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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전서 [28]

민병석: 디모데전서 강해 (2) 경계의 목적. 딤전1:3-7

작성자청결|작성시간17.11.08|조회수390 목록 댓글 0

 

***민병석: 디모데전서 강해 (2) 경계의 목적. 딤전1:3-7

 

3절 말씀을 보면 바울이 복음을 위하여 마게도냐로 갈 때 디모데를 에베소 교회에 머물게 하였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에서 2년간 옥에 갇혔다가 석방된 후, 디모데를 데리고 그레데 섬을 지나 에베소까지 왔지만 바울은 디모데를 그곳에 두고 마게도냐로 떠나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바울이 디모데를 에베소 교회에 머무르게 한 것은 에베소 교회에 진리에서 떠난 거짓 교사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 거짓 선생들이 에베소 교회에서 한 일은 다른 교훈을 가르치며 신화와 끝없는 족보를 전하는 일들로 이 일이 계속 교회에 만연되어 영적으로 혼미해지면 안될 것이기 때문에 디모데를 그곳에 남기고자 한 것입니다.

 

1. 다른 교훈

 

바울은 디모에게게 이르기를 교회에서 다른 교훈 등 잘못된 교훈을 가르치지 말도록 하기 위해 특별히 부탁하고 있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세 가지 잘못된 교훈이 떠돌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다른 교훈, 두 번째는 신화, 세 번째는 끝없는 족보 등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른 교훈이란 6절에서 밝혀 주는 대로 율법을 가미한 복음을 일컫는 말입니다. 초대 교회에서 바울이 복음을 전하면서 가장 어려움을 겪은 일이 기껏 복음을 전파하면 그곳에 유대인의 선생들이 나타나 이 다른 복음을 뿌려 놓는 일이었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서도 이들에 의해 곤욕을 치렀으며 이들에 대해 가장 심한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이들을 전하는 교훈을 왜 다른 복음이라고 부르는가 하면 이들은 복음을 전하되 율법을 가미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배격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복음을 전적으로 배척하는 자들도 아닙니다. 이들은 다만 복음만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으니 복음을 받아 드린 사람들은 다시 율법적인 생활을 하여 율법을 지켜야 비로소 온전한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하는 주장을 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교회에서 그럴듯하게 받아 드려졌다는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 교훈은 복음의 진리를 잘못 깨닫게 하여 복음을 율법의 뜻을 이루는 하나의 부수적인 것으로 인식하여 구원의 도리를 흐려 놓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런 교훈에 견딜 수 없었습니다. 믿음으로 의를 얻는다는 복음의 진리가 여지없이 무너져 버리기 때문에 그의 모든 수고가 헛되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런 다른 교훈이 에베소 교회에 번지지 못하도록 경계시킨 것입니다. 다음에 신화에 대한 경계의 말도 당부했습니다. 신화란 그 당시 올바른 성경적 교훈에서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성경을 확대시켜 신화적인 이야기를 꾸며 그럴듯하게 가르친 것을 말합니다. 성경적 근거가 없는 전설적 이야기를 가미하여 흥미를 갖게 한다던가 어떤 성경적 인물에 신화적인 요소를 가미하여 성경에 적용시키는 일입니다. 이런 일은 성경적 진실을 왜곡시키는 일이기 때문에 절대로 수용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다음에 끝없는 족보란 족보에 관계된 이야기에 중점을 두어 교회에서 시끄럽게 하는 일을 가리킵니다. 유대인들은 족보를 중요시합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자신들의 지파나 조상에 관한 족보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어떤 이들은 이런 일에 흥미를 가지고 착념하므로 복음의 진리를 흐리게 하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교회에는 복음적 진리를 알려는 순수한 마음에서가 아니라 성경에서 어려운 문제만 골라서 목회자에게 따져 묻는 식으로 답변에 곤경을 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같은 난 문제는 하나의 비유적 해석이기 때문에 정확한 답변으로 이해시키기 어려운 것들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같은 일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라고 책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2. 경계의 목적

 

목회자가 경계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바울은 세 가지를 지적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는 청결한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마음의 청결은 회개로 이룹니다. 죄가 마음에 거하지 않도록 하는 일입니다. 다음에 선한 양심이라고 했습니다. 죄를 보거나 범하면 양심이 민감하게 활동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선한 양심을 가지고 그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우리고 양심을 따라 생활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양심은 결코 하나님의 교훈과 모순됨이 없는 것입니다. 다음에 바울은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사랑도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나는 사랑이라고 한 것입니다. 진리에 거짓이 있을 수 없는 것처럼 사랑에 거짓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결론 : 그리스도인이 이런 경계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목회자는 양 무리들을 잘 살피고 돌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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