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왜 성당에 다닙니까?
그는 한때 잘나가는 바둑선수였습니다. 비록 아마추어지만 대구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힐 정도의 실력자였지요. 그러나 바둑만으로는 생활이 어려워 트럭에 생필품을 싣고 다니며 생계를 이었습니다. 그는 술을 매우 좋아했습니다. 일이 끝나면 술로 끼니를 채울 정도였습니다. 그러다가 큰 사고를 당해 그 일마저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고, 5년 전 대명성당을 찾았습니다.
그와의 인연은 예비자 교리실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여섯 달의 교리 시간 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은 성실함에 흔쾌히 대부를 섰습니다. 영세와 동시에 우리 레지오에도 입단시켰습니다. 처음엔 주회합도 거르지 않고, 단원들과도 곧잘 어울렸습니다. 지켜보는 마음이 흐뭇하고, 뭉클했습니다.
그때까지였습니다. 갈수록 불만을 표시하더니 무슨 이유인지 주회합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낯선 생활에 부담이 클 것으로 짐작하고 차분히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나도 그를 볼 수 없었습니다. 신앙생활에 이렇게 힘든 적이 또 있을까요. 그의 집을 찾았습니다. 성당에 나오지 않는 이유를 묻자, 한동안 불편한 기색을 보이더니 마침내 입을 열었습니다. “신앙생활에 평화가 오지 않았고, 이런저런 일들로 힘들었다”라며 말꼬리를 흐렸습니다.
“아 그랬군요. 저도 처음엔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지난날 생활 방식에 젖어 혼란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복음의 가치가 궁금했고, 여기서 멈추면 평생 낙오자가 된다는 생각에 버텼습니다. 그러자 차츰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믿음엔 끊임없는 인내가 필요하답니다. 그만 부정적인 시각을 버리고 나와 함께 믿음을 되찾읍시다”라고 당부했습니다.
13년 전 저는 67세 늦깎이로 성당을 찾았고, 엄한 대부님을 만나 잠시 방황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성지를 순례하면서 신앙의 힘을 얻었습니다. 처음엔 그저 호기심이었으나 순례를 거듭할수록 강한 믿음을 느낄 수 있었답니다. 그런 경험을 바탕 삼아 대자들과 함께 여러 곳의 성지를 찾았고, 순례를 통해 그들의 믿음이 쑥쑥 자라길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유독 그에게는 효과가 없었습니다. 그를 붙들기 위해 갖가지 방안을 동원했으나 끝내 답을 들을 수 없었고, 나중엔 만나주지조차 않았습니다. 어쩌면 좋죠? 숱한 고민을 했으나 달리 방법이 없었습니다. 다른 대자들은 제자리를 지키련만, 자책감에 빠져 한동안 헤어나지 못했습니다. 주님께 매달렸습니다. ‘주님! 그를 주님 안에 머물게 하소서. 이는 제 뜻이 아니라 주님의 뜻입니다.’ 간절함을 담아 빌고 또 빌었지만 다 허사였습니다. 이미 마음이 떠난 그를 더는 붙들 수 없었습니다.
감정도 재활용이 되나요? 그동안 많은 일로 혼란스러웠지만, 소모적인 갈등은 그만 거둬들이겠습니다. 이제 예수님의 부활과 함께 새로운 모습으로 주님께 다가가렵니다. 주님께서는 제게 배려와 용서, 겸손, 그리고 이웃을 사랑하는 방법을 일러주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제가 성당에 다니는 까닭입니다. 아멘.
[월간 성모님의 군단, 2026년 6월호, 구희서 안젤로 대구대교구 대명성당 성조들의 모후 P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