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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 3번. <질문 : 답변> 무천년설, 두 증인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2004-11-19

작성자청결|작성시간19.10.20|조회수238 목록 댓글 0

 

***디모데: 3번. <질문 : 답변> 무천년설, 두 증인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2004-11-19. 계11, 슥4, 단9:27, 계7:25, 계12:7

본질적으로 생각해볼만한 논지가 있는 부분에 자세한 답변을 부탁드립니다.
지금 무천년설에 의거한 해석방법이 어쩌면 총신 신대원을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무 천년주의'나 '역사적 전 천년주의'나 종말론 해석의 차이는 크지만 그 신학은 둘 다 개혁주의 신학에 속한다고 보아도 되겠지만 역사적 전 천년설의 주장속에서 오순절 계통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느지 알고 싶습니다. 그러므로 후천년설 무천년설 역사적 전천년설을 나누는 가운 데 조금더 개혁주의가 취할 수 있는 범위를 설명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결구은 7년 대환란의 의미가 어떠한 관점에서 풀어지느냐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더나아가 계시록 11:2절의 등장하는 두 증인을 어떻게 보느냐도 중요하겠지요? 저는 대학원 시절의 두 증인의 연구에서 논문은 통과 되었지만 무천년설에 입각한 방법으로 풀어야 할수밖에 없었습니다.

좀더 개혁주의 입장을 고려해서 박사 학위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제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고 앞으로 이 부분에 권위 있는 지도자를 통하여 새롭게 수정할 부분을 정리하고자 합니다. 좋은 답변을 부탁드립니다. 말은 많이 한 것 같지만 정일하면 3 가지의 관점을 밝혀 주셨으면 합니다.

1. 계시록 11장에 등장하는 두 증인을 어떻게 볼것인가?
예를 들면 엘리야 모세로 볼것인가 아니면 교회로 볼것인가? 
순교자로 볼것인가? 등등입니다.

2. 7년 환란을 볼때 전 3년반과 후 3년반을 어떠한 관잠에서 보고 개혁주의 취할 수 있는 내용과 성경적 인용에 대한 답변을 부탁 드립니다.

3. 종말론에 대하여 구분할때 현제 총신 산하 교수님들이 2가지의 부분에 나타납니다. 무천년주의 와 역사적 전천년주의가 나타납니다. 역사적 전천년주의에서 오순절 계통이 나타납니다. 어덯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요?
제게 귀감이 되는 답변을 부탁드립니다. 

◆ 민병석

신학적인 올바른 종말론 연구를 시도하시고자 하시는 그 진지한 태도에 경의를 표합니다. 특히 박사 학위를 취득하시려는 논문 준비 과정에서 질의하신 일에 대해 책임이 무겁고 조심스럽습니다. 

제가 '디모데 윤님'의 질의에서 느낀 점은 무 천년설의 입장과 전 천년 설의 입장에서 방황하는 모습이 보이며 특히 역사적 전 천년설을 취하려해도 오순절 계통의 세대주의 종말론과의 얽혀 있는 미심쩍은 점을 떨쳐버릴 수 없어 고민하는 듯한 모습입니다. 그럼에도 무 천년설을 탈피하려는 시도에서 아직까지 연구하신 종말론을 새롭게 수정할 부분을 찾아 정리하시려는 노력은 퍽 용기 있는 생각이시며 본인은 그런 의도가 꼭 성공할 수 있다고 믿으며 또 그렇게 바라겠습니다. 그리고 저의 답변이 그런 일에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합니다. 

1. 계시록 11장에 나오는 두 증인을 어떻게 볼 것인가? 

이 문제는 요한계시록 해석의 핵심이 되는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종말의 환난 중엔 하나님 편에선 두 증인의 활약으로 그의 백성들의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고, 사단 편에선 적 그리스도의 등장으로 인류에게 사망의 표를 주는 일로 최종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기 때문에 만약 계시록에서 두 증인의 활동이 없다면 종말의 환난이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구원의 소망도 없으며 세상과 함께 멸망 받게 될 두려운 날이 될 것입니다. 

