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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 잡지,주보]기자가 본 세상 이야기(90) 귀족 노조의 돈 욕심(?)초유의 분란거리가 이어지고 있다.

작성자아우구스티노|작성시간26.06.14|조회수5 목록 댓글 0

기자가 본 세상 이야기(90) 귀족 노조의 돈 욕심(?)초유의 분란거리가 이어지고 있다. 

 

초거대 기업 노조의 파업에 대해 여론은 비난 일변도다. 사측의 언론플레이가 기여했으리라 짐작되지만 

그것만으로 냉담한 반응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그 비난은 전적으로 옳을까? 

가톨릭 사회교리는 무슨 말을 할까? 


사태를 ‘이기적인 노동자’와 ‘합리적인 경영진’의 대립, 혹은 ‘착취하는 자본’과 ‘탄압받는 노동’이라
는 이분법적 도식으로 환원하는 것은 본질을 왜곡하는 것이다. 이면에는 기업의 천문학적인 이익의 
분배에 대한 근본적 합의의 부재가 자리 잡고 있다. 


뇌관은 성과급 산정의 투명성과 정보에 대한 권리 문제다. 노조는 경제적 부가가치(EVA) 대신 명
확한 영업이익 기반의 성과급 제도를 요구한다. 사회교리 관점에서, 기업 경영과 보상 체계의 투
명성 결여는 인간 존엄성 침해와 관련된 윤리적 문제다. 투명성은 현대 사회교리에서 정보에 대한 
권리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또한 사회교리는 노동자가 기업의 부속품이나 비용 항목이 아니라, 지성과 의지를 지닌 주체적 
참여자라고 가르친다. 분배에 대한 기본적 정보조차 차단된다면, 노동자는 객체로 전락하고 구조적 
불신으로 이어진다. 「간추린 사회교리」 338항은 기업의 목표가 경제적 기준에 따라 충족되어야 하
지만, 사람과 사회의 구체적 발전을 가져오는 진정한 가치가 소홀히 다루어져서는 안 된다고 가르
친다. 따라서 노조가 정보의 권리를 요구하는 것은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존중해 달라는 요청이다.  


이번 사태의 또 다른 철학적 충돌은 기업의 정의에서 비롯된다. 사측의 논리는 전통적 주주 자
본주의 기업관에 뿌리를 둔다. 신자유주의 경제학은 노동을 ‘노동력 상품’으로 간주한다. 이윤의 주
권은 자본에 있고, 성과급은 자본이 시혜적으로 베푸는 잉여적 보상이다.  


하지만 사회교리는 기업을 자본주의적 소유권에서만 바라보는 환원주의를 배격한다. 기업을 ‘자
본의 결합’으로만 여겨서는 안 되며, 자본을 제공하든 노동으로 참여하든 저마다 고유한 책임을 지
고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하는 ‘인격의 공동체’라고 선언한다. 노동자들이 불투명한 시스템 속에서 소
외감을 느낀다면 ‘인격의 공동체’라는 소명을 저버린 것이다. 노조의 주장은 자신들을 자본의 종속 
변수가 아닌 기업 공동체의 주체로 인정해달라는 항변이다.  


물론 권리의 정당성이 요구 전체를 무제한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특정 액수의 성과급을 절대
적 권리로 주장하는 것은 공동선과 기업의 장기적 지속 가능성을 위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윤리적 한
계를 지닌, 타협의 대상이다. 정당한 임금은 기업의 장래와 공동선의 유지라는 사회적 책임과 조화
를 이루어야 한다. 나아가, 파이 키우기를 넘어 하청 비정규직 및 산업 전반의 약자들을 향한 연대
의 자세를 취해야 ‘집단 이기주의’라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있다. 


궁극적 해법은 노동자의 경영 참여를 통한 기업 거버넌스의 혁신에 있다. 기업을 ‘인격의 공동체’
로 재구성해야 한다. 과거 무노조 경영의 폭압적 유산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치유하기 위해서라도, 
기업은 의사결정 기구에 노동자 대표를 포함시키는 공동결정제도 도입의 가능성까지도 고민해야 
한다.


박영호 안드레아  가톨릭신문 기자 2026년 6월 7일(가해)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광주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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