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석: 종말의 계시 종말론 심층연구 1장 (1) (요한계시록 주해와 연구). 계1:1-9
1. 계시의 전달 과정(1절~3절)
2. 교회에 대한 축도(4절~6절)
3. 요한계시록의 주제(7절)
4. 편지의 서두(8절~1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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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주해와 연구)
머 리 말
요한계시록은 ‘종말의 계시’로 주님이 직접 주신 재림의 메시지이다.
주님은 그의 재림에 대하여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고 하셨다.
모든 성도들은 이 예언의 말씀에서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는 밤중의 소리를 듣고, 등과 기름을 준비해야 한다.
요한계시록은 절대로 ‘금서’가 아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신학적 규범 안에서 해석해야 할 책도 아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고 말씀하셨다. 그 무엇으로도, 그 어떤 이유에서도, 이 예언의 말씀을 인봉할 수 없다.
이 책은 요한계시록을 진지하게 연구하여 그 사명을 이루고자 하는 주의 종들과, 이 책을 이해하기에 어려움을 느끼는 모든 성도들을 위해, 신학적 견해에서가 아니라 ‘성경적 입장’에서 맥을 따라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누구나 올바로 이해할 수 있도록 펴 놓았다.
이 책이 주의 재림을 사모하며 간절히 기다리는 모든 분들에게 신부의 단장을 할 수 있는 길잡이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종말론 시리즈 증보판을 내면서
2012년 10월
민병석 목사
■차례
머리말
서론(요한계시록의 해석 방향) ... 11
제 1 장 계시의 나타남
1) 계시의 전달 과정(1절~3절) ... 22
2) 교회에 대한 축도(4절~6절) ... 30
3) 요한계시록의 주제(7절) ... 32
4) 편지의 서두(8절~11절) ... 34
5) 계시자의 영광(12절~18절) ... 38
6)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19절~20절) ... 40
제 2 장 종말 교회에 대한 경종 (1)
1) 에베소 교회에 보내는 편지(1~7절) ... 43
2) 서머나 교회에 보내는 편지(8절~11절) ... 52
3) 버가모 교회에 보내는 편지(12절~17절) ... 57
4) 두아디라 교회에 보내는 편지(18절~29절) ... 61
제 3 장 종말 교회에 대한 경종 (2)
1) 사데 교회에 보내는 편지(1절~6절) ... 69
2) 빌라델비아 교회에 보내는 편지(7절~13절) ... 75
3)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는 편지(14절~22절) ... 83
제 4 장 하나님의 보좌
1) 하늘에 열린 문(1절~2절) ... 94
2) 하나님의 엄위(3절) ... 96
3) 24장로들(4절) ... 99
4) 일곱 영이신 성령(5절) ... 101
5) 네 생물들(6절~8절) ... 102
6) 24장로들의 경배와 찬양(9절~11절) ... 103
제 5 장 심판주의 등장
1) 일곱 인으로 봉인된 책(1절) ... 106
2) 요한이 울게 된 이유(2절~4절) ... 108
3) 어린양의 등장(5절~7절) ... 111
4) 네 생물과 24장로들의 새 노래(8절~10절) ... 114
5) 천천 만만의 천사들의 찬양(11절~12절) ... 116
6) 만물의 찬송(13절~14절) ... 117
제 6 장 계시의 총론
1) 흰 말의 등장과 활동(1절~2절) ... 120
2) 붉은 말의 등장과 활동(3절~4절) ... 131
3) 검은 말의 등장과 활동(5절~6절) ... 132
4) 청황색 말의 등장과 활동(7절~8절) ... 136
5) 순교자들의 등장과 간구(9절~11절) ... 140
6) 인류의 마지막 심판(12절~17절) ... 143
제 7 장 교회의 알곡 추수
1) 땅 사방의 바람을 붙잡은 네 천사(1절) ... 149
2) 네 천사에게 명령을 내리는 다른 천사의 모습(2절~3절) ... 151
3) 이스라엘 12지파 중에서 뽑아 낸 14만 4천(4절~8절) ... 153
4) 횐 옷 입은 큰 무리의 등장(9절~12절) ... 159
5) 흰 옷 입은 큰 무리의 정체(13절~15절) ... 164
6) 흰 옷 입은 무리가 혜택 받을 장막 생활(16절~17절) ... 167
제 8 장 7년 환난의 서곡
1) 일곱 천사가 일곱 나팔을 받는 모습(1절~2절) ... 173
2) 기도의 분량과 환난의 도래(3절~6절) ... 173
3) 첫째 천사의 나팔(7절) ... 176
4) 둘째 천사의 나팔(8절~9절) ... 178
5) 세째 천사의 나팔(10절~11절) ... 180
6) 네째 천사의 나팔과 독수리의 경종(12절~13절) ... 182
제 9 장 첫째 화와 둘째 화
1) 땅에 떨어진 별과 무저갱의 열쇠(1절) ... 186
2) 무저갱에서 올라온 검은 연기(2절~3절) ... 188
3) 황충이가 피해를 주는 사람은 누군가(4절~6절) ... 190
4) 황충이의 모양(7절~11절) ... 196
5) 둘째 화로 나타나는 유브라데 전쟁(12절~19절) ... 199
6) 둘째 화에서 살아 남은 자들의 죄악 상태(20절~21절) ... 209
제 10 장 예언 사명자들의 부르심
1) 힘센 천사의 외침(1절~4절) ... 213
2) 힘센 천사의 맹세(5절~7절) ... 216
3) 작은 책을 먹은 자들의 사명(8절~11절) ... 218
제 11 장 두 증인의 예언 사역
1) 두 증인의 사명 인수와 척량의 범위(1절~2절) ... 224
2) 두 증인의 정체와 예언의 사명(3절~4절) ... 238
3) 예언 기간, 두 증인에게 주신 권세(5절~6절) ... 243
4) 두 증인의 순교(7절~10절) ... 245
5) 두 증인의 부활 승천(11절~12절) ... 248
6) 시기적으로 보여 주신 둘째 화(13절~14절) ... 250
7)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 때 오는 그리스도의 나라(15절) ... 254
8) 24장로들의 경배와 간구(16절~19절) ... 255
제 12 장 환난 날의 교회와 예비처
