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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석: 재림의 메시지 101 - 29번. 검은 말의 등장. 계6:5-6

작성자청결|작성시간15.12.11|조회수413 목록 댓글 0

 

***민병석: 재림의 메시지 101 - 29번. 검은 말의 등장. 계6:5-6

 

본문 : "셋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셋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내가 보니 검은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가 손에 저울을 가졌더라 내가 네 생물 사이로서 나는 듯하는 음성을 들으니 가로되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되로다 또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 말라 하더라." (요한계시록6:5-6)

 

우리는 지난 시간까지 둘째 인까지의 계시를 배웠습니다. 그의 백성들을 후 3년 반의 종말의 대환난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흰 말을 등장시켜 회개의 복음을 증거케 하시는 첫째 인의 역사는 참으로 놀라운 은혜요 사랑임을 알았습니다. 만약 이런 하나님의 배려가 없으다면 우리는 어떻게 될 것입니까? 우리도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인류를 심판하시는 대환난 중에 빠져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재앙을 당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흰 말 탄 자가 전하는 예언이 두 증인의 모습으로 요한계시록 11장에서 전개되고 있습니다.

 

이 예언의 사명이 끝난 직후에 둘째 인을 떼실 때 붉은 다른 말이 등장합니다. 이 말은 두 증인으로 등장하는 흰 말 탄 자의 예언의 사역이 마쳐진 후, 이 땅위에 임하는 핵전쟁으로 세계 인구의 ⅓을 죽이는 '유브라데 전쟁'임을 계시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셋째 인을 떼실 때 등장하는 말이 '검은 말'입니다. 그러면 이 검은 말은 무엇이며 이 검은 말은 종말에 등장하여 어떤 사역을 하는 존재인가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검은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검은 말은 그 색깔부터가 희망적이 아니라 암담한 면을 보여 줍니다. 검은 말은 그의 색깔이 말해 주는 바와 같이 온 인류에게 기근을 가져다주는 흉년과 굶주림을 의미합니다.

 

(1) 검은 말은 탄 자의 손에 저울을 가졌다고 했습니다. '그 탄 자가손에 저울을 가졌더라'고 했습니다. 저울이란 우리 인간의 경제생활에 필요 불가결한 생활 기구입니다. 저울에 관하여 잠언에는 많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잠16:11절에서 '공정한 간청과 명칭은 여호와의 것이요 주머니 속의 추돌 들도 다 그의 지으신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저울은 원래가 하나님께서 인간의 올바른 경제활동을 위해 주신 것으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저울은 우리의 경제생활에 좋은 점도 있지만 반면에 속이는 저울로 정상적인 경제생활을 어지럽게 하는 경우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속이는 저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공평한 추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잠11:1). 성경에서는 빈부의 격차를 분명히 말씀해 주고 있으며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세상 끝날 까지 함께 살아간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말씀해 줍니다. 또한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에 대한 계급적 존재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돈의 위험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반면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에게는 이 재물의 축복을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2) 그럼에도 이 말이 검은 말로 등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인류에게 희망을 주는 계시가 아님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검은 색깔은 밝은 색깔인 것이 아니라 어둠의 색깔입니다. 검은 색은 죽음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이 검은 말은 결국 인류들에게 배부름을 주는 존재인 것이 아니라 흉년과 굶주림을 선사하기 위해 등장했다는 사실을 그 색깔로부터 볼 수 있는 것입니다.

