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우리 신앙의 뿌리-공소(公所) 2-곰실(고은리) 공소
2026년 발간된 <우리의 뿌리>를 다시 읽으며, 우리 신앙의 원천을 되새깁니다.
춘성군 동면 장학리 노루목에 살던 신앙에 적극적이었던 한 청년, 엄주언 말딩이 세운 곰실 공소는
춘천 최초의 공소로서 춘천교구의 모체가 되었다. 엄주언이 중심이 되어 자기 집 옆에 강당을 세우고
공소 예절을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가족들끼리 모였던 신앙집회가 점차 확대되어 교우 수가 40-50명으로
증가하자 풍수원 본당의 정규하 아우구스티노 신부에게 사목방문을 부탁하게 되었고, 곰실의 교우 수가
더욱 증가되자 필연적으로 공소의 설립과 신부의 상주가 절실히 요구되었다.
이렇듯 교세가 확장되자 엄주언은 신부를 청하기 위해 풍수원 본당과 서울 명동 본당을 드나들며 신
부 청함을 복망(伏望)했고 이러기를 3년 계속한 후에 신부를 모셔가라는 편지가 마침내 곰실(지금의
춘성군 동내면 고은리)에 도착하게 되었고, 김유용 필립보 신부가 부임하게 된다.
엄주언을 중심으로 곰실 공소에서 태동한 춘천의 천주교회가 국지적이고 한정적인 사목활동에서 춘
천의 전 지역을 공동체로 하는 본격적인 시대를 열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매우 크다고 하겠다. 현
재의 곰실 공소는 효자동 관할 공소로서 이응현 테오도로 은퇴 신부에 의해 관리와 미사가 이루어지
고 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썩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아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요한12,24).
(좋은이웃 2001년 5월호)
오늘날의 곰실 공소 -관할: 거두리 본당 033-264-9101 (기존 효자동 본당에서 변경)
주소:춘천시 동내면 동내로 220
신자수;(2025 기준) 남 43 여 45 총88명
1920년 9월 22일 김유용 필립보 신부가 곰실에 부임하면서, 곰실은 본당으로 승격하게 된다.
신부가 상주한 후 곰실은 전교에 박차를 가하고, 신앙의 뿌리도 더욱 탄탄해진다. 이에 엄주언과 김 신
부는 춘천읍으로 본당 이전을 계획하였고, 드디어 1928년 곰실에서 춘천읍 약사리로 본당이 이전되
었는데 당시 교우 수는 600여 명을 헤아렸다.
공소 건물은 한국 전쟁 때 인민군 대대가 주둔하자 유엔군이 폭격을 가하여 완전히 타 버렸고,
현재의 곰실 공소는 그 후 구인란(T. Quinlan) 주교가 신축한 것이다.
미사안내 매월 셋째 주, 주일 16시2021년 이응현 테오도로 신부의 선종으로
현재 공소에 상주하는 사제는 없다. 춘천교구의 사적지로 지정되어 순례객들이 꾸준히 방문하고 있다
2026년 6월 7일(가해)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춘천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