1) 해 입은 여자가 해산하는 아들(1절~2절) ... 258
2) 여자가 낳은 아들과 붉은 용과의 투쟁(3절~6절) ... 262
3) 종말에 있을 하늘의 전쟁(7절~9절) ... 272
4) 하늘의 찬양(10절~12절) ... 275
5) 교회를 위한 예비처와 하나님의 보호(13절~17절) ... 276
제 13 장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의 활동
1) 짐승의 등장과 그가 가진 권세(1절~2절) ... 288
2) 짐승이 등장하는 표적과 메시야적 인기(3절~4절) ... 294
3) 마흔 두 달간의 짐승의 통치(5절~10절) ... 298
4) 거짓 선지자의 등장과 활동(11절~14절) ... 303
5) 사단의 생기를 받은 적그리스도의 우상(15절) ... 311
6) 짐승의 표로 등장하는 6. 6. 6. (16절~18절) ... 314
제 14 장 14만 4천과 영원한 복음
1) 시온산에 서 있는 14만 4천(1절~3절) ... 326
2) 14만 4천의 자격(4절~5절) ... 331
3) 영원한 복음의 내용(6절~12절) ... 336
4) 주 안에서 죽는 자의 복(13절) ... 345
5) 알곡 추수(14절~16절) ... 348
6) 들포도 추수(17절~20절) ... 354
제 15 장 마지막 심판 준비
1) 일곱 재앙의 이적(1절) ... 359
2) 공중 휴거자들의 모습(2절~4절) ... 360
3) 일곱 대접을 받은 일곱 천사(5절~8절) ... 367
제 16 장 인류의 마지막 심판
1) 첫째 대접 심판(1절~2절) ... 370
2) 둘째 대접 심판(3절) ... 372
3) 세째 대접 심판(4절~7절) ... 373
4) 네째 대접 심판(8절~9절) ... 375
5) 다섯째 대접 심판(10절~11절) ... 375
6) 여섯째 대접 심판(12절~16절) ... 376
7) 일곱째 대접 심판(17절~21절) ... 381
제 17 장 음녀와 짐승의 비밀
1) 음녀의 비밀(1절~6절) ... 390
2) 짐승의 비밀(7절~14절) ... 397
3) 짐승의 심판(15절~18절) ... 419
제 18 장 큰 성 바벨론의 멸망
1) 큰 성 바벨론에 대한 멸망의 선언(1절~3절) ... 424
2)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경종(4절) ... 426
3) 음녀의 죄와 음녀의 심판(5절~8절) ... 427
4) 왕들과 상고들의 애가(9절~11절) ... 430
5) 왕들과 상고들을 영화롭게 해 준 상품들(12절~14절) ... 432
6) 상고들의 애가(15절~19절) ... 434
7) 바벨론의 심판과 성도들의 즐거움(20절) ... 436
8) 바벨론의 온전한 멸망(21절~24절) ... 437
제 19 장 아마겟돈 전쟁과 주의 재림
1) 큰 음녀의 심판을 즐거워하는 하늘의 찬양(1절~5절) ... 442
2) 예비된 어린양의 아내와 혼인 잔치(6절~8절) ... 443
3)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의 복(9절~10절) ... 447
4) 주의 재림의 모습(11절~13절) ... 448
5) 하늘의 군대와 심판의 모습(14절~16절) ... 450
6) 하나님의 큰 잔치의 초대(17절~18절) ... 453
7) 아마겟돈 전쟁의 결국(19절~21절) ... 454
제 20 장 천년왕국과 흰 보좌 심판
1) 천 년 동안의 사단의 결박(1절~3절) ... 457
2) 첫째 부활자들과 그들의 상급(4절~6절) ... 460
3) 옥에서 놓인 사단의 미혹(7절~8절) ... 481
4) 사단의 최종 운명과 땅과 하늘의 사라짐(9절~11절) ... 483
5) 죽은 자들의 심판과 사망과 음부의 마지막(12절~15절) ... 485
제 21 장 우리의 영원한 본향
1)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1절~2절) ... 489
2) 이기는 자가 받을 새 예루살렘(3절~7절) ... 491
3) 유업으로 받지 못할 자들(8절) ... 494
4) 천사가 보인 새 예루살렘(9절~23절) ... 495
5)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자(24절~27절) ... 499
제 22 장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1) 천국의 새로운 생활(1절~5절) ... 501
2) 계시의 확실성(6절~9절) ... 504
3)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10절~13절) ... 506
4)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의 복(14절~16절) ... 509
5) 성령과 신부의 초대(17절) ... 512
6) 계시 전달의 경종(18절~19절) ... 513
7)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20절~21절) ... 516
연구 과제
1) 다니엘서 2장에 나타난 하나님의 나라와 종말의 때 ... 26
2) 마태복음 25:1-13절에 나타난 열 처녀에 관한 연구 ... 202
3) 단9:24-27절에 나타난 ‘칠십 이레’의 연구 ... 228
4) ‘바코드’와 6. 6. 6. ... 316
5) 공중 휴거에 관한 성경적 증거 ... 350
6) 계17장과 단 8장과 7장에 연계된 적그리스도의 연구 ... 401
7) 열 뿔에 관한 성경적 고찰 ... 414
8) 부활과 변화에 관한 성경적 연구 ... 464
9) 천년왕국의 생활 ... 472
서론
요한계시록의 해석방향
1. 종말론의 올바른 인식
종말론이라고 하면 복음의 영역을 넘은 신학으로 잘못 이해하고 복음을 전하는 일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는 목회자들이 많이 있다. 요한계시록이 경계를 받으면서도 또 한편 천시를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보겠다. 그러나 절대로 그런 것이 아니다. 종말론이야말로 성경의 핵심적인 메시지임을 알아야 한다.
종말론이라고 하면 주로 요한계시록을 주축으로 전개되는 인류의 종말적인 사건들을 가리키는데 ‘주의 재림’ ‘심판’ ‘부활’ 등에 관한 성경적인 고찰을 종말론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들 문제는 그 하나하나로 볼 때, 성경에서 대단히 중요한 비중을 가진다. 종말론이란 바로 이 문제를 체계적으로 공부하는 성경 연구이며 요한계시록 역시 이 문제에 대한 종합적인 계시이기 때문에 우리는 진지하고 친숙한 태도로 이 말씀을 대해야 한다.
