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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님의 군단]"우리 어멍도 이디 모셩 오면 안 되쿠과?"

작성자아우구스티노|작성시간26.06.19|조회수5 목록 댓글 0

"우리 어멍도 이디 모셩 오면 안 되쿠과?"

.저는 제주도 서귀포 도순리 불교 집안에서 5형제의 막내로 태어나 2005년 세례를 받고 겨우 주일미사만 드리는 발바닥 신자로 살았습니다. 
형제 많은 집 늦둥이 아들로 태어나 어머니와 형들께 “왜? 너까지 태어나 업어 다녀야 하냐”는 불평을 들었습니다. 연세 많은 부모님이 창피해서 친구들 앞에서 ‘엄마, 아빠’라고 부르지 못했고, 매번 부모님 나이를 속이며 가족 사항을 채우곤 했습니다. 초등학교 때 아버지 환갑잔치에 담임 선생님을 초대하니 담임 선생님께서 “너희 아버지도 아닌 할아버지 환갑잔치에 내가 왜 가냐”고 해서 어린 마음에 상처가 되어 눈물 흘린 적도 있었습니다. 


부모님의 밭을 판 돈으로 사업하던 형들의 연이은 사업 실패로 저는 등록금마저 낼 돈도 없었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밀감 장사 실패로 빚 독촉을 받는 부모님을 보며 서러워 다른 집에 양자로 보내 달라고 했다가 어머니께 밤새 빗자루로 맞고 가출한 적도 있었습니다. 제 나이도 어머니께서 자식들 배고파 속울음 울던 때를 훨씬 넘겼습니다. 빗자루로 매질하며 마음속으로 더 눈물을 흘리셨을 어머니가 그립습니다.
군 제대 후 주경야독하며 조리사라는 직업을 가졌습니다. 


불교를 믿는 어머니께서 우리 집에 오신다고 할 때마다 십자가, 예수님상, 성모상을 숨기며 언젠가는 우리를 받아들여 주시고 이해할 날이 올 거라 믿었습니다. 
어느 해 어머니께서 김수환 추기경님의 선종을 TV에서 보시고 성당 다니는 사람들은 “게난 시께 맹질 다 한덴 고라라(제사와 명절에 차례를 지낸다) 하더라”하셔서 “아이고 말도 맙써.(아이고 말도 마세요) 기도해주고 시께 맹질도 더 잘 촐립니다.(기도해주고 제사와 명절차례도 더 잘 차려드립니다)”하면서 성당은 조상을 기린다고 안심시켜 드렸습니다. 그 이후로는 집에 오실 때마다 성물을 숨기는 숨바꼭질이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5년 전 어머니께서 임종을 앞두고 갈수록 커지는 고통의 신음과 일그러진 모습을 보며 불효막심한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 평소 안 하던 묵주기도로 성모님께 의탁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느 날 울며 성모님께 간절히 ‘어떵 우리 어멍도 이디 모셩 오면 안 되쿠과?(어떻게 저의 어머니도 성당에 모셔 오면 안 될까요?)’ 간청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저의 울부짖음이 고요함으로 바뀌면서 ‘미카엘 너무 걱정하지 말라’라는 인자하신 말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용기를 내어 신부님과 면담하고 어머니는 ‘안나’라는 세례명으로 대세를 받고, 며칠 후 많은 신자 분들의 기도 속에서 장례미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생각하면 큰 은총의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후 레지오에 입단하고 단원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봉사를 찾아 주일에 본당 주차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또 부족한 제가 비신자 18명을 입교시켰습니다. “나는 다니는데, 너는 안 된다고.” 괜히 약을 올리면 “왜 나는 안 되냐?”라고 따지고 듭니다. 그때 저는 속으로 기도하면서 ‘요놈 걸려들었구나’ 하며 조금씩 천천히 기회를 기다리면서 입교시켰습니다.


서귀포 중문 L호텔 마스터 쉐프로 일하며 동료들과 함께 이시돌 요양원에 가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부모님께 못다 한 효도를 하고 있습니다. 제 삶의 새로운 변화와 주님과 성모님 앞에서 레지오 단원으로 봉사를 할 수 있는 힘이 바로 주님께서 주신 기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끌려오듯이, 잡혀 오듯이 시작했던 제 신앙생활이 하느님의 부르심임을 알게 되어 감사하고, 충만한 마음으로 성모님께 저의 모든 것을 의탁합니다. 주님과 성모님을 향해서는 타오르는 마음을 소중하게 간직하며 지금까지 받은 은총을 나누고 가장 낮은 자세의 레지오 단원이 될 것을 다시금 다짐합니다

[월간 성모님의 군단, 2026년 6월호, 서창범 미카엘 제주교구 노형성당 의덕의 모후 P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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