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석: 질의와 응답 2538번. 구약시대의 구원 / 구약시대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나, 그렇다면. 2011-11-28. 요1:29, 창3:15, 롬3:20-24, 롬2:12-15, 히9:22, 창4:26, 창8:20, 롬11:7, 단9:24-27
목사님! 항상 궁금한 질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위해 돌아가심을 믿고 고백할때 구원을 얻는다고 믿고 있습니다.
구약시대의 예수님은 뚜렷하게 나타나 있지 않고 막연히 오실 메시야를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고 말씀하시기도 하는데 성경이 지금처럼 보급되지 않았고 신약말씀은 아예 없었는데 예수님을 잘 모를수도 있잖아요? 그시대에는 구원을 어떻게 얻을수 있었나요?
세대주의적 구원론은 이단적이라는데 성경을 잘모르는상태에서는오히려 설득력이 있어보이기도 합니다. 출애굽한 후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이스라엘사람들은 구원을 얻지 못한 것인가요?
<응 답>
구약시대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나, 그렇다면.
구약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구원을 얻었느냐는 문제는 꾀나 많은 논쟁과 신학적 논의를 수세기 동안 거쳐 왔지만 아직 속 시원히 매듭짓지 못한 문제 중에 하나입니다. 그런 문제를 응답자가 형제의 마음에 들고 모든 의문이 풀리게 성경적 해답을 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은 엄두도 못낼 일입니다. 그런 줄 아시고 응답자의 견해를 참고로 보시고 형제의 성경이해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1. 구약시대의 유대인들은 어떻게 예수를 믿었으며 구원을 받았느냐는 문제
첫 번째로 구약시대의 유대인들이 과연 오실 메시야이신 예수를 믿었으며 그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느냐는 문제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 먼저 우리가 알아야 할 일은 유대인들은 예수를 대망하고 믿고 기다린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예수가 아니라 메시야(그리스도)를 기다리고 그가 오시면 그들을 구원하실 것으로 믿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이 사실을 발견할 수 있고 비록 구약에 많은 기록은 없지만 구약시대 전반에 걸쳐 유대인들이 이 메시야 사상에 깊게 젖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세례요한이 메시야를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증거한 일(요1:29), 안드레가 예수를 만난 후 그가 베드로를 만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고 한 사실 등은 그 당시 유대인이라면 누구든 메시야 사상에 심취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사마리아 수가성에 거주하는 여자가 예수님과의 대화에서 말한 그리스도에 관한 것이든가 그 여인이 성에 들어가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고 전했을 때 그 여인은 물론 수가성의 주민들까지도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그런 메시야를 대망해 온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이 같은 메시야 사상은 다니엘에 의해 더욱 분명히 밝혀져 있습니다. 다니엘서를 그들의 정경으로 받아드리고 있는 유대인들은 다니엘이 말한 메시야에 대해 큰 기대를 가지고 그를 기다려온 것으로 여기게 됩니다. 단9:25절에서 기름부음 받은 자(그리스도)가 일어나기까지의 기간과 26절에서 그 그리스도가 끊어져 없어질 기간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다니엘의 이런 메시야관은 그 발원지가 창3:15절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창3:15절에서 최초로 밝혀진 복음(여자의 후손의 고난과 그 후손에 의한 사탄의 심판)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예언으로 보여주신 말씀이 다니엘의 70 이레의 계시의 핵심입니다.
69이레가 올 때의 그리스도의 끊어짐은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이며 한 이레 후에 있을 황폐케 한 자의 심판은 메시야의 재림을 가리키는 계시입니다.
2. 사람에게 구원을 주는 하나님의 기준은 "하나님의 의"입니다.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표준은 "하나님의 의"입니다. 율법이 신약시대건 구약시대건 구원의 조건이 될 수 없는 것은 율법은 절대로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롬3:20-21). 이방인들이 구원의 조건으로 생각하는 양심도 율법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의가 될 수 없기 때문에 이방인들이 양심적으로 살았다고 해도 그것으로 구원의 증거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롬2:12-15).
하나님의 의란 하나님 앞에 무죄하고 무흠하고 거룩한 상태를 이르는 말입니다. 이런 인간이 세상에 존재할 것입니까? 그러므로 사람이 율법을 지키는 일이나 양심으로 살아가는 일이나 그 어떤 행위로나 하나님의 의를 소유할 자격자는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의는 구약시대나 신약시대나 또 어떤 시대를 막론하고 변개될 수 없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법칙입니다.
우리는 이런 토대위에서 인간의 구원문제를 다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하나님의 해답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의는 어떻게 얻을 수 있는 것입니까?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으니 ...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3:21-24).
우리는 여기서 죄인인 인간의 구원에는 하나님의 의를 소유해야 하는데 그 방법은 오직 유일하게 우리의 죄를 구속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구속이란 말은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흘리신 피를 말하는 것입니다.
3. 피 흘림이 의미하는 것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9:22).
사람의 죄의 사함은 피를 흘리는 제물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죄 사함을 얻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성경에서는 죄인인 인간이 하나님의 의를 얻는 길은 피를 흘리는 제물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 구약에서의 피 흘림
최초의 사람인 아담 역시 자기 죄에 속죄의 피 흘림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 피 흘림이 하나님께서 짐승을 잡아 그 옷을 아담에게 입혀주신 사실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가죽 옷을 입혀주신 일은 짐승의 피 흘림을 전제합니다. 여기서 최초의 죄 사함의 피의 제사제도가 시작된 것입니다. 아마도 이때 하나님께서는 이 제사제도의 의미를 아담에게 충분히 알려주셨을 것입니다. 그것은 그의 아들 아벨이 하나님 앞에 양의 새끼를 잡아 제사를 드린 사실과 이 같은 제사에 대해 아벨의 믿음과 의를 연관시키고 있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범죄한 아담에게 최초의 복음을(창3:15) 들려주시면서 그 예표적인 방법으로 짐승의 피로 속죄하는 의식을 가르쳐 주셨을 것입니다.
