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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맹이찾기 892호] 깨달음과 성성적적의 관계는 어떠한가?

작성자어질이|작성시간15.12.10|조회수285 목록 댓글 3

[알맹이찾기 892호]

 

깨달음과 성성적적의 관계는 어떠한가?

 

적적한 마음은 모든 이것과 저것을 여읜 고요하고 편안한 마음이요, 성성한 마음은 한결같이 깨어 있는 밝고 맑은 마음이다.  마음이 고요하고 밝으면 모든 일에 막힘이 없고 어떤 경계에도 자유롭다.이것은 애써 이룬 수행의 열매가 아니라 본래 그러한 자성의 참모습이다.

 

그래서 영가 선사는 "적적하기도 하고 성성하기도 하면 분명히 깨어 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고요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곧 근원으로 돌아가는 묘한 성품이다."라고 말했다.

 

육조혜능 선사도 "위없는 대열반이여, 원만하고 밝아 항상 고요하고 밝게 비춤이로다."라고 하였다.  여기에서는 밝게 비춘다고 표현하지만, 그것은 '깨어 있다'는 성과 같은 의미이다.  성성과 적적의 관계는 선사들의 어록에서는 채와 용, 살과 활, 정과 변, 공적과 영지, 정과 혜, 진공과 묘유, 이와 사 등 다양하게 표현되고 있다.

 

적적은 모든 양변을 여의어 산란한 마음을 쉰 경지이기 때문에 공적이요, 살이며, 삼매며, 정이다.  성성은 양변을 여읜 곳에서 나온 밝은 지혜이기 때문에 묘유요 활이요 영지라 한다.  그렇다고 적적과 성성, 공적과 영지, 살과 활, 정과 혜가 따로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본성은 두 가지가 함께 어우러져 어디에도 걸리지 않는 모습으로 있다.  이것을 금강경에서는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어라."고 했다.

 

고요한 '적'만 있고 깨어 이는 '성'이 없으면 목석과 같은 공허한 무기에 떨어진다.  '성'만 있고 '적'이 없으면 분열과 대립만 있을뿐이다.  이와 관련하여 혜능 선사는 '육조단경'에서 이렇게 말한다.

 

선지식들아, 나의 가르침은 정과 혜로 근본을 삼는다.

그러니 무엇보다도 미혹하여 혜와 정이 다르다고 말하지 말라.  정과 혜의 몸은 하나이지 둘이 아니다.  곧 정은 혜의 체요, 혜는 정의 용이다.  혜가 작용할 때 정이 혜에 있고, 정이 작용할 때 혜가 정에 있다.

 

선지식들아, 내가 말하는 뜻은 정.혜가 함께 한다는 것이다.  도를 배우는 사람은 짐짓 정을 먼저 하여 혜를 낸다거나 혜를 먼저 하여 정을 낸다고 해서 정과 혜가 저마다 다르다고 말하지 말라.

 

이런 소견을 내는 이는 법에 두 모양이 있는 것이다.  입으로는 착함을 말하면서 마음이 착하지 않으면 혜와 정을 함께 함이 아니요, 마음과 입이 함께 착하여 안팎이 한 가지면 정.혜가 함께 하는 것이다.

 

선정과 지혜, 적적과 성성은 둘이 아니다.  그것은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관계를 이루고 있다.  만약 적적만 있고 성성이 없다면, 지헤가 없어 번뇌가 다하지 않은 상태로 이것은 외도의 수행과 하등 다를게 없다.  성성적적이 제대로 된다면 그것은 불교수행이며 그 자리가 우리의 본래 모습니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화두를 드는 과정에서도 적적성성한 상태를 지켜 나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적적성성한 삼매가 본래 갖추어져 있는 본분 자리의 성성적적과 상응해서 한바탕 크게 깨달으면 대자유인이 되는 것이다.

 

(출처 : 간화선-조계종 수행의 길 / 아비라카페 알맹이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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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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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어질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5.12.10 2015.12.10
  • 작성자메따와 사띠 (조방) | 작성시간 15.12.10 나모 땃서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붇닷서! 존귀하신분, 공양받아 마땅하신분, 바르게 깨달으신 그분께 귀의합니다. '' 글에 포함된 스티커
  • 작성자원행덕(오삼남) | 작성시간 15.12.10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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