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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가치 (서울대 합격자 생활수기 공모중에서)

작성자본묵(本默)|작성시간11.09.17|조회수292 목록 댓글 5

 

감동적인 생활수기 당선작 - 서울대학교
자연의 다양함과 같이 인간의 삶도 다양하지만
너무도 감명 깊은 글이기에..
^ 서울대학교 합격자 생활수기 공모에서^
실밥이 뜯어진 운동화
지퍼가 고장난 검은 가방 그리고 색바랜 옷…
내가 가진 것 중에 헤지고 낡아도 창피하지
않은 것은 오직 책과 영어사전 뿐이다.
집안 형편이 너무 어려워 학원수강료를 내지 못했던 나는
칠판을 지우고 물걸레질을 하는등의 
허드렛일을 하며 강의를 들었다.
수업이 끝나면 지우개를들고 이교실 저교실 바쁘게
옮겨 다녀야 했고, 수업이 시작되면 머리가 하얗게
분필가루를 뒤집어 쓴 채 맨 앞자리에 앉아 열심히 공부했다.
엄마를 닮아 숫기가 없는 나는 
오른쪽 다리를 심하게 절고 있는 소아마비이다.
하지만 난 결코 움츠리지 않았다.
오히려 내 가슴속에선 앞날에 대한 희망이 
고등어 등짝처럼 싱싱하게 살아 움직였다.
짧은 오른쪽 다리 때문에 뒤뚱뒤뚱 걸어 다니며,
가을에 입던 홑 잠바를 한겨울 까지 입어야 하는
가난 속에서도 나는 이를 악물고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그러던 추운 어느 겨울 날, 책 살 돈이 필요 했던 나는 
엄마가 생선을 팔고 있는 시장에 찾아 갔다.
그런데  몇 걸음뒤에서 엄마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차마 더 이상 엄마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눈물을 참으며 그냥 돌아서야 했다.
엄마는 낡은 목도리를 머리까지 칭칭감고,
질척이는 시장 바닥의 좌판에 돌아앉아
김치 하나로 차가운 도시락을 먹고 계셨던 것이다.
그날 밤 나는 졸음을 깨려고 몇 번이고 머리를
책상에 부딫혀 가며 밤새워 가며 공부했다.
가엾은 나의 엄마를 위해서………,
내가  어릴 적에 아버지가 돌아 가신 뒤
엄마는 형과 나, 두아들을 힘겹게 키우셨다.
형은 불행이도 나와 같은 장애인이다.
중증 뇌성마비인 형은 심한 언어장애 때문에
말 한마디를 하려면 얼굴전체가 뒤틀려
무서운 느낌마저 들 정도이다.
그러나 형은 엄마가 잘 아는 과일 도매상에서
리어카로 과일 상자를 나르며 어려운
집안 살림을 도왔다.
그런 형을 생각하며 나는 더욱 이를 악물고 공부했다.
그 뒤 시간이 흘러 그토록 바라던
서울대 합격하던 날,
나는 합격통지서를 들고 제일먼저 엄마가 계신
시장으로 달려 갔다.
그 날도 엄마는 좌판을 등지고 앉아
꾸역꾸역 찬밥을 드시고 있었다.
그때 나는 엄마에게 다가가 등 뒤에서
엄마의 지친 어깨를 힘 껏 안아 드렸다. 
"엄마, 엄마…… , 나 합격 했어….."
나는 눈물 때문에 더 이상 엄마의 얼굴을 볼수가 없었다.
엄마도 드시던 밥을 채 삼키지 못하고
하염업이 눈물을 흘리며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시장 골목에서
한참동안 나를 꼬옥 안아 주셨다.
그 날 엄마는 찾아오는 단골손님들에게
함지박ㄷ 가득 담겨있는 생선들을 돈도 받지 않고
모두 내주셨다.
그리고 형은  자신이 끌고 다니는 리어카에
나를 태운뒤 . 입고 있던 잠바를 벗어 내게 입혀주고는
알아들을수 없는 말로 나를 자랑하며
시장을 몇바퀴나 돌았다.
그때 나는 시퍼렇게 얼어있던 형의 얼굴에서
기쁨의 눈물이 흘러 내리는 것을 보았다.
그날 저녘, 시장 한 구석에 있는 순대국밥 집에서 
우리가족 셋은 오랜만에 함께 밥을 먹었다.
엄마는 지나간 모진 세월의 슬픔이 북받치셧는지
국밥 한 그릇을 다 들지 못하셨다.
그저 색 바랜 국방색 전대로 눈물만 찍으며 
돌아가신 아버지 얘기를 꺼냈다.
 너희 아버지가 살아 있다면 기뻐했을 텐데……..,
너희들은 아버지를 이해해야 한다.
원래 심성은 고운 분이다.
그토록 모질게 엄마를 때릴 만큼 독한
사람은 아니었어.
계속되는 사업 실패와 지겨운 가난 때문에
매일 술로 사셨던 거야
그리고 할 말은 아니지만…..,
하나도 아닌 둘씩이나 몸이 성치 않은 자식을 
둔 애비 심정이 오죽했겠냐?
내일은 아침 일찍 아버지께 기봐야겠다
가서 이 기쁜 소식을 얼른 알려야지.'
내가 어릴 때  부모님은 자주 다투셨는데,
늘 술에 취해 있던 아버지는 하루가 멀다하고 
우리들 앞에서 엄마를 때렸다.
그러다가 하루 종일 겨울비가 내리던 어느 날
아버지는 아내와 자식들에 대한 죄책감으로
