淨衆無相의 楞嚴禪 硏究 (정중무상의 능엄선 연구)
趙 龍 憲 원광대 대학원 불교학 박사과정 수료. 동양종교학과 강사.
[진표율사 미륵사상의 특징], [능엄경에 나타난 도교사상], [李資玄의 능엄선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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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연은 諸經要抄(제경요초)에서 다음과 같이 설파한다.
이 대승 돈교의 법문에서는 일체 중생이 모두 본래부터 스스로 불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천만 가지 경론 또는 대 · 소승교의 문자나 말도 오직 중생의 본성을 가리키는 것이며, 그것을 바로 관찰함으로써 불도를 성취할 따름이다.
이 법은 또한 返源(반원)이라 하고, 返照(반조)라고도 하고, 또는 反流(반류) · 회향 · 무생 · · · 이라고도 일컫는다. 또한 법은 견문각지를 벗어난다고 일컫는다.· · · 대불정경에 이런 말이 있다. '본래 1精明(정명)이란 것이 나누어져서 6화합체가 된다.
1개소 활동을 멈추면 6용은 모두 행해지지 못한다. 1근이라도 返源(반원)한다면 6근도 모두 해탈한다. 聞(문)을 반원하면 자성을 들음[聞]으로써 그 자성이 무상도를 성취하고, 봄[見(견)]을 반원하면 마음을 봄[見]으로써 견성하여 불도를 성취한다.· · ·
마하연이 돈오의 근거로 제시한 '1개소 활동을 멈추면 6용은 모두 행해지지 못한다'라든가, '1근이라도 반원한다면 6근도 모두 해탈한다'는 표현들은 모두 능엄경의 내용들이다. 이 부분은 앞에서 언급한 역대법보기의 돈오사상과 동일한 논법에 해당된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역대법보기와 티벳 돈문파를 대표하는 마하연이 자파 주장의 이론적 근거를 공통적으로 능엄경에 두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로운 점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사실은 당시 사천지방과 티벳의 선불교가 頓悟(돈오)와 능엄경이라는 2가지 요소를 공통분모로 하여 서로 연결되고 있었음을 확인시켜 주는 증거라 아니할 수 없다.
티벳의 라사에서 벌어진 돈 · 점 논쟁 가운데서 마하연이 주장했다고 하는 6바라밀에 대한 견해도 '一根旣返源 六根成解脫(일근기반원 육근성해탈)'과 같은 맥락이란 점이 발견된다. 마하연과 연화계 사이에 벌어진 논쟁의 핵심은 6바라밀에 대한 견해차이였다고 한다.
연화계의 주장은 보시 · 지계 · 인욕 · 정진 · 선정을 차곡차곡 거쳐야만 지혜에 도달할 수 있다는 漸(점)의 입장이었고, 반면에 마하연은 방편에 해당되는 보시나 지계를 거치지 않더라도 곧바로 6바라밀의 마지막 단계인 지혜(반야)에 이를 수 있다는 頓(돈)의 입장이었던 것이다.
이 입장은 지혜에 도달하기만 하면 역으로 6바라밀 전체가 완성된다고 하는 의미를 깔고 있다. 이렇게 놓고 본다면 마하연의 주장은 1근이 근원으로 돌아가면 6근이 모두 해탈한다는 [능엄경]의 주장과 맥락이 같다.
6근은 6바라밀에 1근은 혜(반야)에 배대시킬 수 있다. 동일한 문법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마하연이 6바라밀에 대해서 이처럼 과감한 해석을 가할 수 있었던 이면에는 경전적 근거를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임은 물론이다.
즉 [능엄경]이라는 든든한 배경이 뒷받침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여기서 우리는 마하연이 사용했던 방식이, 계 · 정 · 혜를 3구로 환치시킨 다음 삼구를 다시 念不起(념불기: 무념 · 반야) 하나로 압축했던 무상, 무주의 방식과 같은 노선임을 발견할 수 있다.
무상과 무주의 입장도 계 · 정 · 혜라고 하는 삼학을 무념 하나로 압축한 것이니 말이다.
