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용: 70이레 계시에 대한 다양한 해석적 입장(단9:24-27) (1)
♣ 대한 에스라 성서연구원
http://cafe.daum.net/koreaBibleLAb
일시: 2016년 3월 15일
장소: 새생명 교회당
강의: 장기용 목사(본 연구원 원장)
다니엘서 9장에 나오는 70이레의 계시는 기독교 종말론 연구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매우 중요한 내용이다. 이 계시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요한계시록을 해석하는 열쇠가 된다. 칠십 이레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 이광복의 계시록 주석에는 여섯 명의 외국 학자들의 견해를 소개하고 있다.1)
① 아이삭 뉴톤Isaac Newton 은 "그리스도 신앙의 주춧돌이다"
② 몽고메리 Montgomery는 "칠십 이레에 대한 해석의 역사는 구약성경 비평론의 디즈멀 스웜프Dismal Swamp,(미국의 남서부의 대 습지대를 일컫는 말임)이다. <우울한 늪지>
③ 카일Keil은 "포로의 종말에서 끝 날에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그 나라가 완성될 때까지 하나님 나라의 발전 과정의 선언으로 해석하여야 한다.
④ 매튜헨리Matthew Henry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세계의 구원에 대한 예표.
⑤ 맥클레인Alva J. McClain은 "다니엘이 예언한 칠십 이레를 올바로 이해하게 되면 주의 재림날짜 지정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정교한 억측으로부터 그리스도인을 보호하게 되고 아울러 신약의 모든 예언의 실제 연대에도 절대 확실한 해결의 열쇠가 마련된다.
⑥ 아이언 사이드H.A. Ironside 는 "다니엘 9장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예언서이다.
70이레의 계시는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여러 가지 다른 해석을 하게 만드는 난해한 본문으로 여겨지고 있다. 다니엘서 9장에 나오는 70이레의 계시는 구약성경 가운데서 가장 어려운 구절들 가운데 한 구절이며, 지금까지 제시되어 온 해석들도 수천가지이다.2) 라고 한다. 초대교회 교부인 제롬Jerom은"나는 (70주야의) 이 문제가 학식이 대단한 사람들에 의해 논쟁되어 왔다는 것을 깨닫는다..."그는 그의 다니엘 주석에서 이 예언의 9가지 견해를 제시하고 있으나, 그는 거기에서 위대한 교회 교사들의 의견에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존 칼빈도 그의 주석에서 말하기를 본문의 내용은 주석가들의 견해에 따라 여러 가지로 취급되어 분해되고 나눠져 그 모호성으로 인해 쓸모없는 것으로 인정 될 정도다.3) 라고 말하고 있다.
70이레에 대한 해석은 대단히 다양한 해석 방법이 있는데, 본 강의에서는 두 사람이 내린 정의를 가지고 고찰할 것이다. 첫 번째 견해는 구약 주경학자인 카일Keil의 견해와4) 에즈워드 영Edward J. Young 박사(간하배 교수와 박윤선 박사)의 견해를 살펴볼 것이다. 두 사람의 견해가 거의 같으나, 다른 점이 있다면, 카일의 견해에는 세대주의의 견해가 빠졌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카일의 시대에는 세대주의가 확립되지 않은 시기이기 때문이다.
~~~~~~~~~~
1) 이광복,『성경종말론』, 도서 출판 흰 돌, 2014, pp. 84-85.
2) Edward J. Young, 『다니엘서 주석』, 정일오역, 기독교문서 선교회, 1999, p. 279.
3) John Calvin, 『구약성서 주해 25 다니엘 Ⅱ』, 성서교재 간행사, 1982, p. 197.
