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석: 야고보서 강해 (12) 심판을 이기는 긍휼. 약2:10-13
율법은 인간을 정죄합니다. 율법으로는 인간이 하나님 앞에 의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이 성경이 가리키는 증거입니다. 만약 사람이 율법으로 의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면 복음은 설 땅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 기독교는 존재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야고보서에서 행함을 중점적으로 강조하고 있지만 결코 율법적인 행함을 주장한 것은 아닙니다. 왜냐 하면 본문 10절과 11절에서 인간은 절대로 율법을 법대로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을 증거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1. 율법적인 의를 얻을 수 있는가.
10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된다’고 말씀해 주었습니다.
율법에서 가르쳐 주는 바는 죄는 어떤 죄이든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살인죄는 중한 죄여서 지옥에 가고 거짓말한 죄는 경한 죄여서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죄의 비중은 다 똑같습니다. 온 율법을 다 지킨 사람이라도 아무리 적은 법이라도 그 하나에 거치게 되면 모두 범한 자가 된다는 것이 야고보 사도의 율법관입니다. 무슨 죄를 범해도 죄의 값은 역시 사망인 것입니다.
죄는 하나씩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밝혀 줍니다. 하나의 죄가 그 하나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11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죄의 종류를 가지고 죄의 경중을 다루거나 시비의 대상으로 오르내리면 안됩니다. 나는 거짓말하는 죄를 범했지만 너는 간음죄를 범했으니 누구 죄가 더 크냐고 시비할 것이 못됩니다. 거짓말하지 말라고 하신 이가 또한 간음하지 말라고 하셨으니 모두 같은 죄를 범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7:3절에서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고 하셨습니다. 형제의 눈에 있는 티는 상대방이 바라보았을 때 무서운 죄로 여긴 것입니다. 살인죄, 간음죄 등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네 눈에는 들보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율법적으로 볼 때에는 같은 죄이지만 형제를 판단하는 죄가 첨가되었기 때문에 티보다 한 수위인 들보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는 아무리 적은 것이라도 율법 전체의 죄와 연결되었기 때문에 경중이 없는 것입니다.
2. 그리스도인의 행동 지침
그리스도인은 율법에서 벗어나 자유 함을 얻은 사람들입니다.
여기서 벗어났다는 뜻은 정죄함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정죄에서 해방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율법으로 정죄를 받지 아니하며 율법의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롬8:1절에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선언해 주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율법의 정죄를 받으사 심판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속죄의 은혜가 진리라면 우리는 결코 율법적인 정죄를 받아서는 안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에서 의를 얻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를 얻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율법에서 자유함을 얻었다는 말은 율법의 구속을 받는 생활을 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율법이 우리를 얽매이게 할 수 없습니다. 율법이 심판의 두려움으로 우리의 생애를 주장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율법이 두려워 율법을 준수하는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율법에서 벗어난 일에 감사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오눌 본문에는 그리스도인들의 행동 지침이 두 가지로 나옵니다.
첫째는 그리스도인은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행하라고 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율법의 정죄나 구속은 받지 않지만 심판을 받을 자처럼 여겨서 말도, 행동도 조심하고 근신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율법이라고 말하지 않고 자유의 율법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법은 율법에서 자유 함을 얻은 법으로 복음을 말합니다. 복음 안에서 생활은 하나님 앞에 율법보다 우월한 열매를 맺습니다. 율법의 심판에서 벗어났다고 방종해서는 안됩니다. 이제는 복음 안에서 심판을 받을 자처럼생각하는 새로운 생애를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그리스도인은 긍휼을 베푸는 생활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13절에서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이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고 경종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은 제사보다 자비를 원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긍휼이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상대방의 과실을 용서해 주고 죄를 관용해 주며 화목하며 먼저 사과하는 모든 일이 긍휼입니다.
결론 : 그리스도인의 생활 지침은 율법에 근거를 두면 안됩니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란 식의 생활은 하나님의 긍휼이 없는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율법보다 더 온전한 법이 있습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법은 자유인의 율법이요 긍휼의 율법입니다. 이런 법을 지킬 수 있는 성도의 생활을 이루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