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상에 올라 잠시 침묵 후 주장자를 들어 보이시고)
시회 대중은 아시겠습니까?
(주장자를 들어 보인 후 세우시고)
進一步 高一步 (진일보 고일보)
踏到上頭 全身獨露(답도상두 전신독로)
한 걸음 나아가고 더 높이 올라가서
꼭대기에 발을 딛으니 온몸이 뚜렷이 드러나도다.
(주장자를 내려 놓으시고)
須彌燈王過那邊去(수미등왕과나변거)
수미등왕불이 일체 모든 곳을 쓸고 지나가도다.
進一步 高一步(진일보 고일보)라.
한 걸음에 최고 상봉에 오르게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중생은 근기가 미약해서 첫 생각부터 그렇게 생각을 안 합니다. 여러분이 불교에 첫 발을 내딛어서 절에 들어올 때 바로 최상봉을 뛰어오르는 그런 생각부터 내야 되는 겁니다.
믿음 자체도 그런 마음 자세로 와야 되는데, 여러분은 첫 발을 내디딜 때 천지현격이라, 그런 건 생각조차도 안 하고 첫 걸음이 어긋났다는 겁니다.
일생 동안을 절 문턱을 닳도록 다닌다 해도, 상상봉은 그만두고 점점 멀어져 뒤로 퇴보되어 간다는 말입니다.
처음 생각이 잘못됐거든요. 첫걸음 내딛는 그 자세부터 어긋난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절에 조금 다니다가 안 와버려요. 저 10만8천리로 거리가 멀어서 딴 데로 가버려요. 이래서 안 된다는 것이거든요.
처음 생각 자체가 확실한 마음으로 최고 높은 봉우리를 한 발로 뛰어서 오른다는 것입니다..
아주 중요한 이 시간에도 이 산승의 말을 안 듣고 딴 데 보고 딴 생각을 하고 있는 분도 있습니다.
이 산승이 말하는 걸 여러분이 일심으로 들어줘야지, '우리는 그렇게 안 된다. 우리는 여기 와서 앉아 있어 봐야 지금 스님이 말하는 거하고는 관계 없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그 사람은 안 되는 것입니다.
이 말씀 드리는 도리를 여러분이 심도 있게 깊이 들어 놓아야 여러분의 마음밭에 올바로 뛰어날 수 있는 최상의 일구법문의 진리가 비로소 쏙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야 오늘 여러분이 법문 들은 인연으로 한 걸음 내딛어서 바로 상봉에 올라가는 것이 되는데, 이 순간에도 여러분이 이 법문을 안 듣고 딴 델 보고 딴 생각하고 있다면, 미륵이 56억 7천만년 후에 출현할 때까지 가도 이 사람은 무간지옥에 가서 헤매고 있을 거란 말입니다. 이 법문 시간에 법문 안 듣고 딴 생각을 한 그 죄가 수미산을 넘친다고 했단 말입니다. 이 순간에 법문을 안 듣고 다른 생각 한 사람을 잡아가는 걸 염라대왕이 제일 좋아하고, 그건 무간지옥감인 것입니다.
이 산승이 여러분에게 부처님 말씀을 해드리는 것을 잘 들어주셔야 됩니다.
이 법문을 여러분이 이 자리에서 듣고 마음에서 소화만 되면 여러분에게 억겁 동안 쌓여 있던 무명업장이 다 일시에 녹아나는 것입니다.
이 산승이 말씀드린 이 도리를 대중은 아시겠습니까? 만약 알지 못할진댄, 또 산승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終日行不曾行(종일행부증행)이라
종일토록 행했지만 일찍이 행하지 아니했고
终日坐何曾坐(종일좌하증좌)라
종일토록 앉아 있었지만 어찌 일찍이 앉았으리오.
修善不成功德(수선불성공덕)이요
선을 닦는 것이 공덕을 이루지 못함이요
造惡原無罪過(조악원무죄과)로다.
악을 지은 것이 원래는 허물이 없더라.
時人若未明心(시인약미명심)하면
이때의 사람들이 마음을 밝히지 못했으면
莫執此言亂做(막집차언난주)하라
이 말에 집착해서 어지러이 짓지 말아라.
