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석: 질의와 응답 2567번. 두 증인 / 두 증인이 누구인가를 아는 일은 중요한 일. 2012-01-03. 계11, 계10:11, 계7, 계14
두 증인을 두 선지자라고 하는데요(계11:10). 선지자라는 표현도 총괄적인 교회라고 부른 적이 있나요? 두 증인을 모든 성도들이라고 일반적으로 하시는데, 제가 구약성경을 읽으면서 선지자를 모든 교회 혹은 모든 성도의 상징이라고 한 곳을 한번도 본적이 없습니다.
두 선지자라면 그대로 믿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해서요 만일 이런 이론이 맞지 않는다면, 여기에 나오는 짐승은 관사가 붙어서 유일한 사람이라 말씀합니다. 짐승이 적그리스도로 거짓선지자와 함께 둘이 행동하고, 두 증인은 하나님이 보내신 두 선지자로 보면, 자연스러울 것 같은데요.
교회로 보는 견해로 본다면, 적그리스도와 교회의 숫자적 싸움은, 2:수십억, 목사님의 견해로 본다면, 2:14만 4천이 됩니다. 영적권세를 가진 자로서 이런 싸움의 숫자는 성경과 조화가 어려운 면도 보입니다.
기드온의 300백 용사와 수십만의 군대가 싸웠듯이 하나님의 군대는 언제나 소수로 싸운듯 합니다.
<응 답>
두 증인이 누구인가를 아는 일은 중요한 일.
두 증인의 정체를 아는 일은 요한계시록 해석에 필수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두 증인은 신약시대의 교회를 말하는 것도 아니며 어느 특정한 두명의 선지적 사명자를 가리키는 것도 아니며 모세나 엘리야의 출현도 아닙니다.
우리는 두 증인의 출현의 출처부터 찾아내야 합니다. 11장은 11장에서 시작되는 계시가 아니라 10장부터 계속되는 계시의 내용입니다.
11장에 등장하는 두 증인은 11장에서 갑작스레 튀어나온 존재가 아닙니다. 10:11절에서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고 명한 바로 그 대상이 11장에서 두 증인의 사명을 이루기 위해 등장하는 두 선지자들입니다.
물론 여기서 선지자(10절)라고 표현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하나님의 종을 의미하는 구약적 표현입니다. 이들은 힘센 천사의 손에 있는 펴놓인 작은 책을 먹으라는 명을 받고 그 책을 받아먹고 소화시킨 사람들입니다. 꿀처럼 먹었다는 말은 작은 책의 비밀을 깨달았다는 말이며 배에서 쓰게 된 것은 그 책을 먹은 종들의 순교적인 사명을 가리킵니다.
10장에서 작은 책을 받아먹고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전하라는 명을 받고 전하는 계시가 11장에서 두 증인으로 등장하여 1260일간의 예언을 사역을 감당하는 사역입니다.
이들에 대해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라고 말한 것은 하나님의 교회에서 선발된 사명 받은 하나님의 종들이란 뜻으로 7장의 이스라엘 각지파 중에서 12.000명씩 선발된 "우리 하나님의 종들"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두명은 증인의 상징적 수효를 가리킨 것으로 두명의 고유명사가 아닙니다. 이들은 종말에 등장하는 짐승과 맞서 싸울 하나님의 종들로 하나님께서는 종말에 이들로 종말사역을 이루게 하시는데 이들이 바로 두 증인으로 나오는 십사만 사천의 우리 하나님의 종들입니다.
이들이 11장의 예언사역을 마치고 부활승천한 모습으로 보여주시는 장면이 14장에 계시되고 있으며 그들의 자격과 그들이 전한 영원한 복음의 내용이 나오고 있습니다.
***2567-1번. 두 증인의 정체 / 형제의 결론이 형제의 해답입니다. 2012-01-04
10장과 11장이 연결시켜서 유익될 게 별로 없는듯 합니다. 10장은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면 주님이 오신다는 것이고, 그러므로 시간이 없다는 것으로 볼 수 있는 것같습니다(6-7).
그래서 작은 두루마리(이제 마지막 화만 남았기에)를 받아먹고, 온 세상에 다시 예언하라고 보면 큰 무리는 없을 듯 한데요. 11장은 작은 두루마리에서 갈대 지팡이로 소품이 바뀌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두 증인이 누구인가를 정확히 아는 것으로 판단되며, 그 정체에 대해서는 많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4절에 "이 땅의 주 앞에 서 있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이 부분은 스가랴 선지자가 본 환상과 같습니다.
슥4:11-12절에 보니, 두 감람나무와 "감람나무 두 가지"로 나와 있습니다.
감람나무 두 가지는 일곱 등잔대와 일곱 등잔에 기름을 제공하는 관의 역할을 합니다(슥4:2-3). 두 촛대를 온 교회로 해석하는 사람들은 촛대닌까 교회다라고 보는데, 그게 아닌 것 같습니다. 두 촛대는 두 감람나무 가지로 일곱 촛대에 금기름(12)을 흘리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그것이 무엇인가 찾아보니 성전을 재건하려는데 있어서 중추적 역할을 하는 스룹바벨과 여호수아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슥3,4장, 학1:1,12, 2:1) 두 증인이 두 선지자이다(계11:10)라는 부분도 그렇게 보았으면 합니다. 이들은 특정한 두 사람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도로, 선지자로, 복음 전하는 자로, 목사와 교사로(엡4:11) 특정한 부르심, 특별히 선지자로서 예언적 사명을 감당하는 자로 표현한 것을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본문을 좀 더 생각해보니, 두 증인은 짐승과(적그리스도) 충돌을 합니다. 두 증인의 사역의 핵심이 참 메시아가 누구인가를 증거하기에 이들의 사역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지 않는 자들에게 해당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즉 성전 바깥 마당에 있는 자들이 그 대상들이며, 그들은 여전히 못마땅하게 여깁니다. 성전 안에 있는 분들로 경배하는 자들은 당연히 메시아를 받아들인 사람들로 볼 수 있습니다.
결국 두 증인의 증거 - 예수님의 메시아 됨 - 가 그들의 죽음과부활, 승천을 통해서 증거되면서, 성전 바깥 마당에 있는 자들 중 회개한 자들이 회심하는 사건이(13) 예수님께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 때 적그리스도(짐승)가 이방인들과 함께 이들을 짓밟는 것이 3절의 내용이 아닌가 판단됩니다.
목사님도 그곳(3절)의 거룩한 성이 예루살렘을 가리킨다고 하시듯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거부하던 이스라엘의 회심사건을 이렇게 두 증인을 통해서 표현하지 않았는가 저의 생각입니다.
<응 답>
형제의 결론이 형제의 해답입니다.
형제의 글에 형제의 해답이 나와 있네요.
더 이상 응답자의 견해는 필요 없을것 같습니다.
형제가 결론 내리신대로 그대로 믿으십시오.
2012년1월4일 민 병 석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