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의 말씀
|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매우 사랑하셔서 자신의 독생자를 주셨습니다.—요한 3:16. 이스라엘에서는 매년 속죄일을 지켰습니다. 속죄일에 대제사장은 백성을 위해 동물 희생을 바쳤습니다. 물론 그러한 동물 희생으로는 그 누구의 죄도 온전히 속죄할 수 없었습니다. 동물은 인간보다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회개한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께서 요구하신 희생을 바쳤을 때, 그분은 그들의 죄를 기꺼이 용서해 주셨습니다. (히브리 10:1-4) 이스라엘 백성이 속죄일에 바친 희생 제물은 그들이 죄인임을 생각나게 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여호와께서는 죄를 용서하기 위한 영구적인 마련을 하셨습니다. 그분은 사랑하는 아들이 “많은 사람들의 죄를 지기 위해 자신을 단 한 번 바치”도록 마련하셨습니다. (히브리 9:28) 예수께서는 “자기 생명을 많은 사람과 교환하는 대속물로” 주셨습니다.—마태 20:28. 「파25.02」 4면 9-10항 |
시계탑의 여러가지 허수 개념 중 하나인 십자가 아닌 기둥(그림: JW.ORG)
|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ly begotten Son, that whosoever believeth in him should not perish, but have everlasting life.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매우 사랑하셔서 자신의 독생자를 주셨습니다.—요한 3:16. 반즈의 성경 노트 하나님은 너무나 사랑하셨기 때문에 -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행위를 인정하셨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 대해 자비로운 감정을 가지셨거나, 그들의 행복을 "가장 갈망"하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악을 미워하시지만, 여전히 인간의 행복을 원하신다. "그는 죄를 미워하지만, 인간을 사랑한다."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고, 행복을 바라면서도, 그 아이의 행동에 강하게 반대할 수 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행위를 인정할 때, 그것은 만족하는 사랑이고, 우리가 그들의 행복을 원할 때, 그것은 자비로운 사랑이다. 세상 - 전 인류. 이것은 세계의 어느 특정 지역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즉, 반란을 일으켰으므로 죽어 마땅한 인간을 의미한다. 요한복음 6장 33절, 요한복음 17장 21절을 참조하라. 그의 아들을 보내시면서 세상에 대한 사랑이나 온 인류를 향한 사랑은 다음과 같이 나타났다. 1. 온 세상이 무질서하게 되어 하나님의 진노를 받기에 합당한 상태가 되었다. 2. 모든 사람들은 희망이 없는 상태였다. 3. 하느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주셨다. 인간은 그에 대해 요구해야 할 어떠한 권리도 없었다. 그것은 선물, 즉 과분한 선물이었다. 4. 십자가에서 죽음의 쓰라린 고통까지, 극심한 고통에 그를 내맡겼다. 5. 그것은 온 세상을 위한 것이었다. 히브리서 2장 9절 그는 "모든 사람의 죽음"을 맛보았다. 그는 "모두를 위해" 죽었다. 고린도전서 2장 15절. "그는 온 세상의 죄악에 대한 소명이시다." 요한 1서 2장 2절 그가 준 것은 - 그것은 받아야 할 명분이 없이 그저 주는 선물이었다. 사람이 마땅히 내세울 것이 없어서 불쌍히 여기거나 구원할 눈이나 팔이 없을 때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사람의 손에 넘겨서 대신 죽게 하신 것을 오히려 기뻐하셨다. 갈라디아서 1장 4절, 로마서 8장 32절, 누가복음 22장 19절. 그것은 죄인들이 영원히 멸망하지 않도록 하는 사랑의 움직임, 영원한 연민과 욕망의 표현이었다. 그의 독생자 - 요한복음 1장 14절의 주석을 참고하라. 이것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숭고한 사랑의 표현이다.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거나 일어날 수 있다면 죄를 지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외아들을 죽도록 포기해야 하는 부모는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표현될 수 있는 것보다 더 높은 사랑을 보일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 그는 기꺼이 그의 독생자를 죄인들의 손에 넘겨서, 죽임을 당하게 하고, 영원한 슬픔에서 인간을 구원하려고 하였다. |