死後須見閻王(사후수견염왕)하면
죽은 후에 염라대왕을 만나면
難免鑊湯碓磨(난면확탕대마)로다
화탕지옥과 방아로 찧는 지옥을 면하기 어려우리라.
금강경에서 "하되 한 바가 없다"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깨치지 않고는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생이 깨치지 않고서,
"나는 욕 했어도 욕한 바가 없다."
"나는 죄 지었어도 죄 지은 바가 없다."
이렇게 그걸 쓰는데, 이것이 참으로 무서운 것입니다. 했으되 한 바가 없다는 이 문제를 확실히 알아들을 수 있는 분은 금강경에 나오는 수보리 밖에는 없어요.
사념처관(四念處觀)이 있는데, 이 몸뚱이는 더러운 것이고 나중에 흩어지고 나면 해골이라고 관하는 고골관(枯骨觀), 그리고 나라는 게 없다는 무아관(無我觀)으로 해 들어가는 것이 관법이고 남방에서 하는 소승 위빠사나입니다. 중생이 근기가 미약해서 선을 가르칠 수가 없어서 중생을 끌어들이기 위한 방편선으로 그걸 가르친 겁니다.
그렇게 관법을 닦아서 무량아승지겁이 지난 뒤에 비로소 대승의 십신(十信) 초문(初門)에 들어온다고 합니다. 십신 초문은 ‘나도 부처님의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고 확신하는 믿음의 초문에 들어온 것입니다. 이 대승 초문 이전에는 전부 다 소승선이라고 합니다.
처음에 그와 같은 소승선을 중생들한테 가르쳐 나오다가, 다시 그걸 모조리 부수고 대승진리로 들어오는 문이 바로 ‘금강경’입니다.
여러분이 금강경 독경을 하려면 그렇게 돼야 되는 겁니다. 그렇게 안 된 상태에서 말로만 배워가지고 ‘나는 먹어도 먹은 바가 없다’ ‘해도 한 바가 없다’ 이렇게 하면 부처님 법을 비방하는 것이고 업을 짓는 거라 했습니다. 본인이 되지도 않는 걸 말로 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내가 며칠 전에 어떤 분한테 전화해서, "왜 절에 안 오셨습니까?“ 하니, "내가 절에 꼭 가야 할 게 뭐 있습니까? 집에서 내가 한 생각하고 앉아 있으면 되는 것이지요. 다 마음 아닙니까?“
그래서 내가 그 보살님한테 말했습니다.
"그러면 보살님은 얼마 전에 나한테 아들이 무슨 시험을 봐서 어디 취직을 해야 된다고 축원을 별도로 부탁을 하셨는데, 저한테 와서 그 부탁을 한 거는 왜 했습니까? 일체가 보살님 말씀대로 된다면, 보살님이 집에 앉아서 마음으로 '아들 시험 됐다' 이러면 척척척 다 돼 버려야 되는데, 왜 그건 안 됩니까?"
그러니까 우물우물하고 아무 말 안 하고 가만히 있어요.
그런 것이 아니거든요. 이러한 부처님 말씀을 듣고 확실히 내가 조금이라도 실천에 옮겨서 내 자신의 마음을 얼마만큼 잘 닦아서 수행해 나가느냐, 내가 부처님의 깨달음의 세계로 조금씩이라도 가까이 가느냐, 이런 것이 가장 중요한데, 이런 것을 하지 않고 말로만 배워서 일상생활에 써먹는다면 안 됩니다.
僧問香嚴 如何是道。嚴云。枯木裏龍吟。 僧云。如何是道中人。嚴云。髑髏裏眼睛。
향엄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묻기를,
"어떤 것이 도(道)입니까?“
[ ※도(道): 인생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길 ]
"고목나무 속에서 용이 운다."
"어떤 것이 길(道) 가운데 사람입니까?"
"해골 속의 눈동자가 맑다."
이런 말이 여기 오신 여러분에게 꼭 필요한 말입니다. 이렇게 돼야 비로소 여러분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무엇에 의지하고 무엇을 바라고 할 것이 없는 완전한 인격자가 되는 것입니다.
