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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낮 설교 [300]

민병석: 예수를 잃어버린 생활. 눅2:41-51

작성자청결|작성시간17.11.20|조회수589 목록 댓글 0

 

***민병석: 예수를 잃어버린 생활. 눅2:41-51

 

  예수님의 부모가 예수를 잃어버리고도 잃어버린 그 사실도 모른 채 그들의 길을 걸어갔던 것처럼 우리 주변에는 예수를 잃어버리고도 잃어버린 사실조차 알지 못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은 것입니다. 오늘은 내 인생을 점검하여 우리가 예수를 잃어버린 채 그 사실조차 모르면서 내 인생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깊이 살펴보면서 본문을 통해서 은혜를 받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1.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예수           

 

  예수님이 나사렛 땅에서 태어나시고 어느덧 열 두 해가 지나 그해 유월절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유월절을 지키시려고 그의 부모님을 따라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유월절이란 민족적인 큰 행사였으므로 이날을 지키려는 많은 유대인들이 온 세계 각국으로부터 예루살렘으로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이 날의 주된 행사는 그들이 먹는 음식에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제각기 가족 단위로 양을 잡아 가지고 그것을 제사장에게 가지고 갑니다. 제사장은 그들이 가지고 온 양 고기 중, 제사에 바칠 부분의 고기를 떼고 남은 고기를 집으로 가지고 가서 그 고기로 온 가족이 함께 먹었습니다. 그들은 애굽에서 살아온 그 때를 회상하는 의미에서 쓴 나물과 누룩 없는 떡을 포도주와 함께 섞어 먹었습니다. 그 첫잔은 아버지가 마시고 그 남은 것으로 가족들에게 돌렸습니다. 이때 그들의 자녀들이 이런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부모들은 그 내력을 그들에게 알려 줌으로 자손 대대로 이 유월절 행사를 지속시켜 내려온 것입니다.

 

  오늘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의 2천년 동안이나 나라 없는 이국땅에서 온 백성들이 이곳저곳에서 유리하는 중에도 그들의 혈통을 잃지 않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내려올 수 있었던 것은 이 같은 그들의 유월절 행사에서 그 명맥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같은 이스라엘의 민족적인 행사가 오늘에 와서는 교회의 성만찬으로 이어져 우리 가운데서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 유월절이 사실인즉 유대인들을 위한 유대인들만의 민족적 행사인 것이 아니라 유월절 어린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의 피로 구속받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하나의 예표적인 행사였기 때문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이 절기를 어려서부터 중히 여기셨으며 그의 죽으심도 바로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바쳐지기 위하여 이 절기 중에 회생 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이스라엘 민족뿐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 유월절에 부모님을 따라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참으로 기이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유월절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그들 부모들이 예수가 자기들 가운데 계시지 않는 사실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들은 잃어버린 아들을 찾기 위해 여러 곳으로 헤매다가 결국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가 예루살렘 성전에서 찾았다는 사실입니다. 이 일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중요한 교훈을 주는 사건이기 때문에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은혜를 받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2. 예수를 뒤에 두고 떠났다.

 

  예수님의 부모들은 아들과 함께 예루살렘에서 유월절을 지키고 고향인 나사렛 땅으로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머무셨고 그 부모는 이를 알지 못하고 동행중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아무 걱정도 없이 고향으로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 중에 예수가 안 계신 사실을 발견하고는 예수를 찾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예수 없이 걸어간 길은 헛된 수고였으며 헛길이었습니다. 그들은 계속하여 앞으로 나갈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찾는 일에 나서게 된 것입니다. 우리들 중에는 예수의 부모처럼 예수님을 뒤에 두고 예수 없이 자기 험자 자기 인생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우리의 걸음은 헛된 수고일 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동행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내 안에 계시고 나는 주님 안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과 떠나서는 한시도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주님은 임마누엘이란 이름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 말의 뜻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예수님을 우리의 생애에 모시지 못하고 우리가 그 분과 떨어진 생활을 한다면 이 같은 생활은 곧 예수를 잃어버린 생활로 우리의 생애에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 없이 걸어가는 우리의 인생길에는 어떤 결과가 찾아오는지 아십니까?