| 종교적 믿음을 사실과 같은 것으로 비교할 수는 없다. 어떤 사실로부터 근원했으나 사실과는 다른 세계를 현실로부터 확장한 것이다. 예를 들어 x²+1=0라는 현실이 존재한다고 하면, 현실의 수 개념으로 이 방정식을 만족시키는 정답이 나오지 않는다. 이 때, 이 현실을 성립시키는 수로서 실제의 수로부터 확장하여 상상의 수를 생각해 낸 것이 허수(imagenary number)이다. 종교의 믿음이란 이와 같은 것이다. 어떤 사건에 대하여 현실 세계에서는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게 되자, 현실을 확장하여 상상의 영역을 만든 것이다. 그리고는 그 영역에서 사건의 자초지종을 풀어내는 것이다. 보이지 않고 접촉할 수 있는 영역이 있다고 가정하여, 그곳에 하느님과 천사들이 존재하며, 인간의 현실 세계를 넘나들 수 있다고 생각해낸 것이 유대교이다. 엄청난 인간의 발명품이다. 처음에는 이러한 생각이 한두 사람의 입에서 구전되다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욱 세부적으로 그럴 듯하게 체계화된 것이 기독교이다. 이것은 분명히 현실이 아니면서도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이점을 지니고 있기는 하다. 마치 x²+1=0를 만족시키는 해를 드디어 발견했다는 기쁨과도 같은 것이다. 허수의 개념은 통신 기술, 양자역학, 반도체, 신소재 공학 등에 많이 이용된다. 마찬가지로 종교적 개념으로 인해 인간 사회의 도덕과 윤리를 성립시키는 역할을 해왔다. 예를 들면, 이슬람교에서는 전쟁은 나쁘지만 포교를 위한 싸움은 성전(聖戰,지하드)이라 불리우며 미화된다. 예수의 죽음을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이라는 해법으로 발전시킨 것은 종교적 허수의 공로이다. 이것은 사실이 아니면서 사실화된 듯 보이는 외관이 존재한다. 여기서 반드시 구별해야 하는 점은 종교적 개념은 사실로부터 발전했으나 사실 자체는 아니기 때문에 현실과 비교해서 어떤 문제에 현실적 행동을 촉구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x²+1=0의 해를 i로 규정했다고 해서 실제의 수와 비교하여 크기를 논할 수는 없다. 현실의 문제는 현실과 비교하여 결정하는 것이 가장 좋은 해법이며 현실의 해가 존재하지 않을 때는 어쩔수 없이 종교적 해를 구하는 도리밖에 없을 것이다. 비가 계속 오지 않을 때, 비구름을 만들 수 있다면 구태여 기우제를 드릴 필요가 없는 것이다.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하느님 비 좀 내리게 해주십시오" 하고 기우제를 드리는 것이다. 시계탑은 하늘 왕국이 1914년에 설립되었다는 허수 개념을 발명하여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재물과 시간을, 그들의 소위 '왕국 사업'에 올인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그들은 많은 부와 조직력을 장악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들이 발명한 허수 개념의 모순이 시간을 통하여 드러나게 되자, 더불어 존재하던 허수 개념ㅡ이를 테면 생일, 피, 중립 등의 교리ㅡ도 도전을 받게 되었다. 이제는 비문명 국가인 아프리카나 라틴 아메리카 일부를 제외하고는 하향 추세로 돌아섰다. 따라서 이전에 허수 개념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여 인생을 바친 사람들만 피해를 입게 된 것이다. 피해를 피해인 줄 모르고 여전히 허수 개념의 환상에 파묻힌 채 여생을 인지부조화의 상태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다. 시계탑은 그들의 오류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허수 개념에서 파생된 "처신하기 어려운 위급한 때"라는 용어를 상투적으로 사용하면서 성원들이 시계탑에 머물도록 종용하지만 대세는 기운 듯하다. 마지막 살아남는 길이 생활 종교로 탈바꿈하여 현대의 3대 이단 종교인 몰몬교, 안식교, 여호와 증인이라는 이름으로 각각 생존을 꾀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
질문
1. 현실 세계를 확장한 종교 세계의 영역을 수에서의 허수 개념과 비교해보자.
2. 3대 이단 종교는 무엇이며 그들은 생존을 위하여 현재 어떤 종교로 탈바꿈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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