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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 나눔 글

[평신도의 글]죽어야 산다

작성자아우구스티노|작성시간07.06.22|조회수14 목록 댓글 0

죽어야 산다.

 

 

사실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여러분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적마다

주님의 죽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1코린 11,26)


얼마 전, 아직은 젊은 나이의 남동생을 멀리 떠나보냈다.

생전, 핍진한 날들이 더 많아서인지 가슴이 무척 쓰라렸다. 군 입대를 앞둔 아들을 돕기 위해

동분서주하다가 갑자기 쓰러진 후 6개월여의 투병기간은 환자도 보호자도 차마 견디기 어려운

나날이었다. 해가 바뀌어 차도를 보였는데 결국 남동생은 중환자실과 일반병실을 오고가다가

하느님 곁으로 갔다. 부음을 듣던 날 차창밖엔 벚꽃이, 목련이 환하게 피어 있었고,

일찍 핀 꽃들은 한쪽에서 바람에 후루루 지고 있었다.


봄날, 아프게 꽃이 피고 있다/ 오늘, 네가 지고 있다/…/ 아파, 아파…하며/ 몸의 일부가

네게서 떠날 때/ 꽃잎도 그냥 지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누군가 꽃을 보면서/

저건 눈물이야/ 저건 슬픔이야/ 할 때도 네가 피어 있는 동안에는/ 그게 눈물이었는 줄/

그게 슬픔이었는 줄/ 나는 몰랐다…/후루루 봄이 진다/후루루 네가 진다…

(시-봄날, 지다<부분>)


남동생을 잃은 슬픔을 누를 길 없어 쓴 이 글은 장례미사 때 신부님이 낭송한 후, 곱게 접어서

남동생과 함께 묻었다. 아버지가 쓰러진 것이 자신의 탓이라고 굳게 여긴 조카는 병상에서

장례식 때까지 눈물 한 번 흘리지 않고 끝까지 묵묵부답이었다.

그 조카에게 위로랍시고 한 말이 ‘아버지가 너와 함께 한 시간보다 고모와 함께 한 시간이

훨씬 길었다’였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그 애가 고모의 쓰린 속내를 잘 이해했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사실 ‘너무 슬퍼하지 말자.

누구나 그 길을 가는 것인데 네 아버지가 조금 빨리 갔을 뿐이야.’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 순간 그 애에겐 그 어떤 위로의 말도 소용없을 것이었다. 자신에게 몰아친 폭풍을

어른스럽게 잘 견뎌내고 있다는 것, 네가 직면한 슬픔을 고모도 충분히 겪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을 뿐이었다.


생명이란 무엇일까. 남동생이 병상에 누워있을 때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신부님이

병자성사 후 환자에게 번번이 성체를 영하려 했지만 결국 그러지 못했다.

목에 구멍을 뚫고 산소호흡기가 연결되었기 때문이다. 비록 성체를 영하지 못했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알아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은총을 받았다는 그 말씀,

죽음을 통하지 않고서 우리가 원하는 생명을 얻을 수 없음을

오늘, 성체성혈 대축일에 다시 한 번 묵상해 본다.

 

박해림 아녜스(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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