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석: 질의와 응답 1912번. 빌1:21-24 / 생명이 단절된 무덤의 잠을 누가 소망하나?. 2009-08-18

작성자청결|작성시간22.02.01|조회수132 목록 댓글 0

 

***민병석: 질의와 응답 1912번. 빌1:21-24 / 생명이 단절된 무덤의 잠을 누가 소망하나?. 2009-08-18. 빌1:21-24, 롬6:23, 고전15:27, 고전15:52, 딤후4:8

빌1:21-24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가릴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내가 그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그러나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니라"

1. 바울은 죽음을 잠으로 보았다. 부활의 때까지 자는 것처럼 의식이 없이 쉬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리고 부활의 날 홀연히 변화하여 썩지 아니할 몸을 입을 것이라고 했다.

2. 죽음을 사모하는 것은 바울의 사상이 아니다. 바울은 사망을 죄의 값이라고 생각하였으며(롬6:23) , 사망을 원수라고 불렀다(고전15:27) 더구나 사람이 죽으면 바로 그리스도 곁에 있게 된다는 것은 바울의 사상과는 거리가 멀다. 바울은 성도가 죽으면 잠자고 있다가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변화한다고 말했다(고전15:52)

3. 바울이 지금 죽어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을 소망했다면 그리스도의 재림을 고대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4:8)라고 함으로써 재림을 기다렸다. 그는 또한 부활을 중요하게 여겼다.

4. 심지어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 것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우리의 믿음도 헛되고 "그리스도 안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을 것이요.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라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라고 말하여 지금 죽음이 아니라 재림 시의 부활을 대망하였다.

5.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무거운 짐을 지고 탄식하며 그리스도와 함께 있기를 소원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죽어버리는 것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서 죽어 세상을 떠나는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이 죽을 것이 그리스도를 받아들임으로 덧입혀져서 영원한 생명에 삼켜진바 되기를 원하는 종말적인 떠남인 것이다. 우리가 이 죄악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는 주님을 직접 뵙고 함께 거할 수는 없으므로 우리가 참으로 원하는 바는 이 세상이 끝나고 종말이 와서 주님과 함께 거하는 그 날이다. 그러나 지금은 당장 종말이 오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이 세상에 살때든지 종말이 와서 주님을 뵐 때든지 우리는 주님을 기쁘시게 해야 한다.

<응 답>

생명이 단절된 무덤의 잠을 누가 소망하나?

귀하가 예로 든 빌1장 어디에도 바울이 죽어서 무덤에서 잠자기를 소망했다는 말은 한마디도 없습니다. 세상에서 살다가 죽으면 영혼도 없이 송장이 되어 무덤에서 썩은 육체로 잠자는 일이 어찌 성도들의 소망일 수 있습니까? 이런 일은 생명의 단절이기 때문에 결코 영생이 아닙니다.

인간의 사망은 죄의 댓가입니다. 여기서 사망이란 말은 생명의 멸망을 의미하는 것으로 죄인들이 들어갈 둘째 사망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육신이 죽는 일은 바로 그 둘째 사망으로 들어가는 관문이기 때문에 저주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사망권세를 이기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육체의 죽음은 이제 둘째 사망에 들어가는 관문이 아닙니다. 생명의 부활을 위한 잠입니다. 그리고 그에게 있는 영적생명은 천국으로 올라갑니다. 육신은 잠을 자지만 영은 천국에서 계속적인 생명을 누립니다. 그리고 마지막 부활의 날에 잠자는 육체와 이미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고 있는 영이 신령한 결합을 이루어 신련한 몸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성도들의 가장 축복된 소망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주의 재림을 소망하는 것은 성도가 살아 있을 동안에 주님이 오시면 주님이 왕으로 다스리는 그리스도의 왕국에서 천년의 축복된 생애를 살아갈 수 있으며 천년왕국이 끝난 후, 홀연한 변화를 통해서 죽지 않고 살아 있는 몸으로 변화되어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 영생을 누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살아 생존에 이런 축복을 받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부활은 구원의 완성입니다. 부활이 없는 구원은 있을 수 없습니다. 영적인 생명의 구원도 우리의 육체의 죽음도 부활이 보장되어 있기에 소망이 있습니다. 부활이 없다면 구원에 무슨 소망이 있으며 영혼의 존재가 왜 필요한 것입니까? 원래가 하나님의 아들의 신분은 신령한 몸이기 때문에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부활을 소망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부활을 전제해야 천국에 올라가 있는 성도들의 영도 소망가운데 그 부활의 날을 바라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적 구원이나 영적 안식은 그리스도인의 완성된 구원이 아닙니다. 부활을 전제로 그 모든 게 존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2009년8월18일    민병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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