3. 引聲念佛과 耳根圓通의 관계
무상에 대해서 이제까지 알려진 것은 삼구가 무억 · 무념 · 막망이라는 것과 인성염불이라고 하는 독특한 염불법으로 수행했다는 것이 전부일 뿐이다. 삼구가 사상이라면 引聲念佛(인성염불)은 수행법이다.
인성염불이라는 수행방법을 통해서 도달하게 되는 경지가 삼구라는 측면에서 양자는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보아야 한다. 다시 말해서 인성염불은 방법이고 삼구는 목표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양자의 관계는 서로 떼어 놓을 수 없는 어떤 상관관계에 놓여 있는 셈이다.
본 논문에서 일차적으로 돈오사상을 다루고 이차적으로는 돈오의 원리적 근거와 능엄경의 관계에 대해서 살펴보았던 것은 이러한 상관관계를 염두에 둔 것이다. 그래서 본 장에서는 능엄경을 연결고리로 하여 인성염불에 대해서 접근하려고 한다.
이와 같은 수순을 설정하는 까닭은 '돈오'-'능엄경'-'인성염불'이 하나의 연속선상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돈오라는 목표와 인성염불이라는 방법이 하나의 짝을 이루고 있다면 당연히 그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는 능엄경은 인성염불과도 밀접한 관계에 놓이게 된다.
밀접한 관계란 결국 능엄경이 인성염불을 해명할 수 있는 열쇠에 해당함을 의미한다. 좀더 구체적으로 표현한다면 능엄경의 주된 수행법인 '이근원통'이 '인성염불'에 해당된다고 여겨진다. 이 관계를 살펴보기 위해서 먼저 역대법보기부터 조사해 보자.
김화상은 매년 12월과 정월에 사부대중 백천만 인을 위하여 수계하였다. 엄숙하게 도량을 시설하여 스스로 단상에 올라가서 설법하며, 먼저 引聲念佛을 하며 一聲(일성)의 숨을 다 내뱉게 하고, 염불 소리가 없어졌을 때 다음과 같이 설한다. '무억·무념·막망하라. 무억은 계요, 무념은 정이며, 막망은 혜이니라.' 이러한 삼구는 바로 총지문이다.
인성염불이란 것이 과연 어떤 염불법인가를 살펴볼 수 있는 단서는 '一聲의 숨을 다 내뱉게 하고, 염불 소리가 없어졌을 때'라는 대목이다. 먼저 인성염불은 오늘날 우리가 하는 것처럼 '나무아미타불'을 소리내어 외우는 염불법이 아니란 것을 알 수 있다.
'一聲'이란 표현이 있는 것으로 보아서 여러 글자가 아닌 어느 한 글자에 집중하는 염불법으로 보여진다. 그 한 글자는 '나'가 될 수도 있고, '옴'이 될 수도 있다. 그리하여 '一聲의 숨을 다 내뱉게 한다'는 것은 '나 ···' 하고 소리를 내든지, 또는 '오···ㅁ' 하고 소리를 내면서 몇 분이 됐든지 간에 계속하는 경우를 가리키는 것 같다.
계속해서 소리를 내다 보면 자연스럽게 숨이 다 내뱉어지게 될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것은 부처님을 염한다거나 아니면 그 글자가 지니는 뜻에 집중하는 염불이 아니라는 점이다. 서방정토를 염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인성염불이 목표로 하는 최종 도달처가 무념이라는 점에서 인성염불은 稱名念佛(칭명염불)이나 觀念念佛(관념염불), 觀想念佛(관상염불) 또는 기타 다른 염불의 형태하고도 다르다.(↓)
참고>韓普光은 관념염불이나 관상염불과는 다른 형태로 보았다. "念佛禪이란 무엇인가?", '불교연구'10호,1993,p.155. 鄭性本도 淨土(정토)에서 행하는 관념염불이나 구칭염불이 아닌 독자적인 수행법이라는 견해이다.'新羅禪宗의 硏究',민족사,1995,p.112.
무념이란 한 생각 일으키는 것도 있어서는 안된다는 말인데, 어떻게 부처님을 생각한다거나 또는 염을 관한다거나 상을 관할 수 있겠는가. 논리적으로 볼 때 무념과 염불은 양립하기가 어렵다.