4) 카일(Karl Fridrich Keil, 1807-1888) 은 1838년 도르파트(Dorpat)대학 조교수, 1839년~1858년 까지 동 대학 교수로 사역을 했다. 그는 행스텐버그의 제자로서 보수적 입장에 선 학자였다. 그는 경건한 학자로서 그의 주석과 번역을 통해 영/미 구약계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
1. 카일Keil의 관점
1)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주후 70년까지로 보는 견해
교회의 교부들의 대부분과 고대 보수주의적 해석자들은 육신으로 나타난 그리스도가 이곳에서 예언되었다고 본다. 그리고 그의 죽음과 로마인에 의해서 예루살렘의 멸망을 말한 것으로 본다. 이 견해를 지지하는 학자들은 하버니크, 헹스텐버그, 그리고 아우베린에에 의해서 전적으로 지지를 받고 있고, 천주교 신학자인 라우렌스, 라인커에 의해서 용납되고, 영국의 프시 박사(Dr, Pusey)에 의해서 용납되고 있다.5) 오늘날 무 천년 주의자들이 옹호하는 해석법이라고 할 수 있다. 영 박사는 전통적인 메시야 해석으로 분류한다.
2) 헬라시대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4세까지로 보는 견해
현대 주석학자들의 대부분은 전체 구절을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의 때와 연관시킨다. 이 견해를 지지하는 학자들은 합리주의적인 주석학자들로 아이호른, 벨돌트, 렌겔크, 마우렌그, 에발트, 힛지그에 의해서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되었고, 중도적인 신학자 블렉, 비젤러등이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6) 오늘날 자유주의자들이 보는 해석법이다,
3) 종말론적으로(메시야의 재림) 보는 견해
일부 교부들과 여러 명의 현대 신학자들은 종말론적으로 그 예언을 해석하여, 포로의 종말에서 끝 날에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그 나라가 완성될 때까지 하나님의 나라의 발전 과정의 선언으로 해석한다. 이 견해를 지지하는 학자들은 히포리 투스와 라오디게아의 아포리나라스에서 그 첫 징조를 본다. 이들은 7:25절에 언급된 적그리스도의 예언을 거론하면서 본 장 27절의 진술을 마지막 주간에 관한 것, 세상 종말과 관련시킨다.7) 오늘날 종말론을 미래적인 해석법으로 보는 유형에 속한다. 역사적 전 천년주의와 세대주의자들이 포함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영 박사는 기독교회의 해석과 세대주의의 해석으로 분류하고 있다.
2. 영E. J. Young의 관점(간하배 교수와 박윤선 박사)
E. J. Young의 저서 다니엘서 주석(The prophecy of Daniel)과 간하배의「다니엘서의 메시야 예언」, 그리고 박윤선 박사의 다니엘 주석에서 소개하는 대표적인 네 학파의 견해.8)
1) 전통적 메시야적인 해석
이 견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초림 하신다는 사실(그 중심점이 그분의 죽으심이다)에 대한 예언으로 간주하며, 동시에 로마인들에 의한 예루살렘의 파괴에 대해 말씀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주후 70년).9) 이 견해는 최초의 (1) '7이레를 고레스 원년으로부터(B.C. 538) 시작하여 에스라와 느헤미야(B.C. 440)의 사역이 완성될 때까지로 보고, (2) 다음 '62이레'를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사역이 완성된 때부터 그리스도까지의 기간으로 보며, (3) 그리고 마지막 '1이레'를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또한 어떤 의미에서는 40년 후의 예루
~~~~~~~~~~
5) C.F. Keil, and F. Delitzch, 구약주해『다니엘』기독교 문화사, 1991, p. 381.
6) ibid.
7) ibid.
8) 세 주석은 거의 내용이 흡사하다.
9) Edward J. Young, op. cit, p. 279.
살렘의 멸망을 포함하는 기간으로 이해한다. 이레를 특별히 7년의 기간으로 계산하기보다는 불명확한 어떠한 기간을 상징하는 기간으로 해석한다.10) 성 어거스틴은 이 견해가 본질적인 견해라고 진술했으며, 행스텐버그는 그의"구약의 기독론"이라는 책에서 이 견해를 가장 충분하게 해석하였다. 최근에 와서 에드워드 영 박사는 이 견해의 가장 유능한 대표자가 되었다.11) 이 내용을 도표화 하면,
전통적 메세야적 해석
이 전통적 해석은 한 이레를 정확한 기간으로 보지 않는다. 이 해석은 메시야의 초림과 죽으심에 초점을 맞추어 해석을 하고 있어서 미래주의적인 해석자들에 의하여 환영을 받지 못하고 있다.
