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그 정법을 믿는 그러헌 아주 선량한 사람이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갖다가 오해를 해가지고
묘략을... 무고를 해가지고 그 사람이 잽혀갔습니다.
잽혀가서 참 죽도록 뚜르러 맞을 판인데,
그 사람이 그 장사한테
그 빌기를
참 나는 참 정법을 믿는 사람입니다.
내가 절대로 그러헌 악한 일을 헐 리가 있겠습니까.
이건 어떤 사람이 오해를 해가지고
이렇게 이 무고로 이렇게 헌 것이니
나를 용서를 해달라고,
나를 용서를 해주고 조사를 해보면 알지 않겠느냐고”
이렇게 아주 정법을 믿는 선량한 사람이
간곡히 그렇게 말을 허니까,
그 포악한 장사도 한 점 눈물이 있었던지,
그 정법을 믿는 다는 그 말 한마디에
아프게 때리지를 않고 그 채찍이 그 사람 몸에 닿지
않도록 엄포만 놓고서 안 아프게 때려줬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다행히 죽지를 않고
혹독하게 매를 맞지 않고 잘 풀려났습니다.
그러헌 일이 있었는데,
그 매질을 혹독히 헌 그 장사가
죽어가지고 무간지옥에 떨어졌습니다.
지옥에 들어가서
그 무서운 고를 다 받고 몇 백생(을 받았는지
몇 겁을 받았는지 받고서 겨우 풀려났는데,
뭣이 되았냐 하며는축생이 되았습니다.
축생이 되아가지고
참 수없이... 육백 생 동안을 축생이 되아가지고
매를 맞았습니다.
혹독한 매질을 당하다가,
겨우 그 매질... 자기가 매질 헌 만큼 몇 백배를 이자까지 쳐서 그 보를 다 받고난 다음에사 겨우
사람이 되았는데,
평생 동안을 병고를 앓게 되았다.
“그때 그 전생에 매질을 헌 장사가
금생에 태어나가지고 저 늙은 비구가 되았느니라.
그리고 그때 선량한 백성이,
무고로 잽혀들어 가가지고 그때 그 장사한테
풀려난 사람이
바로 오늘 나다.
그때 그 장사가
내가 정법을 믿는다고 애원을 헌 그 한마디로 어떻게
마음을 돌이켜 가지고 나를 매질을 아니 하고 잘 풀어준 그 공덕으로, 그 인연(으로
오늘날
내가 손수 저 늙은, 저 고약한 냄새가 나는
저 늙은 비구를
내가 오늘 손수 더운물을 디어서 간호를 하고
이 빨래를 해주고 헌... 허게 되았느니라.
한 번 지은 죄는
생을 바꾸더라도 면허지를 못하는 것이
이와 같은 것이다.”
이렇게 대중을 위해서 이 전생의 인과를 설하셨습니다.
“최상승법을 믿는 사람은
생사를 초월을 하고 일대사문제를 해결해서...
허기 때문에 이 천칠백 공안 공안법문이나 필요허지
인과설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
거 뭐 인과설,
잔소리만 많이 하고 무슨 그러헌 소리가 필요허냐?
간단한 법문한마디면 족하지 무슨 그런 너저분한
인과설을 허느냐?“
이렇게 이 공격을 허고
나를 갖다가 비난을 허는...
나에게 충고를 허는 그러헌 분이 계셔서,
내 마음으로 “참 옳은 말씀이요.
나한테 직접 그런 말을 해주어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 이렇게 말을 허고서,
참 그 좋은 말씀을
내가 깊이 참작을 하겠습니다” 했는데,
허고서도 나는 또 오늘 올라와서 또 이런 인과설을
말하게 됩니다.
아까도 말씀 드린바와 같이
방편을 가자허지 아니하면 바른 법을 표현허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거울을 보지 아니허면
내가 내 눈은 볼 수가 없는 것이여.
내 눈은
청황적백 온갖 것을 다 보지만,
눈 자체는 눈이 자기가 자기 눈을 볼 수가 없어.
거울이나 거울의 대용품을 가자허지 않고서는
자기의 눈이 어떻다고 허는 것을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발심을 해서 수행을 허고 정법을 믿고
활구참선을 헌다 하더라도,
내가 나의 모습을 보기는 대단히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다 부처님 경전에 나오는 수 팔만사천가지의
그 방편설을 가끔 하나씩을 들어서
그것을 살펴봄으로써
자기의 마음가짐과
자기의 말씨와
자기의 행동과
자기의 인간성과
자기의 행동거지를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지혜 있는 집 며느리는
이웃집, 담 너머 이웃집 며느리 허는 것을 보고 거기서
자기를 깨닫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경전에 있는 이런 방편설을 하나씩을 보며는
참 자기를 반성헐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성현도 자기 허물을 보기가 어렵다’는 말도 있는데,
자기 허물을 볼 줄 알아야
그것을 성현이라 하는 것입니다.
범부는
평생 남의 허물만 보고 자기허물을 못 보는 것이고,
성현이라야 남의 허물을 통해서 자기를 보는 거여.
남의 허물 보기 전에 먼저 자기허물을 보게 되고,
남의 허물이 바로 자기허물인 줄을 아는 사람은
이것이 바로 성현이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