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석: 부르심의 목적을 알자. 벧후1:1-11
서 론 : 그리스도인이란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사람들을 가라키는 말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우리는 먼저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었다는 사실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부르셨다는 말은 누구든지 스스로 찾아 온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부르신 자의 부르심의 음성을 듣고 그 부르신 자의 요청에 따라 나온 사람들을 말하기 때문에 부르심을 입은 사람들은 왜 나를 이곳으로 부르셨는가에 대한 부르심의 목적을 제대로 알아야 우리들의 부르심에 합당한 생활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왜 부르셨는가? 우리는 왜 그 부르심을 듣고 하나님 앞에 나오게 되었는가에 대한 해답을 얻고 그 부르심에 목적이 무엇인가를 알아보면서 은혜를 받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은 우리를 어떻게 부르셨는가?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지 않고는 이 자리에 앉아서 하나님을 경배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그 은혜 가운데서 살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어떻게 입은 것입니까?
(1)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지만 그 부르심이 물고기가 우연히 어부가 쳐놓은 그물에 걸리듯 아무 의미없이 부르심을 받은 것이 아니란 사실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일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해서 43장에서 이처럼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다’고 하셨습니다. 넓은 운동장에서 많은 아이들이 떠들썩하게 뛰놀고 있습니다. 거기에 한 엄마가 나타났습니다. 자기 아이들을 불러내는데 어떤 방법을 쓰겠습니까?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놀고 있는 자기 아이의 이름을 지명하여 불러 댈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이 세상에 수도 없이 살아가고 있는 인류 중에서 여러분의 이름을 지명하여 불러내어 여러분을 이 자리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우리의 이름을 지명하여 부르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일에 있어서 조금도 실수하심이 없으시고 착오도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쉽게 표현한다면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하신 그 생명책에 기록된 그 이름을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것은 우연히 하셨거나 즉흥적으로 하신 것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결코 후회하심이 없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실 때에 여러분의 이름을 부르시면서 ‘너는 내 것’이라고 확실하게 지명하여 부르심으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이미 하나님의 소유로 삼으신 사실을 믿으시고 그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2) 다음에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신 일은 나의 어떤 공로나 의로움이 있어서가 아니라 이미 영원 전부터 예정하신 그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이루어진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엡1:4절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태하신 일에 있어서 이미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 이 세상이 아직 창조되기 이전인 창세 전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예정은 오직 하나님 한 분에 의해 계획하시고 결정하시기 때문에 그 누구도 이런 예정을 방해할 수 없으며 이런 예정을 이루시는 일에 제동을 걸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택과 예정과 부르심에는 세상에서 중히 여기는 인격이나 학문이나 명예나 문벌이나 돈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비록 학문이 없고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인격을 가지고 있으며 세상에서 멸시를 받고 살아가는 처지에 있는데도 이런 일과는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나를 예정하시고 부르신 것입니다.
이런 일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고전1장에서 하나님께서 너희를 부르신 너희의 부르심을 보라고 했습니다.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에서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세상의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자들을 폐하려 하신다’고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그런즉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예정을 입어 이 세상에 태어났다고 하는 이 사실이 얼마나 놀라운 일이며 우리가 은혜를 받아 말씀을 통해서 이 같은 사실을 깨닫게 될 때 우리의 기쁨과 감사는 또한 얼마나 큰 것입니까? 이런 사람들이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던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갈 수 있으며 우리의 삶 전체를 우리를 구원해 주신 그리스도를 위해 헌신하며 모든 것을 감사하므로 바칠 수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3) 다음에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 부르심의 동기가 그리스도의 은혜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갈1:6절에서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셨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은혜란 무엇을 가리킨 것입니까? 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으심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그리스도의 속죄의 은혜가 아니면 영원한 죄인들로 멸망에 처할 수밖에 없으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속죄의 은혜를 예비하시고 우리를 부르시기로 예정하셨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속죄야말로 우리들이 영원히 감사해야 할 찬양의 제목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 목적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어떻게 받았으며 우리가 그리스도 앞에 나와 있다는 이 사실이 오직 하나님의 그 같은 부르심을 받은 사실에 기초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를 믿게 된 사실도 물론 아내로부터 전도를 받고 이웃의 권고도 받고 내가 스스로 결단을 내렸지만 그러나 근본적인 것은 이처럼 내가 하나님의 예정을 입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강권적인 손에 이끌려 주 앞에 나왔다는 사실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같은 일은 우연히 되어진 일도 아니며 어쩌다가 예수를 믿게 되어서 된 일도 아닙니다. 이미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나를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하신 대로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 앞으로 부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번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그 부르심이 영원히 변치 않으며 그 누구도 이 부르심을 취소하거나 빼앗아 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예정하시고 부르신 것입니까?
