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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6월 6일 토요일

작성자수친구|작성시간26.06.06|조회수25 목록 댓글 0

예언의 말씀

좋은 소식이 먼저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어야 합니다.—마가 13:10.
당신이 성경 진리를 처음 배웠을 때 어떤 마음이 들었는지 떠올려 보십시오. 당신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당신을 사랑하신다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신이 그분을 숭배하는 가족의 구성원이 되기를 바라신다는 점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여호와께서 고통과 고난을 없애겠다고 약속하셨으며 사망한 가족과 친구들을 신세계에서 다시 만날 희망이 있다는 점도 배웠습니다. (마가 10:29, 30; 요한 5:28, 29; 로마 8:38, 39; 계시록 21:3, 4) 당신은 그러한 점들을 포함해 많은 진리를 배우면서 마음이 감동되었을 것입니다. (누가 24:32) 당신은 배운 점들을 사랑하게 되었고 그러한 소중한 진리를 모든 사람에게 전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예레미야 20:9 비교) 우리의 마음에 성경 진리에 대한 사랑이 자라면 분명 사람들에게 그 진리를 알리고 싶어질 것입니다. (누가 6:45) 우리는 1세기에 예수의 제자들이 한 다음과 같은 말에 공감합니다. “우리로서는 보고 들은 것에 대해 말하는 일을 중단할 수 없습니다.” (사도 4:20) 우리는 진리를 너무나도 사랑하기 때문에 가능한 한 많은 사람에게 진리를 전하기 원합니다. 「파24.05」 15면 5항; 16면 7항
교리의 전달이 복음의 전파인가?(그림: JW.ORG)
And the gospel must first be published among all nations.
좋은 소식이 먼저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어야 합니다.—마가 13:10.

벤슨 주석
또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 할 것이니라 ㅡ "이 예언의 성취는 주로 신약 성경의 글에 기록되어 있다. 복음이 아라비아에서 바울에 의해 전파되었고 예루살렘에서 리카오니아, 갈라티아, 소아시아, 그리스에 이르기까지 광대한 지역을 통해 전파된 것으로 우리는 신약 성경을 통해 알게 된다. 일리리쿰, 크레타, 이탈리아, 아마도 스페인과 갈리아까지도 포함될 것이다. 게다가 복음은 이 사도가 전한 지역보다 훨씬 더 멀리까지 전해졌다. 왜냐하면 바울의 얼굴을 본 적이 없는 그리스도인들에게까지 편지를 썼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는 폰투스, 아시아, 카파도키아, 바이티니아에서 개종한 유대인들에게 편지했던 베드로의 서신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 아마도 복음은 그 곳에 머물렀던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유월절까지 와서 오순절 날에 개종한 이들 나라와 많은 다른 나라들에서 전파되었을 것이다. 필립에 의해 개종된 에티오피아 내시도 똑같이 자기 나라로 가지고 갔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방식으로 일어났든, 이 나라들 대부분에서, 그리스도가 죽은 지 30년, 혹은 예루살렘이 멸망하기 약 10년 전에 복음이 심어져 있었다는 사실은 확실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도가 로마인들을 통해 복음의 소리가 온 세상에 퍼져 나갔으며,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이 온 세상에 회자되었다고 말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롬 10: 18). 그리하여 그는 또한 골로새서 1장 23절에서 복음의 진리가 온 세상에 와서 모든 산 자에게 전파되었다고 말했다. 마가 16장 20절에서는 마가가 복음을 기록할 때, 사도들이 나가 사방으로 말씀을 전했다고 하였다. 12명의 문맹 어부들에 의한 전세계의 복음의 전파와 예루살렘 파괴는 있을 수 있다고 지극히 믿기 어려운 사건이었다. 그러므로 그 예언과 성취는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이유는 둘 다 개종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했기 때문이다.이 예언에 그러한 것으로 언급되어 있다." — 맥나이트
  복음의 전파는 교리의 전파가 아니라 하느님의 나라가 설립되는 것을 의미한다. 1세기 사도와 제자들이나, 예수의 전파 사업은 그것이 곧 하느님의 나라의 설립을 의미했으며, 땅끝까지 전파한다는 것은 온 세계가 하느님의 나라가 되는 것을 의미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가 귀신들린 자를 고치고 병든 자를 치유하면서 "이미 하느님의 나라가 임"하였다고 하셨다. 또한 사도들 역시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설립되고 확장됨에 따라, 하느님의 나라가 설립되었다고 하였지, 보이지 않는 영적 하늘이란 곳이 있어서, 2000년 후에 비로소 하느님의 나라가 설립된다는 생각은 꿈에서 조차 하지 않았다.
하느님의 나라는 우리의 삶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며, 초월자의 강제적인 힘으로 설립시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의 공동체가 참으로 하느님의 통치 아래서 평화와 사랑으로 연합되어 선을 행하면서 행복한 삶을 영위할 때, 하느님의 나라는 우리에게 임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을 의미하지 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하느님의 나라의 완성은 시작된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삶이 외부 사회에 입증되어 감에 따라 점차적으로 확장되어 온 세계가 완전한 평화와 정의 그리고 사랑이 충만한 사회가 될 때 하느님의 나라는 완성이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복음의 전파는 교리의 전파라는 측면에서 생각되어서는 안 되며 오히려 삶의 방식의 전환을 의미한다. 그래서 회개가 필요하며 새 인간성의 옷으로 갈아 입겠다는 결심으로 침례로써 공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하느님의 나라의 설립은 경제, 정치, 문화 등 모든 면에서의 변화를 의미하므로 기 소속된 사회와 마찰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점 때문에 전파의 중심에 섰던 바울은 그리스도인은 소속된 사회의 법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던 것이다. 그들이 유대 땅에 국한되어 살고 있다면 이방 사회의 법은 그들과 아무런 관계가 없었을 것이다.
이방 사회의 법이 유대 사회의 율법보다 열등하다고 볼 수는 없다. 단지, 유대 사회의 율법은 그들의 신 야훼를 중심으로 설립된 법이었고 이방 사회, 곧 로마의 법은 신적 사회가 아닌 인간 사이의 관계와 질서라는 측면에서 이루어진 법이라는 점에서 다른 것이다.
앞으로 설립될 참 조직도 역시 그들 만의 영토가 존재할 수는 없다. 이미 존재하는 나라에서 설립되어 그들 사회의 법에 예속된 상태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그리스도인 사회가 제한된 가운데서도 생산과 분배에 있어서 탁월함을 입증함으로써 그리고 원만한 인간의 관계를 만들어 감으로써, 이방사회의 관심을 끌게 되고 그들도 참여하고자 하는 의욕을 불러 일으킴으로써 하느님의 나라는 확장될 수 있다. 사실, 1세기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거의 바울 한 사람의 노력으로써 설립된 것은, 교리적 힘이 아니라, 기 설립된 공동체가 이교도들의 삶의 방식보다 탁월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진정으로 행복한 삶의 방식으로 살아간다고 느꼈기 때문에 급물살을 타고 그리스도가 전파되었던 것이다.
이 세계가 폭력적으로 무너지고 불연속 상의 하느님의 나라가 설립될 수 있다는 생각은 상상이고 추측이며 광신적 사상이다. 그것은 인간의 노력을 마비시키며 오직 도박적 희망을 가지게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이 참으로 옳다는 것이 입증됨에 따라, 세계 정부는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인으로 구성될 것이다. '그리스도인'이란 특정 종교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적 정신과 삶의 방식을 터득한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이다.

질문

1. 하느님의 나라는 어떤 방식으로 설립되는가?

2.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을 지칭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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