우리는 성경이 우리에게 제시해 주는 문제가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을 통해서 종말론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할 수 있다.
(1) 주의 재림은 기독교의 절대적인 교리이다. 주의 재림이 없는 기독교는 틀림없이 이단이다. 그런데 재림에 대한 성경 연구를 등한히 할 수 있겠는가?
(2) 부활은 그리스도인들의 최종적인 소망이다. 부활이 없는 기독교는 이미 기독교가 아니다. 그런데 그 부활에 관한 성경적 연구를 소홀히 할 수 있겠는가?
(3) 인류의 종말에는 심판이 있다. 인류에 대한 심판이 없는 종교는 기독교가 아니다. 그런데 이 심판에 대한 성경적인 진리에 대하여 등한히 할 수 있겠는가?
(4) 그리고 신약 성경의 강조점은 무엇인가? 주의 재림을 대망하고 준비하는 성도들의 신앙적인 자세가 아닌가?
눅12:35-40“······ 그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마24:48-51“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동료들을 때리며...”
벧후3:3-14“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계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 기록한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2. 요한계시록 해석, 무엇이 문제인가?
왜 목회자들이 요한계시록 연구를 기피하는 것인가? 그 요인을 지적한다면 요한계시록 해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사실 요한계시록 해석에 는 문제점이 많이 따른다. 그러면 이 같은 문제점은 무엇이 가져 온 것인가? 이것은 성경이 가져 온 것이 아니다. 인간의 신학이 가져 왔다.
오늘날 신학은 성경을 해석하는 절대적 원칙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많은 목회자들은 이 같은 신학에 얽매어 성경 해석의 범위를 견제받기 때문에 성경적인 올바른 해석을 시도하기가 매우 어렵게 되었다. 말하자면 성경 해석에 있어서 ‘성경적 해석’이 아닌 ‘신학적 해석’이 권위를 가지고 성경 해석을 지배하고 있다. 요는 이런 것이 문제가 되어 요한계시록 해석에 혼선을 가져오게 된 것이다.
여기서 요한계시록 해석에 있어서 신학적 장벽은 ‘천년기설’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요한계시록을 해석하는 사람이 어떤 신학적 ‘천년기설’을 취하느냐에 따라 해석의 각도가 천태만상으로 나타나며 해석의 방향이 여러 갈래로 갈라지게 된다.
필자는 여기서 요한계시록 해석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는 천년기설에 있어서 ‘세대주의적 해석’ ‘무천년주의적 해석’, ‘역사적 전천년주의적 해석’등 세 가지 신학적 견해를 밝히면서 요한계시록 해석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려고 한다.
(1) 세대주의적 해석 방법
20세기에 들어서면서 한때 종말론 해석이 ‘세대주의적 방향’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적어도 요한계시록을 연구하며 올바로 강해해 보려는 목회자들은 ‘세대주의적 종말론’이 무엇인가? 세대주의 신학이 요한계시록 해석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에 대한 해답을 얻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세대주의 해석에 경계심을 늦추게 되며 오히려 매료되어 함정에 빠지게 된다.
‘세대주의’란 세대주의 신학을 의미하는데 이 신학은 18세기 영국의 ‘존 넬슨 다비’에 의해 제창되었으며 그 후 ‘스코필드’에 의해 신학적 체계를 갖추어 미국의 신학계를 휩쓸었고 계속하여 전 신학계에 크나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세대주의 종말론’이란 세대주의 신학에 의해 정립된 종말론을 말하는데 원래가 세대주의 신학이란 세대주의 종말론에 그 연구의 초점을 두고 출발한 신학이다. 세대주의 신학은 종말론 해석에 있어서 대략 다음 몇 가지에 중점을 두고 있다.
㉮ 요한계시록은 다니엘서와 함께 유대인들을 위한 종말론적 계시로주신 것이기 때문에 교회와는 별로 상관이 없다.
㉯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메시아 왕국을 세우기 위해 오셨는데 유대인들이 그들의 메시아를 십자가에서 죽인 결과 그들의 메시아 왕국이 연기
됨으로 존재하게 된 것이 교회시대이다.
㉰ 성경에서는 인류의 역사를 일곱 세대로 구분하고 있는데 교회시대는 바로 여섯 번째 시대에 속한 세대로, 7년 대 환난은 교회시대에 속한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의 회복을 위한 종말적인 회개기간이다. 교회 시대는 ‘7년 대환난 전’까지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종말의 7년 대 환난 이전에 ‘공중 휴거’되어야 하며 이 땅위에 임하는 7년 대 환난을 겪지 않는다.
세대주의 종말론의 신학적 핵심 사상이 바로 ‘7년 대 환난 전 휴거’이다. 이 사상은 세대주의 신학이 그 어떤 경우에도 양보할 수 없는 주장이다. 그러나 사실인즉 이 같은 세대주의 신학의 ‘7세대론’은 요한계시록 전체의 내용을 혼란 속에 빠트리게 한 진원지가 되어 있는 것이다.
(2) 무천년설의 해석 방법
요한계시록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천년기설’을 인정하지 않는, 다시 말하면 천년왕국을 인정하지 않는 신학적 해석 방법이 ‘무천년적 해석’이다. 이 ‘무천년설’은 ‘전천년설’과 함께 보수신학의 산물이다. 한국의 보수신학의 맥은 박형룡, 박윤선 목사 등에 의해 전래되어 왔는데 이들은 한결같이 ‘전천년설’을 주장하여 왔다. 그러나 이들 이후에 세계적 신학 추세에 따라 무천년설이 고개를 쳐들었으며, 지금은 보수 신학의 보루라고 자부하고 있는 모 총회신학대학의 경우, 거의 모든 교수들이 무 천년설을 취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성경을 해석하다보면 ‘무천년설’을 취해야 할 경우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그 해석이 성경적 해석이 될 수는 없다. 한두 가지 문제 때문에 무천년적 해석을 취했다가 오히려 성경 전체의 중요한 내용을 왜곡되게 해석하지 않을 수 없는 위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무천년설에 배치되는 다른 모든 성경적 근거를 올바로 처리해야 하는데 그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무천년설에 배치되는 성경의 내용을 ‘상징적 방법’으로 해석하지 않을 수 없는 함정에 빠지게 된다.
