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의 말씀
| ‘사람의 아들’은 잃어버린 것을 찾아 구원하려고 왔습니다.—누가 19:10. 예수께서는 아버지의 자비를 완벽하게 나타내셨습니다. (요한 14:9) 예수께서는 동정심 많고 자비로운 아버지께서 사람들을 사랑하시며 우리 각자가 죄와 싸워 이기도록 돕고 싶어 하신다는 점을 말과 행동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죄인인 사람들이 생활 방식을 바꾸고 그분의 제자가 되려는 마음을 갖도록 도와주셨습니다. (누가 5:27, 28) 예수께서는 앞으로 자신에게 무슨 일이 닥칠지 알고 계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이 배신당하고 기둥에 못 박혀 처형될 것이라는 점을 제자들에게 여러 번 알려 주셨습니다. (마태 17:22; 20:18, 19) 그분은 자신의 희생이 세상의 죄를 없앨 것이라는 점을 아셨습니다. 또한 예수께서는 자신이 생명을 희생한 후에 “모든 부류의 사람을 [자신에게로] 이끌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 12:32) 죄인인 인류는 예수께 믿음을 나타내고 그분의 발자취를 따름으로 여호와를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그들은 마침내 “죄에서 자유롭게 될” 것입니다. (로마 6:14, 18, 22; 요한 8:32) 따라서 예수께서는 그 끔찍한 죽음을 용기 있게 기꺼이 받아들이셨습니다.—요한 10:17, 18. 「파24.08」 5면 11-12항 |
유치하다는 것과 순수하다는 것의 차이(그림: JW.ORG)
| For the Son of man is come to seek and to save that which was lost. 사람의 아들’은 잃어버린 것을 찾아 구원하려고 왔습니다.—누가 19:10. Gill's Exposition of the Entire Bible For the son of man,.... Meaning himself, who was truly man, and the Messiah, and which was one of his names in the Old Testament: is come: from heaven, into this world, being sent by the Father, and with the full consent and good will of his own: to seek and save that which was lost: as all his elect were in Adam, and by their own actual transgressions; and are considered as such, whilst in a state of unregeneracy: and particularly the lost sheep of the house of Israel are meant, one of which Zacchaeus was; and so the words are a reason of Christ's looking him up, and calling him by his grace, and making a discovery of himself, and an application of salvation to him; see Matthew 18:11. 길의 성경 전체 해설 인자는,.... - 즉, 진정으로 인간인 자신, 그리고 구약성서에서 그의 이름 중 하나인 메시아를 의미한다: 하늘에서 이 세상으로 오셨으며, 아버지께서 전적으로 동의하고 선의로 보내신 것이었다: 잃어버린 것을 찾고 구원하려고 - 그의 선택받은 자들 모두가 아담 안에 있었던 것처럼, 그리고 그들 자신의 실제 죄로 인해 구원하였다; 그리고 불가사태 상태에 있을 때 그렇게 간주되며, 특히 이스라엘 집안의 잃어버린 양들이 그 중 하나인 삭개오가 그 중 하나였다; 그래서 그 말씀들은 그리스도께서 그를 바라보시고, 은혜로 부르심 주시며, 자신을 발견하시고, 구원을 그에게 적용하시는 이유입니다; 마태복음 18장 11절을 참고하세요. |
| 예수의 인생은 돈, 명예, 권력을 추구하는 삶이 아니라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었고 다른 모든 사람들도 자기와 같은 길을 걷기 원했다. 그는 가장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하였고 그것은 가능한 한, 다른 사람의 유익이 되는 방향으로 자신의 삶을 바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가장 낮아지지 않으면 안 되었고 모든 것을 비워야 했다. 그렇지만 그 모든 것을 싫거나 마지 못한 마음으로 한 것이 아니며, 또한 인간이 기본적으로 누리는 행복을 버린 것도 아니었다. 그는 살아 활동하는 자체가 행복의 근원이며 자기의 활동이 다른 사람과 사물에 유익을 베푸는 활동일 때, 가장 자기의 존재가 커진다는 것을 알았으며 그것이 곧 행복의 확장이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이러한 그의 생각과 활동은 하느님으로부터 온 것이라는 인식 아래서 우리 모두를 포함하여 자신도 '하느님의 아들'로서의 역할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그 역할을 수행하려고 했던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존재가 확장되고 더 행복해지기를 원하기 때문에 희망 또는 욕망을 목표 삼아 살아가게 된다. 그러나 방법에 있어서 다른 사람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살아간다. 그와 같은 생각은 기본적으로는 틀린 생각이 아니다. 누구나 자기를 위해서 살아간다. 그런데 그 방법이 자기를 중심으로 살아갈 때,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가 하는 점이다. 여기서 우리는 헷갈린다. 자기를 위해야 하는데 동시에 자기를 버려야 한다? 이것의 이유는 자기와 타자가 다르면서도 하나라는 사실 때문이다. 우리는 자연 안에 살면서 자연과 하나이면서 동시에 타자와 분리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즉 내가 가장 유익하게 되는 방법이 전체 자연이 하나로서 잘 되는 방법 안에 포함되어 있고, 또한 자연의 방식에 제한을 받기 때문이다. 만일 지금 당장이라도 태양이 멈춘다면, 우리의 존재는 생각조차 될 수 없는 것이다. 이처럼 자연 안의 모든 사물은 우리와 긴밀한 관계를 가지면서 복합된 하나로서 내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체가 잘 되는 길은 하나 하나가 최적으로 잘되는 것의 합과 곱으로 나타나고, 하나 하나가 개별적으로 잘 되는 방법은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자연물들이 최적의 상태가 될 때임이 분명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장에는 나와 적대 관계로 보이는 타자라 할찌라도 그 관계를 원만하게 만드는 것이 나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연 곧 하느님은 우리가 잘되기 위해서 희생을 요구하지 않으신다. 다만 존재가 확장되려는 속성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것이 사물이 존재하는 이유이며 하느님이 스스로 존재하는 이유이다. 우리가 우리의 행복, 곧 우리의 존재를 확장하는 방법은 우리의 이성에 따라 타자에게 가장 유익이 되는 방법을 모색하며 살아가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인 것이다. |
질문
1. 예수는 자신의 존재와 행복을 버렸는가?
2. 우리는 개별적으로 혼자만 존재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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