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라를 안 것은 지난해 5월말쯤 이었습니다.
우연히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게 되었고
아비라에 올라온 글들을 읽으면서 내가 그동안 참으로
무늬만 불교신자로 살고 있었구나를 알게 되었습니다.
금강경을 꾸준히 읽고 있었지만 마음에서 신심이 나서 열심히 했던 것보다
그냥 숫자나 날짜만 채우기에 급급했고, 그래도 금강경 읽는다는 위안만 삼는
그런 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능엄주도 해봐야 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당장 하지 못하고
이 중생의 어리석음 때문에 능엄주를 해야 하나하고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불경공부를 처음시작 할 때부터 금강경을 읽고 있고
또 금강경 사경도 하고 있는데 금강경만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어리석은 생각에 며칠을 능엄주를 시작해도 되나,
아니면 금강경만 계속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꿈에 스님이(얼굴은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능엄주 해도 괜찮으니 읽어라 하는 꿈을 꾸고 나서
좌복을 구입하고 그날부터 108배와 능엄주 3독을 하기 시작했습니다.(참, 어리석죠ㅎ)
처음 능엄주 읽을 때, 1독 읽는데 20분 넘게 걸리고
능엄주 읽기 시작해서 한 달 동안은 졸음이 쏟아져
3독을 읽은데 졸면서 하거나 읽고 나서는 나도 모르게 졸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점점 읽는 시간은 단축되어 지금은 4~5분대에 읽고 있습니다.
금강경 읽는 동안은 꿈에 많은 사람들이 나왔었는데
능엄주를 하면서 꿈이 잠잠해 졌습니다.
그리고 108배와 능엄주 3독을 하는 100일 동안
몇 년을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의 해결 실마리를 찾게 되었고
다시 100일 하는 동안 그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그리고 능엄주 읽은 횟수가 1000독을 넘으면서는
졸려도 능엄주 읽으면 잠이 달아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머리가 아둔해서 아직 못 외우고 있습니다.(ㅜ.ㅜ)
그리고 삼천 배를 한번 해봐야 되겠다고 생각한 것은 올 2월부터입니다.
그동안 아비라 카페에서 삼천 배 참가하라는 메일을 받을 때마다
매일 108배하기도 힘든데 어떻게 삼천배를 해 그냥 능엄주만 열심히 읽으면 되지 하며
삼천배는 저하고는 먼 얘기였습니다. 아니 감히 엄두도 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능엄주 7독이상의 일과를 시작하고 나서부터
나도 삼천배 한번 해볼까 하는 생각이 일더니
그래 한번 해보는 거야 하는 마음이 자리 잡게 되고
3월에 신청 해보자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여기에는 아비라 카페에
삼천배 참가후기를 올려주신 여러 도반님들의 글도 한 몫을 단단히 했습니다.
그 글들을 읽으면서 용기를 얻었으니까요.)
삼천배를 하려면 108배만해서는 안될 것 같아
2월 말부터 200~300배씩 사이버 법당에 올려 있는
삼천배 예불대참회 음성파일에 맞추어 절을 했지만
12분에 108배를 맞추기가 벅찼습니다.
아니 너무 힘들어 이래 가지 구 어떻게 삼천 배를 할까
더 연습하고 다음에 할까 했지만 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보광성 보살님의 원력으로 서울에서 삼천배가는 버스가 마련되고(저 같은 초보자에게는
너무나 감사한 일입니다. 다시 한 번 보광성님, 영각심님에게 감사드립니다.)
맛있는 점심도 사주시고 좋은 말씀도 많이 해주셔서 가는 동안 든든한 힘이 되었습니다.
드디어 해인사에 버스가 도착하고
같이 오신 여러 분들은 해인사를 둘러보고 백련암 올라가신다고 하셨는데
저는 미리 가서 500배라도 해놓아야 삼천 배를 마칠 수 있을 것 같아
아쉽지만 해인사는 다음에 보기고 하고 발걸음을 백련암으로 재촉했습니다.
백련암 올라가는 길이 생각보다 더 가팔라서 헉헉거리며 올라갔습니다. (올라갈 때와 끝나고 내려올 때
중간에 태워주신다고 한 처사님들 거절해서 미안합니다. 아직도 아상이 두꺼워 제 힘으로 하고 싶었습니다.)
백련암에 직접 서보니 그동안 수없이 백련암 소리를 들어서 그런지
처음인데도 낯설지 않고 오히려 편안했습니다.
고심원에서 성철스님께 삼배를 올리는데
“니, 왜 이제 왔노?”하시는 것처럼 반겨주시는 것 같아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어리석고 미숙하여 큰 스님을 몰라 뵈고
93년에 성철스님 입적하실 때에 많은 사람들이 다비 장에 모인
TV뉴스를 보면서 저렇게 훌륭한 스님이면 살아생전에 중생들을 더 많이 이끌어 주시지 하며
잠깐 큰 스님을 원망 했었는데 아비라 카페를 통해 큰스님을 다시 알게 되었고
이런 큰스님을 몰라보고 동시대에 살고 있었으면서도 알지 못했다는 것이 너무나 후회스러웠습니다.