그러므로 이들은 요한계시록이나 다니엘서에 나오는 숫자적인 표현, 종말적인 사건으로 등장하는 모든 계시를, 그들 특유의 상징적 방법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이 무천년설은 종말론에 관계된 모든 사건을 무천년 신학에 입각하여 연구하기 때문에 종말론 뿐 아니라 성경 전체의 해석에 대단히 큰 영향을 미치기 됨으로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 이들은 ‘1260일’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마흔 두 달’ ‘천 년’등의 기간의 계시를 전교회 시대로 해석한다.
㉯ 첫째 부활을 실제적인 부활 사건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의 중생 사건으로 본다.
㉰ 지상에서의 ‘천 년 동안 왕 노릇한다’는 계시를 죽은 성도들의 천상에서의 천국생활, 천년왕국을 전교회시대로 해석한다.
㉱ 마귀를 천년이 차도록 무저갱에 던져 잠그는 일을 교회시대에 있어 서 마귀를 속박해 두는 일을 의미한다고 해석한다(계20:2-3).
㉲ 주의 재림 시에 있을 ‘성도들의 휴거’를 실제적인 휴거로 보지 않고흰 보좌 심판대로 옮기는 것으로 해석한다.
물론 위와 같은 해석은 굉장한 위험 부담을 안고 있다. 진리의 말씀인 성경의 명백한 표현에 도전하고 있기 때문이다(계22:18-19).
(3) 전천년설의 해석 방법
전천년설이란, 종말론 해석에 있어서 천년왕국을 전제로 하는 해석방법이다. 전천년설에는 역사적 전천년설과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이 있다. 역사적 전천년설은 ‘세대주의적 전천년설’과는 전천년이란 측면에서는 같으나 세대주의적인 성경해석을 용인할 수 없는 점에서 오는 차이는 대단히 크다고 볼 수 있다.
세대주의 전천년설은 역사적 전천년설과 유사점이 많다. 원래 세대주의 전천년설은 그 출발이 기존에 존재했던 전천년설에 기초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기존의 전천년설에 세대주의 신학사상을 가미했기 때문에 세대주의 전천년설이라고 불리게 된 것이다. 세대주의 전천년설이 대두된 후 기존의 전천년설이 세대주의 전천년설과 구별하기 위해 전천년이란 이름 앞에 역사적이란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
근래에 교계에는 세대주의적 전천년설도 아니고 역사적 전천년설도 아닌 둘을 혼합시킨 이상한 방법의 전천년설이 나돌고 있다. 말하자면 어느 한 가지를 택하자니 마음에 안 들고, 이곳저곳에서 짜깁기한 종말론으로 많은 목회자들이 이 같은 전천년설을 따르는 경향이 있다.
(4) 문장적 해석 방법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말은 누구에게나 공감을 주는 말이다. 알고 보면 인간의 신학도 성경을 성경으로 잘 해석해 보려는 노력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가 성경을 해석하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할 일은 성경은 하나의 문장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문장적 해석 방법을 취해야 한다. 문장이란 말은 하나의 완성된 글을 의미하는데 문학이란 말과 동일시된다. 성경이야말로 하나님이 인간에게 그의 구원의 사역을 계시로 보여 주신 문장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분야를 ‘계시문학’이라고도 표현한다. 요한계시록을 문장적으로 해석하려면 다음과 같은 순서의 연구가 필수적이다.
㉮ 성경 전체에 흐르고 있는 종말적 사건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따라야 한다.
㉯ 종말적 사건으로 성경에 등장하는 모든 사건들은 하나하나 별개로 구분된 독립적인 계시인 것이 아니라 모두 연결되어 있으므로 사건과 사건 간의 올바른 연결이 필수적이다.
㉢ 한 사건을 해석하기에 앞서 그 장 전체에 대한 세밀한 검토가 따라야 하며 한 사건, 한 사건이 맥으로 이어져 나가야 한다.
㉱ 비슷한 사건이 등장하는 경우, 서로간의 연결 관계, 같은 사건인가 여부 등을 명백히 구분해야 한다.
㉲ 성경에 나오는 종말적인 계시는 요한계시록이나 다니엘서의 경우를제외하고는 모두 단편적 사건의 계시들이기 때문에 어느 한 사건을가지고 전체적인 해석의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저자는 본서에서 요한계시록을 해석함에 이 같은 문장적 해석방법을 적용했음을 밝힌다. 본문 해석을 전 성경적 범위로 확대했고 부분적 계시와 전체계시를 맥으로 이어 본문에 나타나 있는 계시의 내용을 분명히 나타내려고 힘썼다. 철저하게 개혁주의 신학노선에 합치하게 전천년설을 정립하므로 개혁주의 전천년설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는 일에 노력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첫째부활의 경우
계20:4-5절에 나오는 ‘첫째 부활’ 문제는 종말론적인 면에서나 교리적인 면에서나 대단히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신학자들이 이 부활 문제를 어렵게 만들어 놓았다. 첫째부활에 대한 문제를 기존의 신학자들은 어떻게 해석해 온 것인가? 첫째 부활자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모든 성도들이라고 정의해 놓았다. 이 같은 부활에 대한 신학적 정의는 종말론 해석에 큰 오류를 가져 오지 않을 수 없게 만든 것이다. 그것은 계20:5-6절에서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이 첫째 부활에 참여 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 이 성구의 해석에서 만약 첫째부활 자들을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성도들이라고 단정해 버린다면 괄호 안의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대상이 불신자들이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보수주의 신학을 표방하는 신학자들은 이들에 대하여 성경에도 없는 ‘둘째 부활’이란 명칭을 서슴지 않고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첫째부활은 성도들의 부활, 둘째 부활은 불신자들의 부활이 되어 버렸고 성도들의 부활은 주의 재림 시에, 불신자들의 부활은 천년왕국이 지난 후에 있다고 못을 박아 놓았다. 정말로 그런 것인가? 이 문제를 문장적으로 해석해 보자. 계20:4절에서 첫째 부활에 참여할 자들이 두 종류의 성도들로 구분되어 나오고 있다. 첫 번째는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로 나오는데 그 문맥처럼 이들은 순교자들이다. 두 번째 대상자들은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라고 말씀해 준다. ‘살아서’란 말은 ‘카이 에제산’으로 죽은 자가 ‘살아나서’란 뜻이다. 이들도 죽었던 성도들로 천년왕국에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하기 위해 첫째부활자로 살아난다는 의미가 된다.
