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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유 게 시 판 ┃

붕어빵과 스님

작성자어질이|작성시간05.01.24|조회수134 목록 댓글 2

 

 

일주문 계단 앞 양옆에는 원숭이 석상 한 쌍이 있어 승보종찰 송광사를 찾는 이들을 무언無言의 법문으로 반기고 있다. 이제는 많이 마모되어 언뜻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기도 하지만 자세히 바라보면 무언가를 간절히 기원하는 듯 가지런히 한 채 귀를 쫑긋거리고 있다. 그 모습이 정겨운 탓에 나는 가끔 포행길이나 새벽 청소길 또는 서점으로 가는 길이면 원숭이 머리를 쓸어보는 것으로 답례를 하기도 한다. 옛날 어느 조사스님의 법문을 저리도 절실히 염원하여 일주문 앞의 돌조각이 되었는가. 아마도 지금쯤 보살의 경지에 올라 어느 국토에선가 오탁의 세상에 시달리는 뭇 중생들을 제도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오늘도 원숭이상의 머리를 쓰다듬다 송광사를 찾아 일주문을 들어서는 신도님들의 행렬을 바라다보니 시간의 흐름 속에 잊혀졌던 얼굴이 하나 불현듯 떠오른다.
얼굴, 그 안타까움으로 가득하던 얼굴!


치문반 때였으리라. 그 때 강원에 처음 입방하여 윗반 스님들의 경책이 서릿발같이 엄격하여 일정한 일주문 반경 속에서 벗어나기란 꿈도 꾸어볼 수 없던 시절, 이제 막 사미계를 받고 스님으로서의 위의를 옷깃 하나하나에도 간직하며, 행위 하나하나에 출가사문의 의미를 부여하던 초발심학인의 그 때를 기억한다.

 

그 해 가을, 제법 쌀쌀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던 어느 날, 나는 소임 때문에 순천으로 외출을 했고,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두 얼굴을 마주치게 되었다. 그날 정해진 시간에 쫓겨 바쁘게 소임을 마치고 송광사로 돌아오기 위해 순천대학 맞은편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중, 내 시야에 도로 한켠에서 붕어빵을 굽고 있는 아주머니 한 분이 들어왔다.

 

그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한 붕어빵장사인 듯했으나 찬찬히 시야에 들어온 화사한 분위기도 그랬으며, 손가락에 튀는 기름을 참으려는 듯 홍조 띤 얼굴에 방울방울 땀방울이 배어가며 애를 쓰는 모습은 어설픔을 더해 안쓰럽게까지 보여졌다. 나이는 30대 중후반쯤 되었을까.
아주머니의 손놀림을 지켜보는 내가 멋적었던지 아주머니가 먼저 말을 붙여왔다. “스님은 어느 절에 계세요?” “네, 송광사에 있습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나는 말을 이었다. “보살님은 왠지 좀 어색합니다.

 

그러니까, 이런 장사에는 … ….” 말을 잇지 못하는 나를 보고 살포시 미소짓던 그 아주머니는 신념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생각을 고쳐먹기 나름이에요! 그러면 무엇이든 할 수 있어요. 스님께서도 생각을 바르게 하기 위해 수행하고 있는 것 아니에요?” 말을 마친 아주머니는 부끄러운 말을 했다는 듯 볼이 발그스름하게 상기되었다. 그리고 내가 미처 답변을 못하고 엉거주춤할 그 때 버스가 도착했다. 버스를 타고 송광사로 돌아오는 내내 차창 밖에서 아주머니가 한 말이 선지식의 법문인 양 또렷하게 들려왔다.
‘생각을 고쳐먹기 나름이다. 그러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상념에 젖다보니 한 시간이 언제 흐른지 모르게 송광사 앞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려 매표소로 올라오다보니 그날따라 못 보던 붕어빵장사 한 분이 이 곳에도 자리하고 있는 게 아닌가.
평소에는 눈에 보이지 않던 광경이었다. 아니 그 이후에도 나는 그 때 그 근처에서 붕어빵장사를 본 적이 없다. 어쨌든 대수롭지 않게 그냥 무심히 스치면서 매표소문을 바라보며 몇 걸음이나 옮겼을까, 누군가 “스님”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다보니 붕어빵장사 아주머니, 아니 할머니가 붕어빵이 가득 담긴 봉지 하나를 나를 향해 건네고 있었다.
“스님, 이것 좀 드셔보실래요.”