그리고 그때 스님을 원망했던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었습니다.
“큰스님, 더 일찍 찾아뵙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오늘 삼천배해서 스님을 한 때 탓했던
마음의 빚 조금이라도 갚고 싶습니다.” 이렇게 인사드리고 내려와 절을 시작했습니다.
미리 500배는 해 놓아야 삼천 배를 할 수 있을 것 같아
자리를 잡고 저녁 공양 전까지 500배를 해 놓았습니다.
6시 30분을 시작으로 원택 스님께서 법문을 해주셨는데
그동안 큰스님 시봉이야기로 큰스님을 알게 해주시고
오늘 또 큰스님이야기를 해주시니
오늘따라 원택 스님이 계신 것에 감사함이 사무쳤습니다. (스님 고맙고 감사합니다.)
어질이님의 죽비소리와 함께 시작한 삼천배는 정말 녹녹치 않았습니다.
땀은 비 오듯 하지, 땀이 흘러들어 눈이 따가워 눈도 못 뜨지,
또 콧물은 왜 그렇게 나오는지 온몸에 있는 온갖 오물이 쏟아 나오는 것 같아 정신을 차릴 수 없었습니다.
두 번째 팔 백배 할 때는 절 속도가 더 빨라진 것 같아 헉헉거리며 중간 중간 절을 놓쳤고
너무 힘들어 100배하는 동안은 앉아 있다가 다시 시작했습니다.
600배하는 동안은 왜 삼천 배를 온다고 했을까하는 후회와
그동안 108배도하고 2주전부터는 300배씩 했는데도
온몸이 녹아내리는 것처럼 이렇게 힘 드는 구나,
부모님 복 없는 자식 두어서 마음 고생시켜서 죄송합니다. 부모님 건강하세요.
우리남편 하는 일 잘 되게 해주셔서 경제적으로 안정되게 해주세요.
우리아들도 공부 잘되고 항상 순탄하게 해주세요.
400배 할 때는 내 몸이 내 몸이 아니 구나 나는 숨이 넘어가게 생겼는데
다른 사람들은 자세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맑은 목소리로 어찌 저리도 잘 한단 말인가?
큰스님한테 삼천배해서 마음의 빚 갚는다고 했는데 삼천배를 마칠 수나 있을까
불보살님들 저 삼천배 마칠 수 있게 도와주세요.
200배를 남겨놓고서야 정신이 돌아와 이렇게 힘든 삼천 배하면서도
저와 제 가족 잘 되게 해달라고 하는 것이 먼저였습니다.
일체중생을 위해 기도하라는 스님말씀 이제야 알겠습니다.
어찌 저 혼자 하는 삼천배 이겠습니까.
불보살님이 함께 하시고 여기 계신 도반님들이 계시기에 가능하며
산천초목 인연 있는 모든 중생들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겠습니까.
부디 이 삼천배가 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일체중생을 위한 것이 되게 해주세요. 라며 눈물을 흘리게 되었습니다.
미리 해 놓은 500배는 중간 중간 놓친 절수를 헤아려서 대신하고
팔백 배 때 쉬었던 100배와 또 40배를 더 하고서야 마칠 수 있었습니다.
삼천 배를 마치고 나온 백련암의 새벽은 맑음 그 자체였고,
너무나 청아하게 들리는 백련암의 산새소리는 삼천배 회향을 축하하는 노랫소리 같았습니다.
큰 스님이 지어놓으셨다는 불명을 원택 스님께 직접 받으니 더 좋았습니다.
불명도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自今行’ (자금행) 정확한 뜻은 모르겠지만(지금 스스로 행하라 그런 뜻인지요?)
왠지 너무 예쁘고 그냥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저도 드디어 성철스님께 불명을 받았습니다. 큰스님 감사합니다.
이 글을 빌어 감사드릴 분이 또 있습니다.
삼천배하는 동안 내내 옆에서 할 수 있다고 격려해 주시고 챙겨주신
경주에서 오신 현주명님과 대일행님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두 분 덕분에 할 수 있었습니다.
삼천배 하러 가기 하루 전 꿈에 모양이 다른 새 염주 2개를 선물로 받는 꿈을 꾸었는데
두 분이 저한테 선물 이였습니다.
그리고 제 뒤에서 제 엉덩이에 부딪치며 절을 한
어린보살님(요혜 보살님?)불명이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엄마아빠와 같이 오셨는데 어찌 그리 잘 하시는지 미안하고 감사의 마음 전합니다.
그리고 중간에 쉴 때 먹었던 토마토, 딸기, 오렌지, 사과, 떡 등이
그렇게 꿀맛인지 처음 알았습니다. 올리시고 먹을 수 있게끔 준비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또한 카페를 만들어 이끌어 주시고 많은 글들을 올려주시고 함께 해주시는
어질이님과 카페의 여러 도반님들께도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그동안 글만 읽고 올리지 못했는데
그 미안함과 마음의 짐을 이글로 이제 서야 조금이나마 내려놓겠습니다.
이렇게 긴 졸필을 여기까지 읽어 주시느라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