이처럼 첫째부활의 대상자들은 ‘순교자’에 국한된다. 그러므로 주의 재림 시에는 모든 성도들이 부활하는 것이 아니라 순교자들만이 부활하여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년왕국에서 왕 노릇하게 되는데 이 부활을 “첫째 부활”이라고 정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이란 불신자들을 지칭한 것이 아니라 첫째 부활에서 제외된 모든 성도들을 일컫는 말로 이들은 천년왕국이 끝난 후에야 생명의 부활로 부활하게 되는 것이다. (자세한 해석은 계20:4-6에서 찾아 볼 것)
제1장
계시의 나타남
1장의 개요 = 요한계시록 1장은 사도 요한이 “네가 본 것”을 기록한 계시록의 서론이다(계1:19). 1장에서는 계시의 근원이 되신 하나님과 그 계시를 나타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 준다. 이 계시가 참되고 진실하다는 근거는 계시의 근원이 바로 하나님이시며 이 계시를 주신 이가 교회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시라는데 있다.
우리가 요한계시록을 연구하는 일에 두 가지 명심해야 할 일이 있다. 하나는 요한계시록의 내용 전부가 주의 재림 시에 실현될 종말적인 사건의 계시이기 때문에 인류의 종말과 연결시켜야 한다는 사실과, 요한계시록은 요한이 주님의 계시를 통해서 주 재림에 관한 계시를 모두 증거한 것이기 때문에 그 어느 시대이건 이 계시 외에 종말에 관한 다른 계시를 주시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 두 가지 중 한 가지라도 흔들리면 요한계시록의 올바른 연구나 해석은 헤어 나올 길 없는 깊은 늪에 빠지거나 미궁에서 맴돌 수밖에 없게 된다. 1992년을 전후하여 기승을 부렸던 ‘시한부 종말론’의 경우, 이 두 가지 모두를 무시 한데서 초래된 것이다. 그들은 말하기를 하나님께서는 종말에 성경에 계시된 계시 외에도 기도하는 종들에게 더 완벽한 새로운 계시를 주신다고 주장하였었다.
1. 계시의 전달 과정(1절~3절)
1: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 이 계시(요한계시록)는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신 것이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고 말씀해 주고 있다. 엄밀한 의미에서 요한계시록의 책명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이다. 계시란 말은 ‘아포칼룹시스’로 베일같이 가려진 것이 벗겨진다는 의미가 된다. 하나님께서 비밀로 감추어 두셨던 종말에 관한 모든 것을 작나라하게 밝히 보여 주신다는 뜻이다.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라고 하셨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신 계시란 뜻이다. 이 계시는 하나님이 예수님에게 주시고 예수님은 또 천사에게 지시하여 요한에게 기록하게 하신 것을 의미한다.
“반드시 속히 될 일”이라고 하신 말씀은 이 계시의 성취를 말한다. 왜 속히 될 일이라고 하셨는가?
(1) 이 계시를 주신 예수님은 성도들이 그들의 생애 중에 주의 재림이 있을 것으로 믿고 신앙생활을 하라고 권고하셨다(눅12:35-40).
(2) 주의 재림의 날은 “덫과 같이 임하리라”고 하시면서 우리들로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고 하셨다(눅21:34-36).
(3)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못함이니라”고 말씀하셨다(마24:42).
이 같은 모든 말씀으로 미루어 볼 때 이 계시는 “반드시 속히 될 일”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이 계시는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먼저 요한에게 보이신 것이다. “그 종들”이란 요한과 함께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형제들”을 말한다(계1:9). 이들은 일곱 교회의 사자들로 등장하며 이들은 또한 종말에 ‘다시 예언하는 사명자’로 등장하여 계시록 11장의 사역을 이룰 ‘두 증인’들을 의미한다(계10:11, 11:1-3). 이 계시는 성도들에게 직접 주신 것이 아니라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천사를 통하여 요한에게 지시하신 것이다.
1:2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언하였느니라.”요한이 본 계시는 허황된 환상이나 상징적 의미의 계시가 아니었다.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임을 밝혀 주고 있는 것이다. 계시록에는 물론 상징적 표현도 많이 있고 직설적으로 해석할 수 없는 환상도 많이 나온다. 그러나 그 상징적 표현이나 환상 등은 성경 자체가 그 분명한 뜻을 해석해 주고 있기 때문에 인간의 신학으로 무리하게 해석하려 한다면 그 같은 계시는 하나님의 말씀일 수도 없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일 수도 없다.
“다 증거하였느니라”고 한 요한의 이 말은 자신이 받은 요한계시록의완전성과 무오성을 의미한다. 다 증거 했기 때문에 더 증거 할 필요도 없고다른 계시를 다시 주실 이유도 없다. 이 계시는, 시대가 다르고 역사는 오래가도, 주 재림에 관한 계시이기 때문에 시행착오도 있을 수 없으며 주 재림의 그 날까지 더 첨가할 내용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을 해석하는 일에 위험한 방법을 몇 가지 열거해 본다.
(1) 사사로운 해석은 위험하다(벧후1:20). 해석자의 상상력이나 독단적 지식(자신이 신종하는 신학적 방법)으로 해석하는 일은 위험하다.
(2) 억지로 푸는 일은 위험하다(벧후3:16-17). 계시록을 해석하면서 해석이 어렵거나 해석상 모순이 드러날 때, 합리성이 결여된 비약적 방법으로 합리화 시키려는 시도는 위험하다.
(3) 새로운 계시로 해석하려는 방법은 위험하다(계22:18-19). 이 방법을 취하는 해석자들은 지금도 기도하는 종들에게 하나님의 계시가 계속적으로 임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 우리에게 주시는 계시가 더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이 같은 방법의 해석은 많은 시한부 종말론자들을 양산했으며, 종말론을 근본적으로 뒤흔들어 놓게 된다(갈1:7-8,고후11:4,살후2:1-2).