인성염불은 그 표현에 있어서 인성 다음에 염불字(자)가 붙어 있어서 일단 염불의 범주에 넣고 생각하기 쉽다. 이 때문에 인성염불 하면 관습적으로 염불선의 범주에서 파악하려고 했던 것 같다.(↓)
참고>念佛禪의 형태는 3가지로 정리된다. 첫째는 念佛이 主(주)가 되고 禪이 從(종)이 되는 경우이다. 이때는 서방정토의 왕생이 목표가 된다. 둘째는 禪이 主(주)가 되고 念佛이 從(종)이 되는 경우이다. 이때는 유심정토가 된다. 내 마음속에 정토가 있다는 관점이다.
셋째는 자타력을 겸수한다는 의미에서 염불과 선을 똑같이 반반으로 병립시키는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關口眞大가 '선종사상사'에서 말하는 염불선의 의미는 셋째의 개념을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念下起(념하기:無念)를 목표로 하는 인선염불은 이 3가지 형태 중에서 어는 쪽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인성염불은 기존의 어떤 염불(선)과도 다른 형태로 보아야 맞다고 본다. 이런 의미에서 인성염불은 염불(선)이 아닐 수도 있다. 염불이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이를 해명하기 위해서는 다른 각도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이제까지는 인성염불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염불에 중점을 두어 왔다. 즉 염불은 염불이되 인성하는 염불이라는 해석이 그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이해하는 방식은 引聲(인성)이라는 글자에 보다 주목하는 것이다. 염불은 별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다. 引聲이란 글자 그대로 소리를 끌어당김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아 ···'나 '미 ···' 또는 '오···ㅁ'이 됐든지 간에 하나의 소리를 끌어당기는 것이다. 문맥상으로 볼 때 끌어당긴다는 것은 자기가 입으로 소리를 내는 것으로 파악된다. 숨을 다 내뱉게 할 때까지 한다는 표현으로 보아서 한참 동안 발성했던 것 같다.
숨을 내뱉게 하기 위한 발성에 집중할 뿐, 소리가 지닌 의미에 집중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인성염불은 오직 소리에 집중(관)하는 수행법으로 결론내릴 수 있다. 오늘날의 시각에서 인성염불의 정확한 이름을 붙인다면 '引聲修行法(인성수행법)'이라고 해야 맞다.
인성염불이 소리에 집중하는 인성수행법이라고 할 때, 이 수행의 방식은 능엄경에 나오는 耳根圓通(이근원통)과 일치한다. 인성염불을 이근원통으로 판단하는
첫번째 근거는 소리이다.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인성염불이라는 것이 소리에 집중하는 수행법이라는 이유이다. 인성염불에는 결코 염불적인 의미나 방법이 들어 있지도 않을 뿐 아니라, 수식관을 하거나 화두를 잡는 선법도 아니다.
耳根(이근)을 통하여 소리에 대한 집중을 중시하는 특이한 수행법이다. 따라서 인성염불과 이근원통은 양쪽 모두 引聲(인성)을 통한 수행법이라는 데에 공통점이 있다.
두번째 근거는 [역대법보기]나 티벳의 마하연측에서 돈오를 주장할 때마다 등장했던 '一根旣返源 六根成解脫(일근기반원 육근성해탈)'이 이근원통章에서 나왔다는 점이다. 능엄경 권6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듣는 놈이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라 소리로 인하여 그 이름이 있게 되었네. 듣는 놈을 돌이켜 소리에서 벗어나면 해탈한 놈을 무엇이라 이름하랴! 하나의 근이 본원으로 돌아가면 여섯 개의 근이 해탈을 이루게 되리라.
··· 여섯 개의 근도 이와 같아서 원래는 하나의 정밀하고 밝음에 의지하여 이것이 나뉘어 여섯 개와 화합하나니 한 곳이 회복함을 이루면 여섯 작용이 다 이루어질 수 없어서 티끌과 때가 생각을 따라 없어져서 원만하게 밝고 청정하고 오묘하게 되리라.
남은 티끌은 아직도 배워야 하지만 밝음이 지극하면 곧 여래이니라.
