 스가랴를 죽였다. 이로부터 여호아스 왕의 심리를 어느 정도 읽을 수 있다. 어려서 여호야다의 보호를 받는 동안은 그의 은혜 때문에 어쩔수 없이 그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으나 그 과정에서 여호야다의 아들과의 충돌이 다소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그러한 갈등을 해소하지 못한 채, 여호야다가 죽게 되자 평소에 갈등을 느끼던 여호야다의 아들을 죽여버린 것이다. 이로부터 우리는 선정을 베푸는 것이 능동적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가 선정을 한 것은 그의 자율적인 행위가 아니라, 아버지와 같은 여호야다의 말을 거절할 수 없어 이행하게 된 수동적 행위였던 것이다. 그러면 능동적이거나 수동적인 것은 어디에서 발생하는가? 수동성은 주로 1차적인 신체의 감정에서 비롯된다. 외부 사물과 접촉할 때 신체가 지닌 기본적인 욕구는 그 신체가 잘 유지되고 강화시키는 쪽으로 즉흥적 반응을 일으키게 되는데, 이것은 즉흥적이기 때문에 시간이 상당히 흐르는 동안의 입장에서는 해로울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인간에 존재하는 지성이 그 신체적 감정을 분석하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어떻게 행동해야 되는지 알려준다. 여기에서 감정과 지성(흔히 이성이라고 함)은 갈등을 일으키는데 많은 경우 신체의 수동성에 굴복된다. 그것은 당장에 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지성은 지속성의 관점에서 감정을 분석하기 때문에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유익이 무엇인지를 구별해내는 것이다. 이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감정을 제어하고 이성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얼마나 유익한 지를 알게 되며 능동적이 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충고나 권위에 의존해서 어쩔수 없이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충고나 조언이 왜 나에게 유익한지를 정확히 이해할 때, 비로소 자기 자신이 자율적으로 그리고 능동적으로 행동하게 되는 것이다. 성서에서 종종 '남자답게'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는 '능동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은 남녀가 한 가정을 이룰 때 그 가정을 이끄는 능동성은 주로 남자에게 주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일을 하는데 있어서 모든 사람은 그 책임을 자신이 짐으로써 솔선적이고 능동적으로 행해야 하는 것이다. 솔선적이고 능동적일 때 그의 선행은 지속될 수 있으며 빛나는 것이다. 여호아스의 일생은 우리에게 그점을 알려준다. 그가 비록 어릴 때 선정을 베풀었으나 자기의 이성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말에 수동적으로만 이끌렸기 때문에 외부의 요소가 사라지자, 결국 그의 감정에 따라 행동하기 시작했고 결과 자기의 친구로 삼아야 했던 여호야다의 아들을 죽임으로써 은혜를 배신으로 갚은 결과를 일으키게 된 것이다. |
질문:
1. 여호아스의 일생을 간략히 설명하라.
2. '남자답게'라는 성서의 표현은 어떻게 행동하라는 뜻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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