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에서 “읽는 자”는 단수單數이다. 이들은 일곱 교회의 사자들로 이들이 교회에서 요한이 보낸 이 편지를 읽도록 명령을 받았다. 읽는 일은 그 내용을 그대로 들려줄 뿐 아니라 깨닫지 못하는 내용을 해석해 주어야 할 책임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이들은 이 책을 받아먹고 “다시 예언하는 사명”을 받아야 한다(계10:8-11). 이 같은 사명은 종말에 주님이 쓰실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로서의 사명을 의미한다(마24:45).
“듣는 자”란 일곱 교회에 속한 성도들이 그 대상이다. 뿐만 아니라 주님 오실 때까지 이 예언의 말씀을 들을 전 교회 시대의 모든 성도들을의미하기도 한다.
요한계시록의 말씀은 왜 들어야 하는가?
(1) 예언의 말씀을 듣고 그날을 예비하는 자만이 그날이 도적같이 임할 수 없기 때문이다(마24:43).
(2) 주인을 기다리기 위해서는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고 하셨는데 이 등불은 예언의 등불로 계시의 말씀을 의미한다(눅12:35).
(3) 주의 날을 예비하는 생활이 그리스도인의 생활태도인데 주의 날을 예비하기 위해서는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들어야 하며 그 말씀을 따라 이기는 생활을 해야 한다(눅21:34-36).
(4)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이기는 자가 될 수 있는데 그 말씀이 바로 요한계시록이다(계2:7).
(5) 어떤 태도로 들어야 하는가? 성령이 하시는 말씀을 들으려면 귀와 마음에 할례를 받아야 한다(계2:11,렘6:10,욜2:13).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은 지키는 자만이 열매를 맺는다(눅8:15). 듣기만 하고 지킴이 없는 자는 스스로 속이는 자라고 하셨다(약1:12).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지켜야 한다(계2-3장). 이 말씀을 지키는 자가 이기는 자가 되며 등불과 기름을 예비한 슬기 있는 처녀로서의 성도가 된다(마25:1-13).
“복이 있나니”라고 하신 복은 생존 성도들이 지상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 최상의 축복을 말한다.
(1) 후3년 반의 대 환난 중에서 하나님의 특별하신 보호를 받을 수있는 복이다(계3:10,계12:14).
(2) 주님의 재림 시 공중에서 주를 영접할 수 있는 복이다(계14:15-16,살전4:17).
(3) 주님 재림시 천년왕국 백성으로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는 복이다(계20:6,벧후3:13).
(4) 죽음을 거치지 않고 백보좌 심판대에서 신령한 몸으로 변화 받아 새 예루살렘으로 들어 갈 수 있는 복이다(계21:1-4,고전15:52).
“때가 가까움이라.” 이 “때”는 주 재림의 시기를 말한다. 여기서 가깝다고 하신 말씀의 뜻은 하나님의 입장에서 표현하신 것이다.
(1) 때와 시는 하나님의 권한에 속한 것이다(마24:36,행1:7). 모든 성도들은 주 재림의 때가 임박한줄 알고 주 재림을 준비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눅21:34-36,계22:21). 신앙생활이란 주 재림을 준비하는 생활이다.
(2) 예언은 성취되기 때문에 모든 성도들은 시대적 징조를 바라보고 때를 기다려야 한다(마16:3,신18:22).
다니엘서 2장에 나타난‘하나님의 나라’와‘종말의 때’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종말에 관한 시기적 징조를 다니엘서 2장에서 느부갓네살 왕의 꿈에 나타난 신상에서 보여 주셨다. 우리는 다니엘서 2장에서 보여 주고 있는 신상의 나라들이 어느 시대의 나라들이며 ‘발’로 표현되는 마지막 나라가 과연 어느 나라를 의미하며 이 나라가 무너지는 일과 함께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가 ‘교회시대’를 가리키는 것인가? 아니면 ‘천년왕국’ 곧 메시아 왕국을 가리키고 있는 것인가에 대한 올바른 해답을 얻어야 한다.
(1) 하나님의 나라. 다니엘 2장은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시기에 임하는가에 대한 계시로 보여 주신 것이다. 그런데 많은 신학자들, 특히 보수주의를 표방하는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이 나라에 대하여 단정적으로 ‘교회 시대’라고 못을 박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신상을 쳐서 부서뜨린 ‘뜨인 돌’을 초림의 예수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올바른 해답은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과의 관계를 정립하는 일에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뿐만 아니라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 해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성경적인 해답을 통해서 과연 어느 것이 옳은가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한다.
(2) 신상의 나라는 네 나라인가? 다섯 나라인가?2장의 신상의 계시가 종말적인 계시냐? 아니면 교회 시대의 도래(到來)를 계시한 것이냐에 대한 해답을 얻으려면 먼저 이 신상을 이루고 있는 나라가 네 나라인가? 아니면 다섯 나라인가에 대한 성경적인 해답이 중요하다. 만약 등장한 나라가 네 나라라면 2장에서 계시해 주는 하나님의 나라는 교회 시대를 의미하는 것이지만 만약 다섯 나라라면 하나님의 나라는 종말적인 의미에서의 메시아 왕국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머리 ... 바벨론
가슴과 두 팔 ... 메대바사
배와 넓적다리 ... 헬라
종아리 ... 로마
이처럼 신상의 나라를 네 나라로 보는 견해를 상징적 해석이라고 하는데 이 해석에 따르면 다섯 번째 나오는 ‘발’을 로마의 열 황제로 보고 있다. 예수님이 로마 시대에 ‘뜨인 돌’로 오셔서 ‘하나님의 나라’인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셨다는 주장이 그들의 견해다. 그러므로 상징적 해석에 있어서 신상의 나라들은 인류의 종말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게 된다. 이 같은 해석 방법은 다니엘서 전체를 ‘하나님의 교회’에 대한 계시로 해석하게 되는데 다니엘서의 내용과는 동떨어진 해석으로 모순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다섯 나라로 보는 견해는 발을 로마의 연속으로 보지 않는다. 발은 분명히 로마와 독립된 별개의 나라이다. 단2:33절에서 ‘‘그 종아리는 철이요 그 발은 얼마는 철이요 얼마는 진흙이었나이다”라는 이 말씀에서 ‘철’로 된 종아리와 ‘철과 진흙’으로 된 발은 완전히 별개의 나라로 구별시켜 놓은 것이다. 그러면 왜 이 발을 무시하고 종아리에 연결시킴으로 없애 버렸는가? 그 이유는 간단하다. 만약 로마 외의 다른 나라가 등장하면 ‘뜨인 돌’은 초림의 예수님이 될 수 없으며 ‘하나님의 나라’는 ‘교회 시대’라고 해석할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들의 신학이 무너지기 때문에 모순된 주장인줄 스스로 인정하면서도 후퇴할 수 없게 되어 있는 것이다.