(聞非自然生 因聲有名字 旋聞與聲脫 能脫欲誰名 一根旣返源 六根成解脫···六根亦如是 元依一精明 分成六和合 一處成休復 六用皆不成 塵垢應念消 成圓明淨妙 餘塵尙諸學 明極卽如來)
(문비자연생 인성유명자 선문여성탈 능탈욕수명 일근기반원 육근성해탈···육근역여시 원의일정명 분성육화합 일처성휴복 육용개불성 진구응념소 성원명정묘 여진상제학 명극즉여래)
능엄경의 卷數(권수)를 나누면 전체가 10卷으로 나누어진다.
이 중에서 6단락 즉 卷6은 '이근원통'장이다. 耳根(이근)의 작용과 우수성을 설명하기 위해서 할당된 파트가 바로 권6의 '이근원통'장인 것이다. 이 장에서 '一根旣返源 六根成解脫(일근기반원 육근성해탈)'은 이근의 圓通(원통)함을 설명하는 대목이다.
원통이란 표현은 '부분이 아닌 전체' 즉 '편벽되지 않고 두루 통한다'는 의미라고 해석할 수 있다. 능엄경 권6의 주장은 耳根을 닦아야만이 두루 통하게(원통) 된다는 뜻이다. 이런 의미에서 一根旣返源(일근기반원)의 一根이란 耳根을 지칭하는 것이다.
耳根(이근)을 통하면 나머지 根도 다 통하게 된다고 하겠다. 이상을 종합하면 '인성염불이 이근원통이다'라는 근거는
첫째, 양쪽 모두 소리[聲]에 집중하는 수행법이라는 점,
둘째, '一根旣返源(일근기반원)'의 돈오 논리가 이근원통을 설명하는 논리라는 점이다. 즉 능엄경 이근원통의 탁월성을 설명하는 논리가 '一根旣返源(일근기반원)'인 것이다. '一根旣返源'의 원래 의도는 돈오의 홍보가 아니라 이근원통의 홍보용이었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러다가 頓(돈) · 漸(점) 논쟁이 발생하자 漸派(점파)를 공격하는 頓派(돈파)의 핵심무기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이근원통도 자연스럽게 돈오를 성취할 수 있는 수행법으로 채택되었을 것이다.
'一根旣返源(일근기반원'과 이근원통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이렇게 놓고 본다면 이근원통의 사상적인 측면이 돈오이고, 수행적인 측면이 이근원통이고 인성염불이었다. 바늘 가는 곳에 실 가듯이 '一根旣返源'이 가는 곳에 '이근원통'도 같이 갔다고 보아야 한다.
4. 耳根圓通이란 무엇인가
耳根圓通(이근원통)은 능엄경에서 열거하는 25가지 수행법 중의 하나이다. 25가지 수행법 중에서 관음보살이 사용한 이근수행법을 가리킨다. 이근수행법이 기타 수행법에 비해서 가장 圓通한 방법이라고 되어 있다.
圓通(원통)이란 말은 가장 빠르고, 전체적이고, 쉽다는 뜻을 내포한다. 이근원통이란 어떤 수행법인가? 현재 이 수행법은 북방불교권에서는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수행법이다.
필자가 그 동안 인편으로 수집한 정보를 종합하여 추측해 보면, 이 법은 김화상의 사후에는 티벳으로 흘러들어가서 밀교의 전통적 수행법 중의 하나로 정착된 것 같다. 반면에 중국이나 한국에서는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秘傳(비전)으로 전승되어 왔으며,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그 일부가 염불선이라는 형태로 변용되어 내려왔다.
그러므로 현재의 염불선에는 부분적으로 이근원통의 원리가 스며들어 있긴 하지만 원래의 오리지날한 방법과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이근원통의 본래 모습을 정확히 이해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현대의 인물은 대만의 南懷瑾(남회근)이다.(↓)
참고>南懷瑾(남회근)은 스승으로부터 중국불교의 전통적인 수행법을 고스란히 전수받았으며, 학문적인 성취에 있어서도 그야말로 대가의 경지에 도달한 인물로 평가된다. 그의 강점은 학문적 깊이와 실제 수행체험을 겸비하였다는 데에 있다.
