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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6월 12일 금요일

작성자수친구|작성시간26.06.12|조회수22 목록 댓글 0

예언의 말씀

하느님의 일은 그분이 보내신 자에게 여러분이 믿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요한 6:29.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예수께 믿음을 나타내야 합니다. (요한 3:16-18, 36; 17:3) 많은 유대인들은 예수께서 알려 주신 “하느님의 일”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물었습니다. “우리가 보고 선생님을 믿을 수 있도록 어떤 표징을 행하시겠습니까?” (요한 6:30) 그들은 모세 시대에 하느님께서 조상들에게 빵 즉 만나를 주셨다고 말했습니다. (느헤미야 9:15; 시 78:24, 25) 분명 그들은 실제 음식을 먹는 일에 정신이 쏠려 있었습니다. 또한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참된 빵” 즉 생명을 주는 만나를 하늘에서 내려 주신다고 예수께서 말씀하셨을 때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요한 6:32) 그들은 신체적인 욕구를 채우는 데 정신이 쏠려 있었기 때문에 예수께서 알려 주시려는 영적 진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파24.12」 6면 10-11항
예수를 믿는다는 것의 의미(그림: JW.ORG)
This is the work of God, that ye believe on him whom he hath sent.
하느님의 일은 그분이 보내신 자에게 여러분이 믿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요한 6:29.

Barnes' Notes on the Bible
This is the work of God - This is the thing that will be acceptable to God, or which you are to do in order to be saved. Jesus did not tell them they had nothing to do, or that they were to sit down and wait, but that there was a work to perform, and that was a duty that was imperative. It was to believe on the Messiah. This is the work which sinners are to do; and doing this they will be saved, for Christ is the end of the law for righteousness to everyone that believeth, Romans 10:4.

반스의 성경 노트
이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 이것이 하나님께서 받아들이실 수 있는 일이거나, 구원받기 위해 당신이 해야 할 일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할 일이 없다거나 앉아서 기다리라고 말하지 않으셨고,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이 필수적인 의무라고 하셨습니다. 메시아를 믿는 것이었다. 이것이 죄인들이 해야 할 일이다; 그리고 이 일을 하면 구원받을 것이다. 그리스도는 믿는 모든 이에게 의로움을 주는 율법의 끝이시기니까, 로마서 10:4.
 이 말씀에서 많은 기독교인들은 수동적 태도를 가지게 된다. 그들은 인간이 전적으로 무능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예수에 대한 믿음 뿐이라고 말하면서, 신조나 교리에 동의하는 것으로써, 구원을 월급 봉투 받듯이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여 왔다. 이러한 생각은 율법을 지킴으로써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과 전혀 다를 바 없다. 바뀐 게 있다면 율법이란 글자가 믿음이란 글자로 바뀐 것 뿐이다. 즉, 그들은 믿음의 '댓가'로 구원을 수여받는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이다. 여기서 '믿는다'는 것은 신조나 교리에 동의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삶의 방식과 정신적 태도가 하느님으로부터 온 것이라는 것을 인식하여 그 방식대로 우리가 걸을 때, 우리 안에 생명이 존재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됨을 의미한다. 이것은 믿음의 댓가로 보수를 받는 것이 아니다. 예수에 대한 인식이 우리를 생명의 길을 걷도록 만들어준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인하여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하느님이나 예수가 구원을 수여하는 방식이 아닌 스스로 구원에 이르게 하는 '자력 구원'의 방식이다. 따라서 이러한 점에서 예수가 유일한 구원자라는 의미는 신앙의 대상으로서의 유일성이 아니라, 내가 이분만을 유일하게 추종하겠다는 신앙고백인 것이다. 그 누구도 우리에게 생명을 수여할 수 있는 자(또는 것)은 없다. 우리가 '진실과 진리'의 길을 걸음으로써 우리 안에 생명이 내재하게 되는 것이다. 이 방법이 하느님이 우리에게 생명을 수여하는 방식이다. 이 방법은 하느님을 진실로 믿고 내 안에 하느님이 계심을 발견할 때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기독교 역사는 예수에 대한 '믿음'을 율법 대신에 이룩해야 할 '노동'으로 보았기 때문에 그들은 전혀 능동적으로 행동하지 않고 오로지 '아멘' 만을 반복하며 이기적 옛 인간의 옷을 벗어버리지 못한 것이다. 예수를 믿는다면 가장 먼저 나타나야 할 일은 '자기 중심'에서 벗어나 '타자 중심'까지는 이르지 못하더라도 내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타자가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행동이 나타나야 하는 것이다. 그것의 최고 경지가 '원수(적대자)까지도 사랑하라'는 말씀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이 매우 역발상적이면서도 훌륭한 말씀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왜 원수까지도 사랑해야 하는지 합리적 근거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 이유는, 우리가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연 안의 모든 사물과 일체적 관계로써 묶여 존재하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에 태양이 사라진다고 가정해보라, 그러면 우리의 존재는 생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이처럼 수많은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관계를 구성하여 내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와 접촉하는 모든 외부 사물과의 접촉을 원만하게 관계를 이루지 못하면 나의 존재는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죽게 되는 원인도 정확히 따져보면 우리의 본성이 죽음을 향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힘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는 것이다. 세포가 노화되고 질병에 걸리게 되어 인체의 기관이 정지되는 것은 자기가 원해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사물과의 접촉에서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외부의 힘이지 우리의 본성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가 자연과의 관계를 회복시킴으로써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이 자리잡게 되는 것이다. 의료 기술도 이에 준하는 것이다. 즉 외부에서 노화와 질병을 일으키는 것들을 차단시키는 역할을 보조하는 것들이다. 그러므로 생명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나 자신을 외부 사물과의 관계 복원에 있는 것이고 그것을 이루게 하는 중심에 존재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정신적 태도로 우리의 삶을 틀잡아 나가는 것이다. 이 방법이 생명과 행복의 본질적인 것이기 때문에 '하느님 또는 예수를 믿어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말로 주어지는 것이다.
그래도 여러분이 예배당에 가서 주구장창 '아멘'만을 반복하고 교회 운영을 위해서 기부금이나 내는 것으로 생명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여전히 '믿음'을 '율법' 대신에 행하는 노동으로 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질문

1. '율법'이 '믿음'으로 바뀌게 된 배경과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자.

2. 시계탑 영업활동이 구원의 요소가 될 수 없는 이유를 명확히 제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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