다섯 나라의 경우는 다음과 같다.
머리 ... 바벨론
가슴과 두 팔 ... 메대바사
배와 넓적다리 ... 헬라
종아리 ... 로마
발 ... 종말에 등장할 열 뿔
(3) 하나님의 나라는 교회 시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의 올바른 해석은 언제나 본문 연구에 충실해야 한다. 단2장에서 계시된 하나님의 나라는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이 땅 위에 새롭게 세워질 ‘하나님의 나라’로서 “천년왕국”을 의미한다.
㉮ 뜨인 돌이 “신상의 쇠와 진흙의 발을 쳐서 부서뜨리매 때에 쇠와 진흙과 놋과 은과 금이 다 부서져 여름 타작마당의 겨같이 되어 바람에 불려 간 곳이 없었고 우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나이다”고 했다. 발을 쳐서 부서뜨려 세워지는 나라는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하고 영원히 설 나라”를 말한다(단2:44). 이것은 무력적인 굴복과 섬멸을 의미하며 이 같은 일은 그리스도의 재림으로써만이 성취되는 것이다. 복음은 세상 나라들을 무력으로 점령하고 그 위에 세워지는 나라가 아니다. 복음으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 나라들 가운데서 복음의 능력으로 죄인들을 회개시키며 확장시켜 나가는 영적인 ‘하나님의 나라’이다.
㉯ 단2장에서 계시된 하나님의 나라는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말미암은 그의 통치로 이루어지는 나라이다(단7:13-14).
(4)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질 때. 원래가 다니엘서는 교회를 위해 주신 계시가 아니라 유대인들에게 ‘새로운 왕국의 도래에 대한 소망’을 주는 계시로 주신 책이다. 다니엘서에 나오는 모든 계시에 대하여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란 말씀은 계시의 대상이 교회가 아니라 다니엘의 혈통적 민족인 유대인들과 예루살렘 성을 의미해 주는 말이다(단9:24). 그리고 유대인들의 이 같은 소망은 인류의 종말에 가서야 성취하게 된다. 하나님은 이 계시를 통해서 다니엘에게 유대인들이 소망하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성취시기를 보여 주신 것이다.
머리 바벨론 BC 606 ~ 538
가슴과 두 팔 메대바사 BC 538 ~ 330
배와 넓적다리헬 라 BC 330 ~ 147
종아리 로마 BC 147 ~ 서로마 AD 476
동로마 AD 1453
유대인들은 주후 70년경에 로마에 의해 예루살렘이 파멸되었고 온 세계에 흩어지게 되었으며 역사적 동면冬眠 상태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언약된 메시아 왕국에 대한 소망이 소멸된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은 다시 회복되었으며 역사는 ‘하나님의 나라’의 실현을 위해 전진하고 있는 것이다.
1948년 5월 15일 이스라엘의 독립을 유엔이 승인하였다.
1967년 6월6일 제3차 중동 전쟁 시 예루살렘을 회복하였다.
㉮ 유대인들에 의해 구약적 제물을 드릴 ‘하나님의 성전’이 예루살렘에 세워져야 한다. 아마 이 시기쯤에 다섯 번째 나라가 머리를 들고등장할 것이다.
발 적그리스도국(열 뿔) AD?
㉯ 이 나라는 한 이레의 언약이 이뤄지기 전에, 유브라데 전쟁이 일어나기 이전에 그의 존재가 뚜렷이 부각 될 것이다 (단9:27,계9:13-19).
㉰ 이 나라는 열 뿔로 구성되며 적그리스도는 “작은 뿔”로 이 열 뿔의 왕이 될 것이다(계17:8-13,단7:7-8).
㉱ 이 나라의 왕인 적그리스도는 42개월간 예루살렘과 세계를 지배하며인류들에게 “짐승의 표”를 받게 할 것이다(계13:5,12-18).
㉲ 적그리스도는 결국 재림하시는 주님에 의해 아마겟돈에서 섬멸되며“둘째 사망”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계19:19-20,단2:34-35).
이때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지상에 세우실 것이다. 그는 이 나라에서 왕이 되실 것이다(계11:15-18,계20:6,단2:44,단7:13-14,고전15:25).
2. 교회에 대한 축도(4절~6절)
1:4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와 그의 보좌에 일곱 영과.”아시아란 소아시아 지방으로 ‘아시아 도’를 가리킨다(지금의 터키 지역). 바울의 에베소 지방의 전도활동으로 아시아 지방에 교회가 세워졌는데 일곱 교회란 그 당시 아시아에 있는 대표적인 교회를 말하고 동시에 주님이 오실 때까지의 모든 지상의 교회를 상징한다. 특히 7년 환난을 전후한 종말적인 교회를 의미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1:5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충성된 증인”이란 죽음을 무릅쓰고 자기의 증거 하려는 바를 증거 하는 자를 말한다. 증인이란 ‘마르투스’로 이 말은 ‘자기의 본 것이나 들은 것이나 아는 것을 확실히 증거 하는 자’란 뜻인데 순교자란 말과 동일시된다. 충성된 증인이란 말에는 복음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치는 순교자란 의미가 들어 있다.
예수님이 충성된 증인이신 이유는
(1) 참되고 진실하신 증인이시기 때문이다(요5:36).
(2) 영광을 버리시고 종의 형체로 오셔서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십자가에 죽으셨기 때문이다(빌2:5-7).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셨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사실을 의미한다(고전15:23).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셨다.” 만유보다 크시고 만유의 주관자이심을 의미한다. 그리스도를 만왕의 왕이라고 하신 것은 만물의 으뜸이요, 만물의 지배자란 뜻이다(딤전6:15).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여기서 은혜와 평강, 이 둘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선물인데 “은혜”란 기쁨을 준다는 뜻으로 그리스도로 주시는 구원의 선물을 의미하고, “평강”이란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삶의 기쁨과 평안을 뜻한다.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리스도의 피로 이루신 일이 이곳에서 두 가지로 나온다.