 

(3) 이 같은 사실은 6절에서 네 생물들 사이에서 들려 오는 음성을 통해서 보여 주고 있습니다.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되로다'는 음성이 그것입니다. 이 음성은 장차 검은 말이 등장하였을 때 이 세상에 임할 기근의 재앙을 경종하는 하늘의 음성입니다.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들의 하루의 품삯입니다. 그런데 그 돈으로 살 수 있는 식량은 밀로는 한 되요, 보리로는 석 되라고 한 것입니다. 밀과 보리는 빵을 주식으로 만드는 재료인데 한 되의 밀을 가지고서는 온 가족들의 하루의 끼니를 채울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이런 표현은 화폐가치가 폭락한 경제 공황 상태에서 온 극심한 경제 혼란을 의미해 주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이 같은 극심한 식량난을 겪게 된 것입니까? 왜 식량이 부족하여 세계적인 기근에 들어갔으며 경제가 혼란 상태에 들어간 것입니까? 그것은 7년 환난 중에 일어날 두 가지 사건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하나는 두 증인의 예언으로 말미암은 재앙 때문입니다. 두 증인이 1260일간 예언할 동안 '저희가 권세를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오지 못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이 같은 두 증인의 예언의 사역 기간, 지상에 비가 내리지 않는 일은 능히 온 세계 인류를 기근의 공포 속으로 휘몰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한 해만 가물어도 식량의 위기가 올 터인데 3년간이나 비가 전혀 내리지 않는다면 전 세계적 식량 위기는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이 기근은 이 세상에 살아가는 모든 인류들에게 말할 수 없는 굶주림의 고통을 줄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후 3년 반에 들어가자 발발하는 유브라데 전쟁의 재해로 인한 식량의 부족과 계속적인 가뭄으로 인한 극심한 기근에서 오는 재앙입니다. 유브라데 전쟁은 핵전쟁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세계 인구의 ⅓이나 살상하는 전쟁 뒤에는 핵폭탄으로 말미암은 생태계의 파괴와 땅의 폐허는 농산물을 전혀 수확할 수 없는 피해가 뒤따를 것입니다. 그리고 전 3년 반에서 계속된 가뭄이 후 3년 반 기간에도 그대로 계속될 것이란 사실은 너무나도 자명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 때 적그리스도는 이 같은 식량난의 위기를 구실로 삼아 '통제경제정책'을 강행할 것입니다. 온 세계 인류에게 적그리스도에 의해 식량뿐 아니라 일반 생필품에 이르기까지 모두 엄격한 배급제가 실시 될 것이며 이런 적그리스도의 정책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일체의 물건의 매매를 금지시킬 것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계13:16-17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2.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 말라'

 

그런데 우리는 6절 하반 절에서 이상한 음성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이 음성은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는 음성을 보낸 하늘의 음성과 함께 들려주고 있습니다. '또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 말라 하더라'고 하신 말씀이 그것입니다.

 

(1)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 말라'고 하셨는데 이 같은 계시는 비유적인 표현입니다. 실제적인 감람유와 포도주의 수확에 피해를 내리지 말라는 명령이 아닙니다. 밀이나 보리 같은 식량은 가뭄으로 피해를 입게 되는데 양식도 아닌 감람유와 포도주의 생산은 피해를 입지 않는다는 이론은 상식을 벗어난 해석입니다.

 

성경에는 상징적인 계시와 문자적인 계시가 섞여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것을 상징적인 계시로, 어떤 것을 문자적인 계시로 보아야 하느냐 하는 문제는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에 신중을 기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가 두 가지 문제를 잘 이해해서 조화시키지 못하면 종말론 해석에 굉장한 혼란이 따르게 됩니다.

 

