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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1월 2일 금요일

작성자수친구|작성시간26.01.02|조회수34 목록 댓글 0

예언의 말씀

내 천막이 그들과 함께 있으리니,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될 것이다.—에스겔 37:27.

당신의 삶에서 여호와는 어떤 분이십니까? 아마 당신은 “여호와께서는 제 아버지이시고 하느님이시자 친구이십니다” 하고 대답할 것입니다. 당신이 여호와를 부르는 다른 칭호들도 생각날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분이 당신을 손님으로 초대해 주신 분이라는 생각도 듭니까? 다윗왕은 여호와와 그분의 충성스러운 숭배자들이 누리는 우정을 손님을 초대한 주인과 초대를 받은 손님의 관계에 비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오 여호와여, 누가 당신의 천막에 손님이 될 수 있습니까? 누가 당신의 거룩한 산에 거할 수 있습니까?” (시 15:1) 이 영감받은 말씀을 보면 우리가 여호와의 손님 즉 그분의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창조 활동을 시작하시기 전에 여호와께서는 혼자 계셨습니다. 하지만 그 후 맏아들을 창조하시고 자신의 비유적인 천막의 첫 번째 손님으로 맞아들이셨습니다. 여호와께서는 그처럼 손님을 맞는 주인이 되신 것을 매우 기뻐하셨습니다. 성경에서는 여호와께서 자신의 아들을 “각별히 좋아하셨다”고 알려 줍니다. 그리고 그분의 첫 번째 손님인 맏아들 역시 “[여호와] 앞에서 언제나 즐거워했습니다.”—잠언 8:30. 「파24.06」 2면 1-3항
몇십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안경을 쓴 사람은 거의 없었다(그림: JW.ORG)
내 천막이 그들과 함께 있으리니,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될 것이다.
My tabernacle also shall be with them: yea, I will be their God, and they shall be my people. 에스겔 37:27.

Barnes' Notes on the Bible
This gives a final blessing reserved for God's accepted servants. The tabernacle and temple were outward symbols of His presence. The re-erection of the temple by Zerubbabel was the first step to a restoration of the presence of God. The second step was the presence of Christ, first in the flesh, then in His Church, and finally the eternal presence of God and of the Lamb in the New Jerusalem Revelation 21.

반스의 성경 노트
이것은 하나님께서 받아들이신 종들을 위한 마지막 축복을 줍니다. 성체함과 성전은 그분의 임재를 외적으로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스루바벨이 성전을 다시 세운 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회복하는 첫걸음이었습니다. 두 번째 단계는 그리스도의 임재였으며, 처음에는 육체로, 그다음 교회에서, 그리고 신예루살렘 요한계시록 21장에서 하나님과 어린 양의 영원한 임재가 나타났습니다.
'지혜'는 누구인가?
잠언 1~10장까지는 '지혜'를 주제로 지혜가 주는 유익과 지혜를 구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 다각도로 접근하고 있다. 8장에 이르러 지혜의 힘이 얼마나 강한 지 묘사하기 위해, 이 우주가 발생한 원동력이 지혜였다는 것을 묘사한다. 히브리 모든 문학이 그러하듯이 추상 명사를 의인화 시키는 데 익숙해 있다. 따라서 잠언 8장도 앞서 2장부터 전개되는 내용과 일관되게 지혜를 의인화 하고 있으며 태초부터 하느님께 속한 속성임을 알려준다. 하느님은 언제나 유일하시지만 인간이나 사물과 같은 개체가 아니므로 그분의 속성이나 능력이 곧 그분을 의미한다. 그분의 신체가 따로 있고 속성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신의 속성이 곧 신인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의 속성은 무한하기 때문에 그에게 속했다 또는 그분의 '아이'로 표현될 수 있으며 그분이 발(發)하시는 어떤 것으로 묘사될 수 있다. 따라서 신약 성서에서 성령을 하느님으로 묘사하는 것이다. 하느님이 따로 계시고 그분의 능력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며 동시에 하느님은 인간과 같은 개체가 아니므로 그분의 존재성을 omni-presence(무소부재)로 묘사할 수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요한 복음 1:1의 '말씀'도 1차적으로는 '토라'를 의미하지만 하느님의 속성으로서 하느님과 함께하셨으며, 따라서 말씀이 곧 하느님인 것이다. 즉, 지혜나 말씀 등 그분의 모든 속성은 바로 하느님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을 구태여 하느님과 하느님의 속성을 분리하려는 것은 머리와 지능을 구별하려는 것과 같은 짓이다. 워치타워의 관점은 하느님을 사물과 같은 존재로 취급하려는 데에 기인한 것이다. 따라서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의미는 말씀=예수라는 뜻이 아니고 예수라는 사람에게서 하느님의 온전한 속성을 찾아볼 수 있다는 의미인 것이다. 이러한 개념에서 예수를 마치 잠언 8장의 의인화 된 지혜가 어린 아이로 묘사되는 것처럼 하느님의 아들 또는 하느님으로 은유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은유이므로 직설적 의미에서 하느님의 아들이냐 하느님 자신이냐를 가지고 논쟁하는 것은 어리석음을 넘어 우스운 짓이다. 파수대는 본문 성구를 해설하면서 여전히 예수를 태고적 시공간의 첫 창조물로 우기는 것은 매우 아집스럽다. 예수는 지상의 생애가 하느님 같으신 분이시므로 그분을 하느님으로 부르든 하느님의 아들로 부르든 아무 상관이 없는 은유일 뿐이다. 귀한 어떤 것을 금덩이라 하거나 진주라 하거나 그것은 귀한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 금이냐 진주냐를 구별하자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본질은 예수로부터 하느님의 성품을 배우고 그분을 기리며 그분을 숭배하는 것이지 예수가 하느님이냐 하느님의 아들이냐를 가리는 것은 엉뚱한 짓인 것이다.
이교도들은 하느님을 숭배하기 위해서 보이는 형상에 의존하지만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을 숭배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를 본 자는 곧 아버지를 보았느니라"는 표현을 요한 복음에 묘사한 것이다.

질문

1. 지혜는 어떤 의미에서 창조주인가?

2. 예수는 어떤 의미에서 하느님 또는 하느님의 아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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