현대 불교학의 추세가 실제 수행상에서 발생하는 문제와는 동떨어진 시시콜콜한 고증학에 몰두하는 경향임에 반해 그는 수행상의 문제와 학문의 세계를 모범적으로 연결시키고 있다.
특히 요가 · 密敎(밀교) · 禪(선) · 仙道(선도) · 周易(주역)이 지닌 수행상의 비밀을 회통하는데 있어서 독보적인 식견을 소유하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30여권이 넘는 저서들이 한결같이 높은 質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잘 말해 준다.
대표저서 89년 출간, '如何修證佛法(여하수증불법)'[臺北(대북),老古文化事業公司(노고문화사업공사)]은 그가지닌 학문세계의 호한함과 수행체험의 깊이를 여실하게 보여줄 뿐만 아니라 2천년 중국불교의 수행전통이 密密相傳(밀밀상전)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名著라고 생각된다.
남회근은 이근원통을 觀音法門(관음법문)이라 표현한다. 觀音이라 한 까닭은 관세음보살이 행한 수행법이라는 뜻과, 소리를 관한다는 뜻의 2가지의 이유 때문이다. 이근원통 수행은 처음에는 소리에 집중(觀)하는 단계이고, 다음에는 '듣는 놈을 돌리는(反聞聞性:반문문성)' 단계로 접어든다.
처음 과정이 끝나야만 반문문성의 과정으로 진입함은 물론이다. 먼저 소리에 집중하는 법을 알아보자. 소리를 집중하는 데 있어서도 다시 2가지 단계로 나뉜다. 내면의 소리(內耳聲)와 바깥의 소리(外耳聲)가 그것이다.(↓)
참고>남회근 著, 최일범 역, '정좌수행의 이론과 실제' 논장출판사,1988,pp.227~228.
내면의 소리 : 이는 자기의 체내에서 내는 소리 즉 念佛(염불) · 念呪(염주) · 讀經(독경)소리 등을 듣는 것이다. 念의 방법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큰 소리로 염하는 것, 작은 소리로 염하는 것(金剛念), 마음의 소리로 염하는 것(瑜伽念:유가염)이 있다.
염할 때에는 귀로 그 소리를 들어야 한다. 처음에는 염불 혹은 염주하는 소리에 마음이 집중되었다가 안되는 경우가 많지만 점차 一念(일념), 一聲(일성)에 마음이 집중되어 마음이 고요해진다.
여기에서도 보면 3단계를 설정한다. 일단 큰 소리로 염불이나 염주를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高聲念佛(고성염불)이 그것이다.
그 다음 단계로 작은 소리로 염한다는 것은 입 속에서 웅얼웅얼하는 것이다. 이 상태를 계속해서 지속하다 보면 굳이 입으로 웅얼웅얼하지 않더라도 자동적으로 마음속으로 염하는 상태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염불이나 주력 혹은 독경을 오랫동안 지속함으로써 수행의 힘을 얻는 경우는 이러한 경우이다.
요가에서는 내면의 소리에 집중하는 방법이 계발되어 있다. 秘音觀想法(비음관상법)이 그것이다. 손가락으로 두 귀를 막고, 눈은 감고서 내부의 소리를 듣는 방법이다. 여기서 내부의 소리라는 것은 심장에서 나는 秘音(비음)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 명상법은 어리석은 사람들도 할 수 있다고 한다.
편안한 자세로 앉아서 두 귀를 막고 네번째 챠크라인 아나하타 챠크라에서 나는 비음 나다(nada)에 의식을 집중하는 것이다. 이 소리에 의식을 집중함에 따라서 내부의 소리가 외부의 소리를 압도한다. 보름 정도를 하면 모든 잡념이 사라지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참고>李泰寧(이태령), '요가의 이론과 실제', 민족사,p.102.
이 외에도 쿤달리니(Kundalini)라고 부르는 원초적 에너지가 폭발할 때도 내면에서 소리가 들린다. 쿤달리니 에너지가 인체의 각 챠크라를 통과할 때 소리가 난다. 북소리, 종소리, 파도소리, 플룻소리 등이 그것이다. 이는 수행자 본인만이 들을 수 있는 소리임은 물론이다.
