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석: 사도행전 강해 (54) 구원 받을만한 믿음. 행14:8-18
바울과 바나바는 이고니온에서 쫓겨난 후, 루스드라와 데베지방으로 가서 다시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바울이나 바나바는 복음을 전하는 일에 쉬는 일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 이유로 바울의 세 가지 고백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는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내가 빚진 자라'고 말한 것처럼 하나님께 빚진 자의 무거운 책임감으로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롬1:14).
다음에 바울은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다'고 말할 것처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화를 받을 것이라고 하는 두려움에서 전했습니다(고전9:16). 세 번째로 바울은 이 복음을 전하는 일에 따르는 하늘의 상급을 바라본 것입니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고 말할 것처럼 이 복음 전파의 상급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디다(엡3:14)
1. 앉은뱅이의 믿음
바울이 루스드라에서 복음을 전할 때 한 앉은뱅이가 바울이 말하는 것을 열심히 듣고 있었습니다. 이 앉은뱅이는 나면서부터 앉은증뱅이가 되어 걸어 본 일이 없는 자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그의 모습에서 무엇인가 그에게 숨겨진 비밀한 믿음을 찾아 냈습니다. '바울이 구원 받을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현장에 나타나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열심히 들었습니다. 바울은 그의 진지한 모습에서 그에게 구원 받을만한 믿음이 있는 것으 발견한 것입니다.
구원 받을만한 믿음과 그렇지 못한 믿음은 말씀을 들을 떄 말씀을 받아 드리는 그의 표전에서 읽을 수 있는 것입니다. 말씀에서 트집을 잡으려는 사람들은 말씀에서 은혜는 고사하고 걸려 넘어지는 돌이 될 것입니다. 베릐아 사람들처럼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는 태도야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듣는 자세인 것입니다. 구원 받을만한 믿음은 죄에 대한 통회하는 마음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통회하는 마음이 생겨 하나님 앞에 회개하게 될 때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고 했습니다(히4:12-13). 예수님이 중풍병자를 향하여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고 하실 때 주님은 이미 그 중풍병자가 그 마음으로 통회하고 있는 사실을 발견하신 것입니다. 바울은 이 앉은뱅이의 심령에서 자신의 죄에 대해 회개하여 통회하고 있는 사실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2. 복음을 전하는 이유
앉은뱅이를 일으킨 일은 루스드라에 큰 소동을 가저오게 했습니다. 무리들이 바울의 행한 희한한 일을 보고 놀란나머지 소리 질러 말하기를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 오셨다 하여 바나바는 쓰스라고 하고 바울은 그 중에 말하는 자임으로 허메라고 했습니다. 그들 중 쓰스 신당의 제사장이 소와 화관을 가지고 대문 앞에 와서 무리들과 함께 제사를 드리고자 하므로 바울과 바나바는 놀라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 뛰어 들어가 그들의 이같은 일이 잘못된 일임을 책망하면서 제사를 지내지 못하게 말렸습니다.
(1) 바울은 그들에게 말하기를 복음을 그들에게 전하는 것은 이같은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지으신 살아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함임을 증거했습니다. 바울이나 바나바는 그들이 놀랄만한 희한한 일을 했지만 그들은 신이 아닙니다. 신이 아닌 사람이나 우상에게 경배하거나 제사를 드리는 일은 헛된 일입니다. 죄값으로 죽어야 할 사람들이나 할 일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살아계신 하난께로 돌아게 하는 일인 것입니다.
(2) 바울은 또한 지나간 날에는 이같은 행위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묵인하셨으나 그 때에도 하나님이 자기를 인생들에게나타내지 않으신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지나날에는 묵인하셨다고 하는 말은 용서해 주셨다거나 용서 받았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떠나 그 상태대로 놔 두심으로 그들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때는 아직 은혜의 복음이 전파될 시기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 아들로 말미암은 복음이 전해지기 전에는 강퍅한 인간의 마음을 그대로 놔 두셨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때에도 하나님은 하늘에서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사 인생들로 음식과 기쁨을 갖게 하셔서 인생들로 만족한 생애를 살아가도록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하나님을 찾지 아니하였으며 감사할 줄도 몰랐습니다.
결론 : 오늘 말씀에 등장한 앉은뱅이는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의 생애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진지한 마음으로 들은 것이 그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된 원인이 된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이나 변화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중에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고 말씀을 들을 때 진지하게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