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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처 (54)

민병석: 질의와 응답 2521번. 킹제임스 성경에서..계12장 말씀을 보며 의문과 동시에 / 킹제임스 성경에 계시된 계12:4,6절의

작성자청결|작성시간20.10.09|조회수347 목록 댓글 0

 

***민병석: 질의와 응답 2521번. 킹제임스 성경에서..계12장 말씀을 보며 의문과 동시에 / 킹제임스 성경에 계시된 계12:4,6절의 경우. 2011-10-26. 계12:5-7, 계12:13-14, 계11, 계7:15-17

민병석목사님 안녕하세요

오랜 기간동안 신앙인들의 여러 까다로운 질문중에도 불구하구 답변을 애써 성실히 하시는 모습이 매우 존경스럽습니다.

전에도 몇차례 질문을 드렸던 적이 있습니다

제가 킹제임스 성경을 개역한글성경과 비교하여 보는 중에 의문과 동시에 해답이 풀리는 듯한 구절을 보게되었습니다.

그 구절은 계 12장 5,6절 말씀인데요 
개역한글에서는 볼수 없는 한단어가 킹제임스에서 보입니다

계12장 6절을 보면 개역한글에는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일천 이백 육십 일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그리고 킹제임스 성경에서는
"그 여인은 광야로 도망하였는데 그곳에는 그들이 그녀를 일천이백 육십일 동안 부양하도록 하나님께서 그녀를 위하여 마련해 놓으신 곳이 있더라"

표기되었습니다. 그런데 두 구절이 다른점이 있는데 킹제임스 성경에서는 여자를 양육할 "그들이" 있슴을 가르키고 있습니다(킹제임스성경에서는 계12장 5,6절의 소제목을 사내아이로 한바 '그들이' 는 사내아이로 보여집니다)

제가 알기로는 예비처에서의 양육은 단지 하나님께서 양육하신다고 알고 있는데 사실 그 문제도 하나님이 어떻게 누구를 통하여 양육을 하겠는지가 의문이었습니다.

전 이구절을 보면서 감동을 받고 있습니다.

킹제임스성경의 말씀을 본다면 계12장 5절에서 여자가 아들을 낳는데 그 아들을 보는 견해가 조금 씩 다르지만, 사명자, 즉 철장권세를 거머쥔 두증인 144000 인으로 볼때에 그 사명자들이 12장 6절의 예비처에서 여자, 즉 교회를 양육한다고 보아집니다.

그것은 또 계 11장 두증인의 사역에서 일천 이백 육십일을 예언하는 기간과도 같이 볼수 잇겠다 생각이 되어집니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두증인이 전삼년반을 예언과 양육을 동시에 한다고 볼수 있지 않나 생각이 되어집니다.

또한 더불어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계12장14절의 한때 두때 반때를 양육받는 예비처의 기간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전삼년반동안 두증인이 다시예언하여 모여진 여자(교회)가 후삼년반을 보호받을 양육, 예비처로 따로 볼수 있겠다 생각되어집니다.

다니엘서에 12장 7절의 성도의 권세가 깨어지는 한때 두때 반때인 후삼년반으로 함께 보아집니다.

종합해볼때두증인이다시예언과 양육을 동시에 하는 전삼년반동안 여자(교회)를 양육하는 시기에 해당하는 곳을 계12장 6절로 보고요

두증인이 그 기간이 끝나서 부활승천하고 난 후삼년반기간동안 예비처 양육을 받는 곳을 계12장 14절로 보아집니다.

그리고 계12장의 6절 예비처와 14절 예비처에 여자가 도망함에는 용의 역할과 배경이 다름을 봅니다.

6절은 일곱왕관을 쓴 용이 여자가 아들을 낳으면 삼키려고 기다리고 있지만 해하지 못하고 14절의 용은 미카엘과 싸워 이기지 못해 하늘에서 쫓겨난 용이 자기 때가 얼마남지 않아 분노하여 이미 남자아이를출산한 여자를 박해, 핍박하는 배경입니다.여자가 남자아이를 낳기 전과 후의 용의 등장,역할입니다. 그래서 계12장의 6절과 14절의 예비처는 각각 다른 시기가 될수 있겠다 싶어보입니다.

다시말해 예비처가 후삼년반에만 보호,양육받는게 아니라 전삼년반에도 예비처의 양육이 있다는 것으로 보아집니다. 
단, 후삼년반은 그 뱀의 낯을 피한 보호, 양육이 되겟지요

예비처의 양육에 대해선 '누가 양육을 할것인가'가 미스테리로 남아있었슴에 오늘 이 질문이 그 미스테리에 조금이나 해답을 얻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목사님은 어떻게 보시는지요.

킹제임스에 대한 정보는 익히 잘아시고 계실줄 믿고요
성경 말씀에 매우 관심을 갖고 있는 어느 한 자매가 질문을 올렸습니다 

<응 답>

킹제임스 성경에 계시된 계12:4,6절의 경우.

형제께서 올리신 질문을 통해서 형제가 얼마큼 계시록 해석에 많은 심혈을 기우리시며 깊은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가에 대해 살필 수 있어 응답자로서 형제의 그 열의에 경의를 표합니다. 