2) 자유주의 해석
자유주의 해석은 비 메시야에 대한 해석으로 70이레의 계시가 헬라시대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 4세의 시대로 국한시켜 해석을 하는 방법이다. 이 해석은 제롬(Jerom)때에 유대인들에 의하여 주장이 되었다고 한다. 율리우스 하드리아누스(4세기 말경)는 본 예언의 메시아 시대적 특성을 부정하였고, 안티오커스의 황폐에 적용하였다.12)
자유주의자들이 보는 다니엘서의 저자와 저작의 시기는, 보수주의자들이 보는 주전 6세기 다니엘로 보지 않는다. 그들은 다니엘서의 저자를 한 사람이나 한 사람 이상의 저자로 보며, 다니엘서가 주전 2세기 마카비 시대에 기록 되거나 편찬이 된 것으로 본다. 그들이 그렇게 보는 이유는 다니엘서 11장에 기록 된 내용이 당시에 살았던 사람만이 기록을 할 수 있다고 한다.
간하배 교수는 힛튼(E. W. Heaton)의 해석을 소개하기를, ①7이레는 예루살렘 멸망(586 B.C)부터 49년 후에 고레스 왕이 바벨론을 전복하고 추방당한 유대인들을 예루살렘으로 귀환 하라는 명령을 내린 주전 538년 까지라고 한다. ②둘째 기간인 62이레는 주전 538년부터 대 제사장 오니아스 3세가 죽은 해인 주전 171년까지이다. ③셋째 기간인 마지막 한 이레는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 4세에 대한 언급이라고 한다.13)
영은 그의 주석에서 마우러(Maurer), 힛지히(Hitzig), 베르만(Behrmann), 프린스(Prince)의 해석을 소개하면서 이 해석들은 단순한 본보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였다.14)
~~~~~~~~~~
10) Leon Wood,「다니엘 주석」, 정일오 역, 기독교문서 선교회, 1995, pp. 352-353.
11) 간하배, 「다니엘서의 메시야 예언」, 영음사, 1970, p. 179.
12) Edward J. Young, op. cit, p. 280.
13) 간하배, op. cit., p. 180.
14) Edward J. Young, op. cit., pp. 280-281. 위의 4명의 해석은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비메시야적 해석이라는 점에는 일치한다.
자유주의 해석은 70이레에 대한 기간에 대해서는 한 이레를 7년으로 해석을 하기는 했으나, 사건에 집착함으로 인하여 62이레에 대한 성경적인 근거가 잘못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15) 이들은 자신들이 세워놓은 기준에 성경이 오류가 있다는 것을 피력하고 있다. 자유주의 신학은 성경의 무오류성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다. 이 내용을 도표화 하면,
자유주의 해석
3) 기독교회의 해석
많은 보수주의 학자들이 취하는 또 다른 일반적인 해석을 기독교회의 해석이라고 부른다. 이 해석을 가장 잘 설명하는 사람은 카일과 루돌프의 주석들이 그의 해석을 따르고 있다.16) 영은 그의 주석에서 독일의 루터파 학자인 클리포드(T. Klieford)의 해석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이레(7들)는 연도를 말하는 주간들(weeks)로 취급해서는 안 되고 단순한 상징으로 취급해야 한다. 70년의 포로 기간이 지나간 후, 하나님의 백성들이 구원을 얻게 될 부정확한 길이의 시간이 올 것인데, 그 기간은 실로 세상과 시간의 종말까지 지속 될 것이다.17)
이 부정확한 기간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7 이레와 62 이레와 1이레 이전에 일어날 신약시대의 전 기간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한 이레가 도래한다는 것이다. 1) "일곱 이레". 이것은, 고레스(B.C. 538년)로 시작하여 그리스도에게 이르기까지임. 2)"육십 이 이레". 이것은 교회 시대로서 적그리스도가 올 때까지임. 3)마지막 "한 이레". 이것은 그 악한 자가 하나님의 성전과 하나님의 성을 파괴시키는 시대이니 곧, 적그리스도의 시대이다. 그 끝에 세계의 종말이 온다는 것이다.18)
기독교회의 해석은 70이레의 기간에 대해서는 연수에 얽매이지 않고 상징으로 해석을 하고 있다. 이 상징의 해석은 미래주의 관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일치하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마지막 한 이레를 메시야의 재림 직전으로 본다는 점이다. 이들의 해석을 보면, 한 이레에 하나님에 대항하는 한 왕이 나타나서, 왕으로서의 메
~~~~~~~~~~
15) 이 사실을 주장하는 사람은 율리우스 하드리아누스(4세기 말경)로서, 그는 스룹바벨 휘하의 귀환과 안티오커스 사이에 62이레(즉 434년)가 있는 것은 분명한 오류라고 하였다( Edward J. Young, 1999, p280).
