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희 정승의 아들 훈육법

작성시간18.02.28|조회수23 목록 댓글 0

황희 정승의 아들 훈육법





청백리로 알려진 황희 정승 묘(파주시)


조선 초기의 명재상이었던 황희 정승은

8년간이나 영의정을 지냈지만 인품이 원만하고

청렴결백하여 청백리로 불렸다.


황희 정승의 아들 중에는

술을 지나치게 좋아하는 아들이 있었고,

그 아들은 늘 근심거리였다.

여러 번 훈계도 하고 때로는 매도 들었지만

아들의 버릇은 고쳐지지 않았다.


황희 정승은

무언가 방법을 달리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느 날

황희 정승은 술을 마시러 나간 아들을

밤늦게까지 마당에 서서 기다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황희 정승의 어깨에 밤이슬이 내려

옷이 축축해질 무렵 술에 취한 아들이

비틀거리며 대문으로 들어섰다.


이것을 본 황희 정승은 아들 앞으로 다가가

정중하게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어서 오십시오.”


술에 취해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몰라보던 아들이

인사를 건네는 사람이 낯설지가 않아

자세히 들여다보다 순간 술이 확 깼다.


아버님 왜 이러십니까?”


황희는 여전히

정중하게 예를 갖추어 아들에게 말했다


무릇 자식이 아비의 말을 듣지 않으면 내 집안의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자식이 아니라 내 집에 들어온 손님이 되지요.

내 집에 찾아온 손님을 정중하게 맞이하는 것은

예의인 즉

저는 손님을 맞고 있을 뿐입니다.”


그 뒤로 황희 정승의 아들은

옳지 못한 버릇을 고치고

아버지 못지않은 청백리 선비의 자세로

학문에 정진했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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