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걸어 본 적이 없는 그런 길은 없다.
“아무리 어둡고 험난한 길이라도 나 이전에 누군가는 이 길을 지나갔을 것이고,
아무리 가파른 고갯길이라도 나 이전에 누군가는 이 길을 통과했을 것이다.
아무도 걸어 본 적이 없는 그런 길은 없다.
어둡고 험난한 이 세월이 비슷한 여행을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도움과 위로를 줄 수 있기를.”
베드로시안의 ‘그런 길은 없다.’라는 글입니다. 이분의 글처럼 우리가 걸어가는 길은 이미 누군가가 걸어간 길입니다. 길이 아니었던 곳이 한 사람의 발걸음, 또 한 사람의 발걸음에 닦이고 또 닦이어 우리가 쉽게 걸어갈 수 있는 길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길을 잃지 않고 안전하게 걸어갈 수 있는 표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우리가 그 길을 걸어갑니다. 우리 다음으로 걸을 사람들을 위해 우리도 그 길을 걸어갑니다. 그들이 신뢰할 수 있고, 안전하게 걸어갈 수 있도록 우리도 그 길을 걸어갑니다. 우리 뒤를 이어 걸을 사람들을 위해 더 넓고 평평하게 다지면서 걸어갑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 14,6) 우리에 앞서 수많은 사람이 이 복음 말씀에 따라 예수님의 길을 따라갔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쉽지 않은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순교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굳은 믿음과 피 덕분에 힘들고 고된 그 길이, 물론 아직 그렇게 쉬운 길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보다는 더 평탄하고 안전한 길이 되었고, 우리는 그 길을 걸어갑니다. 신앙생활을 합니다. 하느님의 생명에 다가가고 있습니다.
하느님께로 가는 그 험난한 길은 예수님께서 가장 먼저 걸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다음으로 제자들 그리고 수많은 신앙의 선배들 그리고 지금 우리가 걸어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수많은 순교자의 피와 신앙 선배들의 노력으로 인해 우리는 지금 더욱더 쉽고, 안전하게, 평화롭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작은 힘듦에도 쉽게 불평하고 신앙을 포기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삶을 본받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렇습니까? 첫머리에 읽어드린 글처럼 우리가 걷고 있는 이 길, 험난하고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이 길은 이미 누군가가 앞서 걸어간 길입니다. 그것도 우리보다 더 힘들게 걸어간 자리입니다. 그리고 이 길을 걸은 이들은 이미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마련하신 그곳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렇다면 힘들긴 하겠지만 전보다는 그래도 덜 힘들게 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결코 불가능한 길은 아니지 않습니까?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요한 14,2)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거처할 곳이 아직 남아있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누구든지 올 수 있는 곳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가야지요? 갈 수 있지요? 예수님께서 오라 하면 가야지요?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수많은 신앙선배들이 만들어 놓은 그 길을 보고 우리가 희망을 가지듯이, 우리 신앙의 후배들도 우리가 걸어간 그 길을 보며 희망을 가지도록 해야 합니다.
“아무도 걸어 본 적이 없는 그런 길은 없다.”
부산 바다의 별 레지아 평의회 훈화(2026.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