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석: 질의와 응답 1038번. 이삭의 번제제물로 드려짐에 관하여 / 이삭을 제물로 드린 아브라함의 믿음. 2005-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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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석: 질의와 응답 1038번. 이삭의 번제제물로 드려짐에 관하여 / 이삭을 제물로 드린 아브라함의 믿음. 2005-02-18. 창22:1-18, 히11:17-19, 삿11:31-40, 호4:6
목사님 안녕하십니까?
성경이해와 믿음에관하여 어려운 부분이 있어서 질문드립니다. 아브라함의 이삭번제에 대한 하나님께로의 순종과 하나님의 그 명령에 대해 이해의 어려움이 있어서요
짐승으로만 제사의 제물을 드렸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하나님께서는 사람인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하셨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 명령에 아브라함은 그대로 의심없이 하나님의 음성이라 믿고 번제로 드리려 했는지 말입니다. 결과야 어떻든 성립이 안되는 시도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사람제물은 이방인들이 이방신들에게 제사할때에나 있어지던 일인걸로 알고 있는데 말입니다.
목사님 답변 부탁드립니다.
<응 답>
이삭을 제물로 드린 아브라함의 믿음.
성경에는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이 많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형제께서 지적하신 이삭의 경우도 그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그 나타난 사건을 제시할뿐 그 사건에 대한 해석이나 설명이 따르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갖지 않고는 성경에 대한 올바른 이해란 불가능하며 더군다나 믿음을 가질 수는 더욱 없습니다.
우리는 창22장에서 언급해 주는 이 사건을 살펴봄에 있어서 먼저 믿음을 가지고 기록한 내용을 받아드리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이 사건에 대해 고찰해 보면 ...
첫째로 그때까지 하나님께 드리는 번제에 대해서 그 대상의 한계가 정해진 시대가 아닌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이런 번제가 율법에 와서 법으로 규제할 때에 그 대상이 짐승으로 명확하게 제시된 것입니다. 율법에 와서 하나님께 드린 번제물이 제정된 이후, 이삭을 제물로 드리려 했던 사건은 없었고 이방신을 섬기는 이방인들의 경우에서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다음에 하나님은 이 사건을 계획하신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과 순종을 시험하시려고 이 일을 섭리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최초의 사람입니다. 그의 의롭다함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과 순종에 있었습니다. 그것을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독자 이삭에 대한 희생으로 증거를 삼으시려고 그를 시험 하셨던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시험은 아브라함으로 넘어지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의 믿음과 순종을 더욱 견고케 하시기 위해서이며 이런 사실을 성경에 기록하여 믿음으로 의를 얻는 그의 후사들(예수를 믿고 구원 받은 성도들)의 신앙적인 본으로 보여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이같은 하나님의 명을 받은 아브라함은 많은 심적 괴로움에 잠겼을 것이며 신앙적인 갈등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마침내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중대한 결단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이 일에 대해 히11:17-19절에서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을 생각한지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케 하실 것이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고 아브라함은 이삭을 번제물로 바친다 해도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려주실 것이란 믿음을 가지고 모리아산으로 올라간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한 말씀에 대한 무조건적인 순종보다는 이처럼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이삭을 죽여서 번제물로 바쳐도 하나님이 그 이삭을 다시 살려내어 약속의 말씀대로 이룰 것이란 믿음을 더 귀히 여기신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이삭이 예표로 등장하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그 부활하심의 믿음의 그림자가 되며 아브라함의 믿음을 가진 자는 우리의 속죄제물로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죽으신지 사흘만에 하나님이 다시 살려내사 부활시키신 일에 대한 믿음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속죄의 죽으심과 죽은 자 가운에서 살려내신 그 부활에 대한 믿음이 복음이며 아브라함의 믿음을 따른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믿음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이삭을 제물로 드리려고 한 아브라함의 경우를 믿음으로 바라본다면 참으로 이 사건을 통해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은 그 믿음이 무엇이며 아브라함의 후사들인 우리가 아브라함의 믿음을 본 받는 일이 무엇인가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1038-1번. 아브라함과 입다의 경우 / 무남독녀를 제물로 바친 입다의 무지와 죄. 2005-02-19
목사님
그럼 사사 입다의 딸을 처녀로 드린 말씀은(암몬자손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와서 가장 먼저 나오는 자를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서원한일로 말미암아 그딸을 하나님께 드린 사건-삿11:31~40.) "처녀제물로 드린 것"이 아니라 "처녀로 평생 지내게 된 것"을 의미한다고 볼수 있을까요?