16) 간하배, op. cit., p. 182.
17) Edward J. Young, op. cit., p. 281.
18) 박윤선,『다니엘 주석』, 영음사, 1989, p. 159. (영 박사와 간하배 교수의 주석에는 62 이레의 내용이 부정확 하게 기술이 되어져 있어서 직접적으로 인용하지 못하였음).
시아의 위치를 차지할 것이다. 이 악한 왕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도성과 성전을 파괴시킬 것이며, 그리고 전쟁과 황폐함이 끝까지 계속될 것이다. 이 마지막 이레는 이 왕, 적그리스도의 통치 기간을 포함하고 있다. 그의 통치는 궁극적 종말에 의하여 종말을 고하게 된다. 그러므로 클리포드에 의하면, 이 예언은 단2장, 단7장의 그것과 평행을 이룬다. 본질적으로 이 입장은 카일에 의하여 채용되고 있다.19) 이 사실을 도표화 하면,
기독교회의 해석
이 해석법은 70이레의 기간에 대해서는 전통적 메시야의 해석처럼 기간에 대하여는 상징적으로 보지만, 사실을 보는 관점은 종말론적인 관점, 즉 미래주의적인 해석을 하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4) 세대주의의 해석
이 학파의 해석은 오늘날 많이 퍼져 있다. 이것은 공백기설空白期設, 혹은 괄호 시대설(Parenthesis interpretation)이라고 한다. 미국에서는 달라스(Dallas) 신학교와 무디(Moody) 성경학교가 이 학파를 대표하며, 우리 한국에서는, 토레이(R.A. Torray)나 기타 세대주의 학자들의 문헌이 번역되어져서 이 해석이 많이 퍼져 있다.20)
이 학파는 70의 일곱들을 연수年數 를 나타내는 주간週間 으로 해석했다. 70의 일곱들의 각 일곱들을 7년 이라는 길이로 보았다. 그래서 70의 일곱들을 490년이라고 해석한다.21)
칠십 이레가 주전 445년 곧, 아닥사스다 왕 제 20년(느2장)에 시작된다고 하며, 그것을 다음과 같은 세 시대로 나눈다. 1) "일곱 이레". 이것은 예루살렘이 재건된 기간인 49년 동안을 가리키는데 물론 유대인 포로의 돌아오는 때부터 시작할 것이라고 함. 2) "육십 이 이레". 이것은 434년 동안을 가리키는데, 에스라 때부터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때까지라고 함. 그 입성하신 주간은 그의 죽으심의 주간이다. 3) "한 이레". 이것은 7년 동안을 가리키는데 "육십 이 이레"기간을 직접 연속하는 것이 아니고, 신약 시대(괄호 시대라고 함)를 뛰어넘어가서 시작되는 시대라고 한다.22)
~~~~~~~~~~
19) Edward J. Young, op. cit., p. 282. 클리포드와 카일은 단7장의 계시를 해석함에 있어서 작은 뿔의 등장을 메시야의 재림 전에 적그리스도의 출현으로 해석을 하고 있다.
20) 박윤선, op. cit., p. 159.
21) 간하배, op. cit., p. 183.
22) 박윤선, op. cit., p. 160.