계시록 11장은 7장과 10장과 연결된 계시입니다. 7장에서 그 이마에 하나님의 인 침을 받은 144000의 우리 하나님의 종들은 종말에 쓰임 받을 하나님의 종들로 이들이 10장에서 천사로부터 펴 놓인 책을 받아 그 기록된 내용을 예언하는 사명을 받은 사도 요한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이들이 11장에서 1260일 동안 다시 예언하는 사명을 가지고 지팡이 같은 갈대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게 되는데 이 척량자가 요한으로 등장하고 있지만 그 내용으로 보아 사도 요한과 같은 종말 계시의 비밀을 깨닫고 그 비밀을 예언할 사명자들로 이들이 우리 하나님의 종들로 인 침을 받은 144000명입니다. 

그런데 이 두 증인에 대하여 개혁주의적 종말론에서나 세대주의적 종말론에서나 여러 가지 의미의 해석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전 쳔년설을 주장하는 개혁주의 입장에서는 이들을 교회로 해석합니다. 그러나 11장의 내용 전개로 보아 이들이 결코 교회가 아님이 분명합니다. 굵은 베옷을 입었다는 것은 슬픈 재앙이나 회개를 전제하는 것으로 인류의 종말에 있을 하나님의 심판을 전제로 한 회개를 의미합니다. 교회라고 해석하는 사람들은 자연히 그 두 증인이 예언하는 기간인 1260일을 교회시대에 교회가 복음을 전하는 모습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굵은 베옷을 입고 전하는 메시지가 아닙니다. 한편 두 증인의 사역이 여러 가지로 나오고 있는데 두 증인을 교회로 해석하는 분들은 그 사역을 상징적으로 해석하려고 시도합니다. 그러나 그 내용을 냉철하게 분석해 보면 예언하는 기간 동안 두 증인에게 주신 하나님의 권능에서 나온 이적이지 복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닙니다. 

4절에 나오는 두 증인의 정체에 대하여 "이는 이 땅의 주 앞에 섰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라고 했습니다. 두 촛대는 교회를 표현한 것이지만 감람나무는 교회가 아니라 성도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두 감람나무는 슥4장에 나오는 '여호수아'와 '스릅바벨'를 배경으로 교회에서 하나님께서 선발한 종말적 사명을 받아 성령의 권능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이룰 우리 하나님의 종들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5절에서 저희를 해코자 하는 자들이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불의 권세로 죽임을 당한다고 한 것도 이런 표현을 상징으로 해석할 방도가 없습니다. 그리고 두 증인이 교회라고 한다면 복음을 전하는 교회 시대에 하나님의 교회를 대적하는 무리들을 하나님의 불로 소멸시킨다는 뜻이 되는데 그렇다면 이 세상은 교회에서 전하는 복음의 불로 벌써 전멸을 당했을 것입니다. 한편 두 증인은 예언을 마친 후, 순교하여 삼일 반만에 부활하게 되는데 만약 두 증인이 교회라면 교회가 어떻게 적 그리스도에 의해 순교 당할 수 있으며 더군다나 교회가 죽었다가 부활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두 증인이 그 예언하는 날 동안 1260일간 그 대적자의 손에 결코 죽임을 당하지 않는 불사신의 몸으로 이 예언을 증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 기간이 지나면 이들은 적 그리스도에 의해 순교를 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들은 하나님에 의해 부활하여 하늘로 승천하게 되고 곧 하늘 군대의 모습으로 주님을 따라 백마 탄 하늘 군대로 아마겟돈에 내려오게 되는 것입니다.

6절에서 두 증인이 예언하는 날 동안 비오지 못하게 하는 것은 실제로 이들의 기도로 비가 내리지 아니할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 날에 이 땅에는 엘리야 시대처럼 두 증인의 기도로 비가 내리지 아니하므로 말할 수 없는 기근의 날이 올 것입니다. 이것이 검은 말의 등장으로 이 세상에 내리시는 하나님의 재앙입니다. 

