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20년전, 현재 조계종 총무원장으로 계시는 고산스님이 서울
조계사의 주지로 계실 때 경험했던 일이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당시 조계사 신도의 한사람으로서 불사가
있을때마다 시주를 많이 하는 50대의 부인이 있었다.
어느 날 그 부인이 고산스님께 전화를 하여 울면서 애원하였다.
"스님, 제 딸이 죽어가고 있어요. 제발 빨리 와주세요."
고산 스님은 택시를 타고 급히 그 집으로 가서 현관유리문을
통하여 집안을 살펴보았다. 딸은 쓰러져 있고 부인은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육십 가량 된 남자가 쓰러져 있는 딸의 배 위에
걸터 앉아 두 손으로 딸의 목을 조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매우 다급한 상황임을 느낀 고산스님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
크게 헛기침을 하자, 그 남자가 딸의 배 위에서 슬쩍 내려앉았다.
고산스님은 그 앞에 앉아 기억하고 있던 진언들을 총동원하여
외웠고, 그렇게 30분가량이 지나자 남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틀림없이 원결이 있음이로구나'
이렇게 확신한 고산스님은 부인에게 물었다.
"보살님, 어떤 남자와 원수 맺은 일이 있습니까?"
"원수라니요?" 그런 일 없습니다."
딸에게도 같은 질문을 하였으나 역시 '없다'는 것이었다.
스님은 조계사로 돌아와 그 부인의 친구 되는 보살들에게 물었다.
"그 친구는 통이 커서 다른 사람들에게 잘합니다. 원한을 살
일이 없지요. 다만 한사람, 착하고 부드럽기짝이 없었던 남편에게
만은 '병신'이라는 욕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밖에서 마음 상하는
일이 있으면 집에 돌아가 모두 남편에게 퍼붓고......"
성격이 남자 이상으로 활달했던 그 부인은 장사와 부동산 투기를
통하여 많은 돈을 만졌다. 그러나 부인과 정반대의 성격을 지녔던
남편은 착하고 어질기만 할 뿐 활동적이지 못하였다.
무능한 남편이 되어 아내에게 얹혀 살자 부인은 차츰 남편을
무시하기 시작하였고, 마침내는 어질고 착한 남편의 성품까지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바보요 병신처럼 여기게 되었다. 자연, 부인은
남편을 끊임없이 구박하였고 욕설과 모독은 물론이요, 때로는 남편을
집 밖으로 내쫒기까지 하였다.
해가 가면 갈수록 부인의 패악이 심하여지자, 처음에는 자신의
무능 때문으로 받아들이며 살었던 착한 남편의 마음 속에도
아내에 대한 응어리가 쌓이기 시작했고, 결국은 복수심을 품게 되었다.
그들 부부는 아들 없이 두 딸만 두었는데, 남편은 두 딸을 결혼
시킨 다음 오십대 후반의 나이로 자살을 하였다. 부인이 49재를
지내주기는 하였지만, 복수의 칼날만을 우뚝 세우고 있는 남편이
천도될 까닭이 없었다.
'요년! 이제는 내가 복수할 차례다.'
49재가 끝나자 남편의 복수극은 시작되었고, 그 첫번째 결행으로
큰딸을 죽이고자 하였던 것이다. 자식들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아내의 가슴에 못을 박기 위해서였다.
아버지의 영(靈)이 큰 딸에게 붙자 딸은 음식도 먹지 못하고
잠도 자지 못하고 바짝바짝 말라만 갔다.
그리고 누군가가 목을 조르는 듯한 느낌 속에서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부인은 큰딸을 데리고 전국의 유명한 병원은
모조리 찾아다녔지만,한결같이 '특별한 병이 없다'는 말만
들려줄 뿐이었다.
이상과 같은 전후사정을 모두 알게 된 고산스님은 부인을 불러
물었다. "보살님, 영감님에게 잘못한 것이 있지요? 무릎 끓고
참회해 보십시오. 모든 일이 원만히 해결될 것입니다."
"스님,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그 무능하고 바보스런
남편 때문에 내가 희생되었지, 그 사람이 손해본것이 무엇입니까?
한평생을 희생한 것만도 억울한데 왜 제가 그 사람에게 무릎을
끓습니까? 저는 못합니다."
얼마후 큰 딸은 죽었고, 조계사에서 49재를 지냈다.
49재 끝에 고산스님이 조계사 앞 옆의 회나무가 있는 자리에
재를 지낸 음식을 놓고 옷도 태우러 갔더니, 그 남자가 나무 밑에
서서 삿대질을 하며 소리를 치는 것이었다.
"제삼자인 당신이 왜 이 일에 개입하여 이래라 저래라 하는거요?
당신이 끼어들면 내가 보복을 하지 않고 그만둘 것 같소? 천만에!
당신은 더 이상 간섭하지 마시오."