아이론사이드는 말하기를 "제 70이레는 백성들의 죄악 때문에 시간과 계절을 변동시키시는 하나님 자신에 의하여 연기되었다. 내가 다른 곳에서도 말한바와 같이 메시야가 십자가에서 죽은 순간부터 그 예언적 시계는 중단되었다. 이 시계는 19세기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이것은 현세가 끝날 때 까지 재출발하지 않을 것이며 하나님께서 다시 한 번 이스라엘을 세우실 것이다"라고 하였다.23)
예수 그리스도가 그의 성도들을 위하여 공중 재림하실 때 제 70이레가 시작된다고 말하는데 제 70이레는 그의 성도들을 위한 그리스도의 재림과 그의 성도들과 함께 오시는 지상 재림 사이의 7년 이라는 기간을 의미한다고 한다. 제 70이레가 시작할 때 땅에서는 로마제국의 왕이 일어나서 처음에는 유대인들과 친구가 되려는 듯이 "7년 동안 그들을 본국으로 돌아가도록 약속하고 그들을 보호하고 종교의 자유를 허락하는 계약을 그들과 맺을 것"이라고 하며 그들이 귀환해서 예루살렘에서 충성스러운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중건하도록 허락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이레의 절반 즉 전 삼년 반 끝에 가서는 그가 언약을 깨뜨리고 유대인이 예배를 금지 할 것이며 후 삼년 반 동안 즉 예수님이 그의 성도들을 데리고 재림하심으로 제 70이레가 끝날 때 까지 커다란 고난을 당할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예수님이 재림하심으로 천년왕국이 설립된다고 한다.24) 이 사실을 도표화 하면,25)
세대주의 해석
세대주의 전 천년의 칠십 이레의 해석은 그 기간에 있어서 기독교회가 전 기간을 상징적으로 해석하는 것과는 정 반대로 문자적인 기간으로 해석을 하고 있다.
5) 개혁주의 전 천년 해석
세대주의 전 천년의 칠십 이레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 한 이레를 7년으로 계산을 하고, 70이레를 490년의 실연수로 본다는 이 해석법은, 전체적인 틀로 볼 때는 역사적 전 천년주의와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26) 그런데 분명히 알아두어야 할 사실은 70 이레에 대한 윤곽은 같
~~~~~~~~~~
23) 간하배, op. cit., p. 184.
24) ibid.
25) 민병석, "종말론 단기대학 공개 강좌", ppt, 계시록 7장과 144,000의 계시, 2016년 3월.
26) 이러한 면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 이레를 미래적으로 해석을 하면 세대주의로 보는 경향이 농후하다. 심지어 어떤 전 천년주의 학자는 한 이레의 해석을 세대주의로부터 배웠다고 공공연하게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을지는 몰라도 한 이레를 해석하는 내용에 있어서는 상당히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일부 몰지각한 무 천년주의자들 중에서 세대주의를 역사적 전 천년과 같이 보거나, 역사적 전 천년이 세대주의로부터 무엇인가를 배웠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주장은 역사를 모르는 무지의 소치에서 나온 것이다.27) 우리가 70이레의 계시에 대한 해석을 올바르게 하지 못하게 되면, 우리들의 주장은 세대주의와 별 다를 바가 없다 라는 말을 듣게 될 것이다. 앞으로 필자는 70 이레 계시의 해석사에 대한 역사적 고찰을 통하여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부분을 밝힐 것이다.
개혁주의 전 천년설의 70이레 계시의 내용을 도표화 하면,28)
개혁주의 전천년의 해석
전체적인 윤곽은 같을지 몰라도 실제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개혁주의 전 천년과 세대주의는 상당부분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필자는 앞으로 70 이레의 계시를 상고하면서 세대주의와 전 천년이 내용상으로 많이 다름에 대해서 언급할 것이다.
개혁주의 전 천년 주창자 민병석 목사는 말하기를, “세대주의 70이레 해석은 상당히 모순이 많은데, 세대주의 전 천년은 70이레 해석을 세대주의 신학의 틀 안에서 해석을 하고 개혁주의 전 천년설에서는 70이레의 해석을 요한계시록의 틀 안에서 해석한다.”29)고 하였다.
지금 한국의 역사적 전 천년 주의를 지지하는 사람들 중에 상당수가 세대주의와 역사적 전 천년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이 사실은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 모른다. 그래서 많은 전 천년주의자들이 세대주의 그릇된 성경해석에 마음이 상해 역사적 전 천년 주의를 떠나기도 한다. 역사적 전 천년과 세대주의 전 천년이 다르다는 사실은 외국의 무 천년주의 신학자들에 의해에서도 밝혀졌다.