 

  (1) 그 사람은 결과적으로 그의 생애가 어둠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그를 따르는 사람의 빛이 되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두움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걸어가야 할 인생길의 방향을 가리켜 주십니다. 그 빛을 따라 우리의 발걸음을 옮길 때 우리의 생애는 주님과 함께 하는 생애,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인생길을 걸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특징은 아무 일에나 뚜렷한 목적이 없는 생애를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당신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목적이 무엇입니까고 묻는다면 아마 여러분 중에 많은 분들은 입 속으로 우물쭈물하는 것으로 넘어갈 것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이 같은 사람들은 예수를 그의 가는 인생길에서 잃어버린 사람들입니다. 이 같은 사람들은 교회에 나오는 일도 무슨 뚜렷한 의미가 있어서가 아니라 습관을 따라 그저 막연히 나오는 것입니다. 이런 분들은 예수를 영영히 잃어버리기 전에 자기 생애에서 예수를 잃어버린 사실을 분명히 발견하고 가든 걸음을 멈추고 그 분을 찾는 일에 나서야 하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이 동행중에 있는 줄로 알았다.

 

  더욱이 딱한 일은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머물고 계셨는데 그의 부모들은 예수가 자기들 중에 계시는 줄 알고 안심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계시는 여부를 확인도 하지 않고 하루 길을 간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지 못하고 떨어져 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동행하는 생활을 하려면 주님이 지금 나와 동행하고 계시다는 확인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생명의 구주이십니다. 우리의 구원의 보증이 되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보화이십니다. 얼마나 귀한 존재인 것입니까? 농속에 비밀히 감추어 둔 금붙이는 확실히 챙기면서, 자기 인생의 값진 보화가 되시는 예수님의 존재에 대해서는 챙기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입니다.

 

  눅15장을 보면 열 드라큐마를 소유한 한 여인이 자신의 드라큐마를 확인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그녀는 확인한 결과 그 중에 하나를 잃어버린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녀는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부지런히 찾았습니다. 그 결과 드디어 찾아내고는 벗과 이웃을 불러 함께 즐기는 장면이 나옵니다. 우리는 또한 고전13장에서 이 같은 말씀을 듣게 됩니다.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들 자신이 제각기 자기에 대하여 우리가 믿음에 있는가 스스로 시험하고 확증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만약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계신 줄을 모른다면 그 사람은 버리운 자나 다름이 없다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모들의 실패는 어디서 왔습니까?  동행중에 있는 줄로 알았다는 데서 온 것입니다. 동행도 하지 않았는데 동행하는 줄로 착각한 것입니다. 동행중에 있는 줄로 안 그들의 생각이 얼마간 예수 없이 살아갔던 것처럼 막연하게 믿고 있는 생활, 주님이 지금 나와 함께 하시는 줄로 어렴풋이 알고 있는 생활은 언제나 위험부담이 뒤따르는 법입니다. 내가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믿고 그 축복을 받으려 한다면 과연 내가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의 조건을 이루고 있는가를 점검하고 확인해야 하는 것입니다. 과연 내가 성수주일을 하고 있는 것인가? 내가 정말로 온전한 십일조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인가? 내가 심는 대로 거두시는 하나님의 법칙에 의하여 아까워하지 않는 감사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인가? 이 같은 것들을 점검하고 확인해야 하는 것입니다. 구멍 뚫어진 곳을 발견했으면 빨리 막아야 하며 꿰매야 합니다.

 

  (1) 예수님은 죄를 버리는 사람과 함께 동행 하십니다. 잠28장에서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이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죄를 버리지 않고 그 마음에 그대로 품고 있는 사람은 이미 주님을 잃어버린 인생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 죄를 버리지 아니하면 형통할 수 없습니다. 주님이 그 사람과 동행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은 충성된 자와 함께 동행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내 눈이 이 땅의 충성된 자를 살펴 나와 함께 거하게 하리니 완전한 길에 행하는 자가 나를 수종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불꽃같은 그의 눈으로 온 세상을 두루 살피시면서 하나님께 충성된 자가 누구인가 찾으시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동행 하시려고 그리 하십니다. 자신이 맡은 교회의 직분에 나태하고 주를 위해서 하는 일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을 뿐 아니라 교회의 쓴 뿌리 역할이나 하면서도 자기에게 주님이 함께 계시고 자기 생애에 주님이 동행할 것이라고 믿는다면 그같은 믿음은 허황된 믿음입니다.

 

  4. 예수의 부모들은 잃어버린 아들을 잘못된 곳에서 찾았다.