무케르지(Mookerjee)는 그 소리를 4가지 형태로 구분하기도 한다. 거대한 것으로부터 가장 미세한 것의 순서로 바이카리(형식으로 실현된 음), 마드야마(미세한 형식의 음), 파시얀티(미분화 된 형식으로 우주에 대한 상이 내재해 있는 음), 파라(들을 수 없는 음) 등이 있다.
바이카리는 청각으로 감지할 수 있는 음의 단계로 양 표면이 서로 부딪칠 때나 또는 현을 뜯을 때 생성된다. 마드야마는 들리는 음과 내부 진동과의 과도기적 단계를 이른다. 파시얀티 단계에 이르러서는 음은 오직 영혼이 깨어 있는 수행자에게만 들릴 뿐이며, 파라 단계에 이르게 되면 음은 청각적인 성질을 훨씬 넘어서는 그 무엇을 의미하게 된다.
[능엄경] 권6에는 妙音(묘음) · 觀音(관음) · 梵音(범음) · 海潮音(해조음)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러한 표현도 쿤달리니가 통과할 때 들리는 소리와 관련이 있다고 여겨진다.
바깥의 소리 : 어떤 소리든지 물체에서 나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가장 좋은 것은 물이 흐르는 소리나 폭포소리 또는 바람이 불어서 풍경이 울리는 소리나 범패소리를 듣는 것이다. 처음으로 마음이 소리에 완전히 집중되었을 때 능히 졸지 않고 마음을 산란하게 하지 않으면 자연히 이런 경지를 계속 지켜나갈 수 있다.
바깥의 소리에 집중한다고 할 때 가장 보편적인 소리는 계곡에서 흐르는 물소리이다.(↓)
참고>우리 나라에서 절터를 잡을 때 양쪽에서 흘러오는 물이 合水(합수)치는 곳을 선호하는 이유 중의 하나도 이와 관계가 있다고 여겨진다.
이는 가장 쉽게 定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다. 그러나 선사들 가운데는 소리를 듣고 곧바로 돈오하는 경우가 많았다. 예컨대, 百丈禪師 (백장선사)문하에서 어떤 승려가 종소리를 듣고 깨우쳤는데, 백장은 "뛰어나도다. 이것은 관세음보살의 입도하는 방법이다[俊哉(준재), 此乃觀音入道之門也(차내관음입도지문야)]"라고 말하였다.
이 외에 香嚴(향엄)은 대나무가 부딪히는 소리에 견성했고, 圓悟(원오)는 닭이 날개치는 소리를 듣고 오도하였다. 조선조의 西山休靜(서산휴정)이 대낮에 닭 우는 소리를 듣고 오도했다는 것도 같은 맥락에 속한다. 이근원통의 마지막 단계는 反聞聞性(반문문성)이다. 듣는 성품 자체를 다시 반문한다는 의미이다.
그 들음을 버리고 듣는 놈을 돌리게 된 다음이라야 지극히 요긴함이 된다. 무릇 들음을 버리고 듣는 놈을 돌리게 되면 부처님의 광명과 보리수와 無說示(무설시)와 衆香處(중향처)에 다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期於遺聞反聞然後爲至要 夫至於遺聞返聞則佛光明 菩提樹無說示衆香處皆可入矣)
(기어유문반문연후위지요 부지어유문반문칙불광명 보리수무설시중향처개가입의)
듣는 것, 즉 소리에 대한 집중도 놓아버리고 無說示(무설시)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 반문문성이다. 無說示란 아무것도 설하는 것이 없는 경지로서, 무상이 인성염불이 다한 뒤에 제시한 삼구와 상통하는 의미라고 판단된다.
즉 무설시는 무억 · 무념 · 막망의 경지인 것이다. 반문문성에서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점은 이 방법이 후대로 내려오면서는 '듣는 놈 이것이 무엇인고?'라는 公案(공안)으로 정착되었다는 사실이다. 소위 念佛公案法(염불공안법)이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雲棲주宏(윤서주굉: 1535∼1615)이 禪關策進(선관책진)에서 주장한 '염불하는 자 이것이 누구인가?'라는 공안은 이근원통 중에서 마지막 단계인 반문문성의 원리를 응용한 것으로 보인다.
