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제 탁발(臨濟托鉢)
사람 사람의 이마 위에 큰 광명(光明)을 놓으니
옛적에도 빛났고 이제에도 빛남이로다.
좌지우지(左之右之)에 한 진리를 더하니
다시 허다한 한가한 일이 있음이로다.
한가한 일이 있음이여!
해운대 앞바다의 저녁노을은 볼수록 아름답구나.
어째서 해운대 앞바다의 저녁노을은 볼수록 아름답다고 하느냐?
이 한 마디의 심심(深深)한 뜻을 알 것 같으면, 모든 부처님과 역대 도인과 더불어 무수 억겁토록 부처님 국토에서 진리의 낙을 누리겠거니와, 만약 여기에서 주저하고 우물쭈물하면 부처님 국토와는 멀고 먼 십만 팔천 리 밖에서 헤매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 한 마디를 당하(當下)에 알아차리지 못할 것 같으면, 각자 참구하는 화두를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는 것과 같은 급한 생각으로 참구(參究)하고 참구해서 결단코 자기사(自己事)를 밝혀야 한다.
그래야만 스님네는 중노릇한 본의(本義)가 살고, 재가(在家) 불자님네 또한 이 법을 만난 의미가 있지 않겠는가.
임제(臨濟) 선사께서 발우(鉢盂)를 들고 탁발(托鉢)을 하시는데, 어느 집 문전(門前)에 이르러 탁발왔다고 하시니, 한 노파가 문을 열고 대뜸 소리를 질렀다.
“이 염치없는 중아!”
그러자 임제 선사께서 말씀하시기를,
“한 푼의 시주도 하지 않고서 어찌 염치없다 하는고?”
하니, 노파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문을 왈칵 닫고 집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여기에서 임제 선사께서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돌아가셨다.
알겠는가?
만약 임제 선사께서 노파가 문을 닫을 적에 한 마디 이르셨더라면 문전박대를 면했을 것이다.
그러면 임제 선사는 번갯불보다도 빠르고 돌불보다도 빠른 기봉(機鋒)을 갖춘 위대한 도인이신데, 노파가 대문을 닫고 들어가 버리는 데서는 왜 한 마디도 못 하고 걸음을 돌리셨느냐?
대중아, 임제 선사를 대신하여 한 마디 일러 보라.
[대중이 아무 말 없자 이르시기를,]
三十年來弄馬騎(삼십년래농마기)
今日却被驢子撲(금일각피여자박)
삼십 년 동안 당나귀를 타고 희롱해왔더니
금일에 당나귀에게 한 번 들어받힘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