유서 한 장만 달랑 남긴채 끝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고등학교 졸업식 날, 
나는 우등상을 받기 위해 단상위로 올라가다가 
중심에 흔들리는 바람에 
그저 계단 중간에서 넘어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움직이지 못할 만큼 온 몸이 아팠다. 
그때 부리나케 달려오신 엄마가 눈물을 글썽이며
얼른 나를 일으켜 세우셨다.
잠시뒤 나는 흙 묻은 교복을 털어주시는 
엄마를 힘껏 안았고 그순간,
내 등뒤로 많은 사람들의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컵라면으로 배를 채우기 위해 매점에 들렀는데
여학생들이 여럿 앉아 있었다.
그날따라 절룩거리며 그들 앞을 걸어갈 자신이 없었다.
구석에 앉아 컵라면을 먹고 있는 내 모습이
측은 해 보일까바,
그래서 혹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올까봐
주머니속의 동전만 만지작 거리다가 그냥 열람실로 돌아왔다.
그리곤 흰 연습장위에 이렇게 적었다.
어둠은 내릴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어둠에서 다시 밝아질 것이다.'
이제 내게남은 건 굽이굽이 고개 넘어
풀꽃과 함께 누워계신 내 아버지를 용서하고,
지루한 어둠 속에서 꽃등처럼 환히 나를 깨어 준
엄마와 형에게 사랑을 되갚는 일이다.
지금 형은 집안일을 도우면서
대학 진학을 목표로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아무리 피곤해도 하루 한시간 씩
큰 소리로 더듬더듬 책을 읽어가며
좀처럼 나아 지지않는  발음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은 채.
오늘도 나는 온종일 형을 도와 과일 상자를
나르고 밤이 되서야 일을 마쳤다.
그리고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어두운 창밖을 바라보며
문득 앙드레 말로의 말을 떠올렸다.
"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 간다."는 
너무도 아름다운 말이다.
***** 위의 글은 10년 전 서울대학교 합격자 
생활수기 공모에서 고른 글이다.
그 후 이 학생은  우수한 성적으로 공부하여
지금은 미국에서 우주항공을 전공하여
박사과정에 있으며
국내의 굴지 기업에서 전부 뒷바라지를 하고 있고
어머니와 형을 모두 미국으로 모시고 가서
함께 공부하면서 가족들을 보살핀다고 한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힘들고 고통스러울 적에
올라가던 암벽에서 생명줄인 밧줄을 놓아 버리고
싶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요즘 우리사람들은 사랑이나 행복. 성공을
너무 쉽게 얻으려고 하고
노력도 해보기도 전에 너무도 쉽게 포기하려고 한다.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서 아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이런 글에서 배워야 하리라.
(좋은 글 중에서)
가난과 장애 그리고 사회적 편견을 오직
가족에 대한 사랑으로 아름답게 승화시킨
아름다운 생활수기입니다
회원 여러분 항상 힘내시고
건강하십시요
2011. 9월       本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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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ㅁ금정미 | 작성시간 11.09.17 고맙습니다()
  • 작성자법등명 | 작성시간 11.09.18 눈물이 나네요. 우리들의 자녀가 다 공부에 임하고 있음에 도움되는글 감사드립니다. 저도 우리 사랑하는 인혜도 힘내라고 꿈을 향해 최선을 다해주길 바라며 이글 전할겁니다.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 작성자바다새 | 작성시간 11.09.18 _()_
  • 작성자바가지 | 작성시간 11.09.18 옴 아비라 훔 캄 스바하
  • 작성자자광 | 작성시간 11.09.19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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