僧後問石霜。如何是枯木裏龍吟。霜云。猶帶喜在。
如何是髑髏裏眼睛。霜云。猶帶識在。
학인이 나중에 석상 스님(石霜慶諸)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고목나무속에서 용이 우는 것입니까?"오히려 기쁜 것(喜)이 남아 있다."
"어떤 것이 해골 속 눈동자가 맑은 것입니까?"
"오히려 분별(識)이 남아 있다."
여기에 조산(曹山) 선사가 송하되,
枯木龍吟真見道 (고목용음진견도)
髑髏無識眼初明 (촉루무식안초명)
喜識盡時消息盡 (희식진시소식진)
當人那辨濁中清 (당인나변탁중청)
고목 속에 용이 우니 참으로 도를 봄이요
해골이 식(識)이 없으니 눈이 처음 밝음이라
기쁨과 분별이 다할 때 소식도 다하였으니
사람이 어찌 흐린 가운데에 맑음을 가리리오.
이 법문이 참으로 여러분에게 벅차고 힘든 법문이겠지만, 앞으로 공부를 해서 이렇게 돼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지 않으면 여러분은 미래겁이 가도록 중생으로 남아서 항상 고통을 면치 못합니다.
여기 석상 선사와 관련한 공안이 있습니다.
「 구봉도건(九峰道虔)이 석상 선사의 시자로 있을 때 석상 선사가 입적했다. 그러자 다음 조실을 누구로 모시느냐는 것이 산중의 문제가 되었다. 대중이 석상 선사 희하에 있던 수좌(首座)를 청하여 선사의 뒤를 이으려고 하니, 구봉이 그 수좌를 시험하여 묻되,
“선사께서 말씀하시기를 ‘쉬어 가고 쉬어 가며, 한 생각이 만 년까지 이어가며, 찬 재와 마른 나무같이 가며, 한 가닥 흰 실같이 뻗쳐 간다(休去歇去 一念萬年去 寒灰枯木去 一條白練去).” 하셨으니 말해 보라. 어떤 일을 밝히신 것인가?’
"일색변사(一色邊亊)를 밝히신 것이니라."
[ ※ 일색변사(一色邊亊) : 천상만상 하나하나가 절대 평등하다는 뜻. 비유하자면 온 우주에 눈이 하얗게 와서 덮혀있으면 다른 빛은 볼 수 없는 그런 세계를 말함 ]
“그렇다면 선사의 뜻은 모르는 것이다.”
“네가 나를 긍정치 않는단 말이냐? 그럼 향을 가져 오너라.”
수좌가 이에 향을 피우면서 말하길,
“내가 만약 선사의 뜻을 알지 못했다면, 향 연기 일어날 때 몸을 벗고 가지 못하리라(我若不會先師意 香煙起處 脫去不得).”
이에 향연기가 일어나자마자 수좌가 좌탈을 하니, 구봉이 수좌의 등을 어루만지면서 말하되,
“서서 죽고 앉아 죽는 것은 없지 않으나, 선사의 뜻은 꿈에도 보지 못했다(坐脫立亡則不無 先師道理未夢見在).”
여기에 대해 천동 각 선사가 송하길,
石霜一宗親傳九峯 (석상일종친전구봉)
香烟脫去正脈難通 (향연탈거정맥난통)
月巢鶴作千年夢 (월소학작천년몽)
雪屋人迷一色空 (설옥인미일색공)
坐斷十方猶点額 (좌단시방유점액)
密移一步看飛龍 (밀이일보간비룡)
석상의 한 종파를 친히 구봉에게 전하니
향 연기에 좌탈해도 바른 법맥을 통하기 어렵네
둥우리의 학은 천년의 꿈을 꾸고
눈 집에 사는 사람은 일색공(一色空)에 미했다.
시방을 앉아 끊어도 오히려 이마에 점이 찍히니
가만히 한 걸음 옮겨서야 나는 용을 보리라. 」
그래서 '했어도 한 바가 없다'는 이 도리를 어떻게 여러분이 규정 짓느냐 할 때, 또 월명암(月明庵)에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습니다.