우리는 먼저 상징적인 표현은 어떤 것인가 하는 정의부터 내려야 할 것입니다. 상징적이란 말은 성경에 나타난 어떤 사건에서 그 표현만으로는 이해하기가 어렵고 해석할 수도 없는 경우, 그것을 성경 전체의 내용에 비춰서 새로운 방법의 해석을 시도해야 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이 해석은 반드시 성경에서 짝을 찾아야 하고 성경 해석에 무리가 따라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진리에 어긋남이 없이 누구에게나 설득력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무리가 없고 설득력이 있으며 진리 안에서 상식에 어긋남이 없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는 '짐승'이란 존재가 등장합니다. 이 존재는 종말론 해석에 매우 중요한 존재로 등장하며 이 존재를 만약 잘못 해석하는 날이면 종말론 해석이 뒤죽박죽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 짐승은 분명히 종말에 등장할 하나의 인물이지만 이 인물은 상징적으로 나와 있습니다. 그러면 이 짐승이라고 하는 상징적 존재의 실체를 해석할 때 어디에 근거해야 하는 것입니까? 단7장에 보면 열 뿔 가진 짐승에 대한 계시가 나옵니다. 그리고 그 열 뿔 중에 하나인 작은 뿔이란 짐승도 등장합니다. 이 짐승은 인류의 종말에 등장하여 세계를 지배할 왕으로 계시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열 뿔이 작은 뿔을 그들의 왕으로 받들어 섬기는 모습이 계17:12-13절에 나옵니다. '열 뿔은 열 왕이니 아직 나라를 얻지 못하였으나 다만 짐승으로 더불어 임금처럼 권세를 일시 동안 받으리라 저희가 한 뜻을 가지고 자기의 능력과 권세를 짐승에게 주더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짐승은 신약 살후2장에 와서 '불법의 사람' '멸망의 아들' '불법한 자'로 등장하는데 이들이 종말에 등장할 적그리스도인 것입니다.

 

이 외에도 실질적으로 해석해야 할 상징적인 표현이 여러 곳에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실제적인 수효나 표현을 상징적인 표현으로 오해해서 다른 해석을 시도하려고 한다면 다니엘서나 요한계시록은 그 전체가 상징적 해석으로 전락해 버리고 말게 됩니다. 무 천년주의 자들의 해석이나 일부 전 천년설의 경우 이런 방향으로 기우러지는 일이 허다한 것입니다.

 

(2) 그러면 감람유의 경우, 무엇을 상징해 주는 표현입니까? 감람유는 감람나무에서 짜낸 기름을 말합니다. 이 기름은 성전 안에, 저녁부터 아침까지 항상 켜 놓는 등불의 기름으로 사용됩니다(출27:20-21). 그리고 이 기름은 곧 성령을 상징해 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고후1:21-22절 말씀에서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견고케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고 하셨는데 이 기름 부음은 곧 성령의 세례를 의미해 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 등과 기름을 준비하여 신랑을 맞으러 나온 흰옷 입은 무리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3) 다음에 포도주는 무엇을 상징해 주는 말입니까? 포도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합니다. 계시록에 나오는 음행의 포도주는 변질된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해 주는 상징적 표현입니다. 이사야가 외친 포도주가 있습니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고 했는데 여기서 포도주란 순결한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 두 단어, '감람유와 포도주'는 성령과 말씀으로 무장하여 신부의 단장을 마친 흰옷 입은 성도들을 의미하는 표현인 것입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킴으로 복 받을 성도들이 곧 이들입니다.

 

(4) 그런데 하나님은 이들에게 '해치지 말라'는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종말에 이처럼 무서운 기근의 재앙의 날이 와서 모든 인류가 굶주림으로 고통을 당하고 짐승의 표를 받아야 식량을 매매할 수 있는 그 어려움 속에서 이들을 건져내시겠다는 약속인 것입니다. 이들은 이런 재앙을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권능으로 이 같은 피해를 유월하게 될 것입니다.

 

계7:15-17절에는 대환난의 날에 하나님에 의해 예비될 보호 장막의 모습이 나옵니다.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고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한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후 3년 반의 대환난에서 건져내셔서 예비처로 인도하실 하나님의 특별하신 보호의 모습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결론 : 장차 이 땅에는 검은 말이 등장합니다. 이 말이 등장하는 날, 모든 인류는 극심한 가뭄으로 인한 기근과 핵전쟁의 여파로 찾아온 흉년 등으로 말할 수 없는 식량난에 봉착하게 될 것입니다. 이 때 여러분은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 말라'고 하신 그 대상이 되시어 특별하신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축복을 누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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