~~~~~~~~~~
분명히 알아야 할 사실은 한 이레를 미래주의로 해석하는 것은 세대주의의 해석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 해석방법은 이미 초대교회 시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역사적 전 천년주의자들의 해석에서 나타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 장에서 언급을 하기로 하겠다.
27) 이 부분은 무 천년설을 지지하는 간하배 교수가 정확하게 보았다. "우리는 매우 중요한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 재림에 관한 세대주의적인 학설과 소위 전 천년설과의 사이에는 대단히 큰 차이점이 있다. 사람들은 종종 세대주의와 전 천년설을 오해하여 이들이 같은 것이라고 혼동하는 수가 많다(간하배, op. cit., p32).
28) 민병석, op. cit.
29) ibid.
간하배 교수30)는 다니엘서의 메시야 예언이라는 책에서“세대주의를 역사적 전 천년기설과 혼돈하면 안 된다”라고 했다.31) “우리는 매우 중요한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 재림에 관한 세대주의적인 학설과 소위 전 천년설과의 사이에는 대단히 큰 차이점이 있다. 사람들은 종종 세대주의와 전 천년설을 오해하여 이들이 같은 것이라고 혼동하는 수가 많다.32) 이 두 학설은 똑같이 그리스도께서 영광 가운데서 재림하사 그가 다스릴 천년 왕국을 세우시리라 본다. 그러나 세대주의는 전 천년설의 중요한 교리의 본질에 없는 다른 요소들을 첨가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전 천년설과 세대주의는 꼭 같은 것이 아니다. 모든 세대주의자들이 전 천년주의자가 될 수 있어도 모든 전 천년주의자들이 결코 세대주의자가 될 수는 없다.33)
무 천년 주의의 대표적인 학자 안토니 A 후쿠마 교수34)는 “전 천년기설 자체는 2세기 이후로 기독교 신학자들에 의해 주장되어 오긴 했지만, 교회와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두 개의 별도의 백성들로 엄격하게 구별하는 교리를 지닌 세대주의라고 불리는 이 신학적 체계는 죤 넬슨 다비(John Nelson Darby, 1800~1882)에 의해 비로소 시작되었다.35)
개혁주의 전 천년에서 보는 70이레의 계시는 세대주의와 윤곽이 거의 같다. 그러나 70이레의 세부적인 내용으로 들어가면 많은 부분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대표적으로 중요한 몇 가지만 살펴보면,
(1) 세대주의는 예수님의 재림을 공중 재림과 지상 재림, 두 번으로 보는데, 이것은 성경의 사실과는 다르다. 예수님의 재림은 한 이레가 지난 후에 단회적인 재림만 있을 뿐이다.
(2) 세대주의는 7년 대 환난 전에 교회의 휴거를 주장하는데, 이러한 사실은 성경에 나오지 않는 내용이고, 전 천년과는 전혀 다른 주장이다. 성도의 휴거는 환난을 통과한 후에 예수그리스도의 재림 시에 일어난다.
(3) 세대주의는 어린 양의 혼인 잔치가 공중에서 7년 동안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것도 성경의 해석을 잘못한 것이다. 어린 양의 혼인잔치는 예수님 재림 이후 천년왕국을 말한다.
(4) 세대주의는 69이레 이후 장차의 기간을 유대인들이 왕국건설을 실패한 왕국연기 기간으로 보며 이 기간을 교회시대로 해석한다. 그들의 견해에 의하면,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영접했다면 신약의 교회시대는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성경을 아주 잘못 해석을 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5) 세대주의는 7년 대환난은 유대인들만 겪는다고 한다. 그 이유는 그들이 메시야를 십자가
~~~~~~~~~~
30) 간하배Harvie M. Conn 박사는 1933년 카나다 제기나에서 출생했다. 미국 칼빈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다. 미국 정통 장로교회(OPC)의 한국 선교사로 파송 받고(1960) 고신대, 총신대에서 교수로 봉직을 하였다. 간하배 교수는 종말론에 있어서는 무 천년주의를 따르고 있다.
31) 간하배, op. cit., p. 183.
32) ibid. p. 31.
33) ibid.