너무나 독하게 퍼붓는 남자의 서슬에 고산스님의 등에서는
식은땀이 흘러내렸다고 한다. 그리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으로
이민가서 살았던 둘째딸이 언니와 똑같은 상황 속에서 죽고 말았다.
병원에 가면 병이 없다고 하는데 바짝바짝 마르고 목이 조이는
고통을 느끼며 죽은 것이다. 두 딸을 모두 잃은 부인은 세상살이에
대한 의욕을 상실하고 전국의 선방을 찾아다니다가 쌍계사로 갔다.
때마침 고산스님은 조계사 주지를 그만두고 쌍계사 주지를 맡고
있을 때였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여름 한 철을 쌍계사 선방
에서 지내고자 하여 왔습니다." "영감님 원결을 풀어주지 않아
두 딸까지 죽여놓고 잘못조차 깨닫지 못하면서 참선은 무슨 참선?
왜 영감님의 원결을 풀어줄 생각을 않습니까? 보살님이 살아있을
때는 몰라도 숨이 딱 끊어지면 바로 영감님이 달려 들어 '요년,
맛 좀 봐라'며 쪼아붙일텐데......"
"스님, 정말 그럴까요?"
"절에 다니면서 인과 이야기를 많이도 들은 사람이 그 생각도
못합니까?" "스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선방 수행 대신, 법당에 남편 위패를 모셔 놓고 백일 동안
지장기도를 하십시오. 법당에 예불하러 들어가도 부처님전에
절하고는 영감님 위패를 향해 잘못했다고 절을 하고, 기도를 할
때는 영감님 위패를 향해 참회하고 염불하십시오."
유난히 더웠던 그해 여름, 그날부터 부인은 2시간씩 하루
네 차례 지장보살을 부르며 남편의 위패 앞에서 참회와 천도의
백일기도를 올렸다. "제가 어리석고 몰랐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용서하고 좋은 나로로 가십시오."
- 출처:' 영가천도' (우룡스님 저)
조계사의 주지로 계실 때 경험했던 일이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당시 조계사 신도의 한사람으로서 불사가
있을때마다 시주를 많이 하는 50대의 부인이 있었다.
어느 날 그 부인이 고산스님께 전화를 하여 울면서 애원하였다.
"스님, 제 딸이 죽어가고 있어요. 제발 빨리 와주세요."
고산 스님은 택시를 타고 급히 그 집으로 가서 현관유리문을
통하여 집안을 살펴보았다. 딸은 쓰러져 있고 부인은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육십 가량 된 남자가 쓰러져 있는 딸의 배 위에
걸터 앉아 두 손으로 딸의 목을 조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매우 다급한 상황임을 느낀 고산스님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
크게 헛기침을 하자, 그 남자가 딸의 배 위에서 슬쩍 내려앉았다.
고산스님은 그 앞에 앉아 기억하고 있던 진언들을 총동원하여
외웠고, 그렇게 30분가량이 지나자 남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틀림없이 원결이 있음이로구나'
이렇게 확신한 고산스님은 부인에게 물었다.
"보살님, 어떤 남자와 원수 맺은 일이 있습니까?"
"원수라니요?" 그런 일 없습니다."
딸에게도 같은 질문을 하였으나 역시 '없다'는 것이었다.
스님은 조계사로 돌아와 그 부인의 친구 되는 보살들에게 물었다.
"그 친구는 통이 커서 다른 사람들에게 잘합니다. 원한을 살
일이 없지요. 다만 한사람, 착하고 부드럽기짝이 없었던 남편에게
만은 '병신'이라는 욕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밖에서 마음 상하는
일이 있으면 집에 돌아가 모두 남편에게 퍼붓고......"
성격이 남자 이상으로 활달했던 그 부인은 장사와 부동산 투기를
통하여 많은 돈을 만졌다. 그러나 부인과 정반대의 성격을 지녔던
남편은 착하고 어질기만 할 뿐 활동적이지 못하였다.
무능한 남편이 되어 아내에게 얹혀 살자 부인은 차츰 남편을
무시하기 시작하였고, 마침내는 어질고 착한 남편의 성품까지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바보요 병신처럼 여기게 되었다. 자연, 부인은
남편을 끊임없이 구박하였고 욕설과 모독은 물론이요, 때로는 남편을
집 밖으로 내쫒기까지 하였다.
해가 가면 갈수록 부인의 패악이 심하여지자, 처음에는 자신의
무능 때문으로 받아들이며 살었던 착한 남편의 마음 속에도
아내에 대한 응어리가 쌓이기 시작했고, 결국은 복수심을 품게 되었다.
그들 부부는 아들 없이 두 딸만 두었는데, 남편은 두 딸을 결혼
시킨 다음 오십대 후반의 나이로 자살을 하였다. 부인이 49재를
지내주기는 하였지만, 복수의 칼날만을 우뚝 세우고 있는 남편이
천도될 까닭이 없었다.