그 후 셋의 자손과 가인의 자손을 양분하여 셋의 자손을 하나님의 의를 얻을 백성으로, 가인의 자손을 세상을 따르는 백성으로 나누어 세상에 인종을 퍼지게 하셨던 것입니다. 창4:26절에서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고 하신 말씀은 셋의 자손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생활을 했다는 이야기이며 그들은 아담의 가르침에 따라 속죄하는 제사를 드렸다는 사실을 전제하는 것입니다.
자세한 기록은 없지만 이런 피 제사는 율법을 받을 때까지 계속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런 제사제도에 대해 아담은 이것이 속죄에 대한 하나님의 방법이란 사실을 셋의 자손들에게 알렸을 것이며 장차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 속죄가 성취될 것과 구원을 받을 일에 대해서도 가르쳤을 것입니다. 노아가 드린 번제(창8:20)라든가, 아브라함이 이삭을 대신하여 수양을 번제물로 드린 일, 욥이 그 자식들을 위해 하나님께 드린 번제 등, 믿음의 선진들이 행한 이 모든 일(짐승을 잡아 피흘리는 속죄제사)은 이런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내려온 하나님의 의를 얻는 예표적인 믿음의 결실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 하나님을 믿었다는 그 믿음의 표준은 바로 여기에 근거하고 있으며 이 믿음이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구약적 그림자였을 것입니다. 다만 이런 구체적인 상황이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혹 그런 사실에 의문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구약성경 전체의 흐름으로 보면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그 이후 모세에 의해 율법에 기록하여 온 이스라엘로 피 흘림의 제사에 참여케 함으로 하나님의 의를 얻을 수 있는 길을 민족적으로 열어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 같은 피의 제사는 무엇을 의미하며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말이 유대인들에게는 어떻게 적용되는 것입니까?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라"고 하신 말씀은 누구에게나 어느 시대 사람들에게나 적용되는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유대인들은 장차 그들이 대망하는 그리스도가 나타나서 그들의 죄를 속해줄 것임을 믿는 믿음으로 이 제사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런 짐승의 피흘림의 제사는 유대인들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과연 이런 믿음으로 피 흘림의 제사에 참여했는가의 여부는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런 사실을 성경에 밝혀 놓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구약은 모든 하나님의 예언 성취의 그림자입니다. 그리고 모든 예언과 계시가 거의 모두 예표적으로 혹은 비유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구원이나 천국이나 인간의 영혼에 대해 그 모습을 다만 그림자로만 비춰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전체의 문장으로 보아 유대인들이 장차 오실 메시야를 대망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으며 그들의 메시야가 나타나면 그들은 구원을 얻고 왕국의 축복을 받을 것으로 믿어왔다는 사실에서 그들의 믿음이 오실 메시야에 대한 예표로서의 믿음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짐승의 피로 드린 제물이 성경적으로 예수님을 보여주시는 것으로 믿으면서도 과연 이 제사에 참여한 유대인들이 그런 사실을 믿었겠는 가에 대한 의구심을 버릴 수는 없지만 그것은 우리의 의심일 뿐, 유대인 중에 많은 사람들이 이런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 부인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유대인들이 이런 구원의 대열에서 떨어져 나갔을 것이란 사실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패역한 길을 걸어 왔다는 사실로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신약시대에나 구약시대에나 인간의 구원에는 하나님의 선택이 반드시 따른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는 사실도 알아야 하겠습니다.
롬11:7절 말씀에서 "그런즉 어떠하뇨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 그 남은 자들은 완악하여졌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유대인의 수효가 아무리 많아도 택하심을 입은 자만이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이스라엘 중에도 믿음으로 구원 받은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4. 유대인의 메시야관에 대한 변질
애초에 이스라엘은 바른 그리스도관을 가졌었습니다. 모세가 율법을 세웠을 때에도 모세는 장차 오실 구속주에 대해 증거했습니다. 복음에 대해서도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사야가 예언한 사53장에서 메시야의 고난에 대한 말씀에도 그 당시 많은 유대인들이 고난의 메시야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는 말은 오래전부터 많은 선지자들에 의해 이런 복음이 전해져 왔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메시야의 끊어짐과 그의 심판에 대해 자연스럽게 예언했던 것입니다(단9:24-27).
그러던 것이 유대인들이 바벨론 포로시대를 거치면서 그들의 메시야관이 변질되었습니다. 저들을 죄에서 온전히 구원하실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의 메시야가 아니라 유대인들을 이방인의 폭정에서 건져내고 왕국을 건설해 주실 메시야를 기대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이런 잘못된 메시야관 때문에 그들은 참 메시야로 오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으며 그들이 조상대대로 소망으로 바라던 참 구원의 은혜가 그들을 멀리 떠나게 한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그리스도를 바라고 대망했지만 그들은 잘못된 그리스도를 소망했기 때문에 그 그리스도가 그들의 구세주가 될 수 없었고 구원도 왕국도 멀리 떠나버린 것입니다. 오늘날 이단적인 다른 복음이 우리에게 구원을 줄 수 없는 것처럼 이 같은 유대인들의 다른 메시야관은 그들로 구원의 길에서 멀어지게 했습니다.
2011년11월 29일 민 병 석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