'듣는 놈 이것이 무엇인고?' 또는 '염불하는 자 이것이 누구인가?'를 돌파할 때 소리를 넘어선 무설시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며, 이것이 무상이 말한 삼구이고 무주가 말한 무념의 경지라고 여겨진다.
이근원통의 방법을 다시 정리하면 일단 바깥의 소리 또는 내면의 소리에 집중한다. 소리의 종류는 바람소리나 물소리도 가능하고, 염불 · 주문 · 독경소리도 가능하다. 이때 염불이나 주문, 독경이 지니는 문자적 의미는 문제가 안되고 오직 소리만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 좀더 나아가면 인체내의 챠크라가 돌아갈 때 발생하는 북소리나 플룻소리 등을 들을 수 있다고 여겨진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는 그 소리마저 떠나버린다. 이처럼 소리에 집중하는 이근원통의 수행법은 능엄경에서 제시하는 독특한 수행법이기 때문에 '염불선'과도 다르고 기타의 선법과도 다르다.
그래서 필자는 이근원통의 수행법이 능엄경에 바탕한 선법이라는 뜻에서 '楞嚴禪(능엄선)'이라는 이름을 붙여 보았다.
5. 결 론
본 논문의 결론은 무상이 사천지역에서 대중들을 교화한 인성염불이 능엄경의 수행법인 '耳根圓通(이근원통)'이었다는 것이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서 먼저 무상의 선사상이 頓悟(돈오)사상이라는 데 주목하였다.
무상 또는 무주 일파의 돈오사상에 내포된 돈오의 의미는 계 · 정 · 혜 삼학 중에서 혜 쪽에 보다 비중을 두는 사상운동이었다고 평가된다. 三學을 三句(삼구)로 대치시킨 무상의 작업도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이러한 경향은 역대법보기가 분명하게 표방한 사상적 노선이었다고 여겨지며, 티벳의 마하연으로 대표되는 돈문파의 노선과도 일치한다. 6바라밀 가운데 보시나 지계 등의 5바라밀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지혜로 들어갈 수 있다는 마하연의 주장에서 당시 돈문파의 지향점이 무엇이었던가가 나타난다.
이러한 노선은 금강경에 입각하여 돈오를 주장한 신회의 입장과도 궤를 같이하는 움직임이었다고 생각된다. 이들이 돈오를 주장하게 된 배경에는 禪定(선정)의 위험성에 대한 비판이 깔려 있다.
즉 잘못된 선정에 탐닉하다 보면 入魔(입마)의 위험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고 본 것이다.
선정이 여러 가지 신통묘용은 잘 나투지만, 그 신통이 알고 보면 高級靈(고급영)으로부터 나온 것이고, 고급영에 사로잡혀 있다 보면 진정한 반야지의 획득은 어렵게 된다고 본 것이다. 역대법보기에서 기존의 삼매나 止觀(지관)을 신랄하게 비판한 이유는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잘못된 삼매로 인한 入魔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돈오파는 그 대안으로 혜를 제시한 것 같다. 이때의 혜를 무상은 삼구로 제시하였고, 무주는 다시 무념으로 압축하였다. 수행의 최종 목적지를 무념으로 기준 삼는다면 入魔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역대법보기는 이러한 돈오의 원리적 근거를 능엄경의 '一根旣返源 六根成解脫(일근기반원 육근성해탈)'에 두고 있다. 이 논리는 다른 대승경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내용임은 물론이다. 아울러 능엄경은 잘못된 삼매로 인한 入魔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그 사례를 자세하게 설명한다. 능엄경 권10의 '禪種 50魔(선종50마)'가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능엄경은 삼매의 오류를 지적할 뿐만 아니라 돈오의 논리를 제공하는 데 있어서 더할 나위 없는 적합한 경전이었음이 드러나며, 무상 · 무주 · 마하연으로 이어지는 돈문파의 이론적 배경을 뒷받침하는 핵심경전으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능엄경의 전체 구성은 卷(권)10으로 되어 있는데, 이 중에서 돈오사상의 출처는 卷6에 해당되는 부분으로서, 卷6은 이근원통에 대해서 설명하는 부분이다. 이근수행이 갖는 특징이 무엇인가 하면 25가지 수행법 중에서 가장 빠르게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25가지 수행법 중에서 가장 수승한 법이 이근원통이라는 것이고, 수승하다는 것은 결국 빠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어떻게 빠른가를 설명해야 하는데, 이를 설명하는 논리가 바로 '一根旣返源 六根成解脫(일근기반원 육근성해탈)'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능엄경에서 표방한 돈오사상의 핵심논리는 이근원통에서 나온 것이다. 돈오는 이근이고 이근은 돈오를 지칭한다. 돈오사상의 뿌리에는 이근원통이라는 수행법이 버티고 있었음을 유의해야 한다.