(1)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 목적은 나로 하나님의 아들의 명분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성경의 끊임없는 증거는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영접하는 자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의 권세란 무엇을 의미해 주는 것입니까? 여러분들은 분명히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가지셨다고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지금 하나님의 아들이 된 어떤 권세를 가지고 계시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아들의 권세는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바라고 원하는 물질적인 부요나 명예나 어떤 성공적인 삶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권세는 그 아들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누릴 수 있는 하나님의 나라의 후사라는 데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후사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천국이기 때문에 그러므로 여러분이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그 소망 가운데 살아가는 삶을 가장 최고의 자기 인생의 가치로 여기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스스로 포기한 사람들이나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천국을 우리에게 기업으로 주시기 위해 그리스도 안에서 창세전에 우리를 예정하시고 예정하신 대로 또한 우리를 부르심으로 그 뜻을 이루셨기 때문에 우리가 이 위대한 하나님의 섭리와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등한히 하고 세상 것에 눈을 돌리며 세상 것으로 성공의 기준을 삼으려 한다면 올바른 신앙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하늘에 있는 영원한 영광의 그 나라를 소망으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이라면 우리가 나그네와 같은 이 땅에서 겪어야 하는 가난이나 질병이나 고난이나 어려움을 능히 참고 견뎌 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증거하기를 우리가 지금 현세에서 당하는 모든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당신의 자녀로 삼기 위해 세상에서 부르신 일은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주심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천국의 상속자로 삼기 위함이라 이 사실을 믿으시고 이런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생애를 살아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다음에 살전4:7절에서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케 하심이 아니요 거룩케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은 우리들로 부르심을 받기 이전의 생활을 그대로 계속해도 좋다는 의미로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세상에서 부르신 목적은 이제부터 세상에서 살아온 세상적인 생활 방법을 버리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새롭게 살게 하시기 위함이란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예정하시고 우리를 부르시는 일에 그 얼마나 많은 대가를 지불하신 지 아십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이처럼 크신 사랑과 은혜를 베푸신 이유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으로 주시기 위해서이며 한편 예수님으로 십자가에서 죽게 하신 우리의 모든 죄를 떠나 하나님의 자녀다운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새로운 열매를 맺는 생활을 못하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생활을 못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의 생활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새로운 방향으로 돌이켜야 하는 것입니다.
이 일에 대하여 바울은 롬12장에서 ‘너희는 이 세대를 본 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하므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3) 다음에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것은 우리들로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새로운 복을 주시려고 부르셨습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부지런히 일하면서 돈을 벌어 왔습니다. 재수가 좋고 운이 좋으면 돈을 벌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이젠 그런 방법으로는 돈을 벌 수도 없고 부자가 될 수도 없습니다. 시127편에서 말씀하시기를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너희가 일찍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심을 입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방법대로 일하고 수고해야 돈을 벌 수 있고 부요해 질 수 있는 것입니다. 잠8:18절에서 ‘부귀가 내게 있고 장구한 재물과 의도 그러하니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으로 볼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실 때 다만 하늘에 간직한 신령한 복만 주시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축복도 주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은 그 자녀들에게만 주시는 특별한 축복이기 때문에 그 주시는 방법도 세상적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을 따라 주시는데 그 하나님의 방법이 바로 순종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축복에 대한 성경 전체의 요점은 순종에 있습니다. 너희가 내 말을 순종하면 너희가 경영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이 같은 하나님의 방법을 어기면 절대로 세상에서 누리는 물질의 축복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만약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방법대로 살아도 복을 받을 수 있다면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생활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지난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이 40년간 광야 생활을 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했을 때는 순탄하고 형통한 길을 걸었지만 불만하고 불순종했을 때는 갈증과 굶주림과 질병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말로 은혜를 받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물질적 축복을 받기를 원하는 소망이나 돈을 벌 욕심으로 살아가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소망을 따라 열심히 살아가면 그 나머지 모든 것은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산상보훈에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여 주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이 복을 받는 자세에 대하여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하셨습니다. 참으로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으로 소망을 삼아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박국의 고백처럼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라’ 이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오늘 주신 말씀에서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서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치 아니하리라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주시리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10절에서 두 가지 사실에 대하여 확신을 가지라고 권면했습니다. 하나는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부르심이란 하나님께서 나를 이 세상에서 불러내시어 예수를 믿게 하시고 천국의 소망을 주신 일을 말합니다. 그리고 택하심이란 하나님께서 나로 하늘의 신령한 복을 주시기 위해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예정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말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두 가지 사실에 대하여 확신을 가져야 한다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 사실을 굳게 하라고 했습니다. 굳게 하라는 말씀은 이 사실에 대해 견고한 믿음을 가지고 그 안에서 살아가라는 뜻입니다. 이 사실을 믿지 못할 때 우리의 믿음이 흔들립니다. 우리의 소망에 의심이 생깁니다. 그리고 소망에 의심이 생기고 믿음이 흔들리는 사람들은 아무런 열매도 맺을 수 없습니다.
이런 믿음, 하나님이 나를 택하셨으며 나를 부르셨다는 사실에 대한 믿음은 우리들로 담대한 믿음의 수유자로 만듭니다. 구원의 확신 가운데서 살아가게 합니다. 그 부르심에 합당한 생활을 하므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 드릴 수 있습니다.
결론 :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창세 전에 하나님의 예정을 입은 사람, 곧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주시기 위해 부르심을 입고 이 자리에 나오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과 그의 택하심을 굳게 하는 생활을 하면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넉넉히 들어갈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재림하시면 우리에게 천년왕국의 축복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이 나라에도 넉넉히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우리의 육신이 죽어 우리의 영혼이 천국에 갈 때에도 넉넉히 들어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같은 하나님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더욱 굳게 하여 하나님 나라에 넉넉히 들어갈 수 있는 복된 그리스도인들이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