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의 말씀
| 여러분은 ··· 공개적으로 치욕과 환난을 당[했습니다.]—히브리 10:33. 사도 바울은 인내하는 데 무엇이 필요한지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는 시련을 겪을 때 자기 자신이 아니라 여호와를 의지해야 한다는 점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바울은 확신에 차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호와가 나를 돕는 분이시니 내가 두려워하지 않겠다.” (히브리 13:6) 지금 이 순간에도 일부 형제들은 박해를 인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필요하다면 실용적인 도움을 베풂으로 그들을 충성스럽게 지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와 연합하여 경건한 정성으로 살고자 하는 모든 사람은 박해를 받을 것”이라고 분명히 알려 줍니다. (디모데 후서 3:12) 따라서 우리 모두가 앞으로 겪게 될 일을 미리 대비해야 합니다. 계속 여호와를 온전히 신뢰하면서 그분이 그 어떤 시련도 인내할 수 있게 도와주실 것임을 확신해야겠습니다. 때가 되면,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충실히 섬기는 모든 사람을 구출해 주실 것입니다.—데살로니가 후서 1:7, 8. 「파24.09」 12-13면 17-18항 |
종교 계층 간의 갈등(그림: JW.ORG)
| Partly, whilst ye were made a gazingstock both by reproaches and afflictions; and partly, whilst ye became companions of them that were so used. 여러분은 때로는 공개적으로 치욕과 환난을 당하기도 했고, 때로는 그러한 일을 겪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하기도 했습니다.—히브리 10:33. 반스의 성경 노트 부분적으로는, 즉 당신의 고통이 부분적으로 이와 관련되어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리스어는 '이것'으로, 그들이 견뎌야 할 한 종류의 고통을 명시합니다. 너희가 구경 가축이 된 동안—그리스어: θεατριζόμενοι theatrizomenoi—너희는 마치 극장처럼 공공의 구경거리가 되었다; 너희는 대중의 시선에 노출되거나 대중의 조롱을 받았다. 이것이 언제,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졌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초기 기독교인들이 비난과 경멸의 대상이 된 것은 드문 일이 아니었으며, 이는 아마도 통치자나 집행관들에 의해 행해졌던 시기를 가리킨다. 그리스인과 로마인들 사이에서는 범죄자를 사형 전에 극장으로 이끌어 그들을 모욕과 비난에 노출시키는 관습이 흔했다. 이 구절에서 쿠이노엘이 제시한 증거를 참조하라. 여기서 사용된 '언어'는 이 관습에서 가져온 것으로 보이나, 바울이 언급한 기독교인들이 이런 방식으로 대우받았다는 증거는 없다. 비난에 따르면, 나사렛 예수의 추종자로 다시 전도되었고; 아마도 약하고 광신적일 것이다. 그리고 고통 - 그들에게 가해진 다양한 '고통'들. 그들은 단순히 말로만 경멸받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긍정적 고통을 견뎌야 했다.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너희가 그들에게 이용당하는 동료가 되었을 때, 즉, 그들이 직접 시련을 겪지 않았을 때조차도, 그런 시련을 겪는 이들에게 공감했다. 그들은 분명히 자신의 재산을 그들에게 넘겼을 것이다; 그들에게 보낸 구원을 받았고, 자신을 그들과 동일시했다. 사도가 여기서 어떤 특정 상황을 가리키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다음 구절에서 그는 그들이 그가 포로였을 때 도울 때 이런 일을 한 사례를 언급합니다. |