34) 앤서니 후크마(Anthony A. Hoekema) 앤서니 후크마(1913~1988년)는 칼빈 칼리지를 졸업하고 칼빈 신학교에서 신학을, 미시간 대학교에서 심리학을 공부햇다. 1953년에 프리스턴 신학교에서 『헤르만 바빙크의 언약교리』라는 논문을 제출하고 신학 박사를 받았다. 이후 1958년부터 미시간 주 그랜드 래피즈에 소재한 칼빈 신학교의 조직신학 교수로 봉직했다. 후크마 교수도 종말론에 있어서는 무 천년주의를 따르고 있다.
35) Anthony A. Hoekema, 「개혁주의 종말론」, 기독교문서 선교회, 1990, p. 256.
에 못 밖아 죽인 대가를 치르는 것이라고 한다. 이것도 어불성설이다.
(6) 세대주의는 마지막 한 이레를 7년 대환난으로 보지만 개혁주의 전 천년에서 보는 견해는, 7년 전체가 대환이 아니고, 7년이 시작 될 때부터 환난의 강도는 점점 심화되어 전 삼년 반 종반부터 극심화 되어, 후 삼년 반에는 미증유의 대환난의 시기로 본다.
(7) 세대주의는 천년왕국에서 교회(성도)는 부활체나 변화체로 살아가고, 유대인들은 육신으로 살아가는데 천년왕국의 주인은 유대인이라고 한다. 이것도 성경의 교훈과 전혀 맞지 않는 내용이다. 부활체가 천년왕국에서 살 필요가 있겠는가?
(8) 세대주의는 천년왕국에서는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성전이 세워지며, 짐승을 잡고 피로 제사를 드리게 된다고 주장한다. 이것도 성경의 전체적인 맥락에서 볼 때, 전혀 맞지 않는 이야기이다. 구약의 짐승의 제사는 그림자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으로 영원히 사라진 것이다. 지면 관계상 다는 밝히지 못하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이상 위에서 살펴본 대로 세대주의는 성경에 기초하지 않고 자신들이 세워 놓은 신학적인 틀 안에서 성경을 아전인수로 해석을 하고 있다. 개혁주의 전 천년설이 한 이레의 틀이 세대주의와 같다고 세대주의와 동일시하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요한계시록의 한 이레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 세대주의 전 천년과 개혁주의 전 천년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이 부분에서 분명하게 집고 넘어갈 것이 있다. 역사적 전 천년과 세대주의 전 천년의 관계에 대한 부분이다. 전술한바와 같이 역사적 전 천년은 초대교회부터 있었던 사상이다. 세대주의는 19세기 존 넬슨 다비로부터 태동이 된 단체이다. 세대주의는 종말론에 있어서 역사적 전 천년주의의 옷을 입고 출발을 하였다. 그런 연유로 역사적 전 천년 주의와 비슷한 면들이 있는 것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세대주의가 역사적 전 천년주의의 옷을 입을 바에는 분명하게 입었어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엉뚱한 돌연변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역사적 전 천년은 세대주의 전 천년으로 말미암아 불필요한 오해를 지금까지 계속 받아오고 있다.
전 천년주의 학자였던 Fuller 신학교 교수였던 래드(G.E. Ladd)박사는 The Blessed Hope란 책을 저술하였다. 그가 이 책을 저술하게 된 동기가 세대주의를 반대하는 입장에서 썼다. 그는 그의 저서 가운데서 말하기를 세대주의는 역사적으로 잘 알려진 대로의 전 천년설에서 아주 이탈하고 있다고 하였다.36) 그러므로 우리는 세대주의와의 관계를 분명하게 설정을 해야 한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세대주의의 비 성경적인 해석의 오류에 우리까지 오해를 받게 되기 때문이다.
개혁주의 전 천년의 종말론 신학은 다니엘서 9장에 나타난“70이레의 계시”를 기초로 하여 종말론의 체계를 세워간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70이레의 계시에서 한 이레에 대한 해석은 세대주의 전유물이 아닌 초대교회 시대부터 있어 왔던, 뿌리 깊은 역사적 전 천년주의의 해석 방법이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한 이레에 대한 해석이 세대주의라는 무지에서 하루 속히 벗어나야 할 것이다.
~~~~~~~~~~
36) 간하배, op. cit., pp. 31-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