'요년! 이제는 내가 복수할 차례다.'
49재가 끝나자 남편의 복수극은 시작되었고, 그 첫번째 결행으로
큰딸을 죽이고자 하였던 것이다. 자식들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아내의 가슴에 못을 박기 위해서였다.
아버지의 영(靈)이 큰 딸에게 붙자 딸은 음식도 먹지 못하고
잠도 자지 못하고 바짝바짝 말라만 갔다.
그리고 누군가가 목을 조르는 듯한 느낌 속에서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부인은 큰딸을 데리고 전국의 유명한 병원은
모조리 찾아다녔지만,한결같이 '특별한 병이 없다'는 말만
들려줄 뿐이었다.
이상과 같은 전후사정을 모두 알게 된 고산스님은 부인을 불러
물었다. "보살님, 영감님에게 잘못한 것이 있지요? 무릎 끓고
참회해 보십시오. 모든 일이 원만히 해결될 것입니다."
"스님,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그 무능하고 바보스런
남편 때문에 내가 희생되었지, 그 사람이 손해본것이 무엇입니까?
한평생을 희생한 것만도 억울한데 왜 제가 그 사람에게 무릎을
끓습니까? 저는 못합니다."
얼마후 큰 딸은 죽었고, 조계사에서 49재를 지냈다.
49재 끝에 고산스님이 조계사 앞 옆의 회나무가 있는 자리에
재를 지낸 음식을 놓고 옷도 태우러 갔더니, 그 남자가 나무 밑에
서서 삿대질을 하며 소리를 치는 것이었다.
"제삼자인 당신이 왜 이 일에 개입하여 이래라 저래라 하는거요?
당신이 끼어들면 내가 보복을 하지 않고 그만둘 것 같소? 천만에!
당신은 더 이상 간섭하지 마시오."
너무나 독하게 퍼붓는 남자의 서슬에 고산스님의 등에서는
식은땀이 흘러내렸다고 한다. 그리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으로
이민가서 살았던 둘째딸이 언니와 똑같은 상황 속에서 죽고 말았다.
병원에 가면 병이 없다고 하는데 바짝바짝 마르고 목이 조이는
고통을 느끼며 죽은 것이다. 두 딸을 모두 잃은 부인은 세상살이에
대한 의욕을 상실하고 전국의 선방을 찾아다니다가 쌍계사로 갔다.
때마침 고산스님은 조계사 주지를 그만두고 쌍계사 주지를 맡고
있을 때였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여름 한 철을 쌍계사 선방
에서 지내고자 하여 왔습니다." "영감님 원결을 풀어주지 않아
두 딸까지 죽여놓고 잘못조차 깨닫지 못하면서 참선은 무슨 참선?
왜 영감님의 원결을 풀어줄 생각을 않습니까? 보살님이 살아있을
때는 몰라도 숨이 딱 끊어지면 바로 영감님이 달려 들어 '요년,
맛 좀 봐라'며 쪼아붙일텐데......"
"스님, 정말 그럴까요?"
"절에 다니면서 인과 이야기를 많이도 들은 사람이 그 생각도
못합니까?" "스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선방 수행 대신, 법당에 남편 위패를 모셔 놓고 백일 동안
지장기도를 하십시오. 법당에 예불하러 들어가도 부처님전에
절하고는 영감님 위패를 향해 잘못했다고 절을 하고, 기도를 할
때는 영감님 위패를 향해 참회하고 염불하십시오."
유난히 더웠던 그해 여름, 그날부터 부인은 2시간씩 하루
네 차례 지장보살을 부르며 남편의 위패 앞에서 참회와 천도의
백일기도를 올렸다. "제가 어리석고 몰랐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용서하고 좋은 나로로 가십시오."
- 출처:' 영가천도' (우룡스님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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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보림화 작성시간 06.12.01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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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초롱이 작성시간 06.12.01 가족간의 좋지 않은 인연은 어찌 풀면 될까요? 나 혼자 절 몇 번 한다고 무엇이 달라질까 그런 생각도 가끔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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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정연 작성시간 06.12.01 그분에게 진심으로 참회의 절을 하십시요. 그분이 잘했다는게 아니지요. 나로인해 그분이 받은 고통을 진심으로 참회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보통 난 잘못한게 없는데 그사람으로 인해 이런 고통이 왔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전도몽상이래요. 내가 지은 인연으로 인해 내가 그런 고통을 받는 겁니다. 얼마나 걸릴까 그런 생각하지 마시고 정말 진심으로 참회하시면 서서히 바뀌기 시작합니다. 제경험으로 보장합니다. 단 정말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참회를 하셔야 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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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초롱이 작성시간 06.12.01 알겠습니다. 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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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sure21 작성시간 06.12.01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