할머니는 밀가루 반죽과 기름으로 범벅이 된 검고 주름진 손으로 드문드문 빠진 이가 보이는 입을 애써 가리려는 듯한 자세로 계면쩍은 듯 나에게 봉지를 내밀고 있었다. 오가는 사람들도 한적하고 그나마도 타고 있던 숯불마저 떨어져가는 화로 위 좌판에는 언제부터 구워냈는지 모를 붕어빵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순간 나는 멈칫한 것 같다. 이어 가볍게 미소로 거절하고 매표소문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일주문이 보이는 10분 남짓 거리를 걸으며 내내 ‘한 생각 바로하기’만을 생각했다. 마침 내 발이 일주문을 넘어서는 순간, 그 순간 나는 그 자리에 굳은 듯 멈춰서고 말았다.

 

일주문 안에는 언제인지 모르게 먼저 달려온 할머니가 거칠어진 손과 안타까운 얼굴로 붕어빵을 들고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 - ! 나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나왔다. 그날 할머니는 하루종일 그 자리에서 붕어빵을 구웠으리라. 집에는 실직한 아들과 사위가 어린 손주들을 맡기고 어디론가 떠났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린 손주들은 붕어빵 판 돈을 한줌 손에 쥐고 올 할머니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리라. 장사를 안해 본 할머니는 생각했으리라. 절집 앞에는 아직도 인정이 남아 누군가 팔아 주는 사람이 있으리라. 그러나 화로 위에는 구워낸 붕어빵만이 쌓여가고, 할머니는 생각했으리라. 스님들께 보시를 하면 복을 받을 수 있으리라고. 마침 스님이 지나가고 할머니는 어렵게 손을 내밀었고, 그리고는 거절당했으리라. 나는 부끄러워 애써 몸을 돌렸다. 그러나 이미 시간이 늦었다. 곧이어 저녁공양시간이었고, 일주문을 들어선 나는 이미 짜여진 일상으로 돌아온 굴레를 벗어날 수 없는 몸이었다.


그 후로 나는 요즘도 가끔 포행길에 시간이 나면 매표소까지 내려가 누군가를 기다리는 시선으로 멀리 밖을 기웃거려본다. 혹 기억 속의 얼굴을 만날 수 있을까 해서이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진정한 보시는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보시한 이에게 복을 심어 줄 만한 복밭(福田)이 될 수 있는지 곰곰이 생각한다.

 

매일 새벽예불 때마다 낭송하는 금강경에서는, 상相에 머무름이 없는 보시를 제일가는 공덕으로 삼고, 시방十方국토의 모든 보살들은 끝없는 보시를 베풀면서도 보시로 인한 복된 과보에 집착함이 없기에 참으로 복덕을 얻는다고 한다.

 

그러므로 참다운 보시를 하려면 보시를 베풀면서 어떤 대가를 바라서는 안 되며 보시를 받음에 있어서도 시주자의 땀과 정성어린 마음을 간절히 생각할 때에야 비로소 보시한 사람의 복밭이 될 수 있는 것이리라. 그 때 일주문까지 따라온 할머니의 붕어빵 보시를 끝내 받지 못한 것은 아직은 내마음 한 구석에 남의 복밭이 될 만한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리라.

 
어느새 포행길 발걸음은 일주문 앞에 이르고, 나는 계단을 오르는 길에 원숭이 석상에 뿌옇게 쌓인 먼지를 쓸어내리며 그 때의 그 안타까웠던 얼굴들을 다시금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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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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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보현인 | 작성시간 05.01.24 언젠가 읽었든' 수행이 잘 안되면 복을 지어라.' 그렇습니다. 보시란 몰래 해야 그 본래의 빛을 발하니까요!_()_
  • 작성자해포륜 | 작성시간 05.01.24 보시의 형태가 정말 다양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의 복밭이 되어야 한다는 한마디 말로 그 어떤 부분을 완전하게 다 설명해버리게 하는군요. 한수 가 아니고 두수 세수를 내다보고,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야겠다는 마음이 들게 하는 글이었습니다. 깊이 간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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