오순절 계통의 교파(세대주의 교리를 믿는 교단)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이 두 증인에 대해 엘리야와 모세로 보고 있는데 이것은 큰 오해입니다. 엘리야는 이미 변화 받은 몸으로 하늘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변화 받은 몸은 영화로운 몸으로 변신된 것을 말합니다. 그런 영화로운 몸은 다시는 육신을 가진 인간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 엘리야가 다시 인간의 모습으로 세상에 내려와 적 그리스도에 의해 순교를 당한다는 것은 난센스입니다. 모세 역시 육신이 죽고 영으로 영화롭게 되어 하늘에 있습니다. 그가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려면 부활하지 않으면 안되면 만약 모세가 부활하여 인류의 종말에 두 증인의 사명을 이루기 위해 세상에 온다고 해도 부활한 몸이 적 그리스도에 의해 죽을 수는 없습니다. 이들은 분명 요한이 받은 종말의 예언 전달의 사명을 받아 1260일 동안 그 사역을 감당하다가 그 사역을 다 이룬 후에 적 그리스도에 의해 순교를 당함으로 첫째 부활자들이 될 순교 성도들입니다. 

2. 전 3년 반과 후 3년 반의 구분과 그 관점에 대해 

전 3년 반과 후 3년 반의 구분에 앞서 먼저 7년 환난 기간이 실제로 존재하느냐의 여부를 해결해야 합니다. 원래가 7년이란 말은 다니엘서에 나와 있는 '한 이레의 언약'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한 이레란 곧 7년의 기간으로 이 기간은 종말에 적 그리스도에 의해 맺어지는 세계적인 평화조약 기간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다니엘서를 상징적으로(다니엘서에 나와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교회라고 해석하는 견해) 해석하게 되면 한 이레의 언약이 교회시대가 되고 다니엘서를 실제적으로(교회가 아니라 그리스도가 다스리는 새로운 그리스도의 나라 메시야 왕국 곧 천년왕국이란 견해)라고 해석하면 한 이레가 종말에 있을 적 그리스도에 의해 성립되는 세계평화조약으로 보게 됩니다. 그런데 다니엘서에 보면 한 이레를 절반으로 나누고 있다는 사실입니다(단9:27, 7:25, 12:7). 그리고 이 한 이레가 계시록에 와서 '마흔 두 달'과 1260일로 구분되어 있고(계11:2-3) 사단이 교회를 핍박하는 기간으로 1260일 또는 '한 때와 두 때와 한 때'로 구분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문맥으로 보아 계시록 11:2절의 이방인들(유대인들을 핍박하는 적 그리스도의 무리)이 예루살렘을 짓밟는 마흔 두 달은 후 3년 반을 의미하고 두 증인이 다시 예언하는 기간인 1260일간은 전 3년 반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계시록 12장의 1260일이나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의 기간은 적 그리스도가 세계를 지배하며 짐승의 표를 주는 기간인 후 3년 반을 의미합니다. 

개혁주의 신학이란 성경을 성경 그대로 해석하는 신학입니다. 그런데 개혁주의 신학자들의 모순은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을 해석하는 일에 있어서는 상징적으로 해석하는 모순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이런 모순은 개혁주의 신학이 대두되었던 초기에 있어서 종말에 대한 징조가 세상에 나타나지 않았고 그 연구도 모든 종말적 계시를 교회의 태동과 활동을 중심으로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당시엔 교회를 구심점으로 모든 교리를 확립하였고 종말론에 대한 깊은 연구가 없었으며 종말론 연구가 지금처럼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지 않았던 시대였으므로 등한히 하여 왔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성경은 영원한 진리지만 그 해석은 시대에 따라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느 한 시대를 석권했던 신학적 견해나 주장을 모든 시대에 그대로 적용시키려는 선입견은 위험한 발상이며 독선일 수도 있습니다. 다니엘서나 요한계시록은 다른 성경과는 약간의 차이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인류의 종말에 되어질 사건의 계시란 점입니다. 그러므로 인류의 종말에 이를수록 그 계시의 정확성이 더욱 분명하게 되며 그 계시의 해석도 더 구체적이며 성경적일 수 있습니다. 