 

  다음에 예수의 부모들은 그의 아들을 찾는 일에 큰 실수를 했습니다. 본문 말씀을 보면 동행중에 있을 줄로 생각하고 하룻길을 간 후 친족과 아는 자 중에서 찾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곳에서 예수를 만날 수 없었습니다. 예수를 잃어버린 사람은 잃어버린 예수를 바로 찾는 일 대단히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를 찾으려고 요란한 장소로 쫓아다닙니다. 이적이 나타나는 이상한 집회를 찾아가고 점쟁이 예언자를 찾아가 방법을 묻기도 합니다. 그러나 잃어버린 예수는 이적 중에 나타나시는 것도 아니며 예언 중에 그 모습을 보여 주시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먼저 잃어버린 그 예수가 계시는 곳이 어디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의 부모는 그의 아들 예수를 어디서 찾은 것입니까? 48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저희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듣는 이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기이히 여기더라 그 부모가 보고 놀라며 그 모친은 가로되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 중에 너를 찾았노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그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잃어버린 예수를 찾았던 것입니다.

 

  그들이 예수를 찾은 곳은 하나님의 성전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계시는 곳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예수를 찾을 때는 하나님의 성전으로 찾아 나와야 합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성전을 내 아버지의 집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길거리나 시장이나 광장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묻기도 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전에서 말씀을 듣기고 하시며 묻기도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로부터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고 하는 신앙고백을 들으셨을 때, 내가 이 터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계2:1절에 나타난 말씀을 보면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시기를 오른손에 일곱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오른 손에 그의 종들을 붙드시고 일곱 금 촛대로 비유된 교회를 다니시는 것입니다.

 

  5. 잃어버린 예수를 찾는 비결

 

  여러분의 인생길에 여러분의 신앙에 장애가 되는 어떤 커다란 브레이크가 걸려 있는 것은 아닙니까? 앞으로 달려 갈려야 더 갈 수 없는 난감한 벽에 부딪쳐 있지는 않습니까? 마음이 캄캄하여 빛은 보이지 않고 평안도 없고 기쁨도 없으며 소망도 없는 생애를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죄에 대한 감각도 희미하고 통회하는 마음이란 조금도 찾아 볼 수 없고 미지근한 가운데서 차지도 아니하고 덥지도 아니한 신앙생활에 젖어 있는 것은 아닙니까? 의심의 먹구름이 나를 휘어잡고 하나님의 언약에 대하여 하나도 믿음을 가질 수 없는 어두운 심령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만약 그렇다면 여러분은 지금 예수를 잃어버린 생애를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걸어가시던 여러분의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예수의 부모들처럼 잃어버린 예수를 찾기 위해 다시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가셔야 하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예수를 찾을 시기를 놓치면 영영히 만나지 못할는지 모릅니다. 이사야선지는 말하기를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또 예레미아 선지를 통해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고 하셨습니다.

 

  잃어버린 주님을 찾는 일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말합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없으면 우리는 그리스도를 위해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죄를 버리는 일도,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일도,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는 일도, 주를 위해 충성하는 일도, 주의 복음을 전하는 일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골2:3절에서 말씀하시기를 그리스도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패역한 이스라엘을 향하여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이 지식이 망한다고 하셨습니다.

 

  결론 : 여러분, 우리가 우리의 인생길을 걸어감에 반드시 예수님과 동행해야 우리의 참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형통케 하시는 길도 그곳에서 열리는 것입니다. 평안과 축복의 길도 그곳에서 열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이 시간, 주님이 과연 나와 함께 하시어 내 인생 길을 나와 동행하고 계시는가 살펴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동행하지 않는 나의 인생길은 헛된 것임을 알고 예수님이 나와 함께 내 생애를 동행하고 계시다고 하는 확인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예수는 저 멀리 구만리장천에 올라가신 것이 아닙니다. 가까이 내 곁에 계시다고 하셨습니다. 내 마음 문 밖에서 내 마음을 두드리고 계시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그 분을 찾으시고 정중히 모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성전에 부지런히 나오셔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그의 참 모습을 찾아야 합니다. 그의 말씀을 통해서 그 분을 내 마음에 모시고 내 인생의 빛으로 내 인생 길을 새롭게 밝혀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이제 우리들의 인생길이 좌절에서 희망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파멸에서 소생으로, 실패에서 성공으로, 마치 시온의 대로와 같이 넓게 깊게 높게 뚫려 우리에게 새로운 삶의 기쁨을 안겨 주실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들으시는 여러분들에게 이 같은 축복이 임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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