사실 이 부분의 말씀(계12:5,6)에 대해서는 저도 킹제임스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지 않았으므로 이 질의가 올라오기까지는 별로 관심을 갖지를 못했습니다. 5절에서 여자가 낳은 아이가 하늘로 올려간 사건이 계시된 후, 6절에서 이 여자를 위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에서 이 여자를 양육하는 것처럼 등장하는 "그들"은 분명 하늘로 올려간 아들로 해석할 수밖에 없는 논리로 전개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한글역 성경에는 "그들"이란 대상이 모두 빠져 있기 때문에 예비처에서 어떻게 양육 받느냐는 문제에 대해서는 미해결된 부분으로 남겨 둘 수밖에 없었지만 킹제임스에 와서는 여자가 낳은 아들에 의해 양육 받는 것으로 전개되어 있는 이 부분에 대해 과연 우리가 이 설을 취해야 하느냐는 문제를 한번쯤 깊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그런 연구에서 나온 형제의 생각까지 이 질의에 포함되어 있어 문제가 더 복잡하게 얽혀 이 문제에 대한 해석에 혼맥을 이루게 됩니다.

형제의 생각은 5,6절의 1260일 동안의 보호는 두 증인에 의해 예언되는 기간인 전3년 반을 의미하고 이 기간 두 증인은 1260일 간의 예언을 함과 동시에 그들에 의해 하나님의 교회가 예비처의 보호를 받는다는 견해와 13,14절에 나오는 여자의 경우는 두 증인이 하늘로 올려간 후, 교회가 후3년 반의 대환난 기간 또다른 예비처에서 하나님에 의해 보호를 받는 사건에 대한 계시가 아니겠느냐는 견해를 피력하고 있습니다. 그런 형제의 견해대로라면 교회를 위한 예비처가 전3년 반에 한번, 후3년 반에 한번 그래서 두번이 아니겠느냐는 견해로 보여집니다.

이 문제에 대해 응답자의 견해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로 ... 5,6절의 계시와 13,14절의 계시는 동일한 계시란 사실입니다. 5,6절은 두 증인의 부활승천과 함께 해입은 여자(교회)를 위한 예비처로의 피신을 계시해 주신 장면입니다. 남자 아이가 하늘로 부활승천하는 시기는 예언기간인 1260일이 지난 후입니다. 그러므로 여자가 광야로 도망해서 보호를 받는 기간인 1260일 기간은 짐승이 집권하는 후3년 반 동안의 기간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13,14절에 계시된 사건은 남자를 낳은 여자가 짐승에 의해 핍박을 당하는 모습을 보여주시며 여자가 광야 자기곳(예비처)으로 피하는 방법과 그 시기를 보여주시는 계시로 이 두 계시는 동시적인 사건의 동일 계시임을 알 수 있습니다. 

13절에서 남자를 낳은 여자를 짐승이 핍박하는 사건은 계9장에서 계시해 주시는 첫째 화의 사건입니다. 이 첫째 화는 짐승에 의해 교회가 핍박을 당하는 전3년 반 중에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두 증인의 예언기간 중, 전3년 반 끝 부분으로부터 5개월에 걸쳐 일어나는 황충이 환난 사건입니다. 이 첫째 화가 끝남과 동시에 두 증인은 짐승에 의해 순교를 당하여 부활승천하게 되고 동시에 여자인 교회는 하나님의 큰 권능(큰 독수리의 두 날개)에 의해 예비처로 날아가는(피신) 모습을 보여주는 계시입니다. 

그러므로 킹제임스 성경을 제외한 모든 성경의 번역은 이 사실에 대해 동일하게 계시해 주고 있습니다. 

문제는 한글판 킹제임스 성경에 나와 있는 "그들"에 대한 문제가 문제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 여인은 광야로 도망하였는데 그 곳에는 그들이 그녀를 일천이백육십 일 동안 부양하려고 하나님께서 그녀를 위하여 마련해 놓으신 곳이 있더라" 아마도 성경사본에 대한 한글 번역은 그 표현이나 문장의 전후관계의 배열에 있어서 꾀나 복잡하고 다양할 것입니다. 

이 문장은 아마도 형제가 생각하는 것처럼 두 증인의 예언기간 동안 예언과 더불어 교회를 어느 예비처에서 보호를 해 주는 그런 계시는 아닙니다. 또한 후3년 반에서의 교회를 양육하는 예비처에서 두 증인에 의해 교회가 양육 받는 모습도 아닙니다. 교회가 예비처에서 보호를 받는 모습은 계7:15-17절에 걸쳐 계시해 주셨습니다. 

저는 이 한글 킹제임스 성경에 대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견해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는 어떤 경로에서인지 모르지만 킹제임스 성경 번역자들에 의해 잘못된 표현으로 기록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다른 또 한가지 견해는 킹제임스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제 나름대로 정리한다면 중간에 "부양하려고"란 말씀 대신에 "그 여인은 광야로 도망하였는데 그 곳에는 그들이 그녀를 일천이백육십 일 동안 (부양할 것이란 예언대로) 하나님께서 그녀를 위하여 마련해 놓으신 곳이 있더라" 아마 이렇게 번역했음이 어떠했을까 하는 견해를 피력해 봅니다. 

2011년10월27일    민 병 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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