이때는 율법이 제정된 이후인 사사시대이니 사람을 제물로 드릴수 없었던 때라고 본다면 말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두가지 의견이 나누어져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고 있는 좀더 바른 해석은 어떤 것인지 목사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성경에는 번제물이라고(삿11:31) 나와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견을 말하는 것은 왜일까요? ... >
늘 좋은 답변들을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응 답>
무남독녀를 제물로 바친 입다의 무지와 죄.
* 입다의 서원에서 보여준 과오
두 경우, 모두 사람을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는 일은 동일하지만 아브라함의 경우는 하나님의 명에 의해 순종하였고 입다의 경우는 자기 스스로 하나님께 서원하여 그 서원한바를 자기가 실행했다는 사실에 있어서 이 두 사건은 동일한 기준으로 판단할 일이 아닙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서원했다고 하여 누구의 경우든 정당성을 띤 것도 아니며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것도 아닙니다. 사사기 당시 이스라엘의 많은 사람들이 주변의 이방인이 섬기는 이방신에 대한 제사에 미혹을 받았고 그들의 관습을 따라 하나님을 떠나는 행위를 통하여 자주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주변 이방인들의 통치를 받게 하셨습니다.
성경의 문맥으로 보아 입다는 분명히 암몬자손과 싸워 승전하고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를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서원했습니다. 그 후 입다가 미스바에서 돌아와 자기 집에 이를 때에 그의 딸이 소고를 잡고 춤추며 나와서 아버지를 영접했습니다. 이에 입다는 "슬프다 내 딸이여 너는 나로 참담케 하는 자요 나를 괴롭게 하는 자 중의 하나이로다 내가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열었으니 능히 돌이키지 못하리로다"고 말한 것입니다.
입다의 이 서원은 결코 자기 딸을 시집보내지 않고 처녀로 살다가 죽게 할 것이란 서원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서원할 때 입다는 자기 딸이 그 대상이 될 줄은 상상도 못했을 때였습니다. "내가 그를 번제로 드리겠나이다"고 맹세한 것은 자기 딸로 맹세한 서원이 아니라 그 대상이 누구든 그를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겠다는 서원입니다.
그런데 사사기에는 입다의 서원과 그 서원대로 행한 사실에 대한 기록만 남아 있습니다. 성경에는 잘못된 지식이나 정황에서 나온 사건의 진술이 많이 나옵니다. 그러나 그 사건에 대한 판단은 가하지 않고 사건의 전개만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이 있는 것입니다.
사사기에 있는 입다의 경우가 바로 그런 사건 중에 하나입니다. 그런데 그런 것을 인간적인 판단을 가미하여 번제가 아니라 처녀로서의 생애를 마친 것을 의미한다고 둘러대는 일은 잘못된 해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전후사정으로 볼 때 입다는 하나님께 대한 깊은 지식이 없는 사람 중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깊은 생각없이 잘못된 서원을 한 경망스러운 행동을 취한 사람입니다.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로 드리겠나이다"고 한 맹세는 입다의 행동의 경솔함과 인명의 경시와 그의 성품의 경망스러움을 그대로 보여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일찌기 호세아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책망하시기를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를 잊어버리리라"고 하셨습니다(호4:6).
입다의 승리는 자신의 서원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입다의 손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입다는 하나님께 대한 지식이 없으므로 입다로 하나님 앞에 잘못된 서원을 하게 하였고 그 잘못된 서원으로 인하여 자기가 사랑하는 무남독녀를 아무런 의미없이 번제의 회생물로 죽인 것입니다.
차라리 입다는 자신의 무지와 하나님께 대한 잘못된 서원을 뉘우치는 의미에서 다윗처럼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그 딸을 살려주는 길을 택했더라면 좋았을 것입니다. 물론 그의 그같은 번제를 하나님께서 결코 받으시지 않으셨으며 입다는 잘못된 서원에다가 자기 딸을 죽이는 끔찍한 범죄까지 저지러게 된 결과가 되었습니다.
2005년2월19일 민병석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