「 신라 때 부설 거사의 딸인 월명과 오빠 등운이 함께 발심하여 수도하고 있을 때, 월명의 아름다움에 마음이 끌린 부목이 월명에게 정을 품고 접근하였다. 월명은 오빠 등운에게 의논하였다. 등운은 부목이 그렇게 소원하는 것이라면 한번쯤 허락해도 좋다고 했다. 월명은 부목의 소원을 들어 주었다. 등운은 그 일에 대하여 누이 월명에게 소감을 물었다. 월명은 “허공에 대고 장대를 휘두르는 것 같다”고 하였다.
얼마 뒤 부목은 다시 월명에게 관계를 요구해 왔다. 월명은 다시 오빠 등운에게 의견을 물었다. 등운은 한 번 더 들어주어도 무방할 것이라 하였다. 두번째의 소감을 물으니, 월명은 “진흙탕에서 장대를 휘젓는 것 같다”고 하였다.
그 뒤 부목은 다시 세 번째로 월명에게 관계를 요구했다. 이번에도 월명은 오빠 승낙을 받고 부목에게 허락하였다. 세번째로 오빠가 소감을 물으니, 월명은 “굳은 땅에 장대가 부딪치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등운은 월명을 이대로 두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등운은 월명에게 “깨치는 길은 오직 부목을 죽이는 것뿐이다.”고 했다.
애욕과 견성의 두 갈래 길에서 월명은 어느 한 편을 선택해야 했다. 부목이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숯불이 새빨갛게 피어오를 무렵, 월명은 부목에게 숯불을 골라 달라는 부탁을 하였다.
월명의 부탁을 받은 부목은 무심코 허리를 굽혀 아궁이 안에 반신을 들이밀고 숯불을 고르기 시작했다.
이때 월명이 그의 몸을 힘껏 아궁이 안으로 밀어 넣고 부목이 아궁이에서 나오려고 하자 등운이 발로 차서 못 나오게 밀어 넣었다. 부목은 그만 죽고 말았다. 등운은 월명에게 말했다.
“이제 우리는 살인자다. 살인자는 무간지옥에 떨어지는 법이니 우리가 지옥으로 가지 않으려면 깨치는 것뿐이다. 지옥이냐 깨치느냐의 두 길 밖에 없다.”
두 사람은 그 날부터 용맹정진하여 드디어 이레 만에 깨달았다.
한편 불의의 화를 입어 저승으로 간 부목의 영혼은 염라대왕에게 자기의 억울한 사정을 호소하여 등운과 월명을 처벌해 줄 것을 요구했다. 염라대왕은 차사를 보내어 월명과 등운을 잡아오게 하였다. 그러나 그때마다 입선 중이어서 못 잡아갔다.
등운은 부목을 죽인 전후의 사연을 자세히 써서 염라대왕에게 보내며, “나를 잡으려면 모래로 밧줄을 꼬아서 해를 묶어오라. 그럴 재주가 없다면 나를 잡지 못할 것이다.”라고 하니, 염라대왕이 그를 잡아가지 않았다. 」
이렇게 이 두 사람이 일상생활에서 어느 누구 터치하지 못하는 차원의 경계에서 나무 하고 밥을 먹어도 한 바가 없기 때문에 염라대왕이 못 보고 사자가 못 보는 것입니다. 그건 말로 되는 게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화두가 돼 가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집에서 그와 같이 오매불망으로 관세음보살 하든, 지장보살 하든 아미타불 염불을 하든 사념처관을 하든지, 뭘 하든지 해서 수 없는 겁을 지낸 뒤에 비로소 대승 초문에 들어와서 '이놈이 무엇인가?' 하고 참선을 해야 됩니다. 그럴 바에야 시간 낭비하지 않고 오늘 이 자리에 대번 '이뭣고'를 바로 해 들어가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데 내가 그저께도 시민선원에서 참선 하라니까, "예, 다음에 하지요" 하고 그만 달아나요.
그래서 내가 붙드니까 "스님, 참 급한 일이 집에 있는데, 갔다가 다음에 와서 하지요."