3. 총신 교수들의 무 천년주의적인 견해와 우리의 입장

근래에 총신에는 소위 역사적 전 천년설을 주장했던 거성(박형룡, 박윤선 목사 등)들은 타계하셨고 그들의 타계와 함께 종말론에 대한 신학의 조류도 전 천년설에서 무 천년설로 선회했습니다. 이처럼 무 천년설이 전 천년설의 대타로 신학계에 등장하여 개혁주의 신학계를 석권하고 있는 것은 다음 몇 가지 이유에서입니다. 

하나는 개혁주의 신학자들이 주장해 온 부활관의 모순에서 비롯됩니다. 개혁주의 신학의 부활관은 주님의 재림 시에 주 안에서 죽은 모든 성도들의 부활과 살아있는 성도들의 변화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이런 부활관이 성경적이라면(개혁주의적 입장에서 본) 천년왕국은 존재할 수 없다는 주장입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천년왕국은 이 땅에 세워지는 그리스도의 나라로 그 기간이 천년입니다. 이 땅에서의 생활을 하게 될 천년왕국의 백성들은 응당 육신을 가지고 살아가야 되는데 부활한 성도들과 변화 받은 성도들이 어떻게 천년왕국에서의 생활이 가능한 것이냐는 것입니다. 차라리 천년왕국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성경에서 이런 난점에 대한 시비가 없을 것이란 견해입니다. 

다른 하나는 오순절 계통에서 주장하는 세대주의적 종말론에 대한 모순과 유혹에서 성경적 진리를 수호하려고 하는 의도에서 무 천년설의 연구가 활발해졌으며 세대주의 신학에 맞설 수 있는 대안으로 이 무 천년설이 개혁주의 신학에 큰 비중을 가지고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세대주의 종말론에도 성경적인 면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세대주의 종말론이 신학으로 깊은 뿌리를 박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데 그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 하나는 유대인들에 대한 편협한 생각입니다. 세대주의 신학에서는 유대인들의 종말적인 운명과 위치를 애써 교회와 구분 짓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교회시대를 유대인들이 예수를 배척한 데서 온 시대로 규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유대인들이 예수를 그들의 메시야로 영접하였더라면 교회시대를 거칠 필요 없이 곧바로 메시야 왕국 시대로 들어갔을 것이란 견해입니다.

다른 하나는 7년환난 시대는 교회시대(은혜시대)에 속한 기간인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한 회개 기간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런 그들의 신학은 필연적으로 교회는 그 시대가 마감되는 7년환난 전에 공중으로 휴거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게 됩니다. 

다음에 세대주의 종말론은 교회의 성도들은 죽은 자들은 부활한 몸으로 살아있는 성도들은 변화 받은 몸으로 천년왕국에 들어가지만 유대인들은 육체의 몸 그대로를 가지고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 신학적 견해를 피력하려면 너무나도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요는 무 천년주의의 종말론이냐, 역사적 전 천년주의의 종말론이냐, 아니면 세대주의적 종말론이냐는 문제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누가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을 성경대로 올바로 해석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신학은 수시로 변하지만 성경은 영원히 변하지 않습니다. 전 천년설 해석에 오순절 계통의 세대주의적 견해가 약간 들어갔다고 해서 매도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세대주의 신학의 견해인 것이 아니라 성경의 계시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잘못된 신학에도 어느 정도의 성경적 진리와 타당성은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것이건 저것이건 모두 성경을 기본으로 해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종말론 연구는 편협한 생각이나 아직까지 자기가 생각해 왔던 견해에 집착하거나 자신의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성경에서 계시해 주시는 진리를 외면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디모데 윤님'과 모든 분들께 종말론 연구에 큰 도움이 되어주셨으면 큰 보람으로 여기겠습니다. 이 문제에 대한 연구에 필히 본 홈페이지에 수록되어 있는 저서와 논문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저서란 : 다니엘서에 나타난 종말계시, 종말론 칼럼 : 요한계시록의 9가지 핵심문제)

2002년3월2일민 병 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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