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마음대로 불매 네가 그것의 소리는 들어도 그것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에게서 난 사람도 다 이러하니라, 하시니라.” (요 3:8)
전도서 11:5, 고전 2:11절을 찾아 읽으세요
성령의 역사는 바람과 같습니다.
소리는 들리지만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다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설명보다 계시의 영역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해보다 신뢰를 요구하십니다.
니고데모는 매우 종교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율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는 길을 인간의 이해와 논리 안에서 찾고 있었습니다.
사람이 거듭나는 것...
성령의 역사는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볼 수 있습니다.
사울이 바울이 되는 것
어부 베드로가 담대한 사도가 되는 것
세상을 사랑하던 사람이 그리스도를 사랑하게 되는 것
이것은 인간의 종교 교육이나 윤리 도덕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변화입니다.
예수님은 성령의 역사가 보이지 않는다고만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인간이 성령의 움직임을 통제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종교를 체계화하려고 합니다.
이렇게 하면 하나님이 역사하신다.
이렇게 기도하면 응답된다.
이 순서를 따르면 부흥이 온다.
한때 기독서점에는 "이렇게 시리즈"가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성령은 인간의 공식 안에 갇히지 않으십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도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왔습니다.
빌립이 사마리아에서 부흥을 경험할 때도 성령께서 갑자기 광야로 보내셨습니다.
베드로도 이방인 고넬료 집에 성령이 임할 것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성령은 언제나 사람의 종교적 계산을 뛰어넘어 움직이십니다.
그런데 주님의 말씀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성령에게서 난 사람도 다 이러하니라."
많은 사람들이 앞부분은 주목하지만 이 마지막 말씀은 놓칩니다.
주님은 성령만 바람 같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성령에게서 난 사람도 그렇다고 하셨습니다.
성령으로 태어난 사람은 더 이상 자기 계획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거대한 엔진과 방향을 틀 수 있는 조타장치를 가진 유조선도 잠수함도 항공모함도 모터보트도 아닙니다.
우리는 가장 약한 "노"도 없는 돛단배일 뿐입니다.
참된 영적 생활은 자신이 무엇을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생활이 아니라
하나님의 움직임에 반응하는 생활입니다.
성령의 바람이 불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의 돛"을 올리는 것뿐입니다.
“[23] 배로 바다에 내려가는 자들과 큰 물에서 사업을 하는 자들 [24] 곧 이들은 {주}께서 행하신 일들과 깊음 속에 있는 그분의 이적들을 보나니 [25] 그분께서 명령하사 폭풍을 일으키시매 그것이 자기의 파도들을 높이 일으키는도다. [26] 그들이 하늘로 솟구쳤다가 다시 깊음들로 내려가니 고난으로 인하여 그들의 혼이 녹는도다. [27] 그들이 이리저리 구르고 술 취한 자처럼 비틀거리며 어찌할 바를 모르는도다. [28] 그때에 그들이 고난 중에 {주}께 부르짖으매 그분께서 그들을 그들의 고통에서 데리고 나오시며 [29] 폭풍을 고요하게 하시므로 그것의 파도들이 잔잔하게 되는도다. [30] 파도들이 조용하므로 그때에 그들이 즐거워하나니 이처럼 그분께서 그들이 원하는 항구로 그들을 데려가시는도다. [31] 오 사람들이 {주}의 선하심과 사람들의 자녀들에게 행하신 그분의 놀라운 일들로 인하여 그분을 찬양하기 원하노라” (시 107:23~31)