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우리 인간 가운데 원래 갖추고 있는 무한한 공덕, 무한의 환희(幻戱)신 - 그런 무한의 공덕 때문에 부처님 이름을 다보여래(多寶如來)라!
많을 다(多)자, 보배 보(寶)자, 다보여래라. 그 보배가 하도 많으므로 다보여래라 했습니다.
또는 부처님의 몸이 한도 끝도 없이 넓어서 우주를 다 포섭하니까 그때는 광박신여래(廣博身如來)라!
또한 부처님의 공덕이 하도 환희로워서 어떻게 가눌 수가 없어 그때는 환희광불(歡喜光佛)이라!
또는 환희장마니보적불(歡喜藏摩尼寶積佛)이란 말입니다.
환희는 내내야 이것은 마음도 몸도 한없이 기쁜 것이 환희 아닙니까.
환희장마니보적불(歡喜藏摩尼寶積佛)이라!
그 환희가 충만해 있단 말입니다.
우리 자성공덕(自性功德), 우리 불심(佛心)은 그와 같이 환희심(歡喜心)쪽으로 보나 또는 공덕이 많은 보배로운 쪽으로 보나 무한합니다.
또는 행복(幸福)이 충만한 자리 또는 광명(光明)이 충만하니까 그때는 무량광불(無量光佛)이란 말입니다.
또는 청정하니까 그때는 청정광불(淸淨光佛)이라.
이와 같이 우리 자성, 우리 본래면목은 한이 없어 어떻게 그 공덕이나 행복을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조금도 체험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부처님의 경론(經論) 따라서 이런 행복스러운 자성(自性) 자리, 자기 본래면목(本來面目) 자리를 우리가 상기하고 다시 되새기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신명(身命)을 내걸고, 한 세상 어차피 살다가는, 세상을 다른 길로 안 떨어지고, 이런 환희심이 충만하고 또는 영생할 수가 있고 무한한 공덕을 발휘할 수 있는 부처님 자리, 이 자리를 안 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행복스러운 자리라 하더라도 우리가 과거세(過去世)에 지은 나쁜 버릇 때문에, 또 금생(今生)에 지은 버릇 때문에 단박에는 성불을 못합니다.
그래서 성불하는 과정을 이와 같이 네 가지 깨달은 경계로 구분했습니다.
본각(本覺)이라.
이것은 본래 우리가 불성을 다 갖추고 있단 말입니다.
공부를 조금만 안한다 하더라도 준준무지(蠢蠢無知)한 무식자(無識者)라 하더라도, 어떠한 존재나 모두가 다 본각을 갖추고 있습니다.
즉 말하자면 자성 청정심(淸淨心)이라 또는 본원각성(本源覺性)이라.
어떤 존재나 본각(本覺)을 갖추고 있습니다.
따라서 본각적인 차원에서는 모두가 성불(成佛)해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보리수하(菩提樹下) 성도(成道)하실 적에 모든 존재가 다 본각, 모든 것이 다 부처구나.
이와 같이 바로 보셨단 말입니다.
불안청정(佛眼淸淨)한 안목으로 보셨으니까 그와 같이 바로 보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본각은 누구나 갖추고 있지만 우리 중생(衆生)은 볼 수 없는 것입니다.
본각은 있지만 닦지 않으면 우리 중생은 본각에 머물러 있는 것이지, 다시 말하면 부처님 불성이 잠재(潛在)만 돼 있지 우리가 부처의 공덕을 못 사용합니다.
그러나 부처님 가르침 따라서 공부하면 그때는 상사각(相似覺)이라, 서로 상(相)자, 닮을 사(似)자, 깨달을 각(覺)자, 비록 본각과 똑 같지는 않지만 본각에 거의 닮아 있단 말입니다.
이것을 시각(始覺)이라.
비로소 시(始)자, 깨달을 각(覺)자. 그때는 겨우 본각을 알기 시작한단 말입니다.
본각을 알기 시작할 때는 육근청정(六根淸淨)이라.
육근은 내내야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아닙니까.
우리 그런 안목이나 즉 우리 시각(視覺), 청각(聽覺), 후각(嗅覺), 미각(味覺), 촉각(觸覺) 또는 우리 의식(意識)이나 모두가 청정이 돼야만이 비로소 본각(本覺)을 어렴풋이 깨닫는 상사각(相似覺), 시각(始覺)이 되는 것입니다.
어제 밤에도 훌륭한 법사(法師)님들이 좋은 말씀을 많이 했습니다만 역시 우리 생리(生理)가 정화(淨化)가 안되면은 부처님의 깨달음은 체험(體驗)을 못합니다.
이치(理致)로야 좀 재주가 있으면 해오(解悟)는 할 수가 있지만 참다운 증오(證悟)라, 참다운 법성(法性)을 증(證)할 때는 역시 우리 생리가 정화가 돼야 하는 것입니다.
생리가 정화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하나의 도덕률(道德律), 즉 말하자면 우리가 도덕적인 계율(戒律)을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계율은 안 지키면 우리 생리가 정화가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 몸과 마음이 원래 둘이 아니기 때문에 몸이 정화가 되면 마음이 정화가 되고, 마음이 정화가 되면 몸이 정화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계율이 앞서지 않으면 설사 바른 지견(知見)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 생리가 정화가 안되어 성불을 못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육근청정이라.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의 우리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우리 의식이 그때는 청정하단 말입니다.
이렇게 청정해짐으로써 비로소 불심 가운데 들어있는 자성공덕인 본 깨달음을 맛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