그 다음에 오면 내 눈에는 보이지도 않고 슬슬 비켜서 달아나기 바빠. 그게 왜 그러냐? 그만큼 업이 두터운 거예요. 업이 두터워서 안 된다 이 말이거든요.
여러분이 이놈이 무엇인가 하고 오매불망으로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이 사업하면서 일념으로 '돈 돈' 하듯이 한번 해보라고요. 또 자식 결혼시키고 뭘 해야 된다고 일상생활에서 집착하는 그 이상의 집착을 가지고 화두를 한번 밀어붙여보라고요. 그러면 당장에 되는 거라고요.
대용삼매자(大用三昧者)는 누구냐?
하되 한 바 없고, 짓되 지은 바가 없음이니(爲而無爲 作而無作), 대중이 이 도리를 바로 알아차려서 공부를 하기만 하면 누구든지 바로 여래지에 들어갈 수 있음이라(一超直入如來地).
얼마 전에 선방 경력 30년의 수좌가 몇이 왔기에,
"요새는 공부를 어떻게 지어가느냐? 너는 화두 안 하는 것 같은데."
"지금 밝힙니다만, 저는 관세음보살 염불을 합니다."
"누가 그래 하라 하더냐?"
"우리 스님이 그리하면 틀림없이 성불한다 그래서 합니다."
그 사람한테 '너 그거 아니다'라고 말하면 당장 그 사람은 거부감을 느낍니다.
"그 스님이 그래 하라는데 할 수 없지. 그러나 내가 볼 때는 그렇지 않다." 하고 말해줬습니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이 이전에 찾아왔기에,
"어떻게 공부하느냐?"
"선지식이 어디 따로 있습니까? 제 자신이 선지식이지요."
"니 자신이 선지식이라? 그럼 내 하나 물어보자. 일성한안려장천(一聲寒雁戾長天 기러기 우는 한 소리 하늘 멀리 들리누나.)이라 했는데, 어떤 것이 일성(一聲)이냐?"
"잘 모릅니다."
"니가 선지식이라 하더니, 모르네? 니가 어째서 선지식이냐? 니가 그걸 모르고 있지 않느냐. 누가 그런 소리를 하더냐?"
"선방에서 요새 그럽니다. 선지식이 별로 없다고, 요새 큰스님들 있어봐야 별로 큰 선지식도 아니라고 합니다.“
그래서 열심히 하다 보면 불보살이 나타나서 인도해 준다고 이렇게 생각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내가 하나 물어보자. 남해 보리암에서 어떤 수좌가 준제진언을 밤낮으로 외우며 정진하다가 어느 날 천지가 무너지는 듯한 소리가 나서 눈을 떠 보니 허공에 오색광명과 함께 부처가 나타났다. “나는 너가 그토록 찾던 준제보살이다. 왜 내 이름을 그렇게 부르느냐?” “빨리 성불하고 싶은데 여자 생각이 너무 많이 나서 안 됩니다.” 그러자 “남근을 끊어라. 그러면 성불한다.” 그는 그 말을 믿고 칼로 끊었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피만 나서 죽을 지경이 되었고 결국 병원에 실려가서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그 뒤로 평생 기저귀를 차고 살았다. 깨달은 건 하나도 없고. 그럼 어쩔 것이냐?”
그렇게 무슨 부처님이 나타나 선몽을 해주고 그런 소리를 하는 수좌가 있단 말입니다. 지금도 내가 기가 막힙니다. 그런 소리 하는 보살님들도 여기 있어. 마구니도 얼마든지 그리 나타나서 해줄 수가 있어요.
지금도 여러분이 관세음보살 염불을 30년 해서 관세음보살이 나한테 실려가지고 가르쳐주고 지시하느니, 뭘 어찌 해주느니, 꿈을 꾸니 영통하게 맞춰서 알아지느니… 이게 전부가 다 마구니 장난하는 것을 모르고.
※ 우바국다 존자와 여래 묘색신(妙色身)
「 마왕 파순이 우바국다 존자에게 말하되,
“제가 불법에 환희심을 내게 된 것은 존자의 큰 은혜이니, 내 목의 시체 목걸이를 풀어주소서."
