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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자기를 모르니 이 몸을 끌고 다니는 주인공은 누구인가?(3)/ 경봉선사 이야기

작성자무량과|작성시간22.06.09|조회수129 목록 댓글 1

그러나 좋은 경치를 맛보긴 했지만 왠지 막막함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이뭣고'의 화두는 여전히 의심의 덩어리가 되어 캄캄한 절벽으로 남아 있질 않은가.

경봉은 다시 좌정을 하여 화두삼매에 빠져 들었다.

확철대오(確徹大悟)를 하기 전까지는 결코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위법망구의 결의가 그의 얼굴에 가득 피어올랐다.

그리고 1주일….
아니 열흘쯤 흘렀을까.

새벽 두시 반 경 바람도 잠이 든 듯 잦아든 시각에 갑자가 `파바박'하며 촛불이 크게 흔들렸다.

그 순간 경봉은 문득 세상이 열림을 맛보았으니 비로소 개안(開眼)의 경지에 다다른 것이었다.

경봉은 무릎을 치고 일어나 얼씨구나 어깨춤을 추었다.

창호지로 바른 문짝이 찢어질 만큼 호탕하게 웃어재꼈다.  

해인사 뒷산에 올라 통곡을 하며 수마와 싸우던 기억, 직지사와 금강산, 그리고 통도사 안양암에서 피나는 정진을 하며 그토록 이르고 싶었던 자성의 자리가 확연히 눈앞에 나타나 있질 않은가.

깨달음의 열락(悅樂)을 만끽한 경봉은 그 솟구치는 기쁨을 이렇게 노래했다.

내가 나를 온갖 것에서 찾았는데, 눈앞에 바로 주인공이 나타났네.
허허 이제 만나 의혹 없으니 우담발화 꽃빛이 온 누리에 흐르네.

아시방오물물두(我是訪吾物物頭)
목전즉견주인누(目前卽見主人樓)
아아봉착무의혹(阿阿逢着無疑惑)
우발화광법계류(優鉢花光法界流)

경봉의 깨침은 여느 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의문에 가득 찬 자기 자신을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벼랑 끝까지 몰고 간 끝에 생생하게 확인한 체험견성, 그의 견성은 자기를 관념적으로 확인하는데 그친 것이 아닌, 한 점 의혹도 남아 있지 않은 깨달음이었으니 마침내 조사선의(祖師禪義)를 체득한 것이었다.

화두 하나만 붙잡고 치열한 선정삼매에 드는 선승들과는 달리 경봉은 참선을 수행의 중심으로 삼되 경전 공부와 염불, 또 선승들이 기피하는 주지직과 포교사의 역할까지 기꺼이 맡았던 대승보살이기도 했다.

한 마디로 위로는 완전한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하는[上求菩提 下化衆生] 모범적인 삶의 궤적을 보여 준 것이다.

확철대오를 이룬 후 경봉은 마음속에 있는 또 하나의 경봉, 즉 진짜 주인공과 수시로 문답시(問答詩) 형식의 태평가를 부르며 깨달음의 경지를 거듭거듭 확인하는데 추호의 게으름이 없었다.

쯧쯧 무정한 나의 주인공아 이제사 만나다니 어찌 이리 늦었노? 하하 우습다.
내가 그대 집 속에 있었건만그대 눈이 밝지 못해 늦었을 뿐이네.”

이처럼 경봉은 단순히 주인공을 깨달아 아는데서 그치지 않았다.

주인공과 하나가 되어 마음대로 활용하는 경지를 만끽했다.

그의 태평가는 그대로가 자유롭고 걸림없는 도인의 노래였다.

모든 번뇌의 적을 물리치고 주인공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며 걸림없이 사는 도인의 경지.
그가 경영한 90여년의 생애는 무애의 경지를 노니는 불보살의 삶에 다름 아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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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성주(聖住) | 작성시간 22.06.09 옴 아비라 훔 캄 스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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