(1)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신 일이다. 그리스도께서 속죄 제물이 되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신 일로 죄의 굴레에서 우리를 벗어나게 하셨다.
(2)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다. 제사장이란 하나님만을 섬기는 직분인데 그리스도인들을, 주님께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길을 통해서 하늘의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제사장으로 삼으셨다. 그의 피로 이루셨다는 말은 그의 대속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나타내신 말씀이다. 우리는 주님의 피로 이루신 일에 연합되므로 그의 공로가 우리의 것이 되었으며 그 사실에 감사해야 한다(롬6:4-9).
1:6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이 같은 모든 그리스도의 사역은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신 일이었다.
(1)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요17:1-5).
(2) 우리로 하나님을 향하여 열매를 맺게 하시려고(롬6:22,갈5:22).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리스도의 사역은 우리를 죄에서 해방하셨는데 그렇게 하신 이유는 우리로 하나님을 위하여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시기 위해서이다.
(1) “나라”란 하나님의 백성을 의미한다.
(2) “제사장”이란 하나님만을 섬기는 성별된 직분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제사장의 직분이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을 의미한다.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영광과 능력은 오직 그리스도에게 존재하는 속성(屬性)으로 우리는 그것을 찬양하고 영광을 돌려야 한다.
3. 요한계시록의 주제(7절)
1:7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 7절은 요한계시록의 주제가 된다. 요한계시록은 주의 재림에 대한 계시이기 때문에 주의 재림이 바로 요한계시록 전체의 주제임을 전제해야 올바른 계시의 해석이 가능하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주님이 타고 오실 구름은 사람의 눈으로 보이는 공중의 구름이 아니다. 공중의 떠도는 구름은 땅에 비를 내리기 위한 수증기의 결집체일 뿐 주님이 타고 내려오실 구름은 아니다. 이 구름은 그리스도의 영광의 재림을 보여 주는 하늘 구름이다(단7:13,마26:64). 두 증인들도 이 구름을 타고 올라갔다(계11:12).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각 사람의 눈”이란 주의 재림 시에 살아있는 사람들을 의미하는데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인류가 일시에 주의 재림의 모습을 본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 그 같은 일은 실제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지상의 인류는 주님이 재림하실 때 나타나는 천기의 이변과 두려운 징조로 알게 될 것이다(계6:12-14). 주님의 재림을 친히 볼 수 있는 사람이란 시야적으로 볼 수 있는 가능 지역의 사람들이 그 대상이 될 것이다(행1:10-11,계6:15-17).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이들 찌른 자들의 대상은 두 종류로볼 수 있다. 하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한 무리들이요,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찌른 자들의 후손들이다(행9:4,마23:39,슥12:10).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라.” 이 대상은 “각인의 눈”과 구별되는 것으로, 이들은 이 땅위에 살아가는 모든 인류를 가리킨다. 이들은 재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최종적 심판인 일곱째 대접 심판을 내리실 때, 그 가운데서 멸망을 받을 것이기 때문에, 온 인류는 자신들이 당할 운명을 슬퍼하면서 애곡하게 될 것이다(계6:12-17).
“그러하리라 아멘.”속히 이 같은 일이(주의 재림) 오기를 바라는 사도 요한의 간절한 기원이다. 이 요한의 기원은 우리 모두의 간구가 되어야 한다(계22:20).
4. 편지의 서두(8절~11절)
1:8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 8절에 나오는 말씀은 하나님의 영원하심에 대한 묘사다. 알파와 오메가는 헬라어 알파벳의 첫 글자와 마지막 글자로,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속성에 대한 표현으로 자주 사용되고 있다.
1:9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나 요한”은 사도 요한을 말한다. 그는 사도 중 유일하게 순교가 아닌 죽음으로 하나님 나라에 간 사도이다. 그러나 요한은 복음 전하는 일에 많은 죽음의 고비를 넘겼으며 여러 번 순교의 기회가 주어졌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기적적으로 살려 장수하게 하시다가 밧모섬에서 이 계시를 받게 하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요한이 순교자의 반열에서 “첫째부활자”의 축복을 받을는지는 하나님만이 아시는 일이다.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사도 요한은 일곱 교회의 사자들에게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형제 임을 상기시켜 주고 있다. 하나님의 교회를 담임한 하나님의 종들은 사도 요한의 형제의 반열에 들어가야 한다. 요한의 형제가 될 하나님의 종들의자격은 어떠한가? 이것은 ‘두 증인들’의 자격과 관계되기 때문에 몇 가지 열거해 본다.
(1) 예수의 환난에 동참해야 한다.
㉮ 주님께서는 우리가 받을 영광의 상급을 위해 “그리스도의 남은고난”을 그의 교회에 주셨다(골1:24).
㉯ 예수님은 고난을 받으시는 일에 우리의 본이 되셨다(벧전2:21).
㉰ 주를 위해 고난을 받으면 복이 있다고 하셨다(마5:11).
㉱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하셨다(딤후1:8).
㉲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 이유 중의 하나는 주를 위해 고난을 받 게 하시려는 데 있다고 하셨다(빌1:29).
㉳ 주의 영광에 동참하려면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한다(롬8:17).
(2) 예수의 나라에 동참해야 한다.
㉮ 성령 안에서의 생활을 해야 한다(롬14:17).
㉯ 육신의 생각대로 살지 말아야 한다(롬8:7-8).
㉰ 영으로 몸의 행실을 죽여야 한다(롬8:13).
㉱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고전10:31).
(3) 예수의 참음에 동참해야 한다.
㉮ 주님의 인내를 본받아야 한다(히12:2).
㉯ 약속을 받기 위해 인내가 필요하다(히10:36).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음으로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요한의 이 말은, 요한이 복음을 위하여 많은 환난을 당했다는 말인데 요한의 생애는 복음을 전하는 일 때문에 말할 수 없는 고난을 겪었으며 핍박을 받았다. 요한은 복음을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으로 유배되었었다(97,98년경으로 추정). 이 섬은 밀레도에서 남서쪽으로 약 56Km 지점에 위치한 소아시아 해안의 작은 섬으로, 그 당시 로마의 유배지로 사용되어 오다가 1947년 이후로 ‘그리스’ 소유 영토로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