역대법보기를 비롯한 티벳 돈문파의 배경에는 이근원통이라는 수행법이 뒷받침하고 있었던 것이다. 돈오라고 하는 새로운 사상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수행법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불교의 사상은 수행을 통한 果位(과위)의 형태로 증명될 때 힘을 발휘한다. 증명하기 위해서는 수행법이 중요하다.
당시 사천과 티벳의 돈문파는 돈오를 뒷받침하는 이근원통법을 수행하고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필자가 무상의 인성염불이 이근원통이었을 것이라고 판단하는 근거는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인성염불이 이근원통이라고 판단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소리이다. 인성염불은 소리에 집중하는 수행법이었다. 인성염불은 타력에 의한 서방정토의 왕생을 목표로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염불적인 요소는 희박하다고 판단된다.
그렇다고 기타 다른 형태의 禪法도 아니다. 어느 한 글자의 소리를 택해서 이를 길게 소리내는 방법일 뿐이다. 소리를 내는 까닭은 서방정토를 염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자기가 내는 소리에 자기가 집중하기 위해서이다.
이렇게 놓고 본다면 이 방법은 內耳聲(내 이성)과 外耳聲에 집중하는 이근원통법과 일치한다. 이러한 점을 감안한다면 인성염불은 '楞嚴禪(능엄선)'이라고 호칭해야 맞다. 능엄경의 선법이란 뜻이다.
무상의 인성염불이 이근원통이라고 할 때 우리는 한 가지 부수적인 수확을 거둘 수 있다. 그것은 무상과 신라 구산선문과의 사상적 연결점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양자는 돈오사상이라는 공통점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무상의 이근원통도 돈오사상이고(↓)
구산선문도 돈오사상이다. 그러나 무상을 염불선의 틀에서 파악하는 한 이러한 공통점은 결코 발견될 수 없다고 본다. 능엄경을 중간에 대입시켜야만 공통점이 발견되는 것이다. 따라서 정중무상과 신라 구산선문은 마조와 서당지장을 통한 법맥상의 연결뿐만 아니라 돈오라는 사상적 측면에서도 서로 연결되고 있었던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참고>'능엄경'의 修證論(수증론)은 頓悟漸修(돈오점수)의 체계이다. '능엄경' 권10의 '理則頓悟 乘悟倂鎖(승오병쇄) 事非頓除(사비돈제) 因次第盡(인차제진)'이 여기에 해당한다. '理는 頓이지만 事는 非頓'이라는 頓悟漸修(돈오점수)론의 최초 진원지는 '능엄경'이다.
'능엄경'에는 돈오와 점수 두 부분이 공존해 있지만, '역대법보기'를 비롯한 돈문파에서는 주로 돈오에만 주목하였다. 점수에 대한 부분은 언급하지 않았다. 이 점은 앞으로 연구해야 할 과제이다.
參 考 文 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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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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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어질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5.07.19 수행자가 삼매를 닦다가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천상의 고급영에 사로잡힐 수 있는[入魔(입마)]위험을 지적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여러 가지 신통이 나오기 때문에 본인은 도를 통한 것으로 착각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신통도 사라지고 결국에는 아비지옥으로 떨어진다는 것이다.- 내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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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어질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5.07.19 耳根圓通(이근원통) 에 대해 알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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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어질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5.08.13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