| 어떤 개인이 사회로부터 비난 또는 질책을 받고 소외되는 것은 그가 사회의 관습과 법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이유들은 자기 중심적 사고와 순간적 이익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한편 집단적으로 어떤 단체나 조직이 사회로부터 비난과 조소를 받는 것은 그 집단이 범죄를 일으키지 않더라도 그 조직의 문화가 기존 사회와의 문화와 충돌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러한 상황을 '문화 충돌'이라는 사회 용어로 표현한다. 예를 들면, 이민자와 기존 주민 간의 갈등이 언어, 종교, 생활방식의 차이로 발생할 수 있다. 또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가 가족관, 직업관, 결혼관 등에서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다. 그렇다면 1세기 그리스도인들이 로마 사회로부터 비난받고 갈등을 일으키며 모진 박해를 당한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종교적 차이로 인한 문화 갈등이 아니다. 로마 사회는 종교에 대해서 비교적 관대한 태도를 취했다. 어떤 종교를 믿더라도 로마의 법을 따르는 한, 관대하게 대하였다. 그리스도인들이 박해를 받는 이유는 현대에서도 동일하게 일어날 수 있는 문제인데 그것은 바로 정치 권력을 인정하지 않고 심지어는 그 권력을 전복하려는 시도가 있을 때, 이것은 전혀 넘어갈 수 있는 이유가 되지 않는다. 가령, 북한의 사회주의를 찬양하고 김일성 체제를 옹호한다 하더라도 현 권력체제인 김정일 정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이는 제거 대상 0순위인 것이다. 이처럼 그리스도인들의 핵심 사상은 로마가 지상의 권력이 아니라, 그리스도라는 다른 인물에 의해서만 이 땅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 정치가 이루어진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크리스챤의 핵심 내용이다. 자기 권력을 인정하지 않고 다른 권력을 들먹이는 자들 만큼 제거 대상이 되어야 할 집단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크리스챤은 한편으로 매우 온건하며 사랑의 공동체였다는 사실이 처음에는 더욱 눈의 가시가 되었을 것이다. 쉽게 말하면 "너네들이 잘난 척하며 뭔가 이룰 듯이 행동하는 데 과연 너희들의 뜻대로 되는지 두고 보자"는 식이 된 것이다. 그래서 박해가 극에 치달아 극악무도한 범죄자들이 받는 사자와의 격투장에 구경거리가 된 것이다. 이러한 박해를 견디게 한 힘은 그들이 그들의 희망인 그리스도의 왕국이 곧 세워질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믿음은 불학실한 추측이 가미되어 있기는 하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을 때는 도박보다 훨씬 큰 희망을 일으키고 도파민을 생성하게 만든다. 세월이 흐르자 박해도 희망도 모두 약화되었다. 박해는 박해대로 그것이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며, 크리스챤의 희망은 불확실한 추측에 의존한 만큼 그것이 문자 그대로 실현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서로 적이었던 그들은 마침내 화합을 이루게 된 것이다. 크리스챤은 원래의 희망을 수정하여 로마를 그들의 왕국으로 인정하게 되었고, 로마는 기독교를 국교화 시킨 것이다. 이것이 세계가 진행되는 변증법적 방식이라 볼 수 있다. 상호 간에 오류와 모순을 찾아내어 그것들을 보완해가는 방식으로 세계는 진행하는 것이다. 문자 그대로 하늘 어딘가에 예수가 실제로 살아 있는 것도 아니므로, 예수가 이땅에 다시 와서 왕국을 세우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상징적이고 은유적인 의미가 있다. 그 의미를 가능한 한 폭넓게 잡을 때, 진실에 가까워진다. 그 진실은 세계가 정의와 공의가 충만하며, 평화와 사랑이 가득한 사회로 발전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1세기 크리스챤이 가졌던 상징과 은유적 희망을 또 다른 은유와 상징으로 바꿀 필요는 없다. 그것의 의미를 실현시키고자 한다면, 은유와 상징의 의미를 발견하여 그것을 현실로 환원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지 동화적 이야기를 또 다른 만화의 세계로 변형시킨다고 해서 이루어질리는 만무하다. 1914년에 하늘 왕국이 설립되고 예수가 그 왕국의 왕으로 임명되었다는 이야기는, 동화가 만화로 바뀐데 불과한 것이지 동화 속에 담긴 의미를 실천하려는 노력은 아닌 것이다. |
질문
1.1세기 그리스도인들이 박해를 받던 주된 원인은 무엇이었는가?
2. 동화를 만화로 바꾼 단적인 예를 들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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