우바국다 존자가 파순에게 이르되,
"먼저 한 가지 약속을 하고 나서 풀어주리니, 지금부터는 비구들을 어지럽히지 말라."
"이르신 대로 하겠습니다."
"나를 위하여 또 한 가지 일을 하라. 내가 여래의 법신은 보았거니와 여래의 묘색신(妙色身)은 보지 못하였으니, 나에게 여래의 묘색신을 보여서 공경심이 나도록 하라."
"나도 존자께 먼저 부탁드리는 조건이 있사온대, 내가 부처의 몸이 되어 보여도 내게 절을 하지 마십시오."
"너에게 절을 하지 아니할 것이다."
"잠시 내가 수풀에 들어가 있을 동안 기다리십시오. 내가 예전에 부처님의 모습이 되어 수라장자를 속인 적이 있으니, 존자를 위해 그때의 모양과 같이 되어 보일 것입니다."
존자가 마왕의 목에 걸린 시체 목걸이를 풀었다. 마왕이 수풀에 들어 부처의 모습이 되니, 채색으로 금방 그린 듯하고, 왼쪽엔 사리불이 서고, 오른쪽엔 대목건련이 서고, 아난이 뒤에 서고, 마하가섭과 아니룻다와 수보리 등 1250명의 대아라한들에 둘러싸여 수풀에서 나오거늘, 존자가 일어나 합장하며 자세히 보고 게를 지어 이르되,
"쾌재라 청정한 업이여! 능히 이런 묘과를 이루는구나. 하늘에서 나신 것이 아니며 또한 인연 없이 되신 것이 아니로다. 낯빛은 연꽃 같고 눈이 맑음이 밝은 구슬 같고 단정함이 일월을 지나가며 사랑스러움이 꽃숲보다 뛰어나며 담연함이 바다 같으며 편안함이 수미산 같으며 위엄의 광명이 해보다 뛰어나시며 조용한 걸음걸이가 사자와 같으시며 돌아보심이 소왕(牛王) 같으며 빛깔이 자금(紫金) 같으니, 백천 무량한 겁에 몸과 입과 뜻을 깨끗이 닦으시어 이렇게 수승한 묘색신(妙色身)을 얻으셨으니, 원한을 가진 이가 보아도 기뻐할 것이거니, 하물며 내가 공경하지 않겠는가?"
하고 부처님 뵈는 마음이 지극하여 본래 약속을 잊고 즉시 땅에 엎드려 예를 올리니, 마왕이 이르되,
"존자는 예를 아니하려 하시더니, 어찌 예를 올리시는 것입니까?"
"위 없는 세존이 열반하신 줄을 알지만, 이런 모습을 보니 부처님을 보는 듯하므로 부처님을 위하여 예를 한 것이지 네게 하는 예가 아니다."
"존자가 나에게 절하는 것을 눈으로 보았는데, 어찌 내게 절하는 게 아니라 하십니까?"
"너는 나의 말을 들어라. 흙과 나무로 천상(天象), 불상(佛象)을 만들어 하늘과 부처님을 공경하여 절하는 것이 나무와 흙에 절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나도 이와 같이 부처님께 절하는 것이지 너에게 하는 절이 아니니라."
마왕이 즉시 본래 모습으로 돌아와서 존자에게 절하고 하늘로 돌아갔다. 」
우바국다 존자도 이러하건대, 말세에 마왕이 부처님 몸으로 나타난다면 누가 속지 않겠는가?
누구든지 속지 않으려면 회광반조(回光反照) 해서 전면에 나타난 것을 보는 이놈이 무엇인지 돌이켜 살펴라. ‘무엇인고’ 하고 깊이 의심관(觀)을 하면 모든 마구니는 머리가 깨지고 흔적조차 없어진다. 이뭣고 하는 곳에서는 마왕에게 속지 않는다.
나타나는 모양을 따라가는 공부는 위험천만한 것이고, 거기에 속지 않으려면 올바른 선지식을 만나야 한다.
( 학산 대원 대종사 2002.